프로레슬러, 하반신마비, 롤케익 사장, 김남훈의 7전 8기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 ‘멜로드라마 파이터’를 통해 공개


김남훈 UFC 해설위원(35,UFC해설위원)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 프로레슬러, 하반신 마비, 엽기 일본어 제작자, 딴지일보 사원, 1억원의 부채, 롤케이크 사장, 수퍼액션 UFC 해설위원 등 정말 안해 본게 없을 정도다.

지난해 오랜만에 프로레슬러로 복귀한 김남훈의 모습


김남훈 인생은 프로레슬링에서 시작됐다. 그는 어린 시절 AFKN(주한미군 방송망)의 프로레슬링에 흠취했다. 아예 팬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청소부터 선배들의 빨래까지 하는 등의 밑바닥 생활을 거쳤고, 힘들게 첫 데뷔전의 기회를 얻었다. 스스로 악당역을 자처했다. 코믹악당이 아닌 WWF(미국 프로레슬링)에서 볼 수 있는 진정한 악당역이였다. 이는 자신의 입지를 점점 굳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였기 때문일까, 출전도 조금씩 잦아졌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날벼락이 떨어졌다. 방송 촬영 도중 링에서 심하게 곤두박질 친 것이다. 이일로 목에 큰 충격을 받았고, '하반신 마비'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됐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 거야" 매일을 고통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낙심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다. 병든 마음부터 다잡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자신이 걸을 수 있으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생각했다. 우습게도 햄버거를 먹는 것이었다. 그는 햄버거를 내 힘으로 내 돈주고 사먹어야한다는 일념으로 재활운동에 매진했다. 단지 걸어가서 햄버거만 먹으면 됐다. 결국 김남훈은 자신의 발로 직접 햄버거 가게를 들어가는 목적을 달성했다.

이런 악몽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링에 올랐다. 김미파이브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을 하게됐다. 김미파이브 활동 당시 김남훈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러브콜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택했다. 즐거웠다. 다시 프로레슬링에 다시 빠져들 때 즈음 이번엔 링 사이드 기둥에 부딪혀 이빨이 부러졌다. 이 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그는 제대로 된 치료비는 커녕, 200여 만원의 월급도 100여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 분했다. 어떻게든 밀린 월급을 받아보려했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김미파이브는 프로레슬링 중계를 중지했고, 이어 선수가 사망하는 악재로 문을 닫게됐다.

2라운드,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그리고 좌절


2라운드는 인터넷미디어 방송인 <엽기 일본어>를 제작하게 되면서 시작됐다. 김남훈은 오토바이 잡지를 읽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다. 자신에게 일본어는 좋아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언어였다. 이런 일본어를 다른 사람들도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재미가 우선이었다. 조폭이 협박하는 상황, 싸우면서 일어나는 일 등을 일본어로 재밌게 표현했다. 반응은 좋았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엽기적인 그녀의 김호식 작가와 함께 한 토론회에 패널로 나설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비슷한 매체들이 생겨나면서 조금씩 경쟁력이 떨어지더니 문을 닫고야 말았다. 김남훈은 실직하게 됐다. 이후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러브콜로 함께 일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김남훈은 라디오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프레레슬러, 인터넷방송 진행, 벤처 회사 직원 같은 특이한 이력이 방송관계자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 등에서 고정게스트로 활동했다. 이후 누군가 메인 MC로 추천했고 ‘떡’하니 붙고 말았다. 하지만 라디오 방송은 인터넷과 달랐다. 그는 사회 경험이 부족했고, 청취자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지 못했다. 많은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스스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방송 창피를 무릅쓰고, 방송 포스터를 종이가방에 붙여 직접 쓰고 다니기도 했다. 소용없었다. 방송은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이를 기획한 PD는 이후 비슷한 방송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결국 MC가 문제였구나.” 김남훈은 생각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파이널라운드


UFC파이터 김동현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출처 : 네이버블로그)


여러 좌절을 맞본 김남훈은 창업을 결심했다. 일본의 업체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던 그는 ‘건강 팔찌’를 수입해 웹사이트에서 판매를 했다. 때를 잘 맞췄다. 당시 많은 유명 스포츠인들이 이 팔찌를 차고 경기를 했다. 자연스레 사업도 대박났다. 강남에 사무실을 얻어 십여명의 직원을 두기도 했다.

로또가 되면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폐가 망신을 한다고 한다. 바로 김남훈에게 건강 팔찌는 로또였다. 직원들과의 회식이 잦아진 것은 물론 회사 법인으로 외제차도 구입했다. 건강 관련 상품의 수명은 길어야 6개월이다. 중국에서 만드는 모조품이 대량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이를 알지 못했던 그는 월 매출 1억원을 기록하던 사업체가 부채 1억원의 회사로 변하는 것을 지켜봐야만했다.

김남훈의 3라운드는 격투기해설로 시작된다. 당시 그는 격투기해설을 하기에는 이력면에서 상당히 부족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그는 또 다시 인터넷을 활용했다. 초보자를 위한 격투기 동영상을 자체 제작해 올린 것이다. 로우킥에 대한 강도를 알아보기 위해 프로 선수로부터 수십여 차례의 로우킥을 직접 맞으며 느껴봤다. 이런 과정에서 여러 편의 동영상도 자체 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케이블TV 수퍼액션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봤고 또 다시 합격했다. 평소 시험 운이 없었지만 미디어에 관해서만큼은 백전백승이었다.

더불어 창업을 시작했다. 바로 롤 케이크 카페였다. 정말 열심히 했다. 하루에 백 여 개에 이르는 롤 케이크를 만들었고, 맛을 봤다. 수 많은 종류의 롤 케이크 신 메뉴를 개발해 냈다. 노력은 대박으로 이어졌다. 1억원이 넘던 부채를 300만원으로 뚝 떨어트렸다. 밎 때문에 술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김남훈은 “내 자존심이 걸려있었다. 내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다. 밀린 급여는 다 주고 싶었다. 모든 빚을 다 갚는 날, 직원들과 같이 꼭 시원한 맥주를 한 잔 하고 싶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내 자신과도 건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남훈은 이런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억 소리나는 빚을 어깨에 짊어지고도 기부활동까지 하면서 말이다. ‘멜로드라마 파이터’에서 김남훈은 “돈이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좋은 옷 가게에서 친한 친구에게 옷 한 벌 사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것이 행복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인생의 링에서 몇 번의 다운을 당하고도 ‘여덟’ 카운트에서는 꼭 다시 일어나 '쇠사슬(김남훈의 프로레슬링 공격도구)'을 휘두렀던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파이터였다.

김남훈이 최근 발간한 자신의 저서



[김성량 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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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김남훈님의 열정과 정신을 사랑합니다.

    2014-06-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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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ㅋㅋㅋ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 책광고가 반전이다

    2009-11-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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