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開城)의 무예)석전,수박 전승지역 일치해!,개성시 북부,남부패 지역

2025-08-06 / 조회수 : 77 신고

전승자의 지역성(출생, 거주, 활동지역)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수박은 개성 출신 오진환 그리고 송창렬이 전한 것이다.

[참고]

석전(돌싸움)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전해진 습속이다.

고려사, 목은시고 등에 기록이 있고 조선 태조, 이방원, 세종 때 기록도 있다.

영조 1년 비변사등록 기사에도 개성에서 석전하는 것을 금지시킨 기록이 확인된다.

석전은 개성 외에도 평양에서도 했었다.

이때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서로 치는 것 뿐 아니라 육박전을 같이 했는데 평안도에서는 날파람이라고 하며 개성에서도 기록은 부재하지만 육박전때 수박을 한 것으로 이해된다.

석전과 맨손격투로써 각 지역에서 했던 것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일제강점기때 개성에서 석전을 했던 곳, 장소와 수박을 전승한 이들출생, 거주, 활동지를 교차확인 할 필요가 있다.

1932년 생으로 개성 토박이 증언이 있는데 1940년경 까지도 개성에서 석전(돌싸움)을 했다고 한다.

이때 석전을 했던 장소는 개성의 남대문에서 아래쪽 만년교(돌다리) 옆 훈련원 터의 밭부터 야다리까지 근 6백미터 거리에서 북부패와 남부패로 편을 갈라서 싸웠다고 한다.<이상은씨(1932~,개성출생 증언>

[개성 석전 북부패,남부패와 수박 전승자들 출생,거주,활동지 겹쳐!]


개성이 해방후 미군정하에 있을때는 남한에 속했는데 6.25종전후 북한으로 넘어 가버려

이후 세대는 개성이라고 하면 개성공단 밖에 모른다.

서울 어디어디 하면 직접 가서 보기도하고 생활과 맞닿아 있지만 개성지역은 그렇지가 않다.

2002년 국민생활체육 서울시전통무예대회가 끝나고 범기철 태권도 국제사범께서 주관한 좌담회에서

송창렬옹이 개성 만월정 얘기하시다

기무라산! 기무라산 약수터,,그러시다 오진환옹에게 "기무라산, 알죠?" 물으니

오진환옹이 "아, 알지!"라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남한측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이들은 기무라산 그러면 당췌 무슨 말인가? 알아 듣지도 못한다.

개성이 북한측으로 넘어가며 오랜 기간 개성에서 전해진 씨름-바른씨름과 관덕정 활쏘기 문화나 개성에서 음력 정월에 행해졌던 석전도 전승이 단절됐다.

수박이 그나마 실향민 1세대로부터 전해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강점기 개성 석전 장소(1940년경 증언)

개성 남대문> 만년교, 훈련원 터로부터 야다리까지 6백미터

*개성 훈련원: 南部 곽장리(郭莊里)에 있던 武術演習場 때때로 弓術試驗을 보고 資格을 授與했다.

萬年橋 南方一帶

일제강점기까지 개성에서 석전을 했던 장소, 참여자들 지역과 수박을 했던 민완식, 오진환, 천일룡, 송창렬 등 출생, 거주, 활동지가 겹치는게 확인됐다.

수박 전승자 출생,거주,활동지

(개성 외 지역은 제외했다)

오진환- 남산동 출생,거주, 개성 남대문 아래쪽(석전 남부패 지역)

천일룡>개성 남대문 근처 남문통 시장 거주(석전 북부,남부패 지역)

송창렬>개성 만월정 거주(석전 북부패 지역)

민완식(석전 북부,남부패 지역 활동)>동생 민관식(전,문교부장관)도 개성시 출생이나 정확한 동내까지는 불명확하다.

*왜정때 민완식은 개성에서 남부유도관을 운영했었고 일본 강도관 유도 7단이었다(전,문교부 장관 민관식 증언)

민완식은 1939년 전 조선 도시대항 씨름대회에 임원으로도 참여 했으며 현,대한체육회 대한사이클연맹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민완식이 운영하던 남부유도관은 남대문 아래쪽 남부 烏川과 낙갓줄사이 밭 한구석에 있었다.

*남부유도관- 낙까줄 남쪽과 도두다리 옆을 흘러내린 개울과 만난 곳에서 150m 동쪽으로 가면 넓어진 낙까줄 남측 제방 옆 넓은 밭 구석에 단층 유도장이 민완식이 운영했던 곳이다.

개성철도역은 개성 남대문 좌측으로 멀지 않다.

오진환이 민완식 등 목격한 곳이다.

민완식은 남대문 근처 개성 시청 연무대에서 일본 순사들도 가르쳤다고 한다.

전승 계보

1911~1947졸 민완식- 개성 출생, 전 문교부장관 민관식의 형

*민완식은 개성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다.

일제강점기 개성의 지역신문인 고려시보를 발간했으며 당시 개성에서 유명한 무도인이었다.

대동청년단 개성지부장을 역임하다 남로당 간첩에 의해 피살됐다.

1919~2002졸 오진환- 개성 출생, 개성 남산동 거주, 개성상업중학교 졸업

*오진환은 개성 토박이로써 개성시 남산동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다.

개성 상업중학교(5년제)를 졸업하고 개성철도역에 근무하기도 했다.

1900~1950졸 천일룡- 개성 출생, 개성 남문통 거주

*천일룡은 개성 남대문 인근의 남문통 시장에 거주했다.

송창렬이 10대초 40대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개성 지역의 보부상이었다고 한다.

일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서 송창렬의 부친이 운영하던 주물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1932~2017졸 송창렬- 개성 만월정 거주, 개성 만월국민학교

*송창렬은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했고 이후 모친 고향인 개성시로 이주했다.

자택은 만월정, 모친 친정은 개성시 남산동에 있었다.

개성 소재 일본인 소학교를 다니다 조선인 학교인 만월국민학교로 전학했다.

해방 되고나서 6.25때 참전했다.

전승계보는 민완식>오진환과 천일룡>송창렬 두가지로 이어져 왔으나

2001년~2002년까지 충북 진천군 지원을 받아서 발간됐던 <국무논총> 논문집 수록을 위해서

조사, 연구때 오진환과 송창렬의 증언, 형태, 동작,기술들을 교차검증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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