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점 찾았다!)택견 송덕기 일본무도 쥬도(야와라 외) 학습 개연성 크다!

2024-07-15 / 조회수 : 540 신고

아래는 송덕기, 임호와 일제강점기 일본무도와의 접점 개연성에 대한 것이다.


송덕기가 택견 기술이라며 1973년 예용해에 증언했다가 83년 뺀 쥬도 배대뒤치기 유사기술 그리고 85년 이후 촬영에서 쥬도 전방 낙법과 유사기술 시연,

대동류 합기유술에서 확인되는것과 유사기술을 송덕기가 한것은 사실관계다.


송덕기로부터 계속, 쥬도, 야와라 얘기가 나오는 탓에 연구자는 송덕기, 임호와 일본 쥬도,야와라의 조선 진출관련 시기적, 거리적으로 비교해서 이해를 도모했다.


아래는 미확인 상태지만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판단되어 후속 연구중이다.


송덕기의 이질적인 택견 주장 기술들을 이해하려면 우치다 료헤이(후쿠오카번사이자 무예의 달인으로 알려진 우치다 료고로(일본어판)의 삼남, 활쏘기, 검도, 유술, 씨름, 사격을 부친에게 배웠다)가 송덕기 13세 무렵 서울 명동에 가마니 30매 크기의 쥬도장을 개관 한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우치다 도장은 송덕기가 거주하던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현재 기준으로 전철 30여분 안팍 에 지나지 않는 인접 거리에 위치했다.




우치다 료헤이(일본어内田良平1874년 2월 11일 ~ 1937년 7월 26일)

흑룡회 간부 , 유도 5단


옛 후쿠오카번사이자 무예의 달인으로 알려진 우치다 료고로(일본어판)의 삼남로 지금의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도진정(唐人町)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료스케(良助), 기노에(甲). 1902년 료헤이(良平)로 개명하였다. 어릴 때부터 활쏘기, 검도, 유술, 씨름, 사격을 부친에게 배웠다. 


신도몽상류 지술 (신도무소 류류 주츠)은, 일본 의 지팡이 의 유파 . 에도시대 초기 무예자 몽상권 노스케가 창시했다. 에도시대에는 진도몽상류봉술 , 신당몽상류봉술 이라는 이름이었다. 고류 지술에서는 가장 보급된 유파이며 현대 지팡이 와 경지술 의 모체가 되었다.


후쿠오카번 으로 주로 하급 무사가 배우는 포수술 인 「남업(단교)」의 하나로서 전해져 왔지만, 메이지 유신 후, 시라이시 노지 로와 우치다 료고로 ( 우치다 료헤이 의 아버지) 등에 의해 전국 보급의 단서가 열리고, 쇼와 에 들어가 시라이시의 제자, 시미즈 타카지 , 타카야마 키로쿠 , 을 토시 쿠라 등은 대일본 무덕회 에 참가해, 본격적인 전국 보급이 행해졌다. 중산박도 와 그 제자도 신도몽상류지술의 보급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치다료헤이의 아버지인 우치다 료고로는 신도몽상류장술 >지팡이뿐만 아니라 신도 유검술을 포함, 일달류 포줄술 영문판 ) , 일각류십수술 , 일심유쇄 낫술 영문판 ) , 우치다류 단지술 , 중화류 단검술 을 병전 했었다.


아래는 우치다료헤이 도장에서 같이 수련됐던 타류 유술종목인 쌍수집류 14대 수장이다.


대한제국에 유도를 소개한 사람은?


아오나야기 키헤이 마사요시- 소수이시류(파)

소수이시류(双水執流)의 아오야나기 키헤이 마사요시(青柳喜平正聰)

쌍수 집류 (そすいしつり、そうすいしりゅう)는 일본 무술 의 유술 과 거합 의 유파.


유조는 니가미 반노스케 정청(후타가미한노스케마사아키)에서, 승응 년간 에 창시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 . 처음으로 타케우치류를 타케우치류 개조의 타케우치 쿠모리의 제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후 니신류를 창시 [2] . 그 후 요시노의 산속에 37일 참배해 오오고, 니신류를 바꾸어 쌍수집류조 토요노유로라고 칭했다. 관문 연간 니신은 후쿠오카번 으로 마회조에 취임하고 , [후] 직방설간가에 의해 동련사번 으로 전승, 관연 4년에 설간종익에 의해 후쿠오카번 으로 전승되었다. 타케우치류 에서 파생된 유파이지만, 타케우치류에서는 「요노유키」는 1척 2치수의 단도를 이용한 조토 기법을 가리키지만, 현재의 쌍수 집류에서는 거합을 「요노유키」라고 부른다. 에도기에 에도에 전파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강도관조선지부의 어린이유도


1930년 4월 강도관 조선지부 어린이 시합대회 사진(송덕기 거주지에서 현재 기준 전철로 30분 거리다, 소공동 위치)


대회, 연수, 수련, 군경지원까지 도맡아 했다 한다.


강도관 조선지부


해방후 1948년 강도관 조선지부


그뒤 송덕기가 24세때 서울 중구 소공동에 설치 되었던 강도관 조선지부(카노지고로 계통)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역시 거리로는 송덕기 거주 사직동에서 30여분 거리에 있었다.


송덕기는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 태어나 사셨다 했다.

이 사직동에서 현재 기준으로 전철 30분 거리에 1906년 일본인 우치다 료헤이가 명동에 우치다 유도장을 개관 했었다.

돗자리 30매 정도 크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때 송덕기 나이가 13세 였다.

이후 1917년 일본 강도관 쥬도 조선지부까지 서울 소공동에 설치됐다.

이역시 송덕기 거주했던 사직동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에 불과하다.


송덕기는 1893년 출생 했고 임호가 자기보다 11세 연상으로 29세(임호)때 배웠다고 했다.

송덕기는 1964년 한국일보, 1973년 예용해 조사에서 18세때부터 택견을 했다고 하다가 어떤 이유인지 1983년에는 12세부터라고 말을 바꿨었다.


임호 나이를 송덕기와 같이 6년 소급 시켜야 할지 그대로 둬야 할지 연구자는 고민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송덕기 얘기를 받아 들여서 임호 나이는 소급 시키지 않고 상기 우치다 쥬도장 개관과 강도관 조선지부 설치와 시기를 비교 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임호- 24세때 우치다 도장 서울 중구 명동에 개관, 35세때 강도관 조선지부 서울 중구 소공동에 설치

이 역시 임호 거주지역인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전철로 30분 이내 거리에 불과하다.


여기서 우리는 

(1)시기적

(2)거리적,으로 임호와 송덕기가 일본 쥬도, 야와라를 경험 할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을 확인했다.


당시 우치다 도장이나 강도관 조선지부 설치는 일본인과 조선인들 사이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을리 만무하다.


청소년기의 송덕기와 청년기의 임호는 우치다  쥬도장 개관, 강도관 조선지부 설치를 알 수 있었을 연령대로써 시기적으로 겹치고 거리적으로도 멀지 않은 곳에 쥬도장과 강도관 조선지부까지 있었다는게다.


더군다나 우치다도장에서는 강도관 쥬도 외에도 일본 유술(야와라) 류파인 쌍수집류까지 같이 수련 되었고 우치다는 강도관 쥬도 외에도 그의 아버지로부터 다양한 무도에 일찍부터 영향을

받았었다.


임호와 송덕기는 인접 거리에 있던 이 우치다 도장과 그후 11년 뒤에 설치되었던 강도관 조선지부에서 강습을 받거나 또는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에 이르렀다.


여기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것은 송덕기 본인으로써 쥬도 배대뒤칙 유사기술 택견 주장했다가 이후 기술을 책에서 빼기도 했었고

83년 책에는 야와라 유사기술을 택견 기술로 수록 하기도 했었다.

85년 이후에는 쥬도 전방낙법과 같은 유사기술을 택견이라며 시연했다.


또한 송덕기 시연을 촬영했던 합기도 도주 최용술의 고제자는 송덕기가 야와라 비전기술 5가지를 능숙하게 해 보였다! 고 증언했다.


송덕기가 생전에 택견 기술이라고 주장했던 것 중 민속 택견 기술 발차기, 걸이 기술과 칼잽이 외 대다수는 문화재 지정을 위한 과정에서 추가되고 확대되었다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었다.


(내용 보충 됩니다)


송덕기 주장 택견 손기술중 가라테 유사기술에 대한 1900년생 권태훈의 증언이 있다!


송덕기는 1973년 택견에서 손만 사용하는건 단 한가지 수! 로 조사자 예용해에게 증언 한 뒤

알려지기로는 기술 숫자가 적고 체계가 없어 지정이 되지 않았다(사실관계 확인된것 아님)는 얘기를 듣고 주도적으로

11가지 기술에 타무도 기술들을 가져다가 붙여 놓고 체계 정리를 하려 노력했으리라 합리적 의심이 있다.


서울 제동 출생 권태훈, 전 대종교 총전교(1900~1994)는 1989년 증언 녹음을 남겼는데

83년 문화재 지정 된 후 송덕기가 자신을 찾아 왔고 그 전에는 신한승이 왔었다고 관련 증언을 남겼다.

1989년 권태훈(1900~1994 대종교 총전교) 증언이다.

영상 처음 문화재 지칭-신한승, 두번째 송씨 문화재-송덕기를 지칭한다.

신한승이 권태훈을 만나 권태훈과 송덕기 얘기가 다르다 했다.

송덕기도 권태훈을 찾아 왔다는데

필운대-권태훈 증언에 의하면 서촌 한량 택견하는 사람들 본산에서

송덕기를 보지도 못 했다 하는것으로 송덕기 증언 인왕산과 별개로

당시 택견 연습하던 곳이 있었다는 얘기다.

권태훈은 택견이 손과 발을 사용하지만 주로 발로 차는거고

손은 자연스럽게 두고 치거나 잡거나 이런식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1983년부터 변질 된 송덕기의 택견 주장 기술들과 체계는 당수, 야와라 등

타종목 기술 유입과 일본무도 체계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 비교할때 반대되는 얘기(증언)가 있으면 문화재 지정 자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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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문화재관리국이 제데로 된 검증도 없이 지정 해 놓은게 현재의 혼란상태를

야기시킨 원인이기도 하다.

송덕기 1인 주장만을 과대 포장해서 홍보하는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권태훈 1900~1994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인학(寅鶴), 자는 윤명(允明) 또는 성기(聖祈),

호는 여해(如海), 봉우(鳳宇), 물물(勿勿), 연연(然然).

서울 제동(齊洞) 출생.

권율(權慄) 장군의 11대손이다.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내부판적국장(內部版籍局長),

평산군수 · 진도(珍島)군수를 역임한 중면(重冕)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이다.


헤드라인 뉴스

[기획보도] 택견 일본 가라테도 기술 유입 의혹, 유사기술 확인돼!

http://mhjn.dothome.co.kr/%ea%b8%b0%ed%9a%8d%eb%b3%b4%eb%8f%84-%ed%83%9d%ea%b2%ac-%ec%9d%bc%eb%b3%b8-%ea%b0%80%eb%9d%bc%ed%85%8c%eb%8f%84-%ea%b8%b0%ec%88%a0-%ec%9c%a0%ec%9e%85-%ec%9d%98%ed%98%b9-%ec%9c%a0%ec%82%ac%ea%b8%b0/


권태훈과 대담하는 사람이 "요새 태껸이라는건 그전에 조상들 주로 발만 쓰던게 아니고 요새 가라테처럼 주먹도 있고 다 있어요" 라고 하니

권태훈은 "그러니까 가라테, 그놈을 가지고 하는거여" 라 했다.<녹음,녹취자료>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송덕기가 택견 손기술 주장하며 83년에 갑자기 내 놓은 1973년 한가지에서 26가지로 대폭 추가,확대 된 손기술들이

과연 우리 전통적인것인지 아니면 권태훈의 지적처럼 가라테 가지고 했던건지,에 대한 실체 확인이 필요하다.


가라테 손기술 가져다가 붙여 넣기 해서 전통 운운하는것은 용인될 수 없는게다.


1차로 송덕기 주장 택견 손기술에 대한 개관을 영상으로 해서 유튜브, 한국문화저널, 네이버 블로그 등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2차, 3차,, 계속해서 자료 보충하게 된다.


전통적인것에서 교차 확인 안 돼!


송덕기가 택견 손기술이란건 씨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면 혹시, 수박 관련 기술들인가? 그것도 아닌것 같다.




위에서 송 노인은 송덕기를 지칭한다.

신승씨는 신한승을 지칭한다.


송덕기는 1977년 영화 서편제 주연을 했었던 김명곤씨의 뿌리깊은 나무 관련 기사에서 증언을 했는데 수벽치기나 수박희는 전혀 들은 일도 본 일도 없다 했다.


따라서 전통적인 씨름, 수박 에서는 송덕기가 주장하는 손기술 유사의 것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권태훈 증언처럼 가라테도를 가지고 우리 전통 택견 기술 이라 한 것은 아닌지 연구자로써 의구심을 가지고 가라테도와 상호 비교를 했다.


송덕기는 전통 택견만을 알고 있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송덕기가 전통 택견만을 했을 것이다? 타 무도 종목을 알지 못햇을것이다? 라는 편향 된 사고로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송덕기는 문화재 지정 전에(정확한 년도 확인은 되지 않음) 누군가를 지도하는 사진이 공개 되어 있는데 상대 한쪽 손목부위를 장아서 위로 치켜 들어 겨드랑이를 노출 시키고 급소를 찌르는것을 제 삼자가 사진 촬영까지 한 것이 확인된다.



좌측 송덕기, 상대방 겨드랑이 급소를 찌르는 기술

1973, 83년에 보이지 않던것이 근래 들어 택견 기술 주장하며 인터넷에 떠 돌고 있다.



1985년 이후 촬영, 송덕기 시연 상대방 척골 신경 압박기술- 위 기술과 같은 계열로 보인다.

1973년, 83년에는 이 기술이 빠져 있다.



1985년 이후 촬영, 송덕기 쥬도 전방낙법과 같은 기술 시연

1973,83년에는 빠져 있다.



1983년 송덕기 머리말 쓴 책 수록, 태권도식 옆차기 후 찬발 놓고 뒤후리기 기술

1973년에는 빠져 있고 이후 확인되지 않는다.




일본 대동류야와라에서 확인되는 유사기술, 앞부분 1973년에는 빠져 있다.

이것과 연계기가 일본측에서는 행해지는데 송덕기는 유사기술 위 앞부분과 다음 사진의 뒷부분을 1983년과 85년 이후 분리해서 시연했다.

따라서 구체적 판단이 어려웠었다.




1985년 이후 촬영, 시연 송덕기 대동류야와라 유사기술로 확인 됐다.


1973년 쥬도 배대뒤치기와 기술적으로 같은것을 용어를 무릅팍치기라고 했다가 후에는 송덕기 스스로 그 기술을 빼기도 했었다.

즉, 송덕기는 전통 택견(본인 얘기데로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던 민속놀이) 외에도 쥬도, 야와라 적 기술들에 대한 이해도가 있었다는것을 알고

송덕기 주장 택견 손기술들에 대해서 접근해야 한다.


송덕기는 1973년, 그리고 1983년과 그 이후 촬영되었던 것에서 기술들을 취사 선택 했음이 확인됐다.

*1973년 쥬도 배대뒤치기 유사 기술을 1983년 책에서 뺐다.

1983년 그전에 확인되지 않았던 기술들을 대거 추가,확대해서 일본식 무도개념으로까지 이해되는 체계가 정리된듯한 것을 내 놓았다.

그 뒤 1985년부터 촬영 되었던 송덕기 시연 사진들에서 송덕기는 1973년과 1983년에 공개하지 않앗던 새로운? 것들을 다시 추가해서 택견 기술들이라고 주장 햇는데

여기에 대해서 일본 대동류합기유술(다이토류 쥬쥬쓰) 전문가는 "송덕기가 야와라 비전기술 5가지를 능숙하게 해 보였다!' 라고 증언했다.


상기와 같은 송덕기의 타 무도종목들에 대한 이해도를 전제로 볼 때 아래의 1983년 택견 손기술 주장의 가라테도 유사 기술들을 취사선택 해서 추가,포함 시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엇다 사료된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1차 결과를 도출 했다.


가라테 손기술 10가지, 송덕기 주장 택견 기술과 유사 확인돼!

1900년생 권태훈 증언, 가라테 가지고 하는것!


1900년 서울 제동 출생 전,대종교 총전교 권태훈옹 증언\n"가라테 가지고 하는거다!

83년 송덕기 택견 손기술 주장했던 것 26가지에서 가라테 유사기술 10개 확인돼!


[일본 가라테도 기술 의심 있는 택견 주장 손기술들]

1가지치기, 2낙함, 3도끼질, 4가슴치기, 5늦은배 잡아 끌어치기, 6늦은배 엎어치기, 7늦은배 치켜치기, 8재갈넣기, 9면치기, 10손따귀


위의 것들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이 진행 될 예정이다.


(내용 보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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