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통지] 태권도와 가라테 역사의 상관관계 - 2

  

 

▶ 가라테의 시작은 오끼나와?

▶ 오키나와 무술의 시작 사쿠카와 간가?

가라테 역사는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특히 여러 가설들에는 독립국이었던 류쿠왕국(오키나와)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오키나와 무술의 유입설은 전통설과 중국유입설로 나눈다.

 

첫째, 전통설. 중국 권법이 유입되기 전에 오키나와에 무술이 원래부터 있었는데, 중국무술과 공존했다는 가설이다. 당시 호족들이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발달된 무기술 및 맨손 격투술이 있었다. 이 맨손 격투술이 중국에서 유입된 권법과 결합한 것이 오키나와 전통권법 이라고 주장하는 가설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료나 증거가 없다. 더군다나 불과 1500년~1700년 사이의 일인데 사료나 증거, 그 어떤 자취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술의 발전 수준이나 비중, 의의가 별로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이 양진방 교수의 주장이다.

양진방교수가 가라테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둘째는 중국 권법 유입설. 명태조 25년(1392)에 중국복건성 주민 36성(姓)을 골라 류큐왕국에 귀화시키게 했다. 이때 이 36성의 누군가가 중국 권법을 류큐왕국에 전한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 중국 권법의 36성 류큐 전래설이다.

 

이 36성의 구성 요원은, 선원, 배 목수, 한문에 능한 사람, 등으로 중국 문화와 기술에 능한 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오끼나와에 중국의 문화와 지식 등을 전한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설은 오오시마 필기 (大島筆記)

 

1762년 사쓰마로 공물을 바치러 가던 오키나와 배가 풍랑을 만나 오오시마 섬의 도사(土佐)에 표류하는데, 이 배의 상급 선원이었던 페친쇼히 라는 오오시마에 머물면서 류쿠왕국의 여러 가지 사정을 이야기하고 오오시마의 관리 도베 죠끼가 이를 받아 적어 것이 오오시마 필기(대도필기, 大島筆記)인데, 제 3권에 “6년 전(1756년) 류쿠왕국에 청국 사신인 시종무관으로 따라온 공상군(公相君, 공상군=쿠샹쿠=고쇼쿤=쿵샹츈)이라는 사람이 쿠미아이쥬쯔(組合術)라는 권법 기술을 보여주고 이를 류쿠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중국 권법 유입의 시초로 보고, 이를 가라테의 역사적 시작점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오키나와 맨손무예의 위계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오키나와 맨손무예의 위계도

  특히 류큐왕족의 무술 교관이었던 이토스 야스쯔네는 오키나와 현 제1중학교 및 오키나와 사범학교 체육과 교사로 채용되면서 그는 당수(唐手)의 비급과 기술을 존속, 전파하고 싶어 했는데, 고류(古流)의 형을 바탕으로 어려운 무술동작에서 학생체육으로 배우기 쉽도록 기존의 급소 공격, 관절꺾기 등과 같은 위험한 기술들을 제외시켜 평안형(平安型)을 개발하고, 이를 학교 정식체육과목으로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배울 수 있게 했던 인물이 “이토스 야스쯔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후나고시 기친은 이 “이토스 야스쯔네”의 제자로 일본 본토에서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일본의 현대 가라테는 오키나와 권법과 중국의 맨손무예가 공존하며 만들어진 것을 추정할 수 는 대목이다.

 

이외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볼수 있다..

 

28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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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스미디어 = 엄재영 태권도 칼럼리스트 ㅣ kaik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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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영
현)대망태권도관장.
현)대한태권도협회 이사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금메달(2011)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금메달(2020)
아시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금메달(2022)
전)북경체육대학교 교수
대한민국 체육훈장 기린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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