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4월 23일 어느 관장 000의 일지.

2024-07-13 / 조회수 : 339 신고

2020년 4월 23일 어느 관장 000의 일지.


 아침 8시! 아내가 그만 일어나서 밥먹고 은행에 가보라고 흔들어 깨운다. 몸이 무겁고 눈도 잘 안 떨어지는데 아내는 빨리 은행대출부터 알아보고 오라고 성화고 난리친다. 


사실 어제 체육관을 이제 그만 접었다는 후배관장과 한잔했던 술이 또 다른 후배관장 2명이 합류하면서 2차까지 과음한 탓이다. 코로나 여파로 2월말부터 7주간 휴관하고 도장 문을 연지가 2주차 인데 15명도 안 나온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도 태권도장은 계속해서 내리막길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전국 모든 태권도장이 그렇겠지만 우리구도 심각한 경영난에 여러 도장의 폐업이 예상된다. 실제로 1년 심사인원이 10명 미만인 도장은 폐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내가 30년간 한동네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해온 이래 최악이다. 정부에서 소상공인을 돕겠다고 하여 3월초에 까다로운 대출신청서를 다 맞추어서 소상공인 대출신청을 완료했고, 신용보증재단 보증도 끝내고, 은행에 대출담당을 배정 후 연락을 기다리던 참이었는데 은행에서 어제 연락이 온 것이다. 


정부의 발표와 달리 매달 은행으로 돈이 조금씩 내려와 돈이 없어서 대출은 무기한 연기 할 수밖에 없다는 연락이었고, 아내는 한숨을 쉬며 다른 대출이라도 알아보라고 한 것이다. 열 받고 화도 났지만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할 처지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은행에 가서 사정을 하니 담보대출로 6천만원까지는 해줄 수 있다고 한다. 2달째 수입이 제로인 상태에서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집 담보대출이자, 생활비, 임대료, 사범월급, 카드 값... 앞으로 얼마나 견뎌낼지 모르겠다. 3달? 4달?...엊그제는 난데없이 문자가 왔다. 보험이 자동해지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자는 신용불량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참 기가차고 어이가 없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제 술자리에서 후배 관장들이 하는 이야기다. 도장만 열심히 했지 은행거래 실적관리도 못했고, 여러 가지 대출조건에는 미달이었고 요구하는 서류는 왜 그렇게 많은지... 결국은 대출을 다 거부하더 란다.


 000관장은 코로나가 오기 몇 달 전부터 권리금이라도 조금 받고 체육관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권리금은 커녕 건물 보증금도 다 까먹어서 어쩔 수 없이 도장 문을 닫게 되었는데 건물 주인이 원상복구를 해놓고 가라고 해서 후배와 함께 직접 철거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면서 폐업조차도 쉽지 않았다며 나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그 자리에 같이 합류한 00관장도 이 기회에 전업을 심각하게 검토하는 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자신의 대학 동기는 3월달부터 음식 배달을 하는데 체육관 수입보다 훨신 좋다며 전업을 권하더라는 것이다. 


올 10월이면 건물 임대계약이 만료일인데 그때까지는 버텨 보려고 문은 열었지만 월세와 인건비 등 계속되는 적자가 불 보듯 뻔해서 언제쯤 체육관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갈지, 전업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우리 구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관원수도 많은 00도장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규모가 큰 많큼 손실도 크고 매월 나가는 돈도 우리들보다 따블이어서 고통도 2배일 것이라고 한다. 오늘은 00이 엄마가 운행 중인 차를 세우더니 00이를 어린이집에서 체육관으로 데려와 운동 끝나면 자신이 조금 늦을 수 있으니 자신이 올 때까지 체육관에서 봐달라고 부탁을 하며 혹시 더 늦어지면 전화를 할테니 00이네 집에 데려다 달란다. 너무 당당하고 당연한 듯이 하는 말에 기분은 더러웠으나 웃으며 

받아주었다. 


지난주에는 제자인 00이가 자기 아이의 수련비 1년치를 선 결제하고 저녁식사와 소주 한잔을 대접하면서 힘들더라도 꼭 참고 유지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자신의 어린 추억과 역사가 있는 곳이며 진짜 스승을 자기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힘으로 버텨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고 정말 힘들다. 그나마 나는 괜찮은 편인 것 같은데, 애들도 다 키웠고, 집 담보대출 이자만 다 갚으면 은퇴 하려고 했는데 아득하고 꿈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두려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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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바로세우기 사범회

    마음이 아프고 먹먹합니다. 일선지도자님들 힘 내시고 화이팅하세요!

    2024-07-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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