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덕기는 택견 외 타무도도 학습 했었다!

2024-07-08 / 조회수 : 444 신고

가설: (1)송덕기는 택견 기술만 알았었고 타 무도 종목은 전혀 몰랐다? (2)송덕기는 택견 기술 외에도 타 무도 종목을 알고 있었다?

*전통 표방의 경우 타 무도종목 수련 특히, 일본무도 수련 경력을 숨긴다.

비전통 표방의 경우 전통종목 수련 경력을 과장한다.

의구심 해결: 송덕기가 전통 택견 기술만을 알고 있었을거란 희망사항일 뿐, 시대적 배경으로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그가 충분히 일본무도에 접하고 또, 학습했을 가능성을 깨닫지 못했었다.

송덕기에 대해서 그간 제공되는 정보는 부분적이었기 때문이다.

1973년 예용해 조사보고서상 송덕기가 총 20가지 기술이 있다, 예용해는 좌우 나누어 그러니 10여가지다 했는데

문화재 지정 이후 발간 된 책에 택견 기술 전부를 공개했다며 대폭 확대 된 그리고 이질적인 것들까지 일방적으로 전달됐다.

이후 또 다시 기술체계가 확대, 재구성 된듯한 송덕기가 시연한 것들을 두고

스승에게 조목조목 배우질 못해서 안타까워 했다는 예용해 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송덕기를 마주했던게다.


송덕기가 주장했던 택견 외 타 무도종목을 학습했을거란 가설 이었으나 합기도 도주 최용술의 고제자 김정윤의 목격과 증언, 출판 된 서적으로

더 이상 그것은 가설이 아니게 되었다.


합기도 도주 최용술의 고제자 김정윤: 1985년 송덕기 시연을 봤는데 일본 야와라(데코이) 비전기술 5가지를 능숙하게 해 보였다!

>필자가 오래 전 김정윤을 만났을때도 그는 야와라와 택견 관련 얘기를 했었는데 염두에 두질 못했었다.


송덕기가 시기적으로 택견 기술이라며 추가 했다가 빼기도 하는등 의아스런 것들과 예용해 조사 이후 추가 된 출처가 불명확 했던 송덕기의 기술들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은 연유는

택견을 배울때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잔디밭이나 개천 사장에서 도제식이 아닌 방법으로 배웠다던것과 달리 송덕기가 타 무도종목에 대한 이해가 없고는 상기와 같은 기술 추가, 배제, 확대 등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송덕기는 택견 외에도 본인이 출생해서 성장하는 동안 영향권 내 있었던 일제강점기 기간 무도를 학습 했으리라 합리적 추측에 이르렀고 소급해서 송덕기의 1973년 11가지 기술(쥬도 배대뒤치기로 여겨지는 것 포함), 83년 기술이 대폭 확대되고 체계가 세워진듯한, 당수도 느낌마저 나는, 배대뒤치기(무르팍 치기 삭제), 옆차기 후 뒤후리기 새로 포함 시키고 또, 그 이후 재구성 된 듯한 것들을 사진촬영에 대해서 이해가 됐다.


송덕기는 택견 외 일제강점기 기간 타 무도종목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이든 학습해서 알고 있었다. 즉 73년 예용해 조사당시 11가지 기술 외 타 무도종목 기술들을 모르지 않았었다! 는게다.


이것이 합기도 도주 최용술 고제자 증언으로 확인된게다.


어쩌면 자연스럽다 생각할수도 있다.


태권도 송무관 노병직의 자필 기록으로 그가 일제강점기 당수도(가라테도) 이전 수박희, 택견 관련 체기를 학습 했었다 증언,

노병직에게 도장을 빌려 줬던 송덕기 보다 18년 뒤 출생 민완식(1911년생)이 일제강점기 강도관 유도 7단의 고단자였고 씨름, 수박을 했다는 것처럼


송덕기는 택견이라 얘기 했던 것 외에도 타 종목, 후에 합기도 도주 최용술 고제자로부터 확인되는 야와라 학습이 말이다.


태권도 비판,비방하는것 대다수가 택견쪽, 관계자, 수련생 들에게서 나온다.


대한민국 국기가 태권도인데 법으로 제정된 태권도를 일본 가라테도니 뭐니 하며 즐기며

정작 내로남불 이라고, 택견이 일본 무도 어쩌고 하면 팩트체크도 하기 전에 비방부터 한다.


83년 군사정권하 국가기관(문화재관리국, 문공부)이 개입 된 가스라이팅 후과 라고도 사료된다.


어린 청소년들이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듣고 보는데 그것을 허위정보로 이용하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로써 해선 안될 짓이며

부도덕을 넘어 범죄행위로 지목 될 수 있다.


주: 택견 용어는 보통명사로써 송덕기 주장의 것에 한할 수 없으며 북한 민속학자 계정희 교수 발굴 개성 지역의 것과

1895년 일본에서도 했다는 것과 전체적으로 동일시 할 수는 없음.


유튜브에 비방 댓글들이 달리고 있음!


송덕기 택견이 일본 무도 야와라! 라는것은 출판 된 책에 적시되어 있는것임.

정보를 부분 발췌하고 누락 인용, 짜깁기 해서 대국민 기망하는 행위가 비일비재한데 상기 송덕기 택견이 일본 무도 야와라! 라는 출판 된 정보마저 언급을 못하게

필자 유튜브에 비방 댓글들이 달리고 있는데 이는 문화재관리국의 개입으로 검증도 되지 않은것에 공적 담보를 부여한 사회적 문제로써

왜곡된 정서를 드러낸다고 사료된다.


필자는 연구자로써 북한측 택견 자료를 연구과제로 선정해서 학술 연구를 진행하며 송덕기 주장 택견을 객관화 시키는데 기여할 취지인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특정인, 특정단체에서 악성 비방을 종용했을때는 형사처벌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공개 기자회견 및 문화재청, 청장, 국회, 교육부, 서울시, 각 지자체, 해외 언론사, 유네스코 등에서도 국제문제화 될수도 있다.


송덕기 시연 태견 책 123페이지 하단

송덕기 선생은 야와라 비전기술 5가지를 능숙하게 해 보였다.

(중략) 송덕기 선생은 일본 야와라(즉 데코이) 는 택견이었다는 것을 기술적으로 증명해 준 것이다.


문화재청(국가유산청 및) 등 기관에 민원, 정보공개 청구로 송덕기 주장 택견들에서 결론 도출 되는데로 순차적으로 공식 회신을 요청케 된다.


송덕기 주장 택견은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구한말 1895년 일본에서도 했다 기록이 있고 북한에서 발굴 된 것과 교차확인 할때 송덕기 주장 택견에 상당히 이질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것이 확인됐다.


연구자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차, 야와라로부터 그 해답을 찾았다.

필자 의사결정에는 야와라 전문가가 생전의 송덕기 시연을 보고, 사진촬영, 등을 진행하며 증언한 것이 근거가 됐다.


전통 택견이라 주장 하면서 했던 동작, 기술들 대다수가 교차확인이 되지 않는 일방적 인거다.

즉, 출처가 불명확한 동작,기술들을 우리 전통이라 강요 당하는 상황에 건설적으로 송덕기 택견과 일본 무도 야와라 와의 세부 고찰을 통한 송덕기 택견의 역사정립과 기술 정립에 학술적 성과가 도출돼야지 싶다.


송덕기가 주장했던 택견이 일본 야와라! 라는 것은 관계 전문가 의견이 있으며 필자도 여기에 동의하는 바이다.

송덕기가 생전에 택견이라며 시연한 사진, 영상 기타를 살펴 볼때 전통적인 것은 부분에 불과하고 그 외에는 시기적으로 추가되고 새롭게 주장됐던 출처 불명확한 것이었는데 야와라 전문가 증언에 의해서 그 출처가 이해 됐다.

시시때때로 기술, 동작들이 추가되고 삭제 되기도 했고 더군다나 일본 쥬도 기술, 당수도(가라테도) 옆차기, 뒤후리기로 보이는 것도 전통 택견 기술이라고 했었다.


야와라 비전기술 5가지를 능숙하게 시연 했다는 송덕기의 그 택견에 대해서 야와라 전문가는 야와라가 택견이었음을 송덕기가 기술적으로 증명 해 줬다! 고 했다.


*필자 주: 야와라 택견이 아니라고 주장 한다면 아니라는것을 증명하면 된다.

토론이 아닌 비방이 있을때는 검찰 고발 등으로 대응하고 위키백과 허위 배포 건처럼 소취하 하지 않을 생각이다.


(결론 도출!)송덕기는 택견 경기규정 기준 될 수 없어! 반대되는 자료 교차확인 됐다!

송덕기 주장 겨루는 규정(칙) 과연 보편적 이었을까?

결론은 그건 그냥 송덕기 주장이었을 뿐임이 교차확인 된다.-본문 아래


문화재관리국 개입으로 우리는 검증도 되지 않았던 송덕기류에 대해서 검증 기회를 박탈 당했고

지속적인 행정기관,언론력 등으로 정보를 받아 들여야 했다.

가스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은 가정, 학교,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뤄지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스라이팅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송덕기 주장 택견, 전통 포장되어 사회 기망되어선 안 돼!


송덕기의 야와라 논란은 야와라 대가인 김정윤의 목격과 증언, 출판된 서적에서 찾을 수 있다.

김정윤은 1985년 송덕기 시연을 직접 목격했고 그에 대한 기록을 출판된 서적에 적시했다.

송덕기가 택견이라며 일본 야와라를 시연했다! 증언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 이해 필요

여기서 우리는 송덕기가 택견이라 주장한 것을 학습하게 된 시대적 상황,배경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송덕기는 1893년 출생했고 일본에서도 택견을 했다는 기록인 코리안게임스는 송덕기 출생 2년 뒤 1895년에 발간됐다.

송덕기가 출생해서 본인이 주장했던 택견을 배운 시기는 일본에서도 택견을 같이 했던(코리안게임스 기록) 일제강점기 일본 무도에 노출 되어 있었다.

박종관 정리 택견 머리말, 송덕기 씀 1983년 5월

*머리말 내용들을 팩트체크 없이 믿는것은 곤란하다.

차츰, 객관적 팩트를 도출 해 갈 예정이나 머리말을 보면 나는(송덕기) 12세부터~ (이때는 일본에서도 택견을 했었던 때다)

결연택견? 우리가 알기로는 신모씨가 결련을 결연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인데 송덕기 본인 머리말에도 신모씨와 같은 결연,을 주장해서

우리가 간과했었던 문화재 지정을 위한 노력이 비단 신모씨에게만 있었지는 않았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문화재 지정은 곧, 송덕기 본인 일이었지 그로부터 배운 신모씨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송덕기 주장 겨루는 규정(칙) 과연 보편적 이었을까?


결론은 그건 그냥 송덕기 주장이었을 뿐임이 교차확인 된다.


위사진 아래에서 8번재줄


송덕기- 자기가 했던 것은 "겨루는데 일정한 규정이 없었다!"

교차확인- (1)북한민속학자 계정희 교수 발굴 개성 지역 택견은 철저한 규칙이 있었다! 했다.

손으로 잡거나 치거나 머리로 받거나 몸으로 떠밀어선 안된다, 그렇게 할때는 수접이(국어대사전 수제비태껸) 택견이라고 했다.

*상대방이 공격하는 발을 손으로 막아서 밀수는 있다.

(2)1895년 코리안게임스- 겨루는데 규정이 있었다.

겨루는중 손으로 잡기도 했다.

코리안게임스: A high Kick is permitted, and is caught with the hands
하이킥이 허용되며 손으로 잡는다. 필자 주/이때 잡는다는 것은 킥에 해당되는거다.


(1)북한 발굴 택견- 발로 차거나 주로 하반신, 다리로 걸어서 넘어뜨린다!

(2)코리안게임스- 던지는것(영어 용어상)이 목적이다!

The object is to throw the opponent 목표는 상대를 던지는 것이다

필자 주/ 코리안게임스에 택견하기-킥킹! 이라 되어 있고 chiefly with the feet 주로 발로 차기를 한다.

상대가 차는 발을 손으로 잡을 수 있다.

경기목적이 던지는것, 이것을 직역 해서는 곤란하며 상대가 차는 발을 잡을 수 있고 연계동작으로 내던지듯, 쓰러트리듯 한다가 적합하다.


위에서 살펴 봤듯 송덕기 주장 택견중 겨루는 것은 택견을 대표 할 기준이 되기 어렵다.

경기규정도 없었다고 송덕기 본인이 증언 했지만 반대되는 자료에서는 철저한 규정, 그리고 손을 사용할 수 있는 용례까지 확인된다.


이와 같이 송덕기 주장 택견이 불확실 하다보니 현재 레슬링식? 권투식? 종합무술식? 으로까지 확대되고 근거로 송덕기가 운운하면서 필요한데로 여기 붙이고 저기 붙이는 형국이다.


유의할 것은 송덕기 주장 택견이 코리안게임스의 것과 다른거다!라면 송덕기 주장은 날아 간다!

즉, 특정한 형태를 확인 할 수 없게 된다는거다.


주도적 위치에 있었던 송덕기에 대해서 검증의 외곽에 방치 한 잘못으로 그 이후 송덕기 주장 택견류는 종합무술처럼 변해 버렸다.

그리고 송덕기? 송덕기? 하며 전통에 대한 막연한 신뢰를 사회일반에 강요하는 왜곡 된 상황에 놓여 있다.

송덕기 주장 이제 일방적 수용 안 돼!

일본 무도를 전통으로 호도 하는것 등은 대국민 사기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청소년들을 정신적 기망하는 반 사회적 범죄행위로 치부 될 수도 있다.


1973년 예용해 보고서와 전혀 달라진 이후 송덕기 주장 택견은 코리안게임스 외 북한 민속학자 계정희 교수가 발굴한 개성 지역의 택견으로 교차확인이 가능하다.

그간에는 송덕기 한사람 주장만 있었고 판단하려고 해도 재료 자체가 부족한게 아니라 없었다!

1인 주장에 불과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게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전통문화들에 왜색 즉, 일재잔재가 스며 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해되기도 한다.

1) 송덕기 출생- 1893년

2) 일본에서도 택견을 했다- 1895년 기록

3) 왜정(일제강점기)- 1910년

4) 송덕기류 주장 택견- 송덕기는 1983년 본인이 머리말을 쓴 책에 12세부터 택견을 했다고 주장했었다.

송덕기 주장 시기 12세는 일본에서도 택견을 했었다는 기록 1895년 후다.

송덕기 주장 12세- 1905년, 이후 한일병합이 되었다.

한일합병(韓日合倂)

한일합병은 1910년(대한제국 융희 4) 일제의 침략으로 한일합병조약에 따라 국권을 상실한 일이다. 경술국치라고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기적으로 송덕기가 주장했던 송덕기류 택견이란게 한일병합 이전- 소급을 할 수 있는 기간은 한불자전 틱견하다!로

한불자전 1880년> 송덕기 출생 1893년> 일본에서도 했다 1895년> 송덕기 주장 류, 학습 시작 1905년경> 한일병합 1910년

송덕기가 주장했던 택견을 학습한 시기는 상기와 같이 일본의 영향권에 있던 때이다.

송덕기가 최소 5년을 학습 했다고 할때 그 시기에 한일병합이 된다.

*택견은 보통명사기에 필자가 송덕기류,라는 표현을 함에 유의

송덕기가 주장했던 택견을 배운 시기는 일본 영향, 왜정때와 맞물려 있다는게다.

이후, 송덕기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야와라 대가가 언급한것처럼 일본무도를 학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된다.

*송덕기가 야와라를 몰랐다! 순수한 조선의? 전통놀이던 무술이던 그것 한가지만 알았을것이다 또한, 근거를 전혀 내 놓을 수 없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송덕기가 야와라를 택견이라며 시연 했다!는것을 뒤집기 위해서는 야와라 대가의 증언이 틀렸다는 것을 우리는 객관적 자료로 비교확인 돼야 한다.

송덕기가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 보고한 기술도 후에 작의적으로 빼고 출판된 서적에 태권도식 옆차기, 뒤후리기도 택견 기술이라 했다가 빼고

이런 연장선에서 송덕기 주장만을 무작정 신뢰하기에는 많이 성급하다.

참고로 필자도 송덕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중 한명이다.

직접 배우던, 또 글이나 사진, 영상 등으로 영향을 받은 경우도 배웠다 얘기 못하는게 아니다.

그렇다면 방송통신대학 문 닫아야 되고 온라인 학점 주는 교육부도 문제가 된다.

학위도 다 반납해야 하는게다.

따라서 필자의 송덕기 택견에 대한 추적은 필자 개인에 미친 영향을 확인코저 함이다.

송덕기가 일본 야와라가 택견이었음을 기술로 증명했다?

일본에서 야와라를 배워서 해방 이후 대구에 정착했던 고 최용술의 야와라(합기도, 일본 야와라, 일본 쥬도)의 비전기술 5가지를 문화재 지정되고 2년 후 1985년에

최용술의 고제자로 기도회 초기 멤버이기도 하셨던 김정윤이 송덕기 시연을 보고 증언한 것이 출판 된 책에 적시되어 있다.

김정윤의 역사 의식은 개인적 의견일 뿐 현재로써는 증명이 어려우나

기술적 부분으로는 김정윤이 최용술로부터 야와라 비전기술을 배웠고 그러한 그의 안목으로 송덕기가 1985년 일본 데코이(야와라) 비전기술 5가지를 능숙하게 해 보였다!는

증언으로 송덕기가 전통 주장하며 1973년 일본 쥬도 배대뒤치기와 형태, 운동 방향, 목적성 까지 같았던 것을 무르팍치기니 하며 국가기관 조사위원인 예용해에게 조사보고서까지 실리게 해 놓고는

1983년 택견의 전부를 공개 한다며 머리말 까지 쓴 박종관의 책에는 그 배대뒤치기(무르팍치기)가 어떤 연유인지 설명도 없이 빠져 있다.

태권도식 옆차기 후 찬 발 놓고 뒤후리기를 또 택견 기술이라고 1983년 책에 수록 해 놓고는 그 이후 이 기술은 행방이 불명 해 진 상태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 예용해가 보고하고 이후부터 충주 신모씨가 문화재 지정을 위해서 기술체계 등을 만들어 나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송덕기는 위와 같이 타 종목 기술 유입, 삭제 의혹들과 일본 야와라 기술 보유(김정윤 증언에 의함) 등으로 사회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온 것에 대해서 큰 문제의식을 가지게 했다.

필자는 학술적 연구 일환으로 송덕기를 연구대상자로 선정해서 객관적 근거 채집과 서술로 학술 연구물 등재 및 언론보도, 그리고 문화재청(국가유산청 등)에 전달 예정이며

한국을 비롯해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번역해서 해외 사이트에 뉴스 보도 및 블로그 등 개제하게 된다.

1985년 송덕기가 택견 이라며 시연하는 것 중 일본 야와라 비전기술 5가지를 능숙 하게 했다는 야와라 관계자측 증언이 발간 된 책에 적시되어 있어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송덕기가 전통이라 주장하면서 했던 기술 들은 전통적인 것이었나?

증언자인 야와라 관계자의 지적처럼 송덕기가 당시 했던, 그리고 출판 된 책에 시연한것이 과연 일본 무도 야와라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연구자로써의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김정윤 저, 태견 원전제작비화 123페이지

김정윤 "야와라(데코이)에는 비기로 전수된 기술이 5종 있다.

이 기술들은 제자라해도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는 기술이 아니었다.

필자는 덕암 최용술 선생으로부터 야와라(데코이)의 비전기술을 모두 이어 받았기 때문에

송덕기 선생이 태견 비전기술을 시연할 때 야와라의 비전기술이 본래 태견 이었다는것을 알수가 있었다.

송덕기 선생은 야와라의 비전기술 5가지를 능숙하게 해 보였다.

(중략)

송덕기 선생은 일본 야와라 즉, 데코이는 태견 이었다는것을 기술적으로 증명 해 준 것이다.

이 얘기는 일본 야와라-데코이=송덕기 택견

송덕기 택견=일본 야와라-데코이, 란 얘기다.

합기도 도주 최용술 고제자 김정윤에 따르면 송덕기가 주장했던 전통 택견이란게 결국은 일본의 무도 야와라!에 지나지 않는단거다.

택견은 과연 우리 고유한 전통 맞나?

송덕기 출생- 1893년, 그 2년 뒤에 발간 된 코리안게임스(1895년)에 송덕기 택견이라 추찰 할 수 있는게 당시 일본에서도 행해졌다! 기록되어 있다.

아래 1895년 코리안게임스상 당시 일본에서도 택견을 했다는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리델 주교가 1880년 지은 「한불자전」 표지. 한국교회사연구소 제공

>한불자전이 송덕기 주장 택견 관련 밝혀진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여기에는 틱견하다! 로 되어 있다.

청구영언의 탁견은 보통명산지, 고유적인건지 확인할 수 없는거다.

따라서 청구영언을 무작정 가져다 붙여넣기 하는것은 어용짓에 다르지 않다.

재물보 탁견은 보통명사로써 씨름의 일종인 시박,도 역시 탁견에 포함되는것

송덕기 주장 고유적 택견의 기록이 아니다.

한불자전 뒤에 코리안게임스, 1920년대 해동죽지- 탁견희가 나온다.

이것이 송덕기 주장 택견을 그나마 유추할 수 있는 문헌자료 전부다!

송덕기 주장 택견을 무슨 고대무술? 이라고 호도하는 정보들이 넘치다보니 우리는 제데로 된 판단 기회를 박탈 당하고 있다.

한불자전- 1880년부터~ 그 후로 송덕기 주장 택견의 실체 파악을 해야 한다.

스튜어트 쿨린, 코리안 게임스

원제는 Korea Games With notes on the Corresponding of China and japan (1895) 이다.

"택견하기는 두명의 선수들이 주로 발을 가지고 하는 격투이다. 그들은 서로 마주하고 두 다리를 벌려 자세를 취한 다음 상대편의 다리를 차려고 한다. 선수는 두 발 중 하나를 한 발 뒤로 물러서게 해 제삼의 위치에 놓을 수 잇다. 따라서 발은 언제나 세 위치 중 한곳에 두어야 한다. 한명이 상대편의 다리에 발로 차면서 공세를 취한다. 상대편은 공격당한 다리를 뒤로 빼고 차례로 공격을 한다. 높은 발차기가 허용되고 그것을 손으로 막을 수 있다. 이 놀이의 목표는 상대편을 쓰러 뜨리는 것이다. 이 경기는 일본에도 있지만 광동출신의 중국노동자들은 그것을 잘 모르는것 같다.

이 경기는 일본에도 있지만 광동출신의 중국노동자들은 그것을 잘 모르는것 같다.

어떤 이유로, 코리안게임스 정보를 부분 발췌해서 일본에서도 당시 택견(하기)를 했다!는 걸 누락 시켜 사회를 기망하려 드는가?

송덕기의 택견이란 1895년경 조선과 일본에서 같이 하던 문화란 사실관계다!

자, 송덕기가 전통 택견이라 주장했던 것들이 일본 무도 야와라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또, 코리안게임스에서 당시 일본에서도 했었다!에 대해서

추적 되어 마땅하다.

이 사안은 검증도 없이 문화재관리국 개입으로 무비판 수용되어 왔던 송덕기 주장 택견에 대한 냉철한 검증대가 될 것이다.

앞 선 얘기지만 송덕기 주장 택견은 일본에서 건너 왔을 가능성도 있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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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발생한 것- 증명이 안된다.

용어가 우리것?

일본에서 할때 일본어로 지칭하고

몽골에서 할때 몽골어로 쓸 뿐 그것이 종목의 고유성을 담보 할 수는 없는게다.

그 이전 보통명사는 용어의 유사성과 그 이후 유사용어를 사용 했다는 얘기 밖에 안된다.

한복 입고 했다고 한국 전통이라면 아프리카 춤도 한복 입고 추면 한국 전통이 되는가?

몸짓?

무슨 몸짓?

팔, 다리 이리저리 흔드는것?

그건 일본에서도 한다.

사람이 팔, 다리 움직이는거야 매 일반인게다.

오금질?

일본에서는 무릎 오금질 안한단 말인가?

굼실?

능청?

일본에서는 굼실, 능청 안하고 뭐 한단 얘긴가?

송덕기 이후 택견 주장하며 창작 된 것들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송덕기 택견의 실체 파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 장난 밖에 안된다고 본다.

(내용 보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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