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완식 계보)1911생 민완식의 조선 전래 수박 해제(동작 정리, 설명 및)

2024-04-10 / 조회수 : 589 신고

-아래는 전통무예 수박, 민완식 계보 관련이다.

전통무예 수박은 천일룡>송창렬, 김홍필>김달순>김학천,학현, 민완식>오진환

세개의 전승 계보가 있으며 연구자들에 의해서 각기 동작들이 채집 되었고 연습법과 격투체계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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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작고하신 송창렬옹 이름이 알려진 탓에 민완식, 김달순 계보 관련 언급이 부족 했으나

21년부터 1911년 민완식 선생 계보와 1886년 김달순 계보 관련

독립 된 전승계보로 세 계보 자료가 정리, 공개되고 학술 논문 등재 및 단행본 출판이 됐다.

이로 인해서 전통 수박에 대한 비교, 교차 검증이 보다 명확해 질 수 있었고 상호간에 중복되는 부분, 또는 미비한 부분들까지

객관적으로 도출되어 차후 연구자들에게 기초자료 이상의 결과물을 공유 할 수 있게 됐다.




개성에서 민완식 선생, 앞줄 좌측


일제강점기 개성의 무도인 민완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식군대가 해산된것이 1907년이었다.


이후 4년뒤에 출생한 민완식은 구한말 개성 유지이자 오진환의 증언에 의하면 귀족이었다.

동생이 전,문교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한 민관식 총재다.


『송도지(松都誌)』

송도유수 정창순이 송도(현 개성시)의 연혁 · 인문지리 · 행정 등을 수록하여 1782년에 편찬한 읍지.


송도지


송도지


송도지 뒤에 발간 된 『송도속지(松都續誌)』에는 당시 개성에 무과시험 합격자가 258명이나 되었다고 했다.


이 시기는 순조때다.

무예도보통지가 나온게 1790년이다.

>8년차

흔히 드는 재물보가 1798년이다.

>4년차

4년 뒤에 송도속지가 발간됐다.

1802년 김문순(金文淳)이 편찬 『송도속지』는 규장각에 있다.

>무예도보통지 발간 후 12년뒤 송도속지 발간(개성에 무과시험 합격자 258명)

>민완식 출생- 송도속지 발간 109년 뒤, 구식군대 해산 4년 뒤


민완식의 출생 배경과 그의 무력을 감안할때 구식군대에서 했던 수박에 접근하는것이 어렵지 않았다 사료된다.

민완식은 일본 강도관 유도 7단이었다 한다(전,문교부 장관 민관식 총재 증언)

1939년 전 조선 도시대항 씨름대회에 선수로도 출전 했었다.


일제강점기 출생해서 수박을 증언하고 실제 동작을 보여줬던 인물들이 공교롭게도

서울과 개성에 집중되어 있다.


시기, 지역적으로


1900 권태훈- 서울 재동 출생

1911 민완식- 개성 출생

1919 오진환- 개성 출생

1932 송창렬- 함경도 북청, 오사카, 개성 거주

*위는 출생, 사망 시기가 확인되는 이에 한했다.

천일룡- 개성, 1950 졸

함경도 단천 김홍필-생몰년도 미상, 김달순 1886 출생


전,문화재위원 예용해씨가 해방후 목격한 곳이 동대문 근처라고 했다.

동대문에는 구식군대 해산 전까지 훈련원이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 연령대가 노인, 몇분 이었다 했다.


해방후 대동청년단 개성지부장으로 할동하다 남로당 간첩에 피살 됐고

조사는 백범 김구 선생께서 직접 하셨다.




해방후 개성 선죽교에서 김구 선생과 민완식(맨 우측 민완식)


일본 강도관 유도 고단자이자 수박(치기), 씨름 등 조선 전래 체기를 했다.


2017년 작고 한 송창렬과 1931년생 김학천 등과 교차 검증됐다.


증언 및 실연자로는 오진환 1919, 권태훈 1900 등 여럿이 있었다.


민완식은 태권도 1세대 노병직 사범에게 자신의 유도장을 빌려주어 왜정때 개성에서 당수도를 지도하게 배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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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군대에서 했던 수박(항간에는 수박치기, 수벽치기라고도 했다)은 전통적으로 했던 것과 중국에서 유입 된 무예도보통지 상의 두가지가 확인된다.


조선 초기이후 경제육전에 갑사를 뽑는 시취과목으로 수박이 들어 가면서 지역적으로 서울에서 이 수박은 특정되고 고유화 될 수 밖에 없었다.


*내용은 사회과학연구네트워크에 전문이 등재 됐다.

교보문고에서 단행본이 출판되어 수록됐다.

게시글에 사진을 싣지 않는건 번거럽기 때문이다.

원본은 동영상이다.


重山 閔完植(중산 민완식)

 

1911년생으로 중키에 다부진 체격의 장사이고 성격은 호방하고 너그러웠다.

개성에서 우익 단체인으로 활약하다 좌익테러를 만나 낙명(落命)한 호걸.

 

중산은 개성에서 주간신문인 일제하의 고려시보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高麗時報를 續刊으로 발행했다.

민완식 선생 사망후 동생 민관식(전,문교부 장관, 대한체육회장 역임)이 맡아서 발행하였다.


중산은 성격이 호방하고 리더십도 있어 그의 주변엔 늘 사람이 모였다 한다.

이들 가운데 생활 태도가 불량스러우면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니다 내게 걸리면 혼내겠다"고 경고하기도.

친구 중에 도깨비 집(개성 소재 빈 양옥집으로 당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다함)에

양초 켜 놓고 같이 하루밤 지내기도 한 활명당약국 김영종이 중산에게 걸려들었다.


중산은 "내가 그토록 만류하는데 그따위 행동을 하느냐"며 그 친구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구술, 개성출신 필명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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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얘기로는 태권도 1세대 송무관 노병직 사범으로부터 자기 친척이 당수도를 배웠는데

산에 가서 아름드리 나무에 대고 손바닥으로 치는것과 양손으로 밀치기 하는걸 하루에 수백회씩 하라고 노병직 사범이 시켰다고 한다.

가라테처럼 정권이나 수도 단련하는것과 다른것으로 혹여 노병직 사범이 민완식과 기능적 교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되지만

이분들 모두 지금은 세상에 없기에 확인이 가능하지 않다.


개성 출신 인사가 민완식의 도장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


남부유도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낙까줄 남쪽과 도두다리 옆을 흘러내린 개울과 만난 곳에서

150m 동쪽으로 가면 넓어진 낙까줄 남측 제방 옆 넓은 밭 구석에 단층 유도장이 당수도 도장으로 같이 사용하였다.

연습장 뒷마당에는 주먹 치는 연습용 기둥이 몇게 새워저 있다.

나는 일제시절 당수도 생기기 전에 초등학교 시절 이 유도장에 구경 가면 민완식(민관식 전 의원의 형님)관장이

우리들을 한곳에 구경할 자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오진환, 범기철교수 대담 합본, 일제시대 수박 증언

증언 및 동작 확인 등은 1919년 개성 출생 오진환 할아버지로부터 20여년 전에 되었다.


초기 연구자는 전,대한검도회 부회장 김재일 검도8단과 미 아틀란타신학대학 범기철 교수였다.


전통무예 수박 명칭, 역사, 기술형태, 동작, 시합 등 증언,

오진환 1919~2002 일제강점기 철도 공무원, 개성 상업중학교 졸업

오진환 증언, 송준호 외 대담 합본

생전의 오진환 할아버지 댁을 찾아서 대담했던 영상자료다.


2017년 중국 산시성에서 중국 무형문화재로 등재 된 것은 문화재청 말마따나 우리와 내용까지 같은 것은 아니지만

2008년 중국 백산시에서 지정한 것은 함경남도에서 전래되어 온 우리 무예이자 춤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 전래 수박은 무예제보번역속집이나 무예도보통지 등

중국에서 유입 된 것 외에 우리가 전통적으로 했던 것이 일제강점기 다수의 행위자, 증언자 및

문헌들로 확인되고 교차 검증이 됐다.


수박은 무예로써 또 민속춤으로도 발전 됐고, 조선상식풍속을 쓴 최남선의 언급처럼 주석(술자리) 여흥, 아이들 유희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무예, 무용, 유희는 이 종목의 갈래에 속한다.


특히, 이 수박이 지금까지도 인적 전승 될 수 있었던 것은 흔히, 수박치기라고 하는 특정한 형태, 구도성을 가지는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습할때, 또 겨룰때의 규칙도 전해지고 있다.


씨름이 샅바를 잡는다, 등 형태를 가지고 규칙이 있었던 연유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지 못했던 평안도 날파람, 서울의 격도, 함경도 뭉구리 등은 이름만 남긴체 인멸 됐다.


1911년생 민완식(일제강점기 무도인)

전통무예 수박 명칭과 형태, 시합 기타 증언, 동작 해제

 

Name and form of the traditional martial art of Min Wan-sik (a martial artis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orn in 1911, competition and other testimonies, movement release

 

 

저자 송준호

Author Song Jun-ho

 

들어가며

 

생전의 오진환 할아버지 댁을 찾아서 대담했던 영상자료다.

이 분은 개성 남산동에서 사셨다.

 

민완식 선생에 대해서 민비 조카라며 당시 귀족이라고 했으며 김두한도 완식이 제자야! 라는 동내 어른들 얘기를 듣고 지금도 그렇듯이 강단 있고 힘 쓰는 누구누구 그러며 무용담을 얘기하듯이 어릴때부터 민완식 선생을 흠모 하셨다.

 

성장해서 개성 철도역에 근무 했다.

*개성상업중학교(5년제)를 졸업하고 대개 사무직(계산직, 장부 정리 하는) 아니면 철도 관련 종사했다고 한다.

오진환 할아버지 기억이 어릴때 잠깐이 아니고 계속 이어졌다.

 

소싯적 그리고 성장해서 개성 철도역에 근무할때 민완식 선생이 개성 철도공원에 사람들을 데려와서 운동 하는것 등도 증언 했고 민완식 선생이 간첩(남로당)에게 권총으로 피살 된 사건- 이 사건 판결 관련 자료가 인터넷에서도 검색된다, 도 증언 하셨다.

1,4 후퇴때 이남으로 오시고 북측 개성으로 돌아 가지 못하셨다 했다.

 

이때 오진환 할아버지 나이가 30대 초였다.

그렇기에 기억이 분명한거다.

,대한검도회 부회장 김재일 선생과 대담할때, 박연폭포가 개성에서 몇킬로 떨어진 어디어디라고도 얘기했듯이 영상 촬영때 80노인 기억으로 젊은이 못지 않았었다.

민완식 선생이 유도 고단자 였기에 "혹시, 유도 하고 헷갈리신거 아니냐?"고도 대담하면서 확인 했는데 "아니, 내가 유도, 얘기 안하는데 왜 자꾸 유도, 유도 그러느냐? 나는 유도도 알고 태권도도 알고 다 안다. 유도가 아니다!"고 역정을 내기도 하셨다.

 

 

연구에 사용 된 영상촬영 시기 및 장소, 참석자

2002,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대담: 오진환(1919~2002), 송준호 외 2(4명 참석)


오진환 증언 영상 녹취

Oh Jin-hwan 1919-2002 Railway civil serva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graduated from Kaesong Commercial High School


[오진환으로부터 채집 된 동작]

 

건들대기

우쭐대기

어르기(재기)

몸짓,,

한번 해 볼래?,,

손바닥으로 좌,우 치기

주먹치기, ,

떼밀기(밀치기)

막기

손바닥치기

-마주한 상대 손 쳐 내리기

-이어서 손치기(상대 어깨 등)

넘기기(넘어트리기)

-상대 허리춤 붙잡고

-상대 팔이나 목을 잡거나 걸고

발차기

-앞으로 걷어차기

-정갱이 차기


오진환은 건들대기 등을 몸짓이라 했다.

 

상대방을 향해서 한번 해 볼래?.”라고 약을 올리듯 했다.

*권태훈은 노상에서 수박하는 사람이 소리를 지르는걸 멋으로 그런다 했다.

송창렬은 특별한 기합이라기보다 으이!, 흐이!, ! 등 소리를 치기도 했다.

수박춤에서는 입장단으로 어깨~ 치고!, 옆구리~ 치고! 등 소리를 넣기도 한다.

손바닥치기는 상대 손, 어깨에 바로 또는 엇갈려서 했고 좌,우로 휘두르듯 동작을 했다.

주먹치기는 좌,우로 휘두르듯 했다.

떼밀때는 양손으로 동시에 했다.

막기는 팔을 위로 들면서, 상대 손이나 팔을 (, 아래쪽)쳐 내는 동작이다.

넘기기에서 상대 허리를 잡을 때 두손으로 했다.

앞으로 걷어차기는 차 올리는 동작이다.

오진환은 녹취에서도 얘기햇듯 손만으로 하지는 않는다, 발차기도 하고 머리로 들이 받기도 한다했다.

이러한 사고는 일본식 무도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왜정때까지 전해졌던 전통체기들은 획일화 된 교육체계 하에 습득되던 것이 아니었기에 행위자의 자율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응용한다, 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겠다.

 

순번

몸짓

손기술

발기술

그 외

 

1

 

건들대기

손바닥으로 좌,우 치기

 

앞으로 걷어차기

(차 올리는 동작)

한번 해 볼래?,,

 

2

 

우쭐대기

 

주먹치기, ,

(휘두르듯)

정갱이 차기

떼밀기(밀치기)

-양손으로 동시에

3

 

어르기(재기)

손바닥치기

-마주한 상대 손 쳐 내리기

-이어서 손치기(상대 어깨 등)

 

 

넘기기(넘어트리기)

-상대 허리춤 붙잡고

(허리를 잡을 때 두손으로)

-상대 팔이나 목을 잡거나 걸고

-다리 걸어서

 

4

 

 

손치기

(상대 손, 어깨에 바로 또는 엇갈려서)

 

박치기

-머리로 들이 받기

 

5

 

 

,우로 휘두르듯

 

 

6

 

 

막기

-팔을 위로 들면서

-상대 손이나 팔을 (, 아래쪽)쳐 내는 동작

 

 


 

민완식의 수박치기 명칭과 형태, 동작, 시합 기타


두사람이 마주하고 선다.

좌측이 양손을 앞으로 적당히 내놓은 모습인데 서로 어깨치기를 할 때 칠 수 있게 대주는 것

우측은 좌측의 손등 또는 팔의 앞부분을 위주로 위에서 아랫방향으로 쳐서 내리고 빈틈을 만든 다음 상대 어깨나 옆구리를 치게된다.

서로 양팔을 교차해서 위에서 아래로 번갈아 반복

좌측이 우측 상대를 떼밀고 있다.

틈이 있을때는 사진처럼 곧바로 밀치기를 하며 들어갈 수 있지만 대개 상대 팔을 쳐서 내리고 이어지는 동작이다.

상대방은 버티기를 하는데 내 뻗은 좌측의 양쪽 팔을 밖에서 안쪽 그리고 끌어채듯 힘을 쓰는게 기본이 된다.

좌측이 한걸음 상대쪽으로 들어가서 업어치기를 하는 모습이다.

업어 칠때는 상대방의 팔이나 목 등을 붙들어 잡고 한다.

대담하면서 오진환에 저자가 확인을 했는데 민완식 선생이 일제강점기 일본 강도관 유도 고단자라써 위와 같은 동작들이 혹시 유도가 아니냐? 는 질문을 했었다.

오진환은 아니, 내가 유도 얘기 안하는데 왜 자꾸 유도, 유도 그러느냐?.” 하면서 역정을 내기도 하셨다.

민완식은 유도 외에도 전,조선씨름대회에 선수로 출전하기도 하는 등 우리 전통체기에 조예가 있었다.

1907년 구식군대가 해산하고 4년뒤인 1911년 출생한 민완식에게 구식군대에서 하던 수박치기에 대한 자료 접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오진환은 친구들간에도 장난처럼 했다고 증언했다.

민완식은 왜정때 개성에서 무도가로 이름을 떨친 구한말 양반 계층이었다.

우측 상대가 오른손으로 상대 손바닥을 치고 있다(다음 사진)

영상에는 바로치기, 엇치기 두가지를 했었다.

좌측이 막고 있다(다음 사진2)

막기는 가로막기다.

우측이 오른팔로 상대 목을 걸어당기며 넘기기를 하고 있다(다음 사진)

오진환은 이 외에도 상대방의 허리를 붙들어 잡고 씨름처럼 넘어트리는 것을 보여줬었다.

좌측이 우측 상대의 손을 쳐서 내리는 모습(다음 사진2)

좌측이 양손으로 치고 있다(아래)

서로 손치기

떼밀기

좌측이 상대방에게 치라고 양손을 대주는 것(다음 사진)

바꿔서도 할 수 있다.

좌측이 밀치기, 서로 얽힌 상태다.

우측이 왼손으로 상대 팔을 치면서 오른손으로 반대편 어깨를 치고 있다(다음 사진)

상대 어깨를 치기 위해서 재고 있다.

좌측이 양손으로 치고 있다.

같은 상황에서 상대 팔을 아래로 떨궈 틈을 만들어 내거나 밀치기로 들어가기도 한다.

좌측이 상대를 밀어냈다.

영상에서는 좌측이 왼다리로 걷어 찼는데 사진 캡쳐가 안되었다.

우측이 오른발로 상대를 찰 듯 시늉하는 모습이다(다음 사진)

수박치기는 가까운 거리에서 하는 관계로 발차기를 높게 하지는 않는다.

상대 얼굴을 차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떼밀기에 당할수가 있다.

서로 손바닥을 치고 있다- 바로 치거나 엇치기

약속을 하고 할때와 그렇지 않을 때 즉, 약속 없이 겨룰때도 있다.

좌측이 한걸음 들어가면서 상대를 치고 있다.

왼손으로 상대 반대쪽 어깨를 치는 것- 엇치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건 오진환에게 이렇게 하는것이 맞느냐는 확인을 했기 때문이다.

양손으로 상대 손바닥을 동시에 치는 모습

어깨를 타격하거나 떼밀기를 할수도 있다.

사진에서는 두사람이 제자리에서 하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서 한걸음 내딛고 하기도 한다.

좌측이 왼발로 상대를 걷어 차는건데 사진 캡쳐가 안되었다.

영상에는 상대 정갱이 부위를 차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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