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⑧프로와 아마, 교류 요원한가?
발행일자 : 2009-07-31 01:52:27
<글 = 전 한국권투위원회 황현철 총무부장>


뒤바뀐 프로와 아마추어

지난 88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광선이 시상을 하고 있다(사진=네이버블로그)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아마추어복싱이 활성화된 국가는 몇몇 공산국가(쿠바 등)를 제외하면 그리 많지 않다. 국내 복싱은 운동만으로 먹고 사는 프로와 명예를 추구하는 아마추어의 개념이 뒤바뀐 지 오래다. 한국타이틀에 도전하는 프로선수들은 챔피언이라는 명예를 위해 직장을 휴직하고 연습에 전념한다. 아마추어는 다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메달 사냥을 위해 운동하면서 적게는 2~3천만원, 많게는 6~7천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공무원과 같은 대우는 물론이다. 이제 프로는 명예, 아마추어가 직업이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복싱에서는 아마추어가 프로의 ‘젖줄’이 아니라 그냥 별개의 분야일 뿐이다.
야구, 축구, 농구 등의 구기종목에서는 최종목표가 프로팀에 입단하여 활동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하여 프로팀에서 열심히 운동하다 보면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명예까지 얻게 된다. 구기종목에서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프로무대에서 탁월한 성적을 올려야 한다. 때문에 국가대표라면 이미 어느 정도의 부는 축적을 해놓은 상태다. 여기에 국가를 위해 봉사할 기회까지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복싱은 전혀 다른 이상한 형국이다. 아마추어 선수로 자치단체 팀으로 영입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절차다. 아마추어에게 프로는 가봐야 골치만 아프고, 한낱 배고픈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세계챔피언에 등극했던 전 WBC 플라이급 챔피언 박찬희, 전 WBC 밴텀급 챔피언 변정일, 전 WBC S플라이급 챔피언 조인주, 두 차례에 걸쳐 세계타이틀에 도전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던 최충일(78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광선(88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같은 아마출신 스타플레이어를 더 이상 프로무대에서는 볼 수가 없다.
조석환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귀국 후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유일한 세계챔피언이던 지인진을 잘 모른다고 했다. 조석환과 지인진은 같은 페더급이다. 하지만 조석환은 프로복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조석환 뿐만이 아니다. 현재 대부분의 아마추어 선수들은 프로라고 하면 고개를 흔든다. 세계챔피언이 되면 국위도 선양하고 돈도 벌어 좋겠지만, 현재의 국내 풍토에서는 챔피언이 되어도 착취만 당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국체전이나 대통령배 등 국내대회에서 메달만 획득하면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된다. 이런 아마선수가 프로를 택한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예전처럼 거액의 계약금도 없고, 정기적인 시합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또한 은퇴 후의 거취가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급 아마선수들의 프로전향은 기대하기 어렵다.
수퍼스타들의 올림픽 참가
구기종목은 올림픽에서도 이미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무너졌다. 그러나 유독 복싱만은 너무나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다. 아마추어 복싱은 AIBA(국제복싱협회)가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프로에는 이에 필적할만한 기구가 없는 형편이다. 프로복싱은 세계기구가 여럿으로 분열되어 각축을 이루고 있다. 구심점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프로세계의 비즈니스가 익숙하지 않은 AIBA와 의견을 조율할 프로단체는 더욱 없다.
하지만 세계 스포츠의 추세를 볼 때 희망은 있다. 분명 프로복서들의 올림픽 출전, 월드컵 같은 복싱국가대항전 형식의 흥행은 머지않아 시작될 것이다. 필리핀의 매니 파퀴아오, 영국의 조 칼자기, 우크라이나의 비탈리 클리츠코, 미국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멕시코의 후앙 마누엘 마르케스, 베네수엘라의 에드윈 발레로, 한국의 김정범, 일본의 하세가와 호주미 등 각국의 수퍼스타가 총출동한다면 올림픽 최대의 이벤트가 복싱이 될 것은 자명하다. 축구의 FIFA, 야구의 MLB, 농구의 NBL 등이 꾸준히 로비를 벌였다. 이로 인해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이를 수용해 프로의 참가를 허용했듯 복싱도 언젠가 어떤 형식으로든 프로와 아마의 벽이 허물어질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꼭 구분되어야 하는가?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이옥성의 경기 장면(사진=네이버블로그)
그렇다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개념을 굳이 구분해야 하는가? 현재 프로복서 중에서 운동에만 전념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반면 지자체에 소속된 아마선수는 대부분 운동 외에 다른 직업을 병행하지 않는다.
왜 지자체에서는 아마추어 복서들만 고집하는가? 세계의 룰은 아직 바뀌지 않았지만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프로선수들을 영입해 국내 아마대회에 내보내며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이옥성, 김정주 같은 아마추어 스타도 본인이 원할 경우 프로대회에 내보내야 한다. 이옥성(보은군청)이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만큼 세계챔피언이 되는 것도 국위선양이 될 수 있다. 다른 종목은 프로선수도 국가를 위해 아마경기에 출장시킨다. 이런 상황에 복싱만 아마와 프로를 건널 수 없는 강으로 치부할 이유는 없다.
프로복서는 한국챔피언이 되어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아무리 국내 프로복싱이 침체되었어도, 선수들이 훈련에만 몰두한다면 3년 내로 적어도 5명이 세계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런 유망 프로선수들을 각 연고지의 자치단체에서 영입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아마대회와 프로시합에 골고루 출전해 연고지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열심히 운동할 것이다. 또한 한국, 동양, 세계챔피언이 되어 국위도 선양하고 개인적으로도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다.
프로복싱이 잘 나가던 1980년대. 수경사(수도경비사령부, 수방사의 전신)는 일류 프로복서들이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복무 중 프로대회도 출전할 수 있게 해줬다. 전 WBA Jr.플라이급 세계챔피언 유명우를 위시하여 IBF Jr.페더급 챔피언 이승훈, WBA S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IBF Jr.밴텀급 챔피언 장태일,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 IBF 스트로급 챔피언 이경연, 안래기, 정선용, 이정택, 임종대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들이 수방사에 입대해 군복무와 운동을 병행했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타이틀을 획득하고 국위를 선양함으로써 국가의 배려에 보답했다.
국내 아마복싱과 프로복싱의 적극적 교류 기대
복싱이 침체되었다고 하지만 단지 프로에 국한된 이야기다. 지자체에서 활발히 아마복서들을 육성함으로써 저변은 넓고 자질이 높은 편이다. 다만 먹고 사는 문제가 보장이 된 만큼 예전같은 투철한 정신무장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국제대회에서의 경쟁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런 재목에게는 본인이 원할 경우 아마와 프로를 함께 병행할 수 있도록 조치해줘야 한다. 또한 유망한 프로복서도 아마추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물론 프로복싱과 아마복싱의 교류에는 많은 제도적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프로와 아마를 떠나서 복싱의 발전과 국위선양, 미래대비를 위해 해묵은 갈등을 벗어야 할 때다. 연봉 7천만원을 받는 천안시청 소속의 WBC 플라이급 챔피언 손정오와 연봉 8천만원을 받는 보은군청의 WBA 플라이급 챔피언 이옥성이 올림픽대표 선발전에서 맞붙는 짜릿한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필자의 사정으로 인해 격주 수요일 연재되던 칼럼이 지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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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류를 안하죠?
2009-08-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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