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스TV-고수로그] 한국 주짓수 개척자 '50대 미국인' - 존 플랭클 사범 2편

  

[고수로그] 한국 주짓수 역사의 시작 '존 프랭클' 2편

자타공인 '고수'들의 숨겨진 일상 이야기 [고수로그]

첫 번째 고수 = 한국 주짓수 열풍의 개척자 '존 프랭클'

 

<무카스미디어> 창간 25주년 특별 기획 <고수로그> 첫 번째 주인공 한국에 주짓수 열풍을 일으킨 개척자 존 플랭클 사범(John Frankl)의 두 번째 편. 전국에 존 플랭클 주짓수 간판을 내건 주짓수도장만 110개가 넘는다.

 

일반적으로 존 플랭클 사범이 이 네트워크의 대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알고보니 그의 본업은 대학교 교수(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이다. 

 

사제 지간에 비즈니스로 연결되지 않는다는게 신념으로 오로지 매주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국 지도자를 대상으로 지도를 하고 있다. 지난 1편 본업인 교수와 주짓수 보급 배경을 소개한데 이어 2편에서는 매주 금요일 일선 지도자를 대상으로 교육하는 합동수련 일상과 그의 철학을 소개한다. 

 

이름처럼 그는 미국인이다. UC버클리 학부 졸업 후 세계 최고 명문대학인 하버드대학교에서 '한국학' 박사학위받고, 연구차 99년 1년간 한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정착해 반평생 이상을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 주짓수를 수련해 오던 존 플랭클 사범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주짓수를 안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만하더라도 국내에는 주짓수를 수련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운동하기 위해 주짓수를 보급하게 된 것. 

 

25년 전 주짓수를 보급할 때는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주짓수 열풍은 상상도 못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솔직히 말해서 이기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주짓수를 전파하겠다는 큰 뜻 없었다. 단지 그냥 아주 소규모로 연습 파트너 필요하기 때문에 동아리식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꾸준히 수련하고, 지도를 이어오고 있는 존 플랭클 사범은 "30년째인데 아직도 배울게 많다.  재미가 있다. 몸도 만들어 지지만, 중독성이 있다" 주짓수의 강점을 강조했다. 

 

[바로보기] 전국 110개 체육관 관장들 가르치는 50대 미국인 아저씨|한국 주짓수 역사의 시작 '존 프랭클' 2편  - (구독,좋아요,알림설정! 댓글은 사랑입니다.)


[무카스미디어 = 박규태 PD ㅣ pd@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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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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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동천백산

    한국에서 브라질리언 주짓수는 1990년대 말 연세대학교 교수 존 프랭클의 전파로 시작되었다.
    한국인 출신 주짓수 블랙벨트는 2007년 한국인 최초 주짓수 블랙 벨트 박준영 관장(동천백산/또지코리아)을 필두로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다.존프랭클 계열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가장 많은 지부와 수련생을 보유한 걸로 알려져 있으며 뒤를 이어 와이어, 팀루츠,본주짓수, MARC, 1세대 관장들이 수장으로 있는 네트워크가 포진되어 있고, 지방은 부산권은 동천백산을 주축으로 분파(동천백산,골든라이언,또지코리아,팀매드,주짓수랩)되어서 각자 팀들이 많이 활성화 되고 있다.
    대구는 마차도 주짓수에서 분파된 킹덤, 대전은 본사이 호남권은 아토스코리아, 충남권은 칼슨그레이시, 충북권은 파라에스트라 , 부울경권은 골든 라이언이 유명한 편이다.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알린 종합격투기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21세기 들어선 한국에서도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련 인구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청소년 인구도 늘어나는 모양새. 그 때문인지 도장도 예전보단 상당히 증가했다. 심지어 대도시의 도심은 이미 과포화 상태. 물론 일부에선 이것이 과거 입식격투대회 K-1이 한국에서 유행하던 시절 급속도로 늘어났다가 지금은 상당수 문을 닫은 킥복싱, 무에타이 체육관처럼 거품이 빠질 거란 말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중엔 브라질리언 주짓수만 가르친다기보단 무에타이나 킥복싱등을 함께 가르치는 일종의 종합격투기식 도장도 많은 편이다. MMA가 이미 하나의 종목이기도 하고.
    그래도 기존의 메이저한 무술들이 자리잡고 있는 상태에서 2천년대 이후 국내에 새로 도입된 해외 무술이 이렇게 저변을 넓힌건 아마도 주짓수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특기할만한 점은 한국에서 체육관 운동은 아동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주짓수는 성인부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과[34] 여성에게도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다는 것.상기했듯 과장은 좀 섞였지만 여성이 남성을 이길 수 있는 드문 무술이라는 식의 이미지로 어필한 것이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또 타박상 등의 문제로 타격계 운동을 꺼리는 여성의 경우엔 레슬링은 국내에서 저변이 매우 좁다보니 여성이 할만한 실전 격투기로서 다른 대안이 별로 없기도 하다.

    2024-03-10 10:49:45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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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유도의힘

    주짓수의 초창기 역사를 논하자면 초기 유도가 빠질 수 없다. 다만 이때의 유도란 현대의 올림픽 유도가 아니라 가노 유술이라 불리던 시절의 고전 유도를 의미한다. 현대의 스포츠 유도는 스포츠화 과정에서 초창기 유도와 많이 달라졌는데, 고전 유도에서 테이크다운쪽으로 발전한게 현대 스포츠 유도고, 그라운드쪽으로 발전한게 브라질리언 주짓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초기 유도는 주짓수처럼 그라운드(일본어로는 寝技:newaza- 침기다. 잠잘 것처럼 누우면서 시작하는 기술이란 뜻을 가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관객들의 잠을 유발하는 기술) 기술도 경기 규칙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메인 창시자 중 한명인 카를로스 그레이스가 유도(강도관 유술)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의 제자였던 마에다 미츠요가 20세기 초중반 이민간 브라질에서 가르친 제자였다.
    사족으로 초창기 유도가 일본 고류 무술의 영향을 받았다고 브라질리언 주짓수도 그런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마에다 미츠요는 고류 유술에 입문한 경력이 없고 엄연히 유도 7단이었다. 어릴 때 스모를 배웠지만 체격이 작아서 그만두었고, 이후 어전 유술대회에서 강도관 유술이 다른 고류 유술을 모두 꺾는 것을 보고 그 강함에 끌려 강도관 유도에 입문한 것이었다.
    하여튼 강도관 유술(유도)을 기초로 만들어졌다보니, 지금도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장비, 용어, 그리고 예법은 일본 문화의 영향이 제법 남아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랭킹도 유도처럼 띠로 결정되고, 도복은 '기(Gi, 着)', 상의는 '기모노(Kimono, 着物)'라고 부른다. 주짓수 역시 예의와 존중을 중요시하며, 인사법으로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손을 미끄러뜨린 후 주먹을 맞부딪히는 주짓수 특유의 인사와 더불어 허리 숙여 절하는 인사를 한다. (스탠딩 상태일때는 선 체로 허리를 숙이는 입례를 하고, 그라운드에서는 무릎 꿇고 절하는 좌례를 한다.) 또한 간단한 인사나 기합으로 과거에 유도와 가라테와의 무술교류로 유입된 가라테 용어인 '오스!(Osu 혹은 Oss, 押忍)' 역시 사용한다.
    유도가 브라질에서는 주지추 즉 유술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마에다 미츠요가 일본 유도계에서 파문되어서 유도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다는 설인데, 이는 문헌적인 근거가 없다. 오히려 마에다는 강도관 유도의 창시자인 가노 지고로가 유도 세계 보급에 한창 힘쓰던 시절인 1929년에 유도 6단을 받는 등 유도계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둘째로, 마에다 미츠요가 타류 유파와의 시합을 금지하던 가노 지고로의 뜻을 어긴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가져서라는 설이 있는데 역시 확인할 길은 없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이미 서구에 '유도'가 '유술' 즉 '주주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지금은 유도라는 명칭이 익숙하지만, 당시에 그러한 명칭은 생소한 것이었다. 가노 지고로가 검도, 궁도 등과 동급의 '무도'를 표방해서 이름을 그렇게 정하기 전까지 유도는 가노 유술 또는 강도관 유술로 불렸었다. 그러니 마에다 입장에서는 '유도'라는 생소한 이름보다는 '유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모으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만하다. 당시 일본에서도 가노 지고로의 무술은 '유도'보다는 '가노 유술', '강도관 유술'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또한 강도관 유술이 생기기 전에도 유술 유파가 상당히 많았다.
    하여튼 이 초창기 유도라는 씨앗이 무규칙 격투기가 성행하던 당시 브라질의 토양에서 자라나 격투에 이기기 적합한 무술로 개량된 것이 브라질리언 주짓수(브라질 유술)다. 그래서 주짓수는 맨손격투에서 상대방을 항거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을 중심으로 기술체계와 룰이 짜여져있다. 다시 말해, 격투에서 상대방에게 무자비한 파운딩을 날릴 수 있는 유리한 포지션을 점유하는 것, 초크로 기절시키거나 꺾기로 항거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이 이 무술의 목표다. 스포츠화된 주짓수 경기에서도 이런 요소가 점수화되어서 반영되어 있다.

    2024-03-10 10:33:38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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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의힘

    J-무도의힘
    전세계 J-문화 전성기가 온다!

    2024-03-09 11:16:49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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