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굽씨름은 부정확 정보,1940년경 씨름 기술은?

2025-06-17 / 조회수 : 83 신고

샅바 없이 하는 경우를 민둥씨름 또는 네굽씨름이라고 한다는 정보들이 있는데

이와 달리 네굽씨름이 민둥씨름의 다른 이름이 아니고 띠씨름을 가리키는거라는 조선일보 기고가 있다.

"띠써름(네굽씨름 이라고도함)……이띠씨름은 충청도(忠清道)에서만하는것으로 허리에다가 띠를매고 좌체자연일체(左體自然一體)로서 하는것을 말하는것이다.

신문 기고가 꼭 맞다 볼 수는 없지만 그 당시를 살았던 씨름 관련 지식이 있던 이의 글이다.


네굽씨름을 민둥씨름(샅바나 띠 등 없이 하는 경우)의 별칭으로 얘기한 이는 북한 민속학자 홍기무 가 있는데

시기가 아래 조선일보 기고보다 늦다.

조선의 민속놀이는 1964년에 발간됐다.


경도잡지나 동국세시기에 적혀있는

왼씨름이 역시 보편적이였다.

그러나 이것은 다 각처의장사들이 모여드는 큰 씨름판을 말하는것이요,

조선사람은 모두 씨름을 좋아하기 때문에 명절이 아니라도 쉬는 때에는 이른바<장난씨름>이 또한 성하였다. 이것은 도시보다도 농촌이 더 하였다. 이리하여 젊은이들은 씩씩한 기상과 날랜 몸놀림을 길렀다.

농촌에서 많이 한<장난씨름>에는 샅바를 매지 않고 하는<민둥씨름(네굽씨름이라고도 한다)>을 많이 하였으며 선채로 하는 선씨름도 하였다.

(홍기무)

따라서 교차확인 되는 정보 없이 민둥씨름과 네굽씨름을 같다고 볼수는 없다.

용어적으로 민둥씨름의 출처를 추적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출처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민둥씨름과 샅바씨름의 시기적 선후 관계?


한가지 부언해서, 씨름을 시기적으로 이해할때는 도구 없이 하는 민둥씨름이 앞선다고 보이며 도구를 착용하고 하는 왼씨름, 바른씨름(오른씨름),띠씨름 등은 후대의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가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홍기무가 얘기했듯이 장난처럼?

시골에서? 했다는 샅바 없이하는 경우를 도구(띠,샅바 등)를 착용한체 하는 것에 비해서 낮춰 보는것은

시합으로써냐 아니냐의 차이이지 형태적인 것의 시기적 선후를 말하는게 아닌거다.

일제강점기 조선씨름협회에서 주최했던 대회들은 각 지에서 참가한 선수들,, 전문 씨름꾼이랄수도 있는 이들이 띠, 샅바를 허리나 다리에 묶어두고 그것을 붙잡은체 경기를 했었고 민둥씨름의 경우는 경기대회로써 행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민둥씨름의 역사는 샅바씨름보다는 앞선다고 봐야 한다.


1940년경의 씨름 기술에는 어떤것이 있었을까?


아래 신문 기사를 참고하시면 된다.


이보다 후에 북한에서 발간된 책이 있는데 저자는 나윤출이다.


나윤출


'朝鮮의 씨름왕' 羅允出 장사 : 네이버 블로그

나윤출(羅允出)[1912~?]은 1912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씨름 선수로 이름을 알리고 씨름협회 설립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해방 이후 10월항쟁에 참여한 이후 월북하였다.

나윤출은 대구 능인고등학교 시절인 17세부터 38세까지 약 20년 넘게 조선 씨름계를 평정하였다.

나윤출이 활동하던 1930년대는 씨름의 근대화 작업이 전국 단위로 확산되던 시기로, 나윤출은 씨름에서 우승하여 도합 1,000마리 이상 소를 탈 정도로 타고난 씨름꾼이었다.

[저술 및 작품]

나윤출은 월북 이후 『조선의 씨름』[평양국립출판사, 1958]을 저술하여 북한 씨름을 체계화하고 북한 체육계 발전에도 공헌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운동란 특집(運動欄特輯)

조선 고유(朝鮮固有)의 경기(竸技)인 씨름의 역사적 유래(歷史的由來)

지도단체(指導團體)의 매진(邁進)을 촉(促)함

씨름의 최근 유래(最近由來)

최근(最近)에와서 조선(朝鮮)의씨름계(界)를보면 지금(只今)으로부터 십오년전(十五年前)에강악원(姜樂遠) 서상천(徐相天) 한진희(韓軫熙) 강진구(姜瑨求) 이인학오씨(李因學五氏)가시내각중등학교학생(市內各中等學校學生)들의 하기방학(夏期放學)을 이용(利用)하여 전조선각지(全朝鮮各地)의 싸름에대(對)한방식(方式)을 조사(調查)케한결과(結果) 함경남북도(咸鏡南北道) 평안남북도(平安南北道) 황해도경상남북도(黃海道慶尚南北道) 강원도(江原道) 충청남북도(忠淸南北道)의십도(十道)에서는 거자반 전부(全部)"왼씨름"을하고 경기도(京畿道)와전라남북도(全羅南北道)의 삼도(三道)에서는"바른씨름"을 하는것으로 알고서조선(朝鮮)씨름협회(協會)와 조선(朝鮮)씨름동인회(同人會)에서는 조선(朝鮮)의 역사(歷史)기픈씨름을"왼씨름"으로 통일(統一)하여서조선(朝鮮)의씨름은 아프로는"왼씨름"만을 장려(奬勵)하기로 결정(决定)케되엇던것이다

(중략)


씨듬의종류(種類)

갑(甲),왼씨름……이왼씨름은 전조선적(全朝鮮的)으로 통일(統一)된 씨름으로외쪽팔에『삽파』를 끼고 바른다리에『삽파』를 거는것을말하는것이다

을(乙),바른씨름……이바른씨름은경기도(京畿道)와 전라남북양도(全羅南北兩道)에서만하는것으로 바른쪽 팔에『삽파』를 거는것을 말하는것이다

병(丙),띠써름(네굽씨름 이라고도함)……이띠씨름은 충청도(忠清道)에서만하는것으로 허리에다가 띠를매고 좌체자연일체(左體自然一體)로서 하는것을 말하는것이다

씨름의기본형(基本型)

갑(甲),배재기형(型)

들배재기

궁둥배재기

둘웅배재기

을(乙),거리형(型)

이낙걸이

밧낙걸이

덕걸이

병(丙),치게형(型)

들치게

혹치게

발등치게

정(丁),손자비형(型)

안무릅

박갓무릅

혹치게

덥치게

씨름의기법(技法)

양방(兩方)이서로 기립(起立)하여 인사(人事)를하고 상대(相對)되는 양방(兩方)이좌체자연체(左體自然體)로 손에는『삽파』를끼고다리에는『삽파』를걸고 심판(審判)의호령(呼令)이잇슨후(後) 양방(兩方)의누구든지먼저서 몸이나 손을땅에대면패(敗)하는것으로 인정(認定)케되는것으로말하는것이다

씨름의용어(用語)

전조선(全朝鮮)어디든지 씨름에대(對)한용어(用語)가만흐나 대표적용어(代表的用語)로는"메친다""들어친다""걸어넘긴다"등(等)의 말이가장대표적(代表的)이다

씨름은언제나하는가

전조선적(全朝鮮的)으로 보아서 지방(地方)과지방(地方)에따러서 거행(擧行)하는때가다르다하겟스나 대체(大體)로는다음과가튼명절(名節)에거행(擧行)케되된다

정초(正初) 사월초팔일(四月初八日) 오월단오(五月端午) 칠월칠석(七月七夕) 팔월추석(八月秋夕)

씨름기본형종유설명(基本型種類說明)

갑(甲)배재기형(型)

1,둘배재기……적(敵)을벗쩍들어서 적(敵)의중심(中心)을빼아서서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2,궁둥배재기……궁둥이로써적(敵)의중심(中心)으로 빼아서서 그둥이로 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3,둘웅배재기…적(敵)을 휘—휘—둘러서 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을(乙)거리형(型)

1,안낙걸이…적(敵)의 좌우(左右)다리에 다리를안으로걸어서 밀거나 당기거나하여서 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2,밧낙걸이…적(敵)의좌우(左右)다리박게 다리를걸어당기어서 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3,덕걸이…적(敵)의다리에 몸을속켜서 반대방향(反對方向)으로 다리를걸어서 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

병(丙) 치게형(型)

1,들치게…적(敵)을드는순간(瞬間)을이용(利用)하여 발로적(敵)의중심(中心)을처서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2,혹치게…적(敵)의발목을 발로톡처서 멧때리는것(좌우(左右)로)

3,발능지게…적(敵)의발을 옴기지못하게 발로디뎌서 둘러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정(丁) 손잡비형(型)

1,안무릅…적(敵)의다리안에손을너서 적(敵)의중심(中心)을일케하여 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2,박갓무릅…적(敵)의다리박글손으로당기어서 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3,혹치게…적(敵)의다리를 손으로 혹처서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4,덥치게……적(敵)의다리를손으로서 덥처서메ㅅ때리는것(좌우(左右)로)

샅바는 언제부터 매고들 했을까?


글 쓰는 취지가 함경도에서 행해졌던 씨름을 추적하는 것이기에 불필요하긴 하지만 간단하게 들어두면


씨름에서 지금과 같은 샅바가 등장한것은 1940년 이후로 조선씨름협회 김근찬씨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만기씨는 1927년부터라고 방송에서 인터뷰 한것을 본 기억이 나는데 부정확한거다.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설립된 때를 얘기한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는 허리 또는 다리에만 끈을 걸고들 했다.

시기적으로

끈 없이(끈을 편의상 샅바라고 할때 샅바 없이)-민둥씨름(네굽씨름은 부정확한 정보임)

하다가

허리 또는 다리에 끈을 걸고들 했었고

지금과 같은 허리,다리 샅바를 착용하게 됐다.


씨름 원형은 민둥씨름으로써


서울-권태훈 증언

개성-천일룡, 민완식,송창렬,오진환

함경남도 북청-송창렬, 단천-김홍필,김달순 그자제들

함경남도 함흥 1930년 영상 등이 교차 확인된다.

민둥씨름은 샅바씨름의 원형으로써

일제강점기까지도 전해져 왔다.

민둥씨름에 형태적으로 가장 가까운것은

함경도 속쇄다.

기산 김준근


김준근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는 정보가 있으나 단언하기는 어렵다.

출생년도를 1853년 전후로 보거나 미상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김준근 (金俊根, 생몰년 미상)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평민 출신 풍속화가이다. 《기산풍속도》, 《텬로력뎡》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림을 살펴보면 씨름을 하고 있는 두사람 모두 다리에는 끈(샅바)가 보이지 않는다.

허리춤에 띠를 매는 띠씨름으로 볼수도 있고 샅바 없이 하는 민둥씨름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허리춤을 붙잡고 하다가도 위와 같은 형태가 될수 있기에 민둥씨름이라고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다.


끈(샅바)이라는 도구를 착용하는것은 후대의 것이다.


도구 없이 하다가 도구 착용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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