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백기완선생의 몸짓과 전통무예 수박의 형태적 동질성에 대해서

2022-06-24 / 조회수 : 2,587 신고

전통무예 수박을 유일하게 계승하고 있는 사단법인 대한수박협회 송준호회장의 기고다.


필자가 백기완선생님 생전에 찾아뵙지 못한것이 후회가 된다.

무예나 민속 관련해서 함경도 검무를 추셨던 분(중국 길림성 거주, 작고)을 알고도 자료채집을 하지 않은것도 지금은 후회가 된다.

필자의 부친인 고,송창렬옹을 2013년경 한겨레신문에서 인터뷰하고 기사화 했고 선임기자분이 발간된 책자를 필자 사무실로 우편으로 보내주신적도 있지만 그때는 부친 해당 부분을 읽고 그 외에는 들춰보지를 못 했었다.

이후 필자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대회장을 맡아주십사하고 백기완 선생님 연락처를 알아보고 전화를 했는데 백선생님과 통화가 되지 않았고 비서업무를 하는 분으로부터 대회장을 맡기가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은바 있다.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서 백기완선생님이 송창렬옹과 같은 때 한겨레신문에 대담하고 기사화 및 영상촬영이 된것을 확인했었다.

수박은 기본이 절구질이고 무릎을 굽혔다 펴며 상체를 위에서 아래로(또는 그 반대로 이해할 수도 있다) 힘을 쓰는 연습을 기본으로 한다.

그 힘을 외부 대상/물체에 전달하기 위해서 흔히 산에 가서 나무 등을 손이나 몸통, 발로도 치고 차는데 격(타격)을 하기전에 밀듯이 해서 한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수박의 절구질과 절구질로 축적한 복부압을 상대방에 전달하는 밀어치기를 백기완선생님이 그대로 하셨다는거다.

또, 발차기를 백선생님이 시범 보이셨는데 수박에서는 태권도처럼 발차기를 하지 않고 뻗정다리로 걷어차듯이 한다.

근대적 무술개념으로 예전에 하던 발질을 그대로 이해하는것은 본래 뜻을 왜곡할 수가 있다.

뻗정다리로 걷어차듯 해야만 그 발질에도 기운을 실어서 찰수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렇게 반문할수도 있겠다.

백선생님이 소싯적에 축구를 하셨지 않냐? 그러니 백선생님이 시범 보인 발차기는 무예로써가 아니라 공을 차는 연습을 하신것으로 말이다.

*백선생님을 인터뷰하고 촬영한 선임기자분으로부터 문자로 “백선생님이 수박이나 택견 등 우리 무예를 배웠다고 이야기는 안 하셨어요. 그냥 본인이 터득하신 몸짓이라고만 하셨어요”라고 회신을 받았다.

1세대 분들이 모두 작고하셨고 필자가 2세대로써(그 이전 계보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내외 수박의 대표자로써 백기완선생님의 한겨레신문 촬영 영상본은 노인분들이 산에 가서 건강 목적으로 운동하고 공을 차듯, 축구 연습한것만은 아니라는게다.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우나 필자가 수십년을 수박 관련 인물들과 현장을 찾아 다니고 주변문화까지 발굴해 가는 과정에 무형의 문화에는 우리 정신이 깃들고 그 에너지는 어떠한 상황하에 밖으로 드러난다는거다.

필자는 수박을 증명하기 위해서 추측은 하지 않는다. 문헌과 인물, 현장을 내어 놓고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이것과 저것 등 비교하고 교차 검증을 해서 언론 등을 통해 발표한다.

해방 이후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이제 어른분들이 고령 등으로 세상을 떠났고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의 자료라도 찾는것은 지금 싯점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삼천포로 잠깐 빠졌는데 고, 백기완선생님의 한겨레 촬영 영상은 수박에 다름 아니다(백선생님이 수박을 익히고, 배우셨다 단언하는것이 아니라 형태적으로 같다는 얘기다. 그냥 단순한 거라면 노인분들이 산에 등산 가서 모두 이와같은 걸 해야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나무에 등을 대고 부딛는것은 일반적이라해도 절구질 유사, 나무에 손바닥 밀치기, 뻗정다리로 걷어차기 등은 우리 전통무예의 형태, 목적성, 방향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는거다)

모 종목,단체 등에서 백범 김구선생님이 발로 일본인을 찼다고 하니 “김구선생님이 택견 했다!”고 포장을 한 예가 있다(김구선생님이 택견이라는 고유 종목을 하셨다 단언하는것은 부적절하다)

태권도 초기 역사관련 이승만이 최홍희의 공수도 시범을 보고 “택견이구만!”이라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김구선생님과 민완식(개성에서 오진환(1919~2002) 등에게 수박을 지도했다 한다) 등이 선죽교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

김구선생이 수박 등 무예를 아시지 않았을까 하는것은 그분이 활동하셨던 시대배경과 또, 일제에 무력으로 맞서고자 했던 이력 등으로 추측할 뿐이다.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분명히 수박, 함경도 뭉구리, 격도, 날파람, 택견 등이 존재했고 기능자들이 밝혀진 예도 적지 않다.

고당 조만식선생님은 평안도 날파람을 실제 하셨던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날파람을 북한에서는 수박과 유사하다고 했다.

즉, 일반에 잘못 알려진것 처럼 수박의 형태가 모호한게 아니라 조만식선생을 비롯해서 현기한, 이오 등 이름이 당시 기사로 확인되는 날파람과 유사했다는것은 북한 민속학 책자에 수록된 내용이다.

백기완선생님은 황해도 출신으로 황해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구려때 안악3호분이 있다.

거기에 수박을 하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고 백범과 백기완 두분의 관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와 같다.

백기완선생이 생전에 보여주신 몸짓은 단순한 건강체조라기보다 김구선생 또는 그 시대에 행해졌던 민간의 무예를 보시거나 접하셨지 않을까 하는 연구자로써 의문을 남기고자 한다.

관련 기사에는 “나름대로 터득한 건강 다지기 몸놀림을 하고 있다. 큰 나무에 등을 쳤고, 뒷짐을 진 채 앉았다가 일어서고, 두 다리를 하늘 높이 번갈아 올렸다”라고 되어 있다.

손바닥을 나무에 대고 팔굽혀펴기 하듯(수박에서는 힘전달을 익히는 수련으로 한다) 하는것은 동영상에 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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