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 고찰)일본무도 조선 유입 시기, 송덕기 택견 배웠다 주장 때 거의 동일하다!

2024-07-13 / 조회수 : 342 신고

송덕기 1인 주장만에 의한 전통 택견 이해는 불가능하다.


1973년 이후 송덕기의 택견은 더 이상 민속이 아닌 당수도 타격기, 야와라 관절기 및 급소 찌르기,

유도 배대뒤치기, 낙법 등 타 무도종목 기술들로 보이는것이 눈에 띈다.


11가지 기술 숫자가 200여개로 추가, 확대 된것은 가히 놀랄만하다.

이것들을 전부 전통 택견 기술들이라고 일방적으로 믿으라는것은 곤란하다.


송덕기 스승 임호 실재 했을까?

택견 계보 가짜?

2018년 문화재청.충주 택견 계보 주장 박털백,박무경 정보 내려라 권고조치\n충주 세계무술박물관 택견 계보 패널 철거,수정 사례 있듯\n임호 실체 관련 의구심 있다.


(임호 나이 2개?)송덕기 스승 임호 실재 했을까? 의구심 들어. 송덕기가 택견 배운 나이를 바


꾼탓! 송덕기 18세에서 12세로 주장, 임호도 같이 6년 소급 돼야하나?


일본무도 조선 유입 시기, 송덕기 택견 배웠다 주장 때 거의 동일하다!




1948년 강도관 조선지부(서울 소공동)


송덕기는 서울 사직동에서 출생하고 사셨다한다.


시기 확인


송덕기(1893년생)

송덕기 주장 택견 배운 시기(바뀐 나이) 12세(1905년)

- 1년 뒤인 1906년에 일본인 우치다가 서울 명동에 쥬도 도장 개설했다.


18세(1911년)- 예용해 조사, 처음 송덕기 택견 배웠다 주장 나이

-7년 뒤인 1918년, 소공동에 일본 카노지고로의 강도관 쥬도 조선지부가 설치됐다.

장년기


일제강점기,이다!


(택견에 유입된 일본무도?)


송덕기 일방적 주장만 있는 1983년 문화재 지정후 전통 택견 기술들?


11개에서 200여개로 송덕기가 1983년부터 세부화, 추가,확대 된것 전통 씨름 등에서 교차확인 안돼!


일본 무도 쥬도(송덕기는 쥬도 배대뒤치기, 전방낙법 같은 기술을 알았었고 시연했다)

다이토류쥬쥬쓰의 겨드랑이 타격, 연계기 유사 기술을 83년, 85년 이후 구분해서 택견 기술


이라 주장했다.


반대 되는 자료들을 객관적으로 교차확인해서 전통 택견이 민속으로 제자리를 찾기를 희망한다.

송덕기는 1973년 이후 타 무도종목들을 끌어다 전통 택견이라 주장하고 붙여 놓은 것으로 이해 된다.

그런 까닭에 현재 우리는 전통 택견이 무엇인지 정체를 확인하는것이 더 어렵게 되었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다.

공은 과대포장하고 과는 감추고 숨기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전통 택견은 발차기로 상대방을 제압하는것이다.

넘어 뜨리거나 또는 무예적으로 굴복 시키는것까지는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송덕기가 83년부터 이후 85~7년까지 시연하고 촬영했던 전통 택견 주장 동작, 기술들을 다 믿는것은 곤란하다.

권태훈은 아래 증언에서 송덕기 등이 했던것에 대해 가라테도를 가져다 하는것!이라 했다.

물론, 권태훈 증언도 다른 자료와 비교해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일본무도식으로 변형 시켜가는 이해관계들에 대해서 엄중한 지적이 필요하다 본다.

그럴려면 창시를 하면 된다.

전통을 들먹이며 창작행위를 하는것은 유사 격투기 하나 더 만드는 개인 일탈에 지나지 않는거다.


(내용 보충 됩니다)


1989년 권태훈(1900~1994 대종교 총전교) 증언이다.

영상 처음 문화재 지칭-신한승, 두번째 송씨 문화재-송덕기를 지칭한다.

신한승이 권태훈을 만나 권태훈과 송덕기 얘기가 다르다 했다.

송덕기도 권태훈을 찾아 왔다는데

필운대-권태훈 증언에 의하면 서촌 한량 택견하는 사람들 본산에서

송덕기를 보지도 못 했다 하는것으로 송덕기 증언 인왕산과 별개로

당시 택견 연습하던 곳이 있었다는 얘기다.

권태훈은 택견이 손과 발을 사용하지만 주로 발로 차는거고

손은 자연스럽게 두고 치거나 잡거나 이런식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1983년부터 변질 된 송덕기의 택견 주장 기술들과 체계는 당수, 야와라 등

타종목 기술 유입과 일본무도 체계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 비교할때 반대되는 얘기(증언)가 있으면 문화재 지정 자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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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문화재관리국이 제데로 된 검증도 없이 지정 해 놓은게 현재의 혼란상태를

야기시킨 원인이기도 하다.

송덕기 1인 주장만을 과대 포장해서 홍보하는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권태훈 1900~1994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인학(寅鶴), 자는 윤명(允明) 또는 성기(聖祈),

호는 여해(如海), 봉우(鳳宇), 물물(勿勿), 연연(然然).

서울 제동(齊洞) 출생.

권율(權慄) 장군의 11대손이다.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내부판적국장(內部版籍局長),

평산군수 · 진도(珍島)군수를 역임한 중면(重冕)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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