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철의 복싱 인사이드-16]명승부의 산실 '한-일戰'
발행일자 : 2009-11-24 19:27:45
<글 = 황현철 前 한국권투위원회 부장>



12월 12일로 예정되었던 한국 밴텀급 챔피언 채승석(신도)의 동양타이틀 도전이 연기되어 아쉽다. 채승석이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바로 WBC 세계타이틀에 도전하도록 교섭 중이었고 긍정적인 분위기였으므로 더욱 그렇다. 당초 WBC 밴텀급 챔피언 하세가와.호주미(일본)는 12월 18일로 예정된 10차 방어전을 승리할 경우 타이틀을 반납하고 슈퍼밴텀급으로 한 체급을 월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0월말 돌연 밴텀급 잔류를 선언하여 채승석의 도전이 가시화된 상황이었다.
일본 복싱계는 한국선수와의 경기가 흥행이 되고, 타이틀이 한국으로 넘어가더라도 리턴 매치나 다른 선수의 도전 등을 섭외하기가 용이하므로 한국 도전자를 선호한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만 국내의 복싱 침체로 인하여 정상에서 맞설 선수가 일본에 비해 현격히 적을 뿐이다. 복싱팬들은 국내 선수의 세계타이틀매치를 갈망하고, 특히 한일전은 더욱 구미가 당기는 카드다. 2006년 1월 지인진과 코시모도.다카시의 WBC 페더급 타이틀전 이후 한일 세계전은 자취를 감췄다. 숱한 명승부를 남긴 한일 간 세계타이틀매치를 되돌아본다.
1970년대 9전 6승(3KO) 3패(2KO)

홍수환 대 가사하라 경기, 가사하라는 12전승(9KO)의 유망주였다.
세계타이틀을 걸고 한국과 일본이 처음 맞붙은 경기는 1975년 6월 유제두와 와지마 고이치 간의 WBA Jr.미들급 타이틀전이다. 동양 미들급 챔피언으로 타이틀을 14차례나 방어한 유제두는 뒤늦게 찾아온 세계도전 기회에서 일본의 영웅 와지마.고이치를 통렬한 7회 KO로 꺾고 김기수와 홍수환에 이어 대한민국의 세 번째 세계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렸다. 적지인 일본 후쿠오카에서 챔피언을 세 차례나 매트에 누이며 온 국민들의 울분을 한 방에 잠재운 이 시합은 지금도 올드팬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1차 방어도 일본에서 KO승으로 장식한 유제두는 이듬해 2월 펼쳐진 와지마와의 리턴매치에서 마지막라운드인 15회 KO패 당하며 챔피언벨트를 풀었다. 1976년 11월에는 염동균이 일본의 하드펀처 로얄.고바야시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WBC S밴텀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1977년 11월 4전 5기의 신화를 창조한 홍수환은 3개월 후 동경에서 무패의 도전자 가사하라.류를 도합 다섯 번 다운시키고 15회 판정승으로 첫 방어에 성공했다. 1978년에는 정상일이 WBA Jr.플라이급 챔피언 구시켄.요코에게, 주호가 WBA Jr.미들급 챔피언 구토.마사시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각각 5회 KO패와 15회 판정패로 도전에 실패했다.
1979년 3월 18일 '링의 대학교수'라는 미겔.칸토(멕시코)의 15차 방어를 저지하면서 WBC 플라이급 타이틀을 획득한 박찬희는 2개월 후 이가라시.쓰도무를 누르고 첫 방어에 성공한다. 10월에는 WBC S라이트급 챔피언 김상현이 야구선수 출신의 도전자 요가이.마사히로를 처절하게 분쇄한 끝에 11회 KO승, 원정방어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70년대에는 일본과 아홉 차례 세계타이틀을 놓고 격돌하여 6승(3KO) 3패(2KO)로 상대전적 우위를 기록했다.
1980년대 28전 16승(13KO) 12패(3KO)
1980년 1월 3일 정초부터 김성준이 일본에서 나까지마.시게오에게 판정패로 WBC 라이트플라이급 타이틀을 빼앗겼다. 홈 팬들까지 나까지마의 주먹은 머리를 포함해 세 개였다는 비아냥을 쏟아 부었어도 챔피언벨트는 일본으로 넘어갔다. 그 해 5월 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날 박찬희는 서울에서 오구마.쇼지에게 통한의 9회 KO패로 6차 방어에 실패한다.
이후 오구마에게 김성준이 한 차례, 박찬희가 두 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판정패로 물러나고 말았다. 오구마와 박찬희의 두 번째 대결에서는 다운을 한 차례 빼앗아낸 박찬희가 잘 싸우고도 홈 텃세판정으로 경기에는 앞서고 판정에서는 울었다. 같은 해 12월 13일 김태식이 LA에서 타이틀을 빼앗겨 한국 프로복싱이 무관으로 전락하고 42일 만에 세계챔피언의 계보를 이은 것은 19세의 김철호였다. 베네수엘라에서 타이틀을 따온 김철호는 와타나베.지로(1차)를 판정으로, 자칼.마루야마(3차)와 혼혈복서 이시이.고키(4차)를 각각 KO로 누르고 새로운 일본복서 킬러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후일 WBA와 WBC 양대 기구를 정복하는 명 챔피언으로 성장한 와타나베와 김철호의 일전은 대단한 명승부로 회자된다.

장정구가 한국복서 킬러 도카시키에게 1회에서 선제 다운을 빼앗는 장면
구시켄의 후계자 도카시키.가쓰오는 1981년 12월 김환진에게 판정승, WBA Jr.플라이급 타이틀을 획득한 후 지명도전자로 나선 김성남, 김환진과의 리턴매치를 모두 승리했다. 도카시키는 WBA 타이틀을 빼앗긴 후 1984년 8월 WBC 동급 챔피언 장정구에게 도전장을 내고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9회 TKO로 무너진다. 기량이 정점에 올라 있던 전성기의 장정구는 전 세계챔피언이자 한국복서에게 유독 강했던 도카시키를 맞아 기막힌 파이팅을 펼쳐 양국 복싱팬들에게 최고의 명승부를 선사했다. 이나미.마사하루(1차), 구라모치.다다시(5차), 오하시.히데유키(11차, 15차)와의 2연전 등을 모두 완승으로 장식한 장정구는 헤르만.토레스(2차, 6차, 9차), 프란시스코.몬티엘(7차, 10차), 에프렌.핀토(12차) 등 일본에서 수입한 멕시코 용병들까지 모조리 꺾어내 일본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각인되었다.
일본의 실력파 챔피언 와타나베.지로는 1983년 10월 권순천의 지명도전을 부상판정으로 뿌리친 뒤 1985년 12월에는 국내로 원정, 윤석환을 5회 KO로 꺾고 일본인 세계챔피언의 첫 해외원정 방어전 승리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윤석환이 와타나베에게 패하고 5일 후 WBA Jr.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한 유명우는 키유나.도모히로(2차), 고미야마.가쓰미(11차), 다이호.겐분(13차)을 모두 깨끗하게 KO시켜 격이 다른 챔피언임을 과시했다. 1987년 5월에는 박찬영이 일본에서 WBA 밴텀급 챔피언 무구루마.다쿠야를 통렬한 11회 TKO로 잠재우고 챔피언벨트를 차지한다. 강펀치의 소유자인 무구루마에게 스피드를 동반한 환상적인 연타를 퍼부어 승리한 박찬영은 후일 일본으로 스카우트되어 선수생활을 연장하기도 했다. IBF가 출범할 당시 일본에서는 IBF를 인정하지 않아 IBF 타이틀을 놓고 벌어진 한일전은 단 두 차례에 그쳤다. 1980년대에 한국과 일본은 총 28회 맞붙어 한국이 16승(13KO) 12패(3KO)로 앞섰고, KO율은 압도적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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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km달리기.아...여성이.대세...격려..
2009-12-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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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는 잘 모르지만 항상 한일전은 꼭 한국을 응원하면서...... 흥분되어서 보게 됩니다.
아자아자 대한민국 화이팅!!!2009-12-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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