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무예 수박의 계보-2

2018-12-12 / 조회수 : 180 신고

구한말 수박의 행위자들이 연로하여 모두 작고를 하였다. 민족문화유산을 잇고 후대에 남기는것은 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것이다.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보존전승해야 한다

<글 = 사단법인 대한수박협회 송준호 회장>

노란색테두리 있는 곳이 고려궁궐터인 만월대이다. 

송창렬 옹께서 연습하시던 곳이라고 한다. 그 아래로 고동색이 일본소학교 다니다 전학가신 만월국민학교(당시 조선아이들이 다니던)이고, 주황색이 개성의 홍삼정이다. 이곳에 뒤뜰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천일룡선생께 배우셨다고 한다. 

생전에 집필중인 송창렬옹, 평소 작은 수첩들에 기술들을 적어서 후학을 지도하기도 하셨는데 지금은 분실되었다. 그 이후 직접 구술하고 본인이 자필로 정리한 몇장의 자료가 존재한다

파란색은 2002년 작고하신 오진환 할아버지께서 개성역에 근무하실 때 명성황후 조카 민완식 선생을 뵌 곳이다. 초록색은 개성의 남대문인데, 송창렬 옹의 스승이신 천일룡 선생께서 사시던 남문통에 있었다.

일제강점기 개성 남문통과 만월대

옆의 하늘색은 선죽교이며 민완식선생께서 백범김구선생과 함께 자리하시기도 했던 곳이다. 개성은 근대까지 수박의 마지막 맥을 이은 곳 중 하나인 역사적인 장소다.

기무라(당시 개성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이름으로 산이 그 사람 소유라 기무라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산과 그 안쪽 여우골이라는 골짜기 그리고 개성시내 홍삼정 뒤뜰에서 주로 배우셨다. 

태권도 국제사범 범기철(미,아틀란타신학대 박사)은 지난 2002년 수벽의 시대적 가치 주제발표를 하며 "개성(송도)에서 일본침략시대에 수벽을 목격한 오진환씨(개성시 남산동 출신)가 현재 서울에 살고 있어 수벽에 대한 중요한 증언을 들을수 있었던것은 수벽의 전통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가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중요 무형문화재인 필봉굿에서도 부분적으로나마 수벽의 원형을 엿볼수 있다. 현재 김해에 거주하고 있는 수벽의 명인 송창렬옹은 수벽의 원형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데 송옹의 수벽은 택견의 동작과는 현저히 다르다.

故 예용해 선생(문화재위원 역임)께선 “수박희를 우리말로 수벽치기라고 하는데, 젊었을 때 서울의 동대문 근처에서 수벽치기를 한다는 노인 몇 분을 만난 적이 있다”면서 그들의 말에 따르면 손을 주로 쓰는 기술이고 대충 이런식으로 하더라 하며 흉내 내곤 하셨다.

범기철국제사범과 고,송창렬옹, 김학현선생(전,중국 장백현문화관 관장)

조선일보에서 특집기사를 싣고자 한국을 방문한 김학현선생에 시연을 요청, 말 그대로 고대무예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족으로 중국 전역에서 유명했던 김씨형제분, 중국 문화부에서는 이들이 하는 수박을 무용화한 수박춤을 2006년 중국 비물질문화유산(국가지정문화재)으로 추진했으나 한국의 사)대한수박협회에서 가로막고 그 자료들을 문화재청에 전달했으나 분실했다고 하며 찾을수가 없다.

전통무예 수박 미공개사진, 문화재청 전달 후 분실

전통무예 수박을 무용화 한 수박춤이다. 시연자는 중국에서 유명했던 민간예인 김학천과 그 동생 김학현(전, 장백문화관 관장역임) 두분이신데 이 무용은 고대 우리 전통무예인 수박의 몸짓에 장단을 넣고 무용적으로 표현한 원시적태양의 발생학적으로 무용의 원형격에 속하는 귀한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2007년 한국의 문화재청에 자료를 전달했으나 그 뒤 어디 뒀는지 찾을 수 없다는 해괴한 답변만을 들었었다. 이 시연을 한 김학현선생 생전에 중국 문화부에서 중국 국가급문화재(중국명칭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 시켜 주겠다는걸 가로 막고 한국에 가져다 준것이지만 문화재청이 분실을 했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다.

 

사)대한수박협회 관계자는 "돌아가신 선생님 사진입니다. 생전에 김학천, 학현 형제분들이 백두산을 뒤로하고 시연하는 모습인데 김학현선생님도, 오진환할아버지도,, 송창렬옹께서도 별세 하셨습니다.

 

이제 선생님들 자료를 정리하고 추모하는 일을 해야할듯 합니다"라고 했다.

 


  •  수박춤은 현대적 기준으로 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무술과 무용,유희등이 행위자의 목적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던 민속이라는것을 감안할때 부분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위 기능자분들은 무용과 무술을 딱히, 구분하시지도 않았었다.

 

동생인 김학현선생은 무용이라 했으나 그 스승격인 김학천선생은 무술이기도 하고 무용이기도 하고,,, 라는 얘기를 중국 연변에서 발간되는 잡지에 개제하시기도 했다. 사진과 영상 외에도 독무, 둘이하는 대무 그리고 단지 무용적 표현말고도 서로 치고받는 박격적인 무술적 행위를 많이 하셨다.

 

권태훈옹(1900년~94년 작고)께선 "수박이란 주먹을 쥐는 것이 아니라 편 상태로 재빨리 뻗으며 상대방 역시 손을 내밀어 부딪히는 식으로 훈련한다. 흔히 곡조를 띤 소리를 질러가며 박수도 쳐가며 행한다. 두 사람이 서로 손바닥을 부딪혀가며 노는 놀이의 한 형태로서 민간에 전해 내려온다"고도 했다.

전남광주 수박치기할머니, 작고하셨다. 유희적인 것이나 기본이 송옹과 만주에서 전래된것들과 대동소이한것이 중국 상해체육대학 박사과정의 이에 의해 확인이 되었었다.

해방전까지 개성시내에서는 돌싸움/석전도 행해졌는데 개성토박이의 증언으로는 아래와 같다.

개성에는 송창렬옹의 수박(치기)외에도 1963년 북한민속학자 계정희에 의해 발굴된 택견,이란것이 있었고 석전도 행해졌었다.

초등학교 일 이 학년 때이니 解放되기 5-6년 전이라 기억된다.

陰曆 正月이였다萬年橋 옆 옛날 訓練院 자리 밭부터 야다리 근처까지 약 六百미터에 걸처 두패로 나뉘어 돌 쌈을 했다나는 겁도 많고 아흡살 어려서 가슴 두근거리며 맨 뒤에 머리 숙이며 따라다녔다.

緊張과 恐怖가 어울리는 戰爭지금 생각해보니 怨恨이나 惡意가 아니라 그냥 놀이 兼 담력를 가리는 스포츠같은 하나의 게임이였다.어찌 보면 아주 危險한 놀이지만 서로 심각하고 진지한 싸음이다그리고 크게 다치거나死亡하는 일은 없었다.

대개 北部패와 南部패로 갈려서 大將은 정해진게 없고 서로 對峙중 앞으로 나와 던져라” 하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한 팀은 보통 2.30名程度고 많아야 4.50을 넘지 않았다. 전은 길어야 한두 시간이면 결판난다.

수박의 계보관련 자료들은 적지가 않으나 지면관계상 줄이며 중국 연변문학회 김룡칠선생의 詩- "수박춤" 을 소개한다.

연변 문예지인 "장백산" 1997년 6월호에 소개 된 수박춤에 관한 시이다.
 
p132, 시문학 <고향풍정>중...
 
수박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 추던 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 꾸민 춤
아득한 세월의 고개 넘어 또 넘어
색바램도 없이 매듭을 이어 온
태고적 삶의 희열 그대로인가
한마당 펼쳐지는 수박춤 -
 
웃통은 홀랑 벗었네
머리동진 두건은 생나무껍질
꼴풀로 빚은 외통몽당치마
남성다운 그곳만 살짝 둘렀네
몸단장은 이러면 다였네
이래야 제멋이 난다나
이래야 옛 스럽다나
 
당 - 당 둥둥당
둥당둥당 둥둥당
북소리도 아니네
장고소리도 아니네
두 손 잡히는대로
두둘기는 나무통소리
둥근 소리 색깔도 맑아
한가슴 정감을 터치는
수박춤, 수박춤 - 
 
어깨도 으쓱으쓱 흥이나서
오금도 건들건들 건들어져서
슬쯕살짝 손벽치기
찰싹철썩 앞뒤가슴치기
부드럽고 조용한 춤가락은
어머니 자장가의 손길이런듯
텁텁하고 탈아엮는 춤률동은
해탈의 욕망이 타번지는듯
 
생나무 뽑던 그손 그대로인가
날고기 뜯던 그손 그대로인가
번개불 잡던 그손 그대로인가
굵직굵직
큼직큼직
단내 나는 춤장단
광기 오른 춤가락
벌겋게 단 가슴팍이 쇠소리나네
구리빛 잔등으로 해달이 미끌어지네
 
오 - 
야성이 연소된 색채미
힘의 환상적 조형미
육체 동태의 률동미
각성된 아름다운 정신세계여
조상들 세상살이 한마당 펼친다
수박춤 한마당
한마당 수박춤 - 
 
김룡칠선생의 시 작품에는 이 외에도 "겨울밤 숨결, 시골영령, 향긋한 추억"등 다수가 있다. 이 분도 작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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