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씨름 연구) 총독부 조사 1911년 사진 및,민둥씨름(몽골 부흐,청나라 솔각)은 한갈레

2025-06-23 / 조회수 : 123 신고

(내용 수정,보충 됩니다)


필자가 씨름 관련 연구를 하는 취지는 함경도에서 했던 씨름(이라 할때)의 구체적인 형태, 동작 확인 및 전승자 추적 등에 있다.


아래는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제1회 사료조사때 촬영된 함경남도 단천군 이동보의 씨름하는 모습이다.

(한자표기로 각력이라 되어 있는데 일제강점기때 각력은 우리측이 아니라 일본인들 용어였음은 차후 확인해갈 생각이다)





가장 오래 된 씨름사진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샅바와는 사뭇 다른것인데 상대방 우측 다리에 건 끈을 왼손으로 잡지도 않고 손목께에 걸어 두고 있다.

사진상으로는 다소 불명확하지만 한두번 돌려서 팔에 감은것인지 아니면 늦은샅바처럼 팔에 건다는것이 당시에는 저렇게, 짧게 했을수도 있다.

반대손은 상대 허리춤을 잡고 있다.

이 부분은 현재의 늦은샅바, 속쇄와는 차이가 있다.


아래는 일제강점기 조선씨름협회에서 각 지방의 씨름 형태를 조사했다는건데 조금씩 정보에 차이가 있다.


1927년 일본에서 근대화된 체육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서울의 고등보통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강낙원(姜樂袁)·서상천(徐相天)·한진희(韓軫熙)·강진구(姜瑨求) 등이 중심이 되어 씨름의 근대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여름방학 때 귀향하는 제자들을 통하여 전국적으로 씨름의 실태를 조사, 파악하는 한편 ‘조선씨름협회’를 결성하고 여운형(呂運亨)을 초대 회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때까지 지역에 따라 왼씨름과 바른씨름이 실시되고 있었는데, 함경도·평안도·황해도·강원도·충청도·경상도에서는 왼씨름을, 전라도·경기도에서는 오른씨름을 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실시한 조사자료[1936~1941년]에 의하면 함경도 지방에는 오른다리에만 살태를 감아 상대가 왼손만으로 잡는 왼걸이씨름이, 평안도 일부와 황해도 지방에는 오른걸이씨름이 있었고, 강원도·경기도 일부에는 허리띠만을 둘러 양손으로 잡는 띠씨름[허리씨름·통씨름]이 성행하였다.


호남 지방에서는 오른씨름이, 영남 지방에서는 왼씨름이 각각 전해지고 있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조선씨름협회 전무이사 김근찬씨 증언

왼씨름 및 샅바 규격 등 통일 관련

https://blog.naver.com/ssireum123/222883137084


김근찬씨 증언이 있기에 이 시기는 1940년 이후로 보는게 맞다.


이동보는 군사시설로써 조선 고종때까지 있었는데 연려실기술을 보면


연려실기술 별집 제17권ㅡ 진(鎭)ㆍ보(堡)


이동보는 (함경남도 단천)군의 북쪽 61리에 있다.

-----

이동보는 단천봉대에 속했었다.


단천봉대(端川烽臺)


단천봉대는 조선 세종대부터 북방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단천 일대에 여러 개의 봉수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설치되었다. 


단천봉대의 조직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의 단천부(端川府) 군병(軍兵) 조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따르면, 단천봉대에는 봉수별장(烽燧別張) 1명, 표하군(標下軍) 8명, 봉무사(烽武士) 700명, 이동보봉수별장(梨洞堡烽燧別將) 1명,

봉무사(烽武士) 21명이 속하였다.


별장은 대장격으로 조선시대 무관 직책이다.

이동보의 별장은 수하에 무사 21명을 두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씨름 종류를 샅바 매는 형식 등으로 구분해서 왼씨름이니 오른(바른)씨름이니 띠씨름이니,, 했지만

샅바, 끈 없이 했던 민둥씨름이 우리 씨름의 원형이다 생각된다.


북한 민속학자 홍기무는 이 민둥씨름을 장난? 씨름으로 언급 했는데(1964 조선의 민속놀이) 천만에 말씀이다.


도구 없이 하다가 도구를 고안해서 착용하는것이 순서다.


현 싯점에 씨름으로 인식되는 왼씨름은 그 이후 변형된것이다.


pan000721


명칭사료조사1 함남단천 이동보 여진성 석루
국적·시대한국 - 일제강점

[네이버 지식백과] 사료조사1 함남단천 이동보 여진성 석루 (e뮤지엄)


pan033466.jpg


명칭함남 단천 여진성 출토 옛 절구
한자명칭咸南 端川 女眞城 出土 옛 절구


이동보 얘기 하다가 갑자기 여진성이 왜 나오냐 할 수 있는데

아래 사진을 보자.

pan033478.jpg


명칭함남 단천 이자동보 남자 풍속
한자명칭咸南 端川 梨子洞堡 男子 風俗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남자들 모습과 같은 것일까?

pan033436.jpg

명칭함남 북청 몽고계와 말레이계 눈 가진 사람
한자명칭咸南 北靑 蒙古系와 말레이계 눈 가진 사람


이 사진은 함경남도 북청에서 촬영된거다.

단천군과 그렇게 멀지 않다.


1911년 조사된 자료에 일본인 조사자는 몽골계와 말레이 계통까지도 염두에 둔듯하다.


pan000684.jpg


명칭함남 북청 윤관 초상
한자명칭咸南 北靑 尹瓘 肖像


윤관 할배 초상이다.


pan000692.jpg


명칭함남 북청 여진문자비
한자명칭咸南 北靑 女眞文字碑


함경도에 여진인 관련 풍습이나 기록물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함경북도에는 재가승 마을이 있었고 산간 화전민들이 여진 풍습을 간직한체 결혼도 자기들끼리만 했다는 조사보고가 있다.


종목 명칭

민둥씨름, 느즌샅바씨름 등

현지에서 민둥씨름 등 용어가 통용 된 확인이 안된다.

함경도식 씨름으로 이해할 수 있는것에는 세가지가 있다.

(기존의 두가지에 왼씨름을 추가한다)

첫째- 현지인들이 일컫던 명칭 확인 어려움(일반적으로 민둥씨름이라고 한다,현재 북한은 샅바씨름과 구분해서 그냥 씨름이라고함

*평양 발간, 문화어학습지)

둘째- 속쇄

행위자(전승자)

남한-해방전후, 6.25 등으로 남하한 함경도 실향민중 일부 추정

북한-일제강점기 출생자 미확인

함경남도 북청 출신 송창렬과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 김달순(1886~1962)(부친 김홍필로부터 전수) 그 자제들 김학천, 김학현


중국-마동일(조선족)

형태 및 동작,기술

남북한 모두 왼씨름을 한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선 상태로 샅바를 잡는다.

몽골 부흐처럼 마주하고 선 상대와 샅바 없이 하는 경우와

한쪽 팔에 끈을 걸고 하는것 두가지가 있다.


민둥씨름 동영상이다.

상대와 떨어져서 맞 붙는 것에 대해서 교차확인 되는 자료를 공개 할 예정이다.

필자가 찾은 것으로 1930년 함경남도 함흥 소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했던거다.

https://youtu.be/wZWGS2QuR5Q


영상으로는 명칭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씨름협회 관계자는 민둥씨름이라고 하는데 함경도 현지에서 민둥씨름이라 했을리는 없다고 본다.


pan000706.jpg


명칭함남 북청 북청보통학교 연무당
한자명칭咸南 北靑 北靑普通學校 鍊武堂



pan023060.jpg


고구려 각저총


이런 형태의 것을


고구려인들만 했다?

또는 그 후손들이 한국사람들이니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한테만 전해진- 씨름? 이다

이런 소리하는것은 자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는 않다.


중국측 지나나 몽골인들도 유사한(같다 해도 무방하다), 타격기가 빠진것은 조금 뒤일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스모도 같은 류다.


비공감 0
이전글   /  
목록

의견쓰기 (익명보장)

자동글 방지를 위해 체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