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기의 반박,24반 재반박,본국검협회 3차 반박

2020-11-14 / 조회수 : 2,217 신고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무예도보통지가 등재되어 있고 작년에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에서 무예도보통지 내용들을 전통군영무예, 명칭으로 종목지정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것은 지정문화재에 대한 신청, 현장조사,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이 일반화 되지 못하고


서울시청 홈페이지 공고? 하나 정도로 그 진행과정이 현장의 무예전문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엇다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울시 지정문화재는 서울소재 등록된 법인 또는 20년간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거주한 개인에 한해

문화재 신청 및 참가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타 시도에 등록하고 대표성이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단체가 현장조사를 받고

내부적으로 협의서를 썼다느니?,,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번 기고는 서울시지정무형문화재 전통군영무예의 올바른 정립과 발전에 각 이해단체들의 입김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는것이다!


공론화 되야 한다!


그리고, 면밀한 검증이 진행되어 공적 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


서울시에서도 이런 현장의 1차적인 진행 없는 상태에서 특정단체 위주로 세부종목을 지정해 주거나 단체를 지정해서 서울시 세비로 지원하지 않을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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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단체 비방은 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도 없다1 그러나 의문은 공개적으로 질문할 수 잇지 않겟는가?


18기 협회측에 질문한다!


귀 단체,, 모씨가 

2015년 문화재청에서 수박, 종목을 문화재 검토할때 문화재청 연구관에 "수박이 우리것이 아니다?" 비방을 했는가?


충주 택견측에서 그런줄 알고 있었는데 18기협회에서 문화재청에 비방을 했다는 의혹이 잇다.


이 확인요청을 18기 협회 신성대 회장에 하는 바이다!


귀하들이 과연, 수박,이 우리것이 아니라고 문화재청 연구관에 비방을 해서

수박,의 문화재청 검토가 중단된것이 사실인가?


여기에 대한 답변을 18기측 관계자가 보는 즉시, 확인을 해 주기 바라며

만약, 문화재청에 비방한것이 사실인것이 확인될때 그에대한 책임소재를 물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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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반측의 반박에 18기 측에서 반박하고 대한본국검협회에서 3차로 반박한것이다!


http://blog.naver.com/ichigeki1028/40105318825

※이 글은 지난 2월, 무예24기보존회의 문화재 신청을 제지했다는 이유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올린 보존회측의 내용을 십팔기협회 신성대 회장이 반박한 글이다. 본인은 그 중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몇몇 부분에 대해서만 반론을 제기하겠다.

※이 반론은 순전히 본인의 입장일 뿐, 무예24기보존회의 입장이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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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신성대 대표작성

1. 무예24기보존회의 명칭에 대한 주장

신청인 (사)무예24기보존회는 《무예도보통지》 무예의 올바른 명칭이 십팔기가 아니라는 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1 십팔기를 최초로 정립한 사도세자의 문집인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의 ‘예보육기연성십팔반설(藝譜六技演成十八般說)에서 십팔기가 아닌 ’십팔반‘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는 (사)무예24기보존회의 학술연구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예보육기연성십팔반’설을 실제로 읽어보면, ‘이로부터 십팔기라는 명칭이 생겼다(自是始有十八技之稱, <능허관만고> 제7권 22면)’라고 명시하고 있다.(별첨1,2)
일반적으로 십팔반은 ‘열여덟가지’를 뜻하는 수사(數詞)이다. 제목만을 보고 사도세자는 <《무예신보》의 무예를 ‘십팔반’이라고 했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글의 제목은 ‘무예제보의 여섯 가지 기예가 세월이 흘러 열여덟가지를 이루었다’로 해석되고, 본문에서는 그 열여덟가지 무예를 ‘십팔기’라고 명확히 이름하고 있다.

->십팔기란 명칭이 능허관만고에서 등장한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십팔기가 만들어진 당시를 나타내는 말일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능허관만고에 기록된 십팔기 기록은 무예도보통지 이전 즉, 24기란 말이 나오기 이전의 것이기 때문에 신성대 회장의 말은 시대적 사건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볼수 있다. 24기가 등장하기 이전에 무예가 18기라는 것은 무예사를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것이야 말로 "복증위이십사기"라고 적혀있는 무예도보통지를 무시한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2 《무예도보통지》 서문과, 《국조보감》《만기요람》 등에도 ‘24기’로 명명하고 있다?

《무예도보통지》의 서문에는 ‘현륭원(顯隆園, 사도세자)의 뜻에 따라서 십팔기의 명칭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짐이 외람되이 무의식(武儀式)의 전형(典刑)을 이었으며 또 마상기예[騎藝] 등 6기를 다시 늘여서 이십사기(二十四技)가 되었을 뿐이다.(顯隆園志而十八技之名始此 肆予繩武儀式典刑又以騎藝等六技復增爲二十四技而已)’라고 되어있다.

위의 글에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의지로 십팔기가 무의식의 전형이 되었으며, 자신은 여기에 마상기예 6가지를 늘려 24가지로 책을 편찬하였을 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24기’라는 말은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을 언급할 때에, 이 책이 24가지 항목으로 되어 있다는 뜻으로만 쓰였다. 신청인이 언급한 《국조보감》《만기요람》 모두 마찬가지로《무예도보통지》의 편찬에 관한 것일 뿐 ‘무예24기’가 정식명칭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별첨3)
오히려 정조는 《무예도보통지》편찬 이후에 ‘십팔기’라는 용어를 ‘십팔기교관’ ‘십팔기군’과 같이 일성록과 병서 등에서 더욱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그 이후 조선말기는 물론 해방 후에도 십팔기는 ‘십팔기터’ 등의 다양하고 풍부한 용례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봉고’와 ‘미원’이 일반적인 승합차와 조미료를 통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십팔기’는 무예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쓰였다. 이러한 사실은 별첨된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별첨4,5,6)

->무예도보통지의 "현륭원지이십팔기지명시차"란 한자 문장의 뜻은 동시대 등장했던 책인 청장관전서, 홍재전서 등을 통해 비교했을때 "현륭원의 뜻~"이 아니라 "현륭원지에 있고~"를 의미하는 말이다.

청장관전서 24권 편서잡고 4 <무예도보통지 부진설> : "어상 현륭원지(詳 顯隆園志)"
홍재전서 13권 <익정공주고군려류서(翼靖公奏藁軍旅類叙)> : "기상재현륭원지(其詳在顯隆園志)"
홍재전서 59권 잡저 6 <무예도보서술(武藝圖譜叙述)> : "사재현륭원지(事在顯隆園誌)"

실제로 홍재전서에 실려있는 현륭원지에는 시작부터 "현륭원은 수원부(水原府) 화산(花山)에 계좌정향(癸坐丁向)으로 위치하고 있다."라고 서술하고 있어 현륭원이란 지명이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님을 알수 있다.

신성대 회장은 무예도보통지 편찬 이후 십팔기교관, 십팔기군이란 말을 사용하여 십팔기가 무예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라 하고있다. 그러나 정조 바로 다음인 순조때 지어진 군정보고서 <만기요람>에는 십팔기란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고종때에도 십팔반무기(十八般武技)란 단어로 십팔기의 내용을 언급했지만 실질적으로 십팔기란 말은 사용한적이 없다. 정조 스스로가 십팔기를 조선의 모든 무예명칭으로 제정했다면 후대의 왕들도 그것을 따라야 하는 것이 정석이거늘, 그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십팔기란 말이 한시적으로 사용됬으며, 오히려 십팔반이란 말과 같이 일반적인 수사의 형태를 지닌 단어의 하나였음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십팔기가 무예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확장됬다는 것은 신회장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조선시대에 무예라 부르던 것들은 모두 군사들이 전쟁에서 사용하던 기예를 총칭하던 말이다.
오죽했으면 조총 등 화약무기 다루는 것도 포예(砲藝)라 했겠는가
무과시험의 과목인 편추, 기추, 기사, 보사 등도 그당시에는 모두 무예라 칭하였다.
이런 군사기예 자체를 무예라 부르던 시대에서 어찌 십팔기만이 무예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 될수 있겠는가.

1-3 현재 학계와 사전 등에서는 모두 무예이십사기, 이십사반무예, 무예이십사반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이 멸망하고 36년간의 일제시기를 거친 후, 우리무예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거의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무예도보통지》에 대한 대대적인 관심은 1990년대 이후에 일어난 것이었다. 신청인은 조선시대의 역사자료가 아닌,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몇몇 학자 또는 사전편찬자들의 작업을 근거로 삼아 조선시대의 일을 논하고 있는 매우 초보적인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특히 무예이십사기, 이십사반무예, 무예이십사반 등의 명칭은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된 조선시대 자료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신조어일 뿐이다. 다만 고유명사가 아닌 수사로서 사용된 ‘24기’만이 몇 개의 자료에서 보일 뿐이다.

->1930년 동아일보에 위당 정인보 선생이 기사에 "24반무예"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1880년 오군영이 해체된 이후 등장한(무예도보통지를 가리키는) 첫 단어이다. 그 단어가 십팔기가 아니라 24반이란 말인 이유는 조선의 무예를 모은 마지막 서적인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들은 18가지가 아니라 24가지라는 것을 의미하는 큰 사건인 것이다.

조선이 망한이후 십팔기란 말이 등장한 때는 일제말, 해방직후 등장했던 중국 쿵후도장을 통해서였다.
당시 이덕강, 황주환 계열의 소림 쿵후도장들을 중심으로 십팔기란 말이 등장했으며
1967년 중국무술 십팔기협회란 이름으로 십팔기가 다시 대중들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1-4 <조선후기 공식무예의 명칭 십팔기에 관한 연구>의 내용이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한 논문이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 논문을 반박하는 논문이 발표되고 이를 적절하게 방어하지 못했을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문을 반박하는 논문은 아직까지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다.(별첨7) 오히려 이 논문이 발표된 뒤에 국가공영방송인 KBS와 EBS에서는 ‘십팔기’라는 명칭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별첨8 동영상 참고)

-> 논문에 대한 반박 논문은 아니더라도 반박글은 존재한다.
무예24기의 최형국 사범은 그 논문이 나오자 마자 자신의 블로그에 반박글을 올려 그 논문이 잘못된 것임을 밝혔다. 반박의 형태가 논문이 아니라 일반 게시글인 이유는 본인이 최사범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으나, 논문으로 쓸만큼 가치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1-5 출판, 신문 기사 및 방송 등 객관적인 자료에 표현된 명칭 ‘십팔기’

그동안 대한십팔기협회와 십팔기보존회가 함께 해온 작업들과 그에 관련한 기사와 방송 자료를 CD에 담았다. 그렇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24기’란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다.

◉ 십팔기보존회와 (사)무예24기보존회가 공동 출연한 KBS TV<한국사전 - 정조대왕>과 역시 최근 방영된 KBS TV<느티나무 - 무예도보통지>에서도 ‘24기’란 명칭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오직 ‘십팔기’라는 명칭만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공영방송인 KBS에서도 조선 국기의 명칭이 ‘24기’가 아니라 ‘십팔기’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예일 것이다.(별첨8 동영상 참고)

◉ 2005년 7월 30일, 조선일보 21면,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가 쓴 <18C의 바보들 - 무예도보통지>에서도 ‘십팔기’의 명칭을 사용하였다.(별첨10)

◉ 이화여대출판부에서 펴낸 《한국의 전통무예, 십팔기》(2008, 최복규 지음)에서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별첨책자)

위 3건은 모두 어느 한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은 객관성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무예도보통지》의 ‘무예24기’는 장용영 외영을 중심으로 전국에 보급되었기 때문에 수원화성에 지역적 연고를 두고 있다고 했는데, 장용영 외영은 1793년에 설립되었고 1801년에 혁파되었으므로 약 9년 동안만 존재했던 군영이다.
《무예도보통지》(1790)가 편찬되기까지는 임진왜란 당시에 편찬된 《무예제보》(1598)로부터 약 200년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후 조선군대가 해체될 때까지 군사들의 무예는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를 기준으로 삼았으며, 훈련도감의 교관들이 전국의 지방군에 파견되어 무예를 가르쳤다.

그런데 단 9년 동안 존재했던 장용영 외영이 조선후기 무예의 모든 역사를 대표하는 것처럼 내세우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아전인수로 해석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출판, 방송, 신문기사들은 모두 객관성을 잃은 것들 뿐이다.
그 첫번째 이유는 방송의 모든 것을 십팔기협회에서 총괄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만 이용한것이요,
두번째 이유는 신문기사 사설에서 십팔기를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십팔기협회 출신이거나 그와 관계된 인물들 뿐이요,
세번째 이유는 책의 저자인 최복규란 사람은 십팔기협회 출신 사범으로 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 한번도 십팔기협회와 관련된 인물 이외에 십팔기를 언급했던 인물, 출판, 사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훈련도감에서 파견된 교관들은 십팔기 교관들이 아니라 중앙에서 파견되던 보통 군사훈련교관들이다.
실록에 장용영의 군제절목 편에 "마상기예를 알지못하는 자가 있으니~"란 말을 시작으로 훈련교관을 파견할것을 요청한 기록이 있음을 볼때, 당시 중앙에서 파견된 교관및 교련관들은 십팔기 교관이 아니었음을 나타낸다.

십팔기의 역사는 1759년 사도세자가 만든 무예신보를 시작으로 하는 것이 정설이다.
1598년 들어온 절강병법 무예들은 순전히 왜군을 막기위한 병법의 일부분이였지, 십팔기를 만들기위한 준비과정이 아니었다.
신성대 회장이야 말로 십팔기에 절강병법 무예들이 들어있다고 그것들까지 십팔기라 우겨대는 것이야 말로 역사적인 사실을 교묘하게 조작한 아전인수로 해석된다.

2. 급조된 명칭 ‘24기’와 ‘무예24기보존회’

<데일리안>경기판 논설위원이자 출판인으로서 전통무예연구가인 신성대는 40년 동안 무예계를 지켜오면서 그의 스승이자 십팔기의 유일한 전승자인 김광석 선생과 민속학자이자 오랫동안 무형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심우성 선생을 도와 우리나라에 십팔기와 전통무예를 중흥시킨 선구자이다. 함께 제출한 각종 출판물과 신문 및 방송 뉴스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전통무예계에서 이만한 성과물을 이뤄낸 단체나 사람은 없다.(첨부책자 및 관련기사 참조)

이에 비해 신청인 (사)무예24기보존회는 자신들의 주장과 실기를 객관적으로 검증받을만한 단 한권의 어떤 실적물도 내놓은바 없다. 단지 대한십팔기협회 및 십팔기보존회의 업적을 바탕으로 수원 화성에서 전통무예 공연으로 관광활성화에 이바지한 것 밖에는 인정할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단체는 (사)무예24기보존회 말고도 전국적으로 여러 단체가 활동 중이다.

이번 신청시 제출한 김준혁의 <조선 정조대 장용영 연구>(별첨책자)란 논문도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실기 연구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자료이다. 공연 장면을 찍은 홍보용 혹은 신문기사 사진과 단편적인 홍보영상 및 자신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기술한 논문만으로 전통무예 공연단체의 무형문화재 지정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누구라도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970년 10월 3일 우리나라 최초로 십팔기도장을 개설한 해범 김광석 선생이 40년째 활동해오고 있는 대한십팔기협회나 23년 째 활동해온 십팔기보존회 때문에 ‘십팔기’의 대안으로 ‘24기’란 명칭을 차용해온 것으로 빈약한, 그리고 초기 미흡한 연구가들의 논문을 그 증거로 제시하며, 자신들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신청인이 제출한 조정신청서와 자료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사)무예24기보존회는 2005년 4월에 경기도에 의해 비영리법인으로 허가된 단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비해 대한십팔기협회는 1981년 등록된 사회단체이다.(별첨9) 그리고 십팔기보존회는 1987년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과 김광석 선생이 공동으로 《무예도보통지 실기해제》(별첨책자)를 펴내면서 결성되었고, 2002년 개천절날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해범김광석 한국무예발표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십팔기 보급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3년여에 걸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약 90여회의 무예 십팔기 공연을 가졌다.(별첨11)

이를 계기로 전국적인 전통무예 붐이 일어났으며, 십팔기보존회를 모방한 유사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당시 함께 했던 문화재전문위원 심우성 선생의 글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그 연원이 불분명한 온갖 전통무예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작금의 우리 무예계이지만, 한국 무예의 종가로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굳건하게 십팔기를 지켜나가고 있는 해범 문중이 있어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데 커다란 받침목이 되고 있다.…
2006년 12월 심우성 씀(박청정 지음 《무예도보통지주해》서문에서)(별첨책자)

아무튼 그들의 스승인 임동규 선생도 말했듯이(별첨20) (사)무예24기보존회가 등록된 2005년 4월 이전에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24기’를 연마했다는 개인이나 단체가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 이로 보아 수원화성문화사업단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행해지던 십팔기보존회의 무예시연을 모방하여 갑작스럽게 이와 유사한 형태의 관광상품을 개발한 것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왜냐하면 2002년 10월 3일부터 시작된 십팔기보존회의 활동은 이미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져 각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별첨자료)

참고로 40년 동안 십팔기를 익히고 전승 보급해온 십팔기보존회는 아직 십팔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신청한 적이 없다. 첨부한 참고자료로부터 알 수 있듯이 전통무예 십팔기와 그 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 관한 연구와 보급 활동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선구적인 업적임에도 불구하고, 십팔기가 특정단체의 것이기보다는 대한민국인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십팔기가 전승자인 해범 김광석 선생의 것이기에 앞서 조선 왕조에서 만든 나라의 무예, 즉 국기였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해방이후 십팔기란 말을 처음 사용한 단체는 이덕강, 황주환 선생 등이 세운 중국무술 십팔기협회가 등장하고 부터였다. 당시 십팔기란 십팔반무예, 즉 중국 쿵후를 가리켰다. 이것은 이후 70년대 후반 이소룡의 등장으로 더욱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쿵후와 우슈가 나뉘게 되면서 십팔기란 단어는 잠시 사라졌다가 해범선생이 이끄는 대한십팔기협회가 등장하면서 부터 역사속에 묻혀있던 무예신보의 십팔기를 들고 나온것이다.

해범선생이 1970년대에 열었던 도장은 모두 중국 쿵후를 가르치는 곳이었다.(본인 블로그에 증거 확보됨)
한 신문기사에 해범선생과 같이 등장했던 노사들은 해범선생이 십팔기의 전승자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쿵후도장을 연것을 축하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사진을 찍은것이라 본인은 생각한다.
이후 심우성 선생을 만나 무예도보통지 실기해제를 펴냈고 1981년 십팔기협회가 사회단체로서 인정받았다.

십팔기를 복원한 해범선생의 업적은 높이 사줄만 하다.
그러나 본인이 하고싶은 말은 그것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전파하지 말라는 말이다.
본인이 십팔기를 처음 접한 2001년 경복궁 공연에선 쿵후의 화창으로 십팔기의 장창이라 속여 공연하였고 초자곤 쓰는 법을 편곤쓰는 법이라 속여 공연한적이 있었다. 이후에도 시연을 하는데 사용되는 무기들은 모두 제대로된 규격에 맞지않는 것들뿐이었다. 이것은 해범선생 스스로가 소림 쿵후계열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이지 십팔기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할만한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신성대 회장이 조선의 국기란 이유로 문화재 신청을 하지 않는 것은 신회장이 속한 십팔기협회 자체가 십팔기에 대한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십팔기가 모든 국민의 것이라면 그 역사적 사실도 올바른 것이 당연한 것일진데 왜 되지도 않는 역사왜곡을 하는 것인가. 본인의 상식선에선 이해할수 없다.

3. ‘24반무예’와 ‘무예24기’

현재 《무예도보통지》를 텍스트로 삼아 전통무예를 복원했다고 주장하는 주요 단체로 (사)무예24기보존회와 (사)24반무예협회가 있다. (사)24반무예협회는 80년대 후반 민족도장 ‘경당’을 차린 임동규 선생이 만든 단체이다. (별첨12 한겨레)

1979년 통혁당 재건 기도 및 남민전 사건으로 10년간 옥고를 치렀던 임동규 선생은 감옥에서 빗자루로 검법을 익혔다고 한다. 출소 후 그는 ‘경당’을 열어 ‘고구려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자신도 ‘십팔기’를 익혔다고 했으나, 이미 대한십팔기협회에서 예전부터 십팔기를 가르치고 있어, 그 대안으로 십팔기의 별칭인 ‘18반무예’를 사용하였다.(별첨13 경향신문 2003.12.07)

(사)무예24기보존회 중앙전수원장 김영호는 1990년에 고구려 무예 ‘경당’을 전파하던 임동규의 제자가 되어 ‘24반무예’를 배웠다고 했다.(별첨14 수원 뉴시스) 수석사범인 최형국 역시 1994년 수원대학교 검도부에서 활동하다가 경당을 들락거리며 24반무예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별첨15 경향신문 2003.02.13)

2001년 5월12일 경기도 문예회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수원 화성과 24반 무예’란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사)24반무예협회가 수원의 ‘정조시대 전통무예전’에 참가하게 된다. 이때 김영호와 최형국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임동규 선생을 따라 화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별첨16)

그러나 2001년, 임동규 선생이 당국의 허가도 없이 방북하였다가 다시 감옥에 들어가는 바람에 화성의 무예공연사업은 그의 제자인 김영호와 최형국이 주도하게 된다. 나중에 임동규 선생이 출옥했을 때 사업의 주도권은 이미 김영호에게로 넘어간 상태였고 이를 계기로 내분이 생기게 된다.(별첨18) (사)24반무예협회를 수원 화성에서 내쫓은 김영호와 최형국은 새로운 단체인 (사)무예24기보존회를 만들어 독자적으로 회원을 모집하게 된다.(별첨19)

2004년 4월 24일, 두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한 임동규 선생은 <민족도장 경당인들의 단결을 촉구하는 글>에서 ‘무예24기’ ‘무예24기보존회’가 이전에는 없었으며 갑자기 만들어진 것임을 규탄하고 있다.(별첨20) 또한 화성공연 이권을 둘러싼 내부 분란에서도 이러한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별첨22)

이처럼 ‘고구려 무예 경당’ ‘18반무예’가 ‘24반무예’, 그리고 ‘무예24기’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원화성운영재단은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이후 (사)무예24기보존회를 지속적으로 지원하였다. 2005년 4월 (사)무예24기보존회가 등록되었다.

2005년에는 (사)24반무예경당협회”라는 단체명으로 활동하던 임동규 선생은 ‘24반무예’라는 명칭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받으려고 문화재청에 신청하였으나 전승이 아닌 복원이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똑같은 기예를 바로 그 제자가 이름을 바꾸어 이번에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려 시도했으니 부결되는 것은 당연지사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경계하는 글을 쓰는 것은 언론인의 책무일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번에 신청인이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으려고 한 무예는 그 명칭에서부터 전래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 무예’ ‘18반무예’ ‘24반무예’ ‘무예24기’라는 명칭으로 이는 자신들의 편의상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신청인과 그 관계자들이 추진하였던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신청이 전문위원들의 조사에 의해 이같이 문제점이 드러나 부결되었음이 자명한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피신청자에게 돌리고 있다.

위와 같은 사실로 보아 이들 단체가 그저 단순히 체육 혹은 문화관광산업 단체로서 활동하는 것이라면 문제 삼을 일이 아니지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려고 일을 도모했다는 것은 부적절한 처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지원한 수원화성운영재단은 관리소홀로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며, 성과주의에 급급한 나머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데에 동참하여 행정력을 낭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 피신청인인 신성대가 ‘24기’와 그 단체를 급조되었다고 표현하는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이부분은 경당과 무예24기 간의 관계임으로 반론할 것이 없다.

4. 기예에 관한 (사)무예24기보존회의 입장

우선 제출한 참고자료에서 보듯 십팔기보존회의 그 역사와 전승,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공부는 함께 제출한 그 성과물이 대변하고 있다. (사)무예24기보존회의 십팔기보존회의 기예에 대한 비판은 무예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지 못한데서 온 것이다. 십팔기보존회 회원들이나 지도자들이 원고의 주장대로 뭘 몰라서, 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님을 먼저 밝혀두고 답변에 들어간다.

4-1 장창의 길이, 무게?

현재 여러 한국의 여러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무기들 중 무게, 길이, 모양이 똑같은 무기는 하나도 없다. 이는 같은 무기라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병장기는 당시의 표준사양을 제시한 것이다.

십팔기보존회가 그걸 몰라서 짧은 단창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실내에서 무예를 익히다보니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단창을 사용할 뿐이다. 공간이 허락하면 장창을 사용하기도 한다. 무기의 길이를 두고 그 무예가 맞니 틀리니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문제는 그 기예가 정확하냐 하는 것이다.

진검으로 하느냐, 가검으로 하느냐는 시비 또한 기예의 본질과는 먼 주제이다. 공연마당의 많은 관객들 앞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무예시연은 시연자는 물론 관객에게도 위험의 소지가 많다. 실제 진검(창)을 사용한 초창기 공연에서 십팔기보존회는 2004년 설날 용인 에버랜드 공연에서 창날이 부러져 관객이 다치는 사고를 겪었었다. 이후 모든 무기를 날을 세우지 않은 질기고 가벼운 재질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검도 시합을 왜 진검으로 하지 않고 죽도로 하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은 트집일 뿐이다.

과거에는 무예를 전쟁에서 살상을 목적으로 익히긴 하지만, 현대에는 건강, 때로는 시연을 목적으로 익힌다. 따라서 굳이 위험하거나 무거운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본다. 회원들이 굳이 진검을 가지려면 도검류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뒤따른다. 또한 공연 시에는 관객에게 보다 멋있고 활달한 기예를 보여주기 위해 가벼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트집을 잡는 것은 지나치다.

->조선시대의 무기들은 군기시를 중심으로 한 제식생산을 원칙으로 하였다. 때문에 일일이 길이와 무게를 재고 그 내용을 무예서에 기록한 것이다. 박물관에 진열된 무기만으로 모든 조선의 무기는 자기 편한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역사를 바로볼줄 모르는 것과 다름없다. 어찌 하나만 보고 둘은 볼줄 모르는가.

기예를 따지고 든다면 솔찍히 십팔기협회는 입을 열어선 안된다. 장창에 관해선 더욱 그렇다.
본인이 처음 십팔기협회를 접했을때 시연한 장창은 쿵후의 화창을 들고했던 쿵후창술이었다.(시연자가 배ㅇㅇ씨였을 것이다)
지금 십팔기협회에서 시연하는 장창은 그 등장날짜가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 역사가 있는데도 기예에 대한 진위여부를 따지려 들다니... 정말 신회장의 용감함은 참 감탄할만하다.

4-2 24기보존회의 기예는 검도식으로 왜색풍이 짙다?

(사)무예24기보존회가 만들어질 때부터 주도적으로 이끈 사람은 김영호와 수석사범인 최형국 두 사람이다. 이 중 김영호는 자신의 무예를 내보인 적이 거의 없고, 대개 최형국을 통해 시연과 훈련을 했다고 본다. 그들의 스승인 임동규 선생 역시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검도류를 익힌 인연으로 《무예도보통지》의 검법을 혼자서 터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사)무예24기보존회 중앙전수원장 김영호는 임동규 선생 한테서 ‘24반무예’를 배웠다고 했다.(별첨16) 또 수석사범인 최형국 역시 경당을 들락거리며 24반무예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했다.(별첨15)

시연단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최형국은 스스로 검도를 배웠다고 수차례 자랑했으며(별첨17) 자신의 말대로 그의 동작은 누가 보아도 검도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지도를 받는 다른 단원들의 기예도 별반 이와 다르지 않다. 이로 인해 (사)24기보존회의 검법은 대부분 검도식이라고 본다.

그리고 초창기에 선보이지 못했던 월도 등은 십팔기보존회의 동작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또한 이 신청서에서 십팔기보존회가 소림사를 본떠 대련(교전)을 한다고 근거없는 주장을 하면서, 현재의 (사)무예24기보존회 역시 초창기에는 한 가지도 선보이지 못하던 각종 교전을 시연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예도보통지》에도 나오지 않는 그것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의문이다.

->본인은 무예24기보존회가 아니라서 자세한 반론은 할수 없지만, 적어도 본인의 눈으로 봤을때 24기측의 기예와 교전법은 모두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는 임동규 선생이 만든 24반무예의 취지와도 비슷하다.

무예도보통지 원본 앞부분에 있는 기예질의에 보면 등패, 곤봉, 낭선, 당파, 장창등을 나열하고 그에 대한 교전결과를 통해 무예에 대한 심오한 이치를 나누는 부분이 존재한다. 적어도 십팔기협회처럼 있지도 않은 창검교전, 월도창교전, 탈검교전 등은 하지도 않는다. 이런 교전을 하는 단체는 옛날 중국쿵후를 수련하는 단체들이 대부분이다.

4-3 십팔기보존회는 16가지만 익히고, 24기보존회는 24가지를 익힌다?

대한십팔기협회와 십팔기보존회에서도 24기를 모두 다 익힌다. 단지 예전에는 한국에서 말을 탄다는 것이 아무에게나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저술을 할 적에 기예(騎藝)4기와 왜검을 고의로 뺀 적도 없다. 다만 왜검과 교전은 격검 위주로 너무 단순하고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검법으로 굳이 별도의 해설이 필요 없어《무예도보통지》의 있는 그대로를 실었을 뿐이다.

또한 단순한 만큼 현대인들이 익히는 재미가 덜한데다, 관객을 상대로 공연할 때에는 시간의 제약과 관객의 흥미유발 때문에 미처 선보일 기회가 없어서 시연을 안 한 것뿐이다. 그렇지만 일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십팔기보존회 회원들은 기예(마상무예)와 마상 활쏘기도 익히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회원 개인적인 기호와 경제적 사정에 따른 것이지 고의로, 혹은 재현 할 줄 몰라서 안 가르친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명칭은 언제나 십팔기를 사용하고 있다. 마상재와 격구는 무예는 아니지만 군사체육으로서 《무예도보통지》에 부록한 것이고, 마상무예인 기예(騎藝)4기는 십팔기의 응용종목이다. 따라서 말을 타든, 소를 타든, 수레를 타든 십팔기를 가지고 하는 것은 언제나 ‘십팔기’여야 한다.

->이 부분에서 십팔기협회의 마상무예에 대한 무지함이 여실이 드러난다.
자신들 스스로가 24기를 익힌다고 주장하지만, 본인이 아는 한 십팔기협회에서 마상무예를 선보인적이 없으며 한 사범은 "여건상 마상무예를 하지 못한다~"라는 고백도 한적이 있다. 마상무예를 선보이지 않으면서 24기를 한다는 깡따구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다른 마상무예 복원단체들은 돈이 남아 돌아서 말을 타고 무기를 휘두르는가? 말을 타고 무예를 한다고 하기전에 말이 되는 소리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검과 교전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다.
왜검의 4가지 검술은 분명 그 형태가 단순한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할수 있는 검법은 아니다.
그것은 왜검 자체에 일족일도의 일본 검술문화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십팔기협회에서 왜검과 교전에 대해 저러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중국 쿵후로 십팔기를 복원함에 있어서 일본무술인 왜검을 하는데, 그 형식이 중국무술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로만 왜검과 교전을 수련한다고 할뿐 실제로 증거를 보인적은 한번도 없다.

끽해야 일본검술을 본뜬 쌍수도를 증거자료로 보이지만,
쌍수도는 어디까지나 일본검술을 토대로 한 검술이지 일본 본토에서 나온 검술은 아니다.

4-4 십팔기는 쿵푸(중국무술)풍이다?

십팔기에는 임란 때 명나라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실린 7가지 무예와 숙종 때 일본에서 들여온 왜검과 교전이 있다. 이중 왜검과 교전은 지금의 검도와 유사한 격검(막고 치는 식의 단순한 동작)으로 되어 있어 별도의 전승이 없이도 현대 일본 검도를 익힌 사람이라도 책을 보고 쉽게 따라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조선 전래의 기예라 해도 당시 중국과의 문화교류로 인해 상당부분 중국무예와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반대로 예도(조선세법)처럼 조선의 전래 검법이 중국으로 전해져 크게 영향을 끼친 경우도 있어, 십팔기와 중국무술의 차이를 분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이나 수준 높지 않은 무예인들이 십팔기보존회의 동작을 보고 쿵후(중국무술)를 닮았다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십팔기에는 한 개의 권법을 제외하면 모두 창, 칼, 월도, 본국검, 예도 등 다양한 병장기를 다루는 무예이다. 따라서 십팔기를 익힌 사범 정도의 수준이면 중국무술 뿐 아니라 검도 등 거의 모든 무예를 금방 따라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같은 무기를 다루는 기술이면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크게 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십팔기 전승자인 해범 김광석 선생도 70년 처음으로 십팔기도장을 열었지만, 아무도 십팔기를 우리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 것이면 오히려 멀리 하고 배우려하지 않았었다. 해서 70년대 내내 중국권법(쿵후)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렸을 적부터 익힌 십팔기가 중국무술로 변한다는 생각은 무학의 부족에서 나온 어리석은 생각이다.

또한 쿵푸로서 십팔기를 복원했다고 하는 주장도 무예 상식이 없는 무리한 주장이다. 다만 중국무술 등에 대한 지식이 십팔기를 보다 수준 높게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사실이다. 참고로 십팔기 회원들 중에도 십팔기를 배우기 전에 다른 무술을 익힌 사람도 있으며, 반대로 십팔기를 배운 바탕으로 그 후 다른 무예를 전공하는 회원들도 많다. 모두 각자의 기호와 사정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십팔기를 중국무술의 변형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무예에 대한 지식의 부족에서 나온 발상이다. 우리가 학교에 가서 국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국사를 전공한다고 중국사, 일본사, 세계사 공부해선 안 된다는 발상과 같은 좁은 소견이다. 축구를 한다고 곧바로 공만 차는 것이 아니며, 수영한다고 물에서만 노는 것이 아니고, 그 운동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다른 체력훈련법이나 다른 나라의 기술 등을 배울 수 있는 법이다.

당연히 무예 수련에서도 비록 십팔기를 하지만 다른 무예나 다른 체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결코 십팔기의 본질을 망가트리는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트집 잡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그렇지만 (사)무예24기보존회 공연단의 기예 중에 일본 검도의 요소가 십팔기(24기)를 구현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십팔기의 원형을 수준 낮게 훼손시키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선도적 연구자의 입장에서 지적코자 하는 것이다.

또한 십팔기보존회의 월도장창대련(교전) 시연을 보고 중국소림사의 기예를 모방했다고 하는 것 역시 무예를 보는 눈이 낮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는 중국소림사가 아니라, 무당파, 혹은 일본 사람들이 해도 장창과 월도가 약속된 동작으로 겨루면 각자 전혀 별다른 동작이 나오는 게 아니고,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다. 엄숙하면 일본 검도, 화려하고 능숙하면 중국무술, 이도저도 아니면서 뒤뚱거리면 한국무술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는 질문이다. 같은 기예도 수련자의 수준과 개성에 따라 각기 다른 풍의 시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또한 일반회원들의 수련이 아닌 관객들을 즐겁게 해야 하는 무대에서의 공연은 보다 재미있게 응용하여 펼칠 수 있는 것이지,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직 무예수준이 모자람을 의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학구적인 세미나나 발표회 등 그 성격에 따라서 원보에 충실한 기예를 구분해서 선보이고 있다. 전승 복원시킨 기예 동작은 이미 책을 통해 모두 정리하여 공개했었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공연 때의 기예만을 보고 원보와 똑같지 않다고 트집 잡는 것은 지극히 유아적인 발상이다. <동의보감>을 두고 중국풍이 짙다고 하는 것과 같은 문제제기일 뿐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분명 왜검과 교전은 그 형태상 쉽게 따라할수 있는 기예는 아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교전형태로 이루어진 곤봉과 편곤은 어렵기때문에 전승자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들중 교전형태로 이루어진 모든 수련하는 갑을 상호간의 단순한 몇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 발전된 무예의 개념으로 당시의 "모든" 무예적 정황을 설명하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십팔기가 중국의 기예들이 토대로 하고 있기에 중국무술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십팔기에서 중국본토로 부터 전해진 무술은 낭선, 등패, 곤봉, 장창, 당파 뿐이다.
월도, 협도는 그 기예가 무예제보번역속집을 통해 등장했다가 사도세자가 새로이 기예를 만든것임으로 온전한 중국무술이라 볼수 없다. 편곤은 본래부터 마상무예의 형태로 들어왔으며 또한 그 기원이 서융의 기병대를 통해서 등장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몇가지 무예가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십팔기의 모든 기예가 중국식으로 될수 밖에 없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 것이다.

하나의 문화는 지역에 따라, 민족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십팔기의 기예들인 절강병법 기예들이 들어왔다고 해서 그 형태가 온전히 전래됬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십팔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절강병법이 조선에 들어온지 약 200년이 지난 후이다.
그 시대적 흐름속에서 절강병법의 중국무술은 한국인의 문화와 민족성, 또는 군사적인 실용성을 바탕으로 그 기법이 변화했을 것이다. 자신들 스스로가 사도세자때의 십팔기를 계승한다 주장하면서 왜 200년전 절강병법을 통해 중국무술처럼 보일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활을 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몽골의 활쏘기가 우리나라 활쏘기의 기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

24기측에서 어떠한 무술형태로써 무예도보통지를 복원하는지는 자세히 알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은 통지자체를 복원의 모델로 삼고있다. 십팔기협회와 자세가 비슷한 것은 똑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복원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만약 24기가 통지를 보지 않고 무예를 복원했다고 한다면 십팔기협회는 "원본이 당연히 존재하는데 가짜를 진짜라 하느냐?"며 트집잡을 것이 뻔하다. 그들은 검을 잡는 법에서부터 통지를 따르고 시연복식도 조선후기 군사들이 입던 실제 갑옷을 입고 시연한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후기"에 등장한 군사무예서이다. 신성대 회장의 십팔기협회는 조선"전기"때 등장한 두두미갑을 입고 하고 있기때문에 복장에서부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4-5 십팔기보존회에선 한 손으로 검법을 익힌다?

이 역시 상식 이하의 질문이다. 칼이 무거우면 당연히 두 손으로 다뤄야 할 것이며, 가벼운 것을 굳이 두 손으로 다룬다면 변화에 불편하고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때그때 상황과 칼의 무게, 길이, 상대의 무기나 무장 정도에 따라 두 손 혹은 한 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다. 무예 용어로는 이를 배수법(配手法)이라 한다.

《무예도보통지》는 일반 병졸들의 기초적인 무예를 정리한 교본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두 손으로 힘 있게 순서를 익히는 것이 맞다. 십팔기보존회에서도 무조건 모두 한 손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초보자에게는 원보대로 두 손으로 훈련시킨다. 그러다가 숙달되고 힘이 생기면 한 손 혹은 두 손으로 자유자재로 검을 다루게 된다.

10년, 혹은 20년 이상 숙달된 십팔기보존회원들의 시연 모습을 보고《무예도보통지》의 그림과는 달리 한 손으로 하니까 틀렸다거나, 같은 기예를 능숙하게 변화 응용하여 펼치는 화려한 개인기를 보고 중국소림사 무술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그만큼 (사)무예24기보존회의 인사들이 무예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말이다.

->상대의 무기나 무장상태에 따라 두손 혹은 한손을 사용한다 했지만, 현재 십팔기협회의 검법 대부분은 한손으로 하는 외수검법이다. 그러나 무예도보통지에서 외수검법은 등패 하나뿐이다. 다른 검술에도 한손으로 사용해야 할때는 한손으로 하게끔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다. 실제 통지의 격자격세 그림을 보아도 모두 두손을 잡고 운용하고 있으며 한손을 쓸때는 한손으로 쓰는 그림이 나와있다.

초보자에게 두손, 숙달자에겐 한손...이란 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식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물론 개인의 재량에 따라 한손으로도 할수 있겠지만 무예도보통지의 기예는 어디까지나 군사적인 목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실용성과 활용에 있어서 좀더 위력적이고 좀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십팔기협회는 무술단체이지 군사학 연구단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조선시대의 "군사"무예를 한다고 주장할려면 이러한 군사적인 형태의 기법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회장부터 저러니 그 밑의 사범들과 수련자들은 그런거 필요없이 그냥 무예적인 이치만을 들먹이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이 후의 내용들이 더 있으나 십팔기협회와 24기보존회간의 관계를 통한 반박글이므로 역사적인 주장은 들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본인의 신성대 회장 반박문에 대한 반박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출처] 신성대 회장 반박문에 대한 반박글|작성자 월도마왕

[출처] [24반무예 아카데미 경당] 경당 24반무예 < 신성대 회장 반박문에 대한 반박글 안티 십팔기협회 > |작성자 신검 김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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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없는 한국의 무예

    일본무술의 성격 침투와 서국적 경기방식 내재

    한국 무예의 수련체계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무예가 일본류 무예 내지는 중국이나 서양 격투기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 바탕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역사적 전통성을 검증 받은 무예, 즉 택견, 씨름, 활 등은 누구나 한국 무예라는 전통성을 인정 받고 있지만 오늘날 이들 무예 곳곳에는 일본 무술의 성격이 침투해 있으며 서구적 경기 방식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전래의 자연발생적인 수련 배경을 잃은 채 생활권 밖에서 명맥이 이어져 오다가 무예 수련의 일상화라는 대중 문화권에 재편입되면서 기존의 외래 무술체계를 타당성 검증없이 수용해 온 결과이다. 

    둘째, 한국무예 기원설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일본무도에서 기원한 무예인 경우에 해당한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하여 수련되던 일본 무도가 광복 이후에 국내에서 활성화 되면서 자리잡기 시작하였으며 검도나 유도의 경우에는 이미 일제 치하에서 유입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들 무도는 한국 전통 무예로 둔갑 하였다. 수련체계와 복장, 이론적 배경, 사상적 기반 등은 일본의 그것이면서 삼국시대에 한반도에서 전해준 것을 다시 되찾아 왔다는 논리로 일색 하였다. 이러한 논리라면 일본에 대하여 우리것이 아닌게 무엇이며 중국에 대하여 우리의 것은 무엇인가? 무예를 포함한 모든 문화는 그 발생도 중요 하지만 어느나라에서 어떻게 성장하여 살아 남았는가 하는 발달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다. 문화는 발달 논리에 입각하여 도태되며 적자 생존한다. 따라서 무예에 있어서도 그것의 기원과 실질적인 성장은 엄연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셋째, 대부분 광복이후 한국에서 신흥무예로 탄생하였으면서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 내지는 심지어 고조선 시대를 운운하는 무예들의 등장이다. 전통성을 검증 받은 씨름, 택견, 활과 일본과 중국류 무예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술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중에는 고서에 나오는 무예 지칭 용어를 차용한다든가 무예도보통지를 인용한 무예관련 단체도 있지만 이들 단체 역시 역사적 전통성이 단절되어 있기는 마찬 가지이다. 하지만 떳떳하게 신흥 무예임을 밝히는 한국무예는 극히 드물다. 

    이와같이 전통무예, 외래무예, 신흥무예를 막론하고 문제가 되는 사실은 다름을 기반으로 전통을 형성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같음>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군국주의의 산실인 일본무도가 표본적인 모델로 설정되어 있다. 이와같이 일본 무도와 같음을 지향함으로써 생긴 한국무예의 허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한국에서 무예를 수련하는 일정한 공간을 도장(道場) 혹은 체육관(體育館) 또는 무예단체 특유의 색깔이나 세력권에 따라 OO관(OO館) 이라 명칭 하고 있다. 적어도 조선시대 이후 한반도에서 00정(OO亭)이라고 불리는 활터를 제외하고는 사설 무예 강습 장소는 물론이고 전문 실내 공간이 없었다. 씨름이나 택견 만 하더라도 풀밭이나 노천, 모래사장 등에서 전문적인 지도선생 없이 놀이 문화의 형태로 전습되어 왔다. 그 외에 전문적인 전수 계보가 있었다면 오늘날의 개방된 체육관 형태가 아닌 일정한 공간에서 특정 소수에게만 전수되어 왔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도장(道場)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도장(道場)이라는 말은 원래 스님들이 불법을 수행하는 장소를 일컫는 말에서 기원한 것을 일본에서 무도에 의식적으로 엄격한 윤리와 철학성을 부여하면서 수련장소를 칭할 때 도용한 것이다. 

    한국에서 최초의 현대식 도장은 광복 두 달전에 이원국이 세운 당수도 청도관이다. 이는 태권도의 원조 도장인셈이지만 이후 황기가 세운 철도국 도장이 전신인 무덕관, 지도관의 전신으로 유도 도장인 연무관에 권법부를 개설하여 공수도 연무관을 설립되었고, 이후 창무관, 송도관 등이 설립되었다. 
    그런데 관(館)이라는 것은 일본식 도장의 대표적인 분파 양식에 보이는 명칭법으로 한국에서는 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 등에서 이러한 명칭 제도를 자연스럽게 계승하거나 도입하여 각자의 세력을 형성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국에서 헬스클럽이나 무예교습소 등 유독 신체 관련 장소를 가리켜 체육관이라고 칭하는 것도 일본식 관(館)의 개념이 이입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조선시대 이후 한국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된 활터를 제외하고는 애초부터 무예관련 사설 강습소인 관(館)은 없었던 것이다. 엄격한 유교주의와 강력한 중앙집권 제도하에 그나마 조선 초에 보이던 사병 양성은 꿈도 못 꿀 일이 되어 버린 조선 시대였다. 이러한 조선땅에 무협 영화에 보이는 것처럼 일반인이 칼차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시대 산중의 승려들이 마치 중국의 소림승들처럼 무술을 연마하여 온 것처럼 영화화 되어왔고 실제로 오늘날엔 불교무술 단체들이 전래적으로 그래왔던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으며 한권의 제식 병서에 불과한 무예도보통지가 조선 무예의 보고인양 과장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조선시대에 왜란을 맞이하여 승려들이 의병으로 참여한 것은 사실이나 무술 집단으로서의 승병은 아니었다. 그것은 농민 신분의 평민들까지 농기구를 들고 왜란에 맞선 호국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무인 문화와 무사 집단이 마치 국내에도 현존하여 온 것처럼 신비화되고 과장되어 오늘날 한국은 무술 관련 도장이 산재되어 있다.

    유투브
    참고영상
    싸울아비무사단?
    https://youtu.be/M_gP4awjdRE
    역사는 멀고 돈은 가까운, '전통'무예
    무예계 암적인 존재들
    정치.무예단체유착

    2020-12-17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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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시국무예판 실태 이권전쟁 쩐전쟁

    코로나19 시국에 충남부여 특정단체 판깔아주기백제무예원발대식

    특정 타지역단체 시범단 정치언론이권유착
    참고:특정단체 남한산성무사시범단체
    무도매거진 같은단체언론사대표.총재 같은무술협회대표.총재
    충남문화축제 잠식

    기사출처 무도매거진

    백제왕도 부여 국내최초' 전통무사단 태동
    코리아무사단 왕도 부여군 창단

    찬란한 문화유산과 백제의왕도로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지정된 유서 깊은 부여군에서 계백장군의 구국정신과 전통무예를 발전시키고 한류 열풍에 내국인은 물론 한국을 방문한 지구촌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혼과 우리의 전통문화와 무도를 널리 알리고자 국내 최고의 전통무예 무사들로 구성된 코리아(싸울아비)무사단이 13일 부여문화원에서 태동 했다.

    창단식에는 박정현 부여군수, 조길연 도의회부의장, 유기주 군의원. 윤택영 군의원. 이창선 공주시의원, 박상우군의원, 정찬국 부여문화원장, 부여출신 영화배우 정두홍. 오노균 태권도문화원장, 세계태권도연맹 강석재전문위원, 세계군문화축제 전인권총감독, 양근용 CNBNEWS충남본부장 등 많은 내빙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김형중원장 이정직단장으로부터 세계통합무술 8단증 수여 받고 있다.

    이날 공식 행사 전 열린 국가문화유산인 전통무예진흥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백제무예원 창립총회에서 초대 김형중원장 이 선출되었으며, 김형중원장은 세계생활체육(TAPISA)협회 소속 단체인 세계통합무술협회로부터 진종호 총재를 대신해 이정직단장으로부터 통합무술 8단증을 수여 받았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대회사를 통해 ‘코로나로 인하여 어려운 시국에
    국내최초로 태동하는 코리아(싸울아비)무사단 창단식에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 부여군은 유네스코 찬란한 문회유산에 빛나는 살아있는 고 유적과 유물들이 가득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입니다. 오늘 태동하는 우리 코리아(싸울아비)무사단이 더욱 성장하여 부여와 충남을 넘어 우리나라의 전통무도을 또 다른 한류로 한국의 전통 체험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도록 군비와 도비를 전폭적으로 자원 하겠습니다‘ 라 말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축사를 통해 “계백장군의 무사도혼이 백제의왕도 충남부여에서 백제무예원창립과 싸울아비무사단 발대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출범하는 백제무예원과 싸울아비무사단이 국가문화유산인 전통무예진흥에
    역할을 해주시기바랍니다.
    준비위원장님을 비롯 임원님들 노고에 감사드리며 싸울아비 무사단 이정직단장님
    단원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깊은 감사드리며, 충남도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 약속드립니다.
    끝으로 오늘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 가정에 축복과 행운이 함게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장현미사범 검무 시범장면.

    구)해동검도 단체 수련자들 전통성 세탁작업
    코리아(싸울아비)무사 단원은 짚단베기 세계최고 기록 기네스 보유자인 이정직단장을 비롯해 노병일 지도사범, 사무 고재민, 한명화, 고재현, 이은주, 김학준, 장민규, 장현미, 최기현, 김동희, 김영미. 박순경, 김범철, 주재한, 정영호사범으로 활, 창, 검, 마상무예 등 국내최고의 무사 15명으로 구성되어있다.

    백제무예원창립 싸울아비무사단 발대식
    유투브 영상
    https://youtu.be/M_gP4awjdRE

    2020-12-15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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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무예문화

    사이비무예문화는 갈수록 사회문제로 대두

    윤리가 실종되고 경쟁만능주의가 빚어놓은 사이비무예문화는 갈수록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윤리가 실종되고 경쟁만능주의가 빚어놓은 사이비무예문화는 갈수록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소통보다는 허위과장 생떼 천박한 문화가 우리무예계에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색과 인내심 진지한 토론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이같은 현상으로인해 무예계의 자정력은 한계에 와 있고 더이상 스스로 해결할수 있는 치유능력이 상실한 상태다 이제부터라고 사이비무인들이 활개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수 있다. 올해 있을 전통무예종목지정시 무예에 대한 기원과 역사들을 철저히 검증하여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예는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남은 자존감을 지켜주고 이어주는 정신이다 또한 이를 후대에 전해줘야하는것이 우리무예인들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상업주의가 스며들면서 무예본질은사라지고 각종 사회병리현상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상업주의에 편승한 사이비무인들에 의하여 갈수록 참 무인들이 설곳이 없어져 사라지고 있다. 물질적 발전에 걸맞은 가치관정립이 절실한 상황에서 남을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무인으로서의 소양이 없으니 동일종목간 타무술종목간 공감대가 없고 존중심도 없다 보니 그 틈새에 사이비무인들이 활개한다. 무인들이 갈망했던 이상 또한 사라지고 없다. 어쩌면 지리산이나 설악산과 같은 깊은 산중에나 가야만 참 무인들을 만날수 있을지 모른다.
    개인든 단체든 국가든 상식이 통해야만 한다 최소한의 윤리 와 도덕 그리고 규칙과 법률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한다. 윤리의식도 없고 법 상식도 무시되는 사회는 분명 병들어 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무인들은 이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첨병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우리무인들이 그 같은 첨병역할능력이 아쉽게도 갈수록 많이 부족해 지는것 같다.
    공자가 말하기를 "사이비는 외모는 그럴듯 하지만 본질은 전혀다른,즉 겉과 속이 전혀다른 것을 의미하며, 선량해 보이지만 실은 질이 좋지 못하다."그래서 공자는 사이비를 미워한다 하였다.
    공자는 인의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만 번지지르르하고 처세술이 능한 사이비를"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하였다.원리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사이비가 활개를 치는 법이다.
    그들은 대부분 올바른 길을 걷지 않고 시류에 일시적으로 영합하며,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말로 사람을 혼란시키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 이다
    지금 부터라도 무인의 한사람으로서 각각의 역할에 충실하게 임하여 범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하기를 바란다. 변화된 무인들의 모습을 사회는 기다리고 있다 또한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무인들이 참 무인으로 변화될때 무인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존경받는 무인으로서 우리사회에 다시금 그 중심에 있을수 있을것이다.
    유투브
    참고영상
    https://youtu.be/M_gP4awjdRE
    역사는 멀고 돈은 가까운, '전통'무예
    무예계 암적인 존재들
    정치무예단체유착

    2020-12-15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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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짝퉁고증복원

    무예24기측에서는 검을 잡는 법에서부터 통지를 따르고 시연 복식도 조선후기 군사들이 입던 실제 갑옷을 입고 시연한다.

    전통무예연구가
    전통복식.무기고증 복원반박
    24기.18기 겉모습만 고증이다
    조선시대 갑주 고증문제
    복식 원단재료 전통비단. 모시.삼배천연재질이 아닌
    화학섬유:폴리에스테르.나일론.혼용면 으로 갑주제작
    모든 복식복원을 전통방식이아닌 기계식제작이다
    무기제작 또한 전통적 복원이아닌 공장식 대량제작 방식
    가까운 중국과일본은 전통문화복원 고증에서은
    모든방식을 전통방식으로 복원한다.
    그리고 국가차원에서 예산지원정책도 들어있다
    우리나라은 무형문화재 재도가있었도 활용을 잘못하고있다
    전통장인과전통무예단체 간에 분업이 있어야한다
    전통무예모든 복식.무기을 전통방식으로 제작 하려면
    돈이 너무많이들어간다. 그래서 나라차원에서 이런부분을
    지원해야 전통문화가 발전할수있다
    무늬만 겉모습만 짝퉁 전통이아닌
    뼈속까지 고증복원해야 진정한 전통무예단체인것이다
    그래야 전통문화 가치가 있는것이다.
    우리것을 또 다른 나라에게 뺏길것인가?
    겉으로 전통이라 포장 하지말자


    2020-12-07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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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사치


    우리 역사에는 다양한 무예가 있었다. 그 역사속 무예는 온데 간데 없고 뉴마샬아츠라는 新무예세계 속에 살아간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당연한 것일 수 있으나, 우리 것을 제대로 찾는 노력도 하지 않고, 새로운 것만 추구하고 있으니, 슬픈 일이다.

    학계는 무예 본질을 외면하고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버리며 학술용역비에 좌지우지 하고, 정책은 언제나 표(票)에 기울어져 있으며, 무예계는 자본과 장사치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통무예진흥법 제정후, 전통무예진흥 정책 논쟁이 코로나에 묻혀버렸다. 겨우 내놓은 정책이라고는 동랑치에게 먹다남은 떡을 던지는듯 하고, 무예계는 이를 받아 먹겠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서로 물고 뜯는 모양새다.

    정작 평생을 고생하고 헌신한 무예인들은 조직이 작다고, 맞는 소리만 한다며 외면하고 있다. 국민체육진흥법과 무엇이 다른가?

    문득 5년전 버스타고 도시 외곽의 벌판에 있던 터키의 전통무예 시설을 찾았던 기억에 당시 사진 몇장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 그들은 그곳에 그들의 무예 역사를 담았고, 계속 담아가고 있었다. 수 백년동안 나라가 바뀌어도,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졌어도, 지금도 계속 담아 가고 있었다.

    터키의 크르크프나르씨름대회는 세계 최장수 스포츠경기로 알려져 있다. 14세기 옛 영웅 추모경기를 시작으로 655여 년의 명맥을 잇고 있다.

    에디르네(Edirne). 터키 북서쪽의 도시로 그리스,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예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다가 근대에 이르러 파란만장한 격정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러시아였다가, 불가리아였다가, 티키였다가, 또 다시 그리스였다가 지금은 터키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우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최소한 전통무예진흥법 시행에 민간에서 수 십년 연구하고 발굴하고 복원하며 어렵게 그 명맥을 유지하며 가치를 후속었 세대에 남기려는 무예인들과 무예가 빛을 보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2020-11-28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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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무예판 현실 이권.정치.자본주의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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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원로

    무인의 탈을 쓴 가짜들이
    진짜 무예인을 무시하는 세상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적폐청산을 외치지만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무예계 역시 적폐청산이 절실하다.뿌리 없는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설립되면서 무예계는 춘추 전국시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 무인의 탈을 쓴 가짜들이 진짜 무예인을 무시하는 세상이다.
    타 무예종목을 모방하고 술기를 도용해서 무예서를 발행하곤 한다.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도 없는 사람, 스승도 없는 도덕성이 결여된 전과자, 범법자들이 무예계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다.
    불과 2~30년 사이에 동일한 무예종목이 수십 개의 단체로 분파되면서 제자가 스승을 배신하고, 선배와 후배 간의 질서가 무너져 버렸다. 이 때문에 무예계에서는 상호 비방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심지어 자신의 무예 경력을 속여 가며 수련생들을 모집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가짜들은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무예단체장을 맡아 해당 단체를 수렁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수련한 무예와는 전혀 다른 무예종목의 단체를 설립하고 무력(武歷)을 속여 무예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단체만을 해롭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무예계 전체에 해악을 끼친다.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면서 남이 일군 업적을 자신이 만든 것으로 포장해 사기행각을 벌이는가 하면 전통무예라고 고집하고 있지만 뚜렷한 자료조차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면을 쓴 가짜 무예인들은 전통무예를 전수한다면서 스승조차 밝히지를 못하는 실정이다. 외래무예를 전통무예나 창시무예라고 주장하는 가짜들의 언행이 무예계 전체를 욕 먹이고 있다.전통무예진흥법이 시행 된지도 10년이다. 전통무예 종목지정 역시 목전에 다가왔다. 이제는 무예인 스스로가 계보와 무력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무예계가 올바로 설 수 있다.
    제대로 된 무예인들이 산에서 도인으로부터 사사 받았다든지 집안대대로 이어온 가전무예라고 주장하는 가짜들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왜곡된 무력을 아는 올바른 무예인이라면 무인 행세를 하는 사이비들을 좌시하지 말아야 한다.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간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자들을 단호히 응징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무예계는 신의(信義)와 예의(禮儀)를 바로 세우는데 앞장서야 한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풍성해야하는 무예계가 더 이상 더러워져서는 안 된다.전통무예 종목지정이 임박한 만큼 무예인 스스로 적폐청산에 앞장서야 한다. 무예계가 바로 서고 땅에 떨어진 무예인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적폐청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0-09-28
    댓글
    해외옛24반제자
    24기.24반 에도 있다. ㅇㅎㅍ씨.ㄱㄷㅇ씨.ㅊㅎㄱ씨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참~ 답답한 사람들이다.
    정치적.사업적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 본인욕심 때문에
    가짜들과 손잡는 어리석은 사람
    스스로 생각하라 무엇이 전통인지?
    경당24반제자들이여!
    정신줄잡고!반성하자!
    참고영상이다 이것이 전통인가?
    올바르게 가르쳐야 할것 같다
    https://m.youtube.com/watch?v=8YcpnnNinGM
    https://m.youtube.com/watch?v=poZ_oBkIpqk
    https://m.youtube.com/watch?v=r8Ke9peUq4I

    현재활동 진검무예무사단 무과시험 남한산성무예단
    무과시험 왜곡시연 해동검도창작검법시범해동검도베기시연
    전통무예왜곡.전통무과시험재현왜곡.실태
    전통무예진흥법병폐! 전통문화왜곡심각

    댓글
    경당24반전국대학수련회
    전통무예계 발전과 전통성을위해
    선생님께서 살아온 무예의 삶은 전통성을 가져다준
    소중한 가르침이다 항상 마음속깊이 기억하고
    계승하여선생님추모하며반성하고 소중히 지켜가야겠다.


    전통무예 실태퍼옴 심각함

    ※무인탈쓴 가짜무예단체※

    댓글
    기예해동검도2020.03.28
    무예24기속해동검도시범단의무예시범의왜곡된 무예오류 심각 한 예로 낙악읍성해동검도 시범전통무예설명왜곡 해동검도쌍수검법이 무예24기로왜곡설명 수원24기공연표절 아마도 해동검도단체와 개인적 인연으로 공연물이 같을수도 그래도 올바른 무예시범을 해야하고 감시하고
    올바르게 가르쳐야 할것같다 해동검도의 특이한단체습성때문이다.
    항상그래서 해동검도는 무예계의 사이비단체라고하는것이다
    낙악읍성무예시연
    일부 해동검도검법 왜곡시연
    참고영상
    ※참고영상 유튜브검색
    솔선수범TV
    전통 무예 시범 직캠(낙안읍성)
    게시일: 2019. 12. 17.
    낙안읍성에서 열렸던 기예무단무예시범 입니다.

    기예무단시범 영상삭제.비공개함
    https://m.youtube.com/watch?v=wYYnxyy3HHE
    https://youtu.be/DsQaJqA_8QM
    https://youtu.be/MjCoWZ3_FNY

    댓글
    자작나무숲2020.04.01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댓글
    전통무예인2020.07.03
    아마도 24기사범들도 아시는 단체이지요 수원야조때같이시범한 단체아닌가요! 전통성을 중시하는 행사에 해동검도기예무단 이라니 개인뜻이 있겠지만 좀 그래도 같은 전통무예선.후배단체도 있을것같은데 이또한 안타깠습니다 요즘 해동검도 단체들이 전통무예진흥법때문에 전통무예단체에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조심하셔야죠 아무리 개인인연 이라도 전통무예연구하시면...잘못된 제자한명이 전통성에 문제을 요함 미꾸라지 한마리가 그단체 전문성과전통성을.....심히걱정됩니다 무예24기단원의 오래된 노력이 한순간에....부디 조심하시길

    (기예무단)단체 해동검도협회 활동기사

    한국해동검도연합회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청주 세계 무예마스터 대회 단체연무 우승 영암수련원(기예무단). 전통무예 홍보와협회명예를 걸고 최선을다한 기예무단 축하드립니다.

    댓글
    고구려2020.07.11
    해동검도 고구려사무랑?

    해동검도가 고구려 사무랑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창건자인 나한일과 김정호의 법정 공방을 통해 기술의 상당수가 심검도와 기천문에 영향받아 만들어낸 현대 창작 무술임은 만천하에 드러나있다. 해동 검도에서 가르치는 검술 상당수는 심검도와 기천에서 따온 것이고, 일부는 둘을 혼합해서 나한일과 김정호가 창작한 것이며, 또 다른 일부는 아예 일본의 군도술인 토야마류와 나카무라류의 검리와 기술을 받아온 것도 있다. 그리고 본국검법과 쌍수검법은 무예도보통지를 기반으로 나름 재현해낸 것이다. 해동검도 검술 중에 예도 검법이라는게 있어서 이것이 무예도보통지의 예도(조선 세법)이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는데, 해동의 예도 검법 1번 ~ 9번은 나한일과 김정호가 창작한 검술이다. 해동검도는 사범급 연수를 짧고 빠르게 해줘서 도장을 쉽게 세울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빠른 시간 내에 세력을 끌어모았는데, 해동검도 브랜드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에 다른 무술 도장을 하던 사람들이 짧은 연수를 받고 간판만 갈아치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하던 사람들도 해동검도에도 흘러들어간 듯 최근에는 무예도보통지의 조선 세법도 하고 있다)#. 날조한 전통이 법정 공방으로 드러나버렸으니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진짜 전통 검술인 무예도보통지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셈. 하지만 도장이 세워진 시기나 해동검도 협회마다 커리큘럼이 제각각이기에, 모든 해동검도 단체가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하지는 않는 듯 하다.

    ※참고:무예24기와경당24반에※
    흘러들어간 해동검도단체

    인성문제 가짜들무예단체

    1)무예청박물관단체

    1.해동검도진검동호회
    90년대 해동검도진검베기 성인동호회 회원들
    기아자동차해동검도동아리회원들 직장인 해동검도 동아리회원들 훗날 경당24반 짧은연수를받고 간판만 갈아치움
    2.C도검H도검K도검회사사장들 진검 판매 마케팅및 대회상금 진검베기대회 홍보 부작용 대회상금 전문베기꾼등장
    3.일선 베기장들 행사사업장 장사 이해관계
    부작용 무예정신수련없음 대회 진검베기기술만수련 대회 상금사냥 꾼발생 일부수련자들 베기장에서 술파티 사건 사고발생

    4.※현재활동 진검무예무사단 무과시험 남한산성무예단 무과시험 왜 곡시연 해동검도창작검법시범 해동검도베기시연
    ※전통무과시험왜곡실태 전통무예진흥법병폐※

    2)무사협회단체
    1.해동검도.합기도관장 24반쌍검수련생
    전국 전통문화행사 사업주식회사
    모든 전통문화행사 활동
    2.부작용:해동검도검법시연
    참고로 재독검 왜곡해설및 무예24기
    해동검도 짬뽕시연 고증문제 왜곡
    3.전통행사 시대적 복식 왜곡 백제행사에
    조선시대갑옷출연 각종행사
    해동검도검무팀 전통검무왜곡해석
    소속팀 지무단해동검도 검무팀

    3)한국해동검도 윤자경1세대 검무수련자들
    1.지무단 해동검도 검무단체 세계해동소속
    2.기예무단 해동검도 검무단체 한국해동소속

    4)현재 전통무예 검무시연자들
    1.해동검도단체소속 수련자들이다
    이들 단체은 지금 전통문화 행사등 에서 활동하고있다.
    2.역사는 멀고 돈은가까운 해동검도단체들
    돈에 흐름에 따라 활동한다.
    3.역사.문화왜곡주류단체

    댓글
    돈은가까운협회2020.07.14
    세계검무예연맹
    한국해동검도연합회
    협회소개
    ※검무예※
    검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에서 여러 가지 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검도,검술,도법 등과같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혼용되어 불리어져 왔다.최근에는 검도앞에 제각각의 이름을 붙여 해동검도, 본국검도등 으로 많이 불리어지고 있다. 원래 중국은 술, 일본 도, 한국은 예를 써왔다중국은 무술(검술,창술) 일본은 무도(유도,검도) 한국은 무예(24반무예,궁중무예,검무예)라 불리어져야할 이름이 일제강점기를 통해 들어온 검도,예도와같이 일본의 문화가 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도자를 붙이게 만든 것을 이제라도 바꾸어 불러야하는 이유이다.우리가 검무예를 아무리 잘하고 해외에 나가도 검도 하면 일본 것으로 혼돈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부터라도 민족수난의 굽이마다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구한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검도가 아닌 검무예가 바림직하다.각 단체들이 서로 전통무예를 표방하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이 명칭이라고 본다.전통검무예를 표방하는 단체는 검도가 아닌 검무예로 불리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검무예연맹(해외법인)※

    세계검무예연맹은 검무예 창시자 일성 정복수 선생께서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복원한 복원검무예와 실전 검리에 입각한 실전검무예를 창시하여 우리 정서와 현대에 맞게 계단식 수련과정을 완성시킨 협회이다. 본 연맹은 반만년 역사와 함께한 한민족의 훌륭한 기상과 무예를 오늘날에 복원 전승하여 한국적 검무예 정체성을 지키며 그속에 담겨있는 문화적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 무예의 도덕과 규범을 다시 세우고 검무예의 가치와 철학,검무예의 기법을 더욱 발전시켜 우리 조상들의 찬란했던 검무예를 전승 보급 하고자 한다. 세계검무예연맹은 세계법인으로 해외 여러나라에 보급되고 있다.

    ※한국해동검도연합회※
    한국해동검도연합회는 한국법인으로 정복수선생님의 검무예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한국법인 협회이다. 수련방식은 유급 초단 과정은 해동검도의 양생법과 화려한 수련과정으로 되어 있으며 고단자 과정은 검무예의 실전에 입각한 계단식 수련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해동검도연합회는 해동검도의 장점과 검무예의 장점이 하나가된 우수한 협회이다. 2013년 1월 1일 부로 경찰 공무원 가산점 인정단체로 선정된 협회이다.

    ※참고로: 이단체는 일본 이도류 단체였다
    일명 지관설립 장사 하는 유령단체다
    단증장사.지도자연수장사.지부장장사
    협회심사비장사.무술종교단체인가?

    무예생태계에 교란암적단체인것이다.

    댓글
    24반2020.08.03
    헐~ 그럼 무예24반.무예24기분들이 해동검도수련자분들과
    같이 활동중인가요?

    댓글
    해동검도무예24기2020.04.01

    해동검도란 정조14년 (1790)에 완성된 무예도보통지(조선 후기 무술 교본)를토대로 복원, 재 창조한 무예이며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검도 입니다.또한 해동검도는 평생운동 으로 할 수 있으며 아버지 어머니 등 온가족이 할 수 있는 가족무예이기도 합니다.

    출처:네이버지식.해동검도광고문구

    전통성세탁.역사왜곡.자본주의 병폐

    2020-11-22 수정 삭제 신고

    의견 0
  • 전통무예ㅇㅇㅇ자유게시판 삭제글 내용


    가뜩이나 망해가는 무예판에서 부디 서로를 지켜주시는 모습
    그래서 영암쪽 해동검도단체 무예24기시범단체간 서로 지켜주기...?

    댓글참고

    무예24기속해동검도시범단의무예시범의왜곡된 무예오류 심각 한 예로 낙악읍성해동검도 시범전통무예설명왜곡 해동검도쌍수검법이 무예24기로왜곡설명 수원24기공연표절 아마도 해동검도단체와 개인적 인연으로 공연물이 같을수도 그래도 올바른 무예시범을 해야하고 감시하고
    올바르게 가르쳐야 할것같다 해동검도의 특이한단체습성때문이다.
    항상그래서 해동검도는 무예계의 사이비단체라고하는것이다
    낙악읍성무예시연
    일부 해동검도검법 왜곡시연
    참고영상
    ※참고영상 유튜브검색
    솔선수범TV
    전통 무예 시범 직캠(낙안읍성)
    게시일: 2019. 12. 17.
    낙안읍성에서 열렸던 기예무단무예시범 입니다.

    기예무단시범 영상삭제.비공개함
    https://m.youtube.com/watch?v=wYYnxyy3HHE
    https://youtu.be/DsQaJqA_8QM
    https://youtu.be/MjCoWZ3_FNY

    무예24기 수원야조공연 타지역해동검도 단체검무시연
    수원지역에도 해동검도가 있는데 구지 타지역해동검도단체
    지역간 정치.이념유착인가? 역사는멀고 정치는 가깝다

    그래서 삭제했나

    2020-11-22 수정 삭제 신고

    의견 0
  • 전통무예게시판 삭제글


    계속 서로에게 상처주는 글을 올리시면...

    자유게시판을 폐쇄하겠습니다.

    -운영자-

    * 가뜩이나 망해가는 무예판에서 부디 서로를 지켜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다른 것 다 필요없이 서로 쪽팔리지 않게 삽시다. 그 글을 귀하의 부모님이나 자식이 본다고 생각하시길...

    답변:댓글

    1.가뜩이나 망해가는 무예판에서?
    기사내용:→ 전통무예진흥법 제정 후 단체 난립과 이전투구가 더 악화됐다. 전통무예 분야의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 많을 때는 한 달에 한두 개씩 새로운 무예단체들이 생겨나고, 협회 이름만 바꿔 승단 심사비만 챙기는 곳도 허다하다”고 전했다.국궁 시범을 보이는 ㅊ×× 전통무예연구소장. 그는 무예××기를 수십년째 연구하고 수련해온 무예사 전문가이지만 전통무예 가 남발되는 세대를 우려한다.이는 문체부가 14일 발표한 전통무예진흥 기본계획에 포함된 실태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각종 연맹·협회만 현재 231개나 된다. 합기도는 관련 단체가 15개, 해동검도도 9개다. 소속 도장 하나 없이 지부만 있는 무늬만 연맹·협회도 적잖이 눈에 띈다. 대구에 도장 하나만 있는데도 명칭은 ‘국제○○○연맹’인 무예 단체부터 배출 지도자 18명에 회원 60명인 단체가 ‘세계□□□□연합’과 같은 간판을 내건다. 이렇다 보니 전국에 1만 6312개나 된다는 도장이 제 구실을 하는 곳인지 의심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박사님기사내용입니다*

    2.부디 서로를 지켜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말 전국에 1만 6312개나 된다는 도장이 제 구실을 하는 곳인지 의심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부디 서로 진정한 전통무예을 지겨주시는 모습을보여주시길 정치유착.이권유착.지역간 이념단체유착 정말 부디 이념.타단체 떠나서 순수전통무예을 지켜주시길 부탁드림

    다른 것 다 필요없고 정말 이시간에도 혼자서 전통무예 수련하는 선.후배 제자들 앞에서 서로 쪽팔리지 않게 진정!온고지시하게 삽시다.이글을 귀하의 제자나 동요가 본다고 생각하시길...

    그리고 죄송하이다
    마음에 상처가 있다면
    헌디 그래도 여기가 마지막 전통무예
    한줄기 희망이라 생각해서 쓴 것이요
    인생사 다~ 공수레 공수거 인 것을
    나도 이젠 이참에 전통무예협회 장사나
    해야겠어 주변사람들 고생그만 시키고
    아무튼 미안하이다 이젠 그만해야것다.전통무예
    허망하고 허망해

    2020-11-22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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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예판

    ※무예계 분파 요인※

    합기도 단체들은 무려 50여개로 분파로 나뉘어 사단법인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서로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1959년에 태권도의 경우 최홍희에 의해 무술단체가 통합된 적이 있다. 당시에도 무덕관을 비롯한 몇 개 단체가 통합에 문제가 있었고, 아직도 대한태권도협회와 다른 노선을 걷는 태권도단체도 있는 것을 보면 무술단체들의 분파성은 뿌리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첫째, 무술단체의 분파 형태는 몇 가지의 내, 외부적인 요인으로 정리할 수가 있다.

    무술단체분파적인 현상이 무술내용의 기술적 체계에 의한 분파라면 어느 정도 이해되는 면도 있고 무술의 속성상 자연스러운 면도 있다. 무술의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보다 더 나은 기술체계로 무술이 재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기 단체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하고 자기 단체의 기술적 체계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행위는 경쟁이 있는 경우에 보다 발전적인 현상이 될 수도 있다. 택견단체와 해동검도단체의 경우에 기술적인 체계를 가지고 서로 다름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일부 있기는 하다. 택견의 경우 문화재 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 택견단체들의 조직이 비대해지고 있고, 해동검도의 경우는 규모가 확대되면서 분파되기 시작해 지금은 합기도와 유사한 분파형태를 보이며 해외에도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분파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원류에 대한 법적논쟁이 있어 해당무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기술상의 분열과 분파이기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둘째, 이권과 관련된 갈등으로 나타나는 내부적인 요인이다 .

    무술단체의 이권은 대부분 하위단체나 하위도장의 장악과 관련하여 승급 및 승단 시의 심사비 횡령과 각종 자격증 남발로 나타난다. 이권과 관련한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때의 갈등이 보편적인 상도덕행위를 넘어서서 윤리적인 문제로 나타날 경우에는 대단히 치명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윤리도덕을 강조하는 무술계에서 서로 도덕성 시비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단체들은 대부분 협회와 연맹이라는 단체운영이 아닌 도장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운영한데 문제가 있다. 가장 많은 분파를 보이고 있는 합기도류와 해동검도류의 경우는 각 지역별로 법인화를 추구해 전국단체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시도 총관장의 성격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법인화를 통한 분파의 특성은 대부분 승급과 승단에 대한 이권문제가 지배적이며 기술체계는 유사한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법인의 단체형태지만 운영은 총관장과 다를 바 없는 관(館)중심으로 운영으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거나, 지방자치단체의 축제가 증가하면서 무예단체의 도장교육에서 벗어나 시연단이나 예술단형태로 운영되는 단체들이 많아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셋째, 정치권과의 밀착에서 학습된 외부적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무술단체는 정치권과 대단히 밀착되어 있고, 2008년 3월 전통무예진흥법 제정이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이는 무술의 특성상 일정부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무술관계자들이 과거 권력의 하수인 노릇한 경우는 일제시대에도 상당히 많이 있었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제1공화국에서부터 현재까지도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무술경관들이 국회에서 야당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 좋지 않은 일을 하여 정치깡패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근래에는 총선이나 대선에서 특정후보들의 보디가드로서 인원동원과 요인보호라는 임무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의 행태를 학습하여 정치적 분파주의가 나타나면서 무술계를 정치판으로 만든 면이 너무도 많이 있다. 또한 지역정치인들이 도장을 운영하는 관장이나 사범들의 힘을 빌어 지역민과 접근을 시도하는 사례도 있고, 이런 관계는 당선이후에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거나, 선거이후 신생단체를 만들어 각종 기금을 받는 특혜의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더욱 큰 문제는 무술단체에 ‘총재’나 ‘명예총재’라는 직위로 참여하는 정치인들의 경우 무술단체의 실제적 등기임원이 아닌 얼굴마담의 역할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무술단체에서 정치권의 유력인사를 영입하는 경우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에 가장 많이 있으며, 여당의 정치인을 선호하고 그들을 유입해 정치계와 다를 바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의도를 가지면서 정치인들의 파당행태를 학습하여 정치권 이상으로 정치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넷째, 정부의 정책의 변화에 따른 외부적 요인이다.

    1989년 사회체육지도자(현, 생활체육지도자) 제도를 실시하면서 무술종목을 채택하고 1990년대 후반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의 행정규제 완화, 그리고 2008년 전통무예진흥법 제정과 같은 외부적인 정책변화에 따라 무술단체들의 이합집산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무술단체들의 분파주의는 무술 그 자체를 위해서도 대단히 좋지 않은 현상이다.

    단체운영과 관련된 협회장과 관련 보직자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단체가 분열되는 모습은 영문도 모르는 무술수련자들에게 크나 큰 피해를 주고 있고 특히 스승과 선배를 존중하는 무술의 특성과 자기 무술의 권위와 무술의 역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자기 무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자기 부정이라는 논리적인 모순에 빠지게 하기도 되면서 무술의 본질과 무술계의 권위와 질서를 파괴시킨다. 또한 무술단체들 간의 법정다툼은 무술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현재 분파주의를 일으키는 협회장들의 면면을 보면 과거 타무술이나 타단체에서 주요보직자로서 사무총장 혹은 사무국장 등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협회를 운영하고 조직을 장악하는데 있어서 정치인들의 행태이상으로 과격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무술인들이 정치인을 답습하고 정치인의 무술계 개입이 무술이 지닌 본래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 등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2020-11-22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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