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박시,에 대한 연구

2021-06-20 / 조회수 : 666 신고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 1941


경상북도 군위군에 오래된 민간체기로 박시,란 것이 있었다.

구전으로는 300여년 정도 전해온다 하는데, 이에 대한 관련자료를 찾아보기 어렵다.


재물보에 시박,이라 해서 졸교지류,다, 즉 씨름의 일종이다 적시된 것이 박시의 문헌사료로써 확인할 수 있는 전부다.


결국, 구전과 증언, 현장조사를 통한 채집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주:필자는 군위군의 박시가 재물보상 시박이라 이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박시의 형태적 특징이 현재 전해지는 수박과 대동소이하고 재물보를 확대편찬한 광재물보에

시박,과 함께 수박 또한 우리말로 슈벽이라 해야한다. 라고 고유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시박이 고유명사임은 재물보로 확인이 되며 수박도 연계선상에서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한 것임을 알수가 있다.

고유명사라는건 "지금과 꼭, 같지는 않지만,, 이라 해서 시박,수박의 모습에 대해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을 보면 박새라고 나온다.


이 박새가 곧, 군위군의 박시로써 시박과 한자적 어순이 바뀐 것으로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책에 수록된 사습(射習)/ 좌측 그림은 활을 쏘는거다. 

경재필이 도록을 그린 화가다.


이 그림 원본들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무라야마 지준(일본어村山 智順1891년 5월 9일 ~ 1968년)은 일본의 민속학자이다. 조선총독부의 촉탁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일제 강점기 한국의 민속과 관련된 많은 조사 자료를 남겼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민간 신앙에 대한 많은 양의 자료를 남겼으나, 조선총독부의 촉탁에 의한 것이었고, 조사에 경찰을 동원했으며,[2]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과 서술이 있었고,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일조했다는 지적이 있다.[

<출처,위키백과>



박시싸움

음력 정월 보름날 전후로 3일간 밤에 동서 양편이 겨루는 남성집단놀이이다. ‘박시놀이’ 또는 ‘박시’ 등으로도 불린다. 기원이나 발생연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매년 연중행사로 거행되어 왔다. 이 놀이의 대장 격인 완력이 세고 기량이 능한 자를 ‘박수’라고 부르는데, 그 음이 변하여 놀이명칭인 ‘박시’로 고정된 듯하다.
군위읍의 남북으로 트인 길을 경계로 하여 생긴 자연촌락인 동부와 서부의 청장년이 양편으로 패를 나누어 싸우는데, 한 편의 놀이꾼이 100명 가량 된다. 힘쓰기에 자신이 있는 건장한 남자면 누구든 참가한다. 먼저 정월 초순에 동리의 아이들이 때때로 ‘애기 박시’를 싸우게 되고, 차츰 발전하여 ‘어른 박시’로 변한다.
놀이방법은 먼저 농악대가 마을을 두루 돌며 청장년을 소집하면, 곧 뭉쳐 싸울 태세를 갖춘다. 서부군이 골목의 진지를 틈 없이 빽빽이 메워 적의 침투를 막는다. 동부군이 몰려와서 팔짱을 끼고 어깨로 적을 밀어붙이면서, 미는 쪽과 밀리는 쪽의 격렬한 밀기 싸움이 벌어진다. 이때 양 패의 농악대는 요란하게 응원을 하고, 서부군은 혹 진지가 무너질 것을 염려하여 20∼30보 뒤에 제2진을 배치하여둔다.
앞장선 머리꾼이 적진의 중앙을 뚫고 헤쳐나가면 전원이 힘껏 밀어 중앙을 관통해나간다. 이 때 농악대도 뒤쫓아 관통해나가야 승리하게 된다. 이 싸움을 ‘골목 박시’라고 한다. 패한 쪽은 곧 다시 뭉쳐 이번에는 동부군 쪽으로 쳐들어간다. 동부군은 곧 회군하여 진지를 구성하고 적을 맞이한다. 이렇게 두 마을에서 한 번씩 싸우고, 이 싸움이 끝나면 대개의 경우 흥이 돋우어지고 격하게 되어 신작로에서 패싸움이 벌어지는데, 이것을 ‘난장 박시’라 한다.


「박시놀이」(성병희,『우리 고장의 민속』,경상북도,1978)


필자가 2017년 중국 연변대학교 체육학과와 공동주관하는 학술연토회에 참석해서, 함경도에서 전해진 속쇄를 발굴하기도 했다.

그때, 박시에 대한 주제발표를 했는데, 군위군 현장답사와 관계자 대담 녹취 등을 기초자료로 곧, 무예포럼에서 주제발표가 될 예정이다.


<녹음과 현장답사때 필기-송준호, 김완수박사, 연변대학교 주제발표 자료 등은 추후 정리해서 공개 할 생각이다.>


대담자/ 송준호, 안동대학교 성병희교수(전 경북문화재위원)


<송준호>

군위군 박시관련 자문 여쭌적이 있는데,,

조선후기 광재물보 문헌에 수박,시박이 지금과 꼭 같지는 않지만,, 수벽이라 해야한다

경북대학교 국어학자는 수박의 음가가 수벽이 아니고,,

박시를 시박으로 보고 있는데 수벽,, 서로 다른 별칭이란 거죠

그리고 시박, 박시하고 수박이 역사적으로 오래 되었고 내려오며 수벽으로 통합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박시하고의 관계성 이런 부분이 필요합니다.

전에 교수님 말씀도, 교수님이 군위군 박시를 발굴했지 않습니까?

<성병희>

예,발굴 했지요

<송준호>

그 당시에 하시면서 일제강점기때 하시던 분들 증언이라던지,, 남겨져야되지 않겠습니까

경기도 개성지역에서 전해진건 개인적인건데,, 군위군 박시는 집체적이지 않습니까?

<성병희>

예,,

수박하고는,, 다릅니다.

<송준호>

그러면 어떻게 이해를 하면 될까요

<성병희>

군위의 독특한 겁니다. 그게 자랑스런거죠

<송준호>

군위에서 하는 박시를 광재물보상 시박이라 볼 수 있습니까?

<성병희>

그거라고 생각이 안됩니다.

군위의 박시는 독특해서 다른데서 전파된게 아니고,, 군위 주민들,

그때 살던 사람들 독특한 문홥니다. 경기죠,,

<송준호>

팔짱을 끼고 게걸음하고 몸으로 밀어붙이는게 같습니다.

<성병희>

수박은 손으로 치는 것, 아닙니까

<송준호>

손으로 치는데 움직이려면 걸음걸이가 있어야지 않습니까?

수박이 요즘 권투처럼 하는건 아닙니다.

<성병희>

아니죠,,예

<송준호>

상체로 밀어 붙이는겁니다.

<성병희>

그렇죠

<송준호>

몽골버흐나 일본스모하고 같죠

학술적이라기보다 기술로 이해하는 편입니다.

수박에도 용쓰기란게 있습니다.

상대와 어깨를 마주하고 밀어 대는건데,, 어깨로 할수도 있고 그런 부분들이 군위 박시와 같다고 보고 있어요

문헌적으로도,,,

<성병희>

예,,,

그런데 지금 살아계시는 분들이 한분도 없죠, 노인분들이,,, 제가 조사할때는 어른들이 서너분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 증언하실 분들도 지금은 없어요

그때, 조사를 할 때 오르막하고 내리막하고 안내를 받으며 조사를 했습니다.

<송준호>

전에 교수님 말씀하시던 박시가 무예성이 강하다는건,,,

<성병희>

예,무예성이 강합니다. 무예성이 강합니다.

<송준호>

수박에서는 팔짱을 끼고 상체를 굽혔다 폈다하는,,절구질이라 하는데 기본으로 하거던요

그걸 하고 이제,, 걸음걸이는 게걸음이 유일합니다. 태권도처럼 그런게 없습니다.. 용쓰기라고 박시하고 이해를 해도 됩니까?

<성병희>

같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군위군은 박시가 특별하고,, 의성은 가마싸움이 특별하고 안동은 차전놀이가 특별합니다.

경상도 북부지방에 세군데,, 양반고을에 특별하게 있던, 특징이 있던거죠

<송준호>

그럼, 저희가 박시를 무예로 이해해도 될지요

<성병희>

예, 무예로 이해해도 되죠!

<송준호>

그러면 박시를 무예로 이해할 때 기원은 어떻게 될까요

<성병희>

박시할 때,, 박시라카는건 주먹 권력이 쎈,, 요즘 같으면 힘 깨나 쓰는 싸움꾼을 박시라하죠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는데

<송준호>

그러면, 재물보상 시박과,, 재물보에는 졸교지류라해서 씨름의 일종이라하는데

<성병희>

그거하고도 다릅니다. 그때 나도 이걸 문화재로 지정받아야 되지 않나 생각했고 경북에서 문화재위원을 오래했는데 기회가 없고,, 그때 하던 노인들이 건강이 나빠 다들 누워 살던 시깁니다. 그때 조사를 했어요

문화재지정을 하려면 사람이 다 죽고 없으면 지정이 안됩니다. 살아 있어야되는데 그때 그래서 안됬는데 참, 아깝죠!

수박은 손으로 치는건데 수박하고도 관계없고 이건 어깨로 미는겁니다.

대구쪽에서는 미지기라 하는데 군위군은 수박처럼 싸움도 조금할 수 있는 몸놀림이 있습니다.

자연히 미지기를 하다보면 속이 상해 싸움이 일어나는거죠

그래서, 큰싸움은 못하거던요, 양반고을이라,, 감정 상하는데까지는 갑니다. 이쪽 동내사람들이 기분이 상해 저쪽에 가지도 않고,,, 어른들이 모두 70이 넘고 그랬는데 나한테 말할때는 그놈!들하고 이래 표현하더라고요 싸움을 했으니까 평생 감정이 되버린거죠,,

<송준호>

재물보의 수박,, 광재물보의 시박이,, 수벽이라 되어 있는데

시박과 박시를 다르게 보시네요

<성병희>

비슷한게 있어 그래 글을 쓴 것 같은데,,

<송준호>

지금 재물보상의 시박, 군위군의 박시,, 연계가 없다는건 근거가 없죠?

<성병희>

그것도 그때 조사한 내용입니다.

<송준호>

반대 근거가 있습니까?

<성병희>

근거는,, 증언하던 사람들이 다 돌아가셔 뭘가지고 증언 하겠습니까?

<송준호>

다르다고 할때도 비교검증이 되야지 않겠습니까?

<성병희>

문헌이 전혀 없죠

<송준호>

교수님 의견은 그렇지만 조선후기 재물보상 시박과 군위군 박시를 한자어순이 바뀐것에 다르지 않다, 실체적으로 파악할때 유사한 부분이 있다,, 얘기할 수 있지 않은가요

<성병희>

예, 그렇게 할 수는 있죠

조사할 때 민속에 흥미 있는 노인이 있어,, 같이 앉아할 때 그런 얘기합디다

딴데하고 다릅니다.

우리놀이,, 놀이라고도 안하고 다른 싸움입니다.

딴데서 건너온거 아닙니다라고

<송준호>

교수님,, 그런건 저도 여기저기 압록강 건너 가보고 그러면 전부 자기들이 하던건 유일하다 전부 정통이다 그러고 그런건 있습니다.

<성병희>

그럴수도 있겠죠

<송준호>

박시를 할 때 손바닥을 마주치거나 어깨를 치거나,,,하는것도 잇는지요

수박치기라고 하질 않습니까, 농악에서,,,

단순히 어깨로 미는 한가지 형태다 그죠,,

<성병희>

밀면 한사람이 낑겨 가지고 튀어 오르고 그래 한답디다

<송준호>

위에 올라서 뛰어 넘기도 하고,, 어쨌든 진을 뚫어야하니까

<성병희>

그거 쓸때도 양반고을에도 험한 놀이가 있다,, 마을에 무슨 갈등이 있는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죠

<송준호>

문화란게 군위에서 발생을 해서 향토적으로, 지역성을 가지고 전해졌다,, 이래 볼 수 있습니까?

문화란게 전파성이 있는건데,,

<성병희>

선생님도 얘기햇듯 문화란건 전파하는건데 조금씩 변경이 됩니다.

군위에서 하는거는 어른들 놀이고 의성 가마싸움은 아이들 놀이고 그렇죠

(하략)

 

대담자/ 송준호, 김완수(군위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소장)

현장답사 2016년 인터뷰 2019


<김완수>

그저 내, 보기에 같은거로 보이는데?,,

<송준호>

어떤게 같다는,,

<김완수>

박시놀이의 그저,,박시,,게임하는 남자들 행위가

시박하고 같은거 같에요,,닮았다기보다 더 같은 것 같은데

<송준호>

예,저도,졸교지류라고 할 때 씨름이 샅바 잡고 넘어뜨리는것에 국한되지 않던 시절이니까,,

200여년 전이니까

<김완수>

예전에,,우리 샅바 없던 것 아닙니까?

<송준호>

샅바잡고도하고 없이도 안 했습니까? 민씨름이라해서

<김완수>

민씨름이 더 가까운 것 아닙니까?

<송준호>

허리춤 잡고도 하고 시골에 가면 앉아서도 했다하고

<김완수>

몽골씨름은 어때요?

<송준호>

몽골씨름,, 제가 수년전에 연변에 가서 속쇄라는걸 용어를 알고했죠 근대,, 속쇄가 그 지역에서는,,한국에서는 함경도 씨름이다 지칭합니다.

<김완수>

예,함경도 씨름

<송준호>

망걸이 씨름이다 표현도 하는데,,한국처럼 허리, 다리에 샅바를 안하고

무릎에다가 1미터 띠를 끼우고 팔굽에 왼팔굽에다가 그걸 낍니다. 오른팔을 자유롭게 쓰죠

그쪽 지역에서는 함경도 씨름이다하면 못 알아 듣습니다.

한국에서 저쪽으로 보고 할 때 함경도 씨름이다하지 그쪽 지역에서는속쇄라 합니다.

몽골씨름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러니까 상체싸움이죠! 넘어뜨리긴 하는데 한국 샅바씨름은 두사람이 일어서서 끌어당겨야지 뭘 하지 않습니까

근대 저쪽은 상체싸움이라 서로 밀어 붙이는 형태에요

지금 시박이, 우리가 예전에 시장도 장시라 안했습니까,,영등포장시라고

그리고 예전엔 손뼉치는걸 수박친다 했거던요

재물보상 시박이 군위군에서 전승하던 박시라는건 의문의 여지가 없을것 같아요

<김완수>

박시를 박치기 준말이 박시라하기도 하거던요

제가 볼때는 밀치기 싸움이에요 밀치기 싸움인데 보행법이 다리 놀리는 모양이 그저,,

우리 어릴 때 전봇대 빨래줄에 새들이 앉으면 옆으로 걷는,,해행,,, 이라하죠

그런식으로 하는데

완전히 손발은 쓰지 않고 어깨, 얼굴,,밀치기 거던요

그런 식으로 방법에,,

<송준호>

수박에도 개성지역에 전승되던게 게걸음이 있습니다.

<김완수>

예, 게걸음,,그거 맞습니다.

군위군에서 하던것도 팔짱을 끼고 게걸음을 하거던요

<송준호>

조선총독부에서 나온, 조선의 민속을 보면, 일본인이 쓴,, 게걸음을 한다 얘기가 있어요

200여년전 재물보상에 한자 수박,, 점 찍고 요즘식으로 하면 한자 시박이 서로치는건데 수벽이라해야한다 이렇게,,광재물보에 나옵니다.

소장님과 전에 박시하던 현장도 가 보고 했을 때,, 그게 군위군에 갑자기 특이한 형태의 민속이 생길 일은 없다,,

<김완수>

그렇죠

<송준호>

다른 지역에서도 했겠지만 시기적으로 내려오며 인멸하고 군위군에 다행히도 일제강점기까지 남아 있었는데

지금,저기,, 국기원에서 나온 보고서에도 박시를 시박이라고도 합니다.

이번에 문화재청에서 수박을 조사 하겠다는데,, 어쨌든 문화유산 아닙니까

어떻게든 제데로 정립이 되어 남겨져야하지 않을까싶어서

<김완수>

제가 공학박사거던요, 공학인데 고향이라 군위에서 향토사 하고 있는데,,

<송준호>

향토사연구소 소장도 역임하시고 박시에 대해 실제적인 부분들을 알고 계시니,,

(중략)

<김완수>

한가지 알려드릴께요,,, 박시,,글자풀이를 이렇게 합니다.

경상도 사람들 쇠를 시라 합니다. 특히 군위지방에서,, 산에 광산에서 나는 쇠,철하고 물에서 나온 무쇠를 가리키는게 십니다.

박은 뭐냐하면 요새,, 미국 아마존에서 한국의 호미 인기 있죠? 호미를 박이,라 했어요

지금도 중국 서주시대나 호미를 박으로 씁니다. 그래서 박시놀이는 호미 쇠를 뺏는 그런 싸움으로도 보는데 게임은 완전히 신사도에 의해 손발은 쓰지 않고 어깨로 밀치고 방법은 새,,가 옆으로 해행하는 것, 게걸음 짓는 것, 그렇게 보고 있어요

안동대학의 성교수와 틀린점입니다.

<송준호>

함경도 속쇄라는게 함경도쪽에 경상도사람들이 이주해서 동북삼성에 많지 않습니까,그런 영향도

<김완수>

조선이 건국할 때 1300년 됩니까, 고려가 망하고요 이성계가 아들 이방원에 쫏겨 함흥 갔죠 함흥차사라는 말이 있죠

이성계가 함흥에 도망갈 때 이방원과 적대되는,, 군위군이라는 봉호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박헌이라고 고려말, 조선초에 박헌이라는 분이 군위군에 봉작 받고 현재 군위 사직단,,

그분이 나중에 함경도 가서 삽니다.

살면서 자손을 퍼트리는데 함경도 백씨는 다 그사람 자손으로 봐도 됩니다.

만약에 군위의 박시가 함경도쪽에 박시,,속쇕니까?

속쇄의 쇠자는 철,할 때 비슷하네?

<송준호>

한자는 그쪽에도 모르고

<김완수>

한자는 글자의,,원,한글이 중요합니다.

속쇄라하던게 박시라 변할 수 있어요

함경도 언제부턴지 그게 중요한데,,

<송준호>

함경도에서 구전되어 오래전에 하던건데

씨름이 그저, 문화재청에서 국가지정했지 않습니까, 그 보고서를 보면 속쇄가 나오는데 속쇄를 모르는 연구자가 함경도 씨름이라 하며 한국에서 하는 샅바 씨름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건 다르다는 거죠?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부분이 있어요

<김완수>

박헌이라는 분을 중심으로 군위와 함경도가 연계가 될수 있네요

개연성은 있습니다. 조선초기,,고려말인데,, 이성계,,끝까지 충신입니다.

나중에 군위,,함양박씨로 퍼집니다.

<송준호>

문화라는게 온전해야 안됩니까?

박시,시박에서도 양 진영이 하던 부분들은 그나마 남아 있는데,,어떤 형태로 했다 증언도 있고 최근까지 재현해서 하기도 햇고 개인적인 격투, 군사적 용도로,,예전 난장박시를 할 때 어떤 기술을 썼다, 이게 없잖아요

광재물보에 수박,시박을 동류로보는데 수박은 개인적 기예로 보고 시박은 예전에 군사적으로 보고

박시는 집체적인,, 군사무술로 봐야 되겠죠?

<김완수>

예,예

<송준호>

전체적인 문화가 정립될 수 있습니다.

수박,,박시,,시박이라해서 동류로 나온다,,

문헌적인 연계성으로 볼 때 현재 남아 있는것은 수박이라해서 개인적인,, 기술들이 남아 있고 난장박시에서 햇겟죠 확증은 할 수 없지만

박시는 군사적 용도로 하던 집체적 훈련이라 보거던요

<김완수>

소에 애가 붙엇네요?

<송준호>

그게,, 쇠인지,, 쇠 아이,인지 어가 붙는지 저도 모릅니다.

저쪽사람들이 발음을 구전되어 내려오니까

<김완수>

속쇄,속자가 함경도에서 호미와 같다면 왔다에요,,

<송준호>

방언으로써

<김완수>

그렇죠

싸움의 방법에서 조금씩 변화가 있지 않겠어요,, 아까 팔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나중에 난장박시는 예외로하더라도 싸움이니까,,

<송준호>

수박은 문화재청에서 조사한다는데,, 수박은 개인적인 겁니다,, 수박춤이라고 있는데,, 군위에서 하던 집체적인,,문화가 온전해지는데 바램이죠

<김완수>

박시놀이가 군위밖에 없다, 그래서 전통적인 스포츠로써,, 특이한것 얘기하는데

<송준호>

군위에서 하는걸 살리면,, 군위군에서 재현한 것 잘 알지 않습니까, 학생들 동원해서,, 그렇게 돼서는 문화가 전승되기,,어렵고

수박,시박을 현존하는걸 놓고 봤을 때, 전승경로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군위에서는 수백년전부터 전해지고 함경도에서는 속쇄, 그 속쇄가 형태적으로는 군위 밀치긴데 넘어뜨리기합니다.

힘을 쓰는건 상대와 어깨를 대니 미는데 계속 미는게 아니고 넘어뜨리기,,도 하고

수박과도 기술적으로 비슷하고 군위에서하던것과 기본이 같다는겁니다, 상체를 위주로 밀치기가 되는 상태에서 넘어뜨리니까

요즘 샅바씨름은 그게 아니잖습니까?

<김완수>

예,예

<송준호>

가치 잇는 문화유산이,,

<김완수>

그런데 상체를 움직여서 넘어뜨리면 상체운동이라 할 수 잇겠죠

기마민족이 상체를 말 위에서 햇다하면 그런 민족에 유사한 놀이가 많이 잇는데요

몽골에서 하는 버흐 잇지요

몽골도 말 타는 사람들이라 상체운동해야하거던요

<송준호>

거기에 수박에서 하는 어깨치기를 똑 같이 합니다.

<김완수>

속새 그랬는데 중국에서 삭,삭자 안합디까?

창을 예전에 삭,이라 햇거던요 이것도 무기도 창인데

그 창을 그 삭이 함경도에서 아가 오된 것 아닌가

<송준호>

길림신문 기자도 40댄데 속쇄가 한자로 내려오는건 아니고 그쪽 지역에서는 다 속쇄(쇠)

라합니다

샅바의 함경도 방언이 아닐까, 합니다

<김완수>

샅바 ,, 어느나라 말 입니까?

<송준호>

하하,, 모르죠

다리사이 끼우니 샅바라 하나,,

(하략)

<김완수>

그 다음에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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