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쓰레기도 문화재라 해야하나?

2018-01-31 / 조회수 : 4,594 신고

토론주제는 제목과 같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종합선물세트,다!


부끄러운것은 사실을 호도, 기망하고 검증을 회피하는 측과 부정한것을 알고도 침묵하는 이들에 있는게다.


구정도 다 와 가는데,,, 쪽바리들이 참, 좋아할 일이다!


이런걸 자칭, 민족무예라고 국민들을 기망 해 왔으니,,, 독립열사들, 께서 지하에서 탄식하시지 않겠는가


지정당시 조사자가 겁박된체 위에서 시키는데로? 보고서를 썼다질 않나

그 이후, 내막을 아는 이들에 의해 수십년간 역사를 왜곡, 문헌부분발췌, 누락 인용등으로 지속적인 기망을 해 속여 왓고

계보를 날조 햇고, 친일잔재를 우리 전통문화에 이식을 시켜놨다!

유네스코 국제사회 기망은 서비스인게다.


이런, 쓰레기를 우리 문화재라고 세금으로 지원해야하는가?


문화재청에서는 등록이 어떻니, 행정이 어떻니 하고 조사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전국민들이 기망을 당한 상태라 자신들이 기망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있다.

이미 기망 당한상태니 말이다.


여기에 책임 있는 이들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책임을 져야한다.


쓰레기를 문화재라 하는것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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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를 읽어보면 문화재 택견 지정보고서가 왜? 어째서??? 조사자가 생전 증언으로 겁박되었음을 얘기했는지 알수 잇을게다.


고구려가 어떻고? 해괴한 소리들을 짜집기 해서 보고서가 쓰여 졌으나 그건 군사정권하 문화재청(문화재관리국 등)의 외압에 의한것이었지 조사자의 자유로운 전문적 식견에 의한것이 아니었다는게다.


보고서와, 금년 문화재청 산하 국립무형유산원에 정보공개청구법으로 공식답변 된것을 비교해 보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문화재 택견 소재지인, 문화재청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충주시청 문화예술과의 공식답변도 같다!


자료 자체가 없다!부존재함을 수개월에 걸친 국민신문고, 정보공개청구, 등으로 공식확인이 되엇다.


이런? 쓰레기를 우리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지 독자들이 판단하시기 바란다.


지속적, 전면적으로 국내외 문제제기되고 있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를 거친 우리 국민들이 해서는 안 될 일본문화를 베껴 이식을 한것을 문체부에서는 영구보존종목이라고 한다,,,


친일잔재를 국고 혈세로 영구히!!!!!!!!!!!!!!!!!!!! 보존??????????????????? 한다고


군사정권의 부산물, 조사자를 겁박? 일본문화를 이식??? 이런걸 수십년동안 우리 전통이라고 국민들을 호도하고 기망한게 실체다!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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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왜곡> 사실로 밝혀짐- 국립무형유산원 자료부존재 공식확인!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부존재 공식확인! 충주시 문화예술과 자료부존재 공식확인!


2 계보날조> 사실로 밝혀짐-문화재청 권고 문화재택견측 홈페이지 계보메뉴 삭제조치됨! 충주시 운영 택견원 사이트 계보메뉴를 문제소지가 있다 충주시청에서 삭제했음.


3 친일잔재 사실규명이 되고 있습니다!


친일잔재라는 근거확인은 어렵지가 않다. 관련 논문들이 다수가 있으며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에 수록 된것을 우선 제시한다. 체계화니 근대화니 발전, 현대화, 스포츠화 등은 주관적 이해로써 사실관계와는 별개사안인게다.

우리 전통문화에 체계가 없는게 아니다. 체계가 없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겠는가?

미체계,비체계가 아니라 전통적인 체계란것이 있게 마련이나 관점의 차이, 관찰자의 주관으로 막연히 근대화니 현대화니 하는것은 지양 돼 마땅하다 본다.

객관적 사실관계로 문화재청 등록76호 택견은 일본문화가 이식된것이 명확하다.

가라데도(공수도)협회장, 전,가라데도 국가대표팀감독, 가라데도관련 대학교수들의 얘기가 녹취되어 있다.


신한승택견의 학습체계

Learning Systems of Shin, Han-Seung's Taekkyeon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8권 제8호, 2008.8, 235-243 (9 pages)
초록
본 연구에서는 신한승이 택견을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하여 어떻게 체계화하고 구성하였는지를 살펴보는데 초점을 맞추었고, 다음과 같은 결론과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 근대 택견의 전수자로 유일한 송덕기 택견의 기술 구성은 일정한 체계가 없는 낱기술 중심의 놀이형태로 전래 되었으나, 신한승에 의하여 체계적인 구성을 가진 무예로 발전하게 되고, 급기야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둘째, 신한승은 낱기술로 전래되어 오던 택견을 체계화 하면서 유도, 검도, 합기도, 태권도, 가라테의 수련체계와 기술을 일부 차용하여 근대화 시켰다. 이 과정에서 송덕기 택견이 원형대로 전수되지 않고 변형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신한승은 정통 택견에는 없던 급수 구분제도와 실기심사, 태권도의 품새에 해당하는 본대뵈기 12마당 등을 만들고, 스포츠화를 추구하여 현대적인 학습체계와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택견의 원래 형태와 기술변천 및 구성에 대한 시대적ㆍ환경적 윤곽을 재조명 할 수 있었으며, 전통화 과정에서 혼재되고 있는 각종 택견 단체들의 논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참고 자료를 제공할 수 있었다.

This research show how Shin Han-Seong make up Taekkyeon to register to intangible cultural assets, and found next conclusion and meaning.
First, skill organization of Song Duk-Ki Taekkeon that is only one modern Taekkeon's initiator have been transmitted for a piece of skills of playing figure which don't have regular system. But Taekkyeon which have regular system have been developed by Shin Han-Seong, finally Taekkyeon is approved to intangible cultural assets. Second, Shin Han-Seong modernized Taekkyeon by borrowing training system of Judo, Fencing, Hapgido, Taekwondo, Karate. But people criticize that Song Duk-Ki Taekkeon is not initiate with original thing. Third, Shin Han-Seong made the grade classification and practical technique screening, Bon-Dae Buigi Twelve part like Pomse of Taekwondo (there is no for traditional Taekkyeon). And he contributed to popularization and modernized learning system by pursuiting sportization. Through this research geared up Taekkyeon's original shape and generational outline about skill transition or composition. And it gave important data for understand about Taekkyeon controversy which scattered.
목차
요약
Abstract
Ⅰ. 서론
Ⅱ. 택견의 기원과 동작원리
Ⅴ. 결론
참고문헌
저자소개

신한승으로부터 택견을 배운 이용복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아래와 같이 신한승(문화재 택견)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역사,어원 부분 등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자료부존재 답변이 정보공개청구로 되었으나 그와는 별개 문제이다)

백과사전

  • 백과사전 검색결과 썸네일
    택견 
    (태껸)

    우리나라 고유의 맨손무예. | 개설 여러 문헌에는 수박(手搏)·수박희(手搏戱) 등의 한자로 표기되어 있고 『국어사전』에는 “태껸”으로 표기하였다. 일반적으로 사전적 해석은 “발로 차서 쓰러뜨리는 경기로 각희(脚戱)”라고 한다. 주로 발로 차거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련 과정

전통택견= 1910년대의 수련체계는 품밟기 등의 기본수를 개별적으로 익힌 다음 두 사람이 겨끔내기로 공방을 하는 ‘메기고 받기’가 중심이었다.

메기고 받기는 한 걸음 가량 거리를 두고 하는 ‘얼러메기기’와 상호간에 무릎을 맞대고 하는 ‘맞대걸이’가 있다(이러한 명칭은 신한승 이후에 만든 것이며 송덕기는 그냥 ‘연습’이라고 함). 그리고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나무에 매달아 놓고 발길을 익히고, 나뭇둥치를 차기도 하고, 난간이나 나뭇가지에 손가락을 걸어 매달리는 신체단련을 하였다.

연습의 맨 마지막에 가서 실전과 같은 ‘겨루기’를 연습한다. 연습은 아침 저녁으로 하는데 주로 개울바닥이나 공터, 동산의 풀밭에서 하였다.

가라테 도용= 신한승이 재구성한 수련체계는 혼자익히기를 서서익히기와 나아가며 익히기로 구분하였고,메기고 받기를 얼러메기기·마주걸이·마주차기·막음질 등으로 가지 수를 대폭 늘렸다.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메기고 받기의 기본수를 순서를 정하여 정형화하였다. 겨루기는 대걸이, 맞서기로 단계를 두고, 따로 겨눔수를 연습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신한승 자신이 창안한 본때뵈기(앞엣거리 8마당, 뒤엣거리 4마당)가 수련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본때뵈기는 기본수를 연결조합하여 정형화시킨 것이다. 종전의 겨루기 중심 구조의 경기적 택견이형식위주의 가라데·태권도·우슈 등과 같은 근대 동양무술적 구조로 전환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태권도의 경우, 가라테 이후에 정립된것이고 우슈는 가라테와 달리 품세(가라테도 가타)에 해당하는 투로를 중심으로 수련되지 위에서 적시된것마냥 가라테도의 수련체계를 베낀 문화재 택견과는 같지가 않다)



[Daum백과] 택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Daum백과] 택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신한승이 재구성한 수련체계는 혼자익히기를 서서익히기와 나아가며 익히기로 구분하였고, 메기고 받기를 얼러메기기·마주걸이·마주차기·막음질 등으로 가지 수를 대폭 늘렸다.




[Daum백과] 택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품계제도

수련정도는 단(段), 급(級)으로 구별한다. 이 단, 급의 품계를 사정하는 것을 심사(審査)라고 한다. 원래 품계제도가 없었으나 학습의 체계적 전수와 대중화 방안의 일환으로 (이는 사족에 불과하다,. 객관적 사실관계를 도출하는데 불필요한 주관일 뿐이다)


문화재 택견에서는 단과 급을 동과 째라고 이름만 바꿔놓고 가라테도의 품계를 그대로 도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관계다!


1970년대 중반에 신한승이 일본 무술의 제도를 도입해 적용시켰다.


현재 문화재청 등록76호 택견의 역사왜곡과 계보날조가 사실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시민단체에서 정보공개청구법에 의한 정보공개청구에 공식적으로 택견과 고구려, 삼국시대, 고려무인들과의 자료가 부존재하다고 공식확인 하였으며 문화재 택견의 계보로 알고 있던것이 날조된것으로 문화재청 사무관이 보유단체측에 권고, 보유단체 홈페이지에서 계보메뉴를 삭제조치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충주시에서 운영하는 택견원 홈페이지 계보메뉴 삭제조치


문화재 지정시 역사성은 그 종목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대한것인데 지정 당시 조사자를 겁박해서 역사왜곡을 목적으로 한 83년 택견의 문화재 지정은 어둡고 힘들었던 80년대 군사정권 하, 문화재 정책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대사건이자 대표적인 역사,문화범죄행위라고 여겨진다.

문화재청 등록 택견의 역사왜곡이 사실로 밝혀졌고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근거 자료가 부존재하다는 확인까지 되었다.

http://www.iha.go.kr/main/unesco/getWUnescoView.nihc?unesco:id=13



보공개 청구외(부존재) 통지서

청구정보

수신자

[수신자] (48946) 부산광역시 중구 

접수일자2017.10.23접수번호4312446
처리기관문화재청통지일자2017.11.01
청구내용국립무형유산원에 질의합니다. 

귀 원, 홈페이지에서 무형유산>유네스코등재목록 중 택견항목을 보면 

"고구려 고분벽화에 택견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정보공개 하십시요! 

"삼국시대부터 이미 택견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하시는김에 이것도 부탁드립니다. 

"고려시대에는 무인들 사이에서 성행하는 무예로 발전되었다-고려 어느 무인이 택견을 했습니까? 
-근거요청 합니다. 

문화재청에 책임전가하지 마시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써 자체 답변 바랍니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검토중이며 그동안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이트에서 택견소개를 중단하겠다고 민원답변이 왔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자체검토후, 문화재청과는 별개로 정보수정하겠다고 합니다. 

귀 원에서도 책임 있는 모습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청구인의 요구에
대한 설명
귀하께서 정보공개 요청하신 자료는 
희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직접 생산, 접수된 
사실이 없어 정보 부존재 자료임을?????????????
 알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처리기관 정보

처리과명조사연구기록과문서번호조사연구기록과-1852
기안자직위/직급
검토자


직위/직급
협조자직위/직급
결재권자


직위/직급
주소302-701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둔산동, 정부대전청사) 1동8층
전화번호063-280-1492팩스번호053--
전자우편nrich_go@korea.kr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택견 내용도 사실무근, 허위로 도배가 되어 있음이 정보공개청구에 의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답변을 받아 공식화 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택견 내용이 사실무근으로 도배되어 있음이 정보공개청구법에 의한 정보공개청구로 공식확인 되었다. 한국중앙연구원은 교육부 산하...



본 메일은 2018년 01월 04일 17시 55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정보공개 청구외(부존재) 통지서
접수번호4422494
제목명확한 근거제시 바랍니다
청구기관충주시
처리자


처리결과부존재
귀하가 신청하신 '정보공개 청구 요청'에 대한 처리 내역은 위와 같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충주시 접수처 또는 정보공개시스템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 청구외(부존재) 통지서

청구정보

수신자

[수신자] 

접수일자2017.12.22접수번호4422494
처리기관충주시통지일자2018.01.04
청구내용민원답변은 문제해결을 위한 진정성이 있다 보여지지 않습니다! 

정보공개청구에 따른 존재 및 부존재로 명확한 답변 바랍니다. 

타기관에 책임전가하지 마시고 

택견원은 충주시에서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곳인데 
그 곳에 사실무근,허위정보로 국민기망하는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 

현재 홈페이지 리뉴얼은 얘기하실것 없습니다. 

기존, 기망부분에 대한 정보공개요청합니다! 

아래 사항에 근거제시를 객관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근거제시를 못할때는 충주시장 및 관계자들이 공개사과 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노력을 해야 마땅합니다. 

귀 시로 인해 기망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 

충주시 택견원사이트http://www.taekgyeon.net/ 택견의 정의>택견의 역사 및 유래 

택견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고구려시대부터 전승되고 있는?=근거 대십시요! 

한국 무술의 뿌리?=근거 대십시요! 

3 당시 광활한 대륙을 지배하던~~~ 고구려인들의 활기찬 기상의 원천이>>>택견~이 있었기 
때문?=근거 대십시요!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어디에 택견 기록이 있는지 공개하세요! 

재물보 탁견은 보통명산데 보통명사 고유명사 구별도 못 하십니까? 

조선상고사 어디에 택견이 나옵니까? 덕견이가 지금의 택견입니까? 근거 대세요! 

동국여지승람 어디에 택견 기록이 있어요? 

택견이 호국무예로써 장려되었음을 알 수 있다?=근거 대십시요! 

조선상고사 선배제도와 택견이 무슨 관계가 있냐 이 얘깁니다! 

조선상고사에 덕견이와 수박은 구별되어 신채호선생께서 저술하였는데 

덕견이가 택견입니까? 근거 있습니까? 

10 고구려,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었던 저력! 용감성! 
/그것은 바로!!!/ 택견과 같은 무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근거 대십시요! 

11 고구려때부터 시작되었던 택견?=근거 대세요! 

12 택견이 신라시대 화랑도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13 택견이 삼국을 통일하는 근간이 되었다?=근거 대십시요! 

14 고려때는 호국무예로써?=택견이 고려때 존재했다는 근거 대세요! 

15 택견이 언제 무과시험 과목이었던 적이 있었냐 근거 대세요! 

16 국가차원에서 택견을 장려했다?-어느 국가 말입니까? 

17 같은 사이트 페이지 [택견의 명칭] 부분에서 

정조때 재물보에 변(한자략),,, 탁견=이것을 풀이하면 수박을 변이라하고 각력을 무라하니 지금의 
탁견과 같은 뜻? 

재물보의 같은 책, 같은 페이지에 한자 수박을 우리말, 우리글(한글)로 슈벽이라 해야 한다고 
해 놨는데 

뭐가 한자 수박이 탁견입니까? 

왜? 

인용을 하며 누락해서 부분 발췌해 기망하냐 이 얘깁니다! 

18 신채호 선생께서 조선상고사에 덕견이라 쓴건 인용항목이 없어 그 누구도 덕견이가 뭔지 
알수가 없는 작금에 

덕견이가 택견입니까? 

19 같은 사이트 페이지 [택견의 어원] 부분에서 

택견이라는 말은 /삼국시대에 존재/하여 오늘날에 전래된 순수한 전통어이다?=근거요청 

20 우리말 글자가 없었던 시대에 있어서~~ 한문이 이땅에 들어 
온 이후! 
그 어느? 시기에~택견을 한자로 차자해 탁견(한자략),, 이두로 기록 

=근거 대십시요! 

21 고려사 열전 두경승에 보면, 수박이라는 놀이는 천박한~= 
그 우리말 명칭인 택견? 근거 대세요! 

청구인의 요구에
대한 설명

귀하께서 정보공개 요청한 자료는
  
사족일 뿐이다! /충주시에서 생산 접수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되어/

???


충주시에서 운영하는 택견원과 충주무술박물관의 택견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인데????????????

정보공개청구법에 의해 충주시청 문화예술과에서 답변된것으로 상기 내용들에 대한 근거제시를 수차에 했으며 그에 대한 답변이

아래와 같다!


(충주시에서 생산했던? 접수를 받았던 아니던 무관한게다!

정보공개 요청에 법에 의해 /근거제시를 못하고 있다/

근거자료가 부존재하다는 것임!!!

사실관계 호도는 곤란한게다!


 정보부존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처리기관 정보

처리과명문화예술과문서번호문화예술과-285
기안자


직위/직급


검토자


직위/직급


협조자직위/직급
결재권자


직위/직급


주소27339 충청북도 충주시 으뜸로 21 충주시청 (금릉동) .
전화번호043-850-5982팩스번호02--
전자우편

sjs9066@korea.kr


군사정권하에? 조사자를 겁박해서? 역사를 왜곡하고? 특정한 방향을 설정해,, 부정하게 등록시켜 우리 대한국인들의 자긍심을 짓 밟은 대표적인 문화범죄 케이스가 바로 문화재청 등록76호 택견인게다.

이는 명백한 사실관계로 현재 문화재보유단체 측에 공개검증을 요구하고 있으나 입도 떼지 못 하고 있다.

자! 이제,, 대한국인의 자긍심을 회복하자!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택견은 지정당시 일본의 무도인 가라데도(공수도)의 수련체계, 수련과정과 가타(품세)체계까지 올 곧게 베낀 사쿠라중에도 사쿠라가 실체다!

문화재란 전통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 문화재 택견은 모씨에 의한 창작품을 마치 우리 전통문화인양 호도,기망하고 있어 더 큰 사회적 문제를 남기고 있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친일잔재인 문화재 택견을 공개적으로 검증하고 잃어버린 민족혼을 되 찾아야 되겠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숙제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 사회, 문화, 등 전반에 이식 된 친일잔재 청산! 그 첫번째 화두가 사쿠라 택견임을,,,

친일잔재 문화재 택견은 민족을 욕보이지 말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하라!!!


택견, 문화재역사는 조사자를 부당하게 갑박한 때부터 시작된다.


여기에 대한 해명을 관계되는 측은 마땅히 해야한다.


지정문화재는 국민들의 혈세로 지원, 보존되는것이기에 국민들은 마땅히 사실관계를 알 권리가 있다.


앞으로, 문화재 택견의 역사는 군사정권에서 부당하게 조사자를 겁박 해 시키는데로 보고서를 쓰게 한 그 시점부터 시작되는것을 전 국민들이 알게될게다.


부끄러운 문화재로 무예사에 남게될듯 하다.


현재, 문화재청에 실사를 요구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검증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택견을 처음 조사했던 이가 생존 해 있고 증언이 존재하며 문화재위원으로써 증언을 한 분도 있다(2011년  졸)
심모민속학자(택견 처음조사자)가 작고를 한다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터넷신문에 기사화 된지 오래고 또 11년 작고한 문화재위원으로부터 증언을 들은 증인도 있는 마당에,,,


문화재청과 관계사안으로 국민신문고, 정보공개청구 등 자료도 확보가 되어 있다!


그때 정황도,, 택견 문화재 지정조사보고서도,,, 군사정권의 역사짜집기, 고구려공정의 정황을 낱낱이 알려주고 있다.


내용 자체도 없는 보고서로 검증도 되지  않은체, 국민혈세를 수십년간 지원 받으며 그 내막을 알만한 이들에 의해 우리 전 국민들이 호도되고 기망을 당해 왔다!


이는 사회문화, 역사적 범죄행위로 지속적으로 국민계몽이 되어진다!


문화재 택견의 현대사? 는 군사정권에서 조사자를 겁박한 그때로부터 시작된다!


언론 및 출판으로도 검토가 되고 있다!


우리는 사실을 명명백백히 알고싶으며 지정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권리로 요구한다!


문화재 택견측은 공개검증에 응하라!


조사자겁박, 역사왜곡, 날조계보, 친일잔재 이식, 유네스코 기망,,,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 모든 책임은 사실을 호도하고 회피하는 이들에 있지, 옳은 얘기를 하는 측에 있지가 않다.


======================

/주: 이 부분은 정황임, 시실규명은 되지 않은것임!

문화재청에서 30년이? 지난 일이라고 실사를 할수없다???고 했다.
필자가 30년이 아니라 300년이 지났어도 아닌것은 아니다! 했다.

택견이 82년 조사자가 겁박된체 보고서를 썼다 증언을 남겼고 83년 지정이 되었다!
???
82년에???
알려진바는 1973년 예용혜선생이 최홍희 대한태권도협회장을 인간문화재로 만들어 주시요!하는 것을 태권도는 전통무예가 아니라 안된다,
창헌류라는 품세가 있어 안된다,, 지정불가 사유를  문화재관리국에 보고서를 냈고(아래 첫번째 보고서로 내용을 적시했음)

그때, 택견관련 짤막한 추가를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5공 정부관계자가 택견이라는 존재를 알고 또, 지시를 했을까?

그 정부고위관계자(이는 신모 초대보유자가 주위에 얘기하기를 어느? 정부고위관계자가 수벽치기도 한동작만 보여주면
문화재로 지정을 시켜 주겠다한다 본인이 얘기를 했고 알만한 이들은 들어 본 얘기다!)가 언제??? 어떻게???
이 택견이라는것을 인지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는가?

필자만 궁금한 것인가?

국풍81

https://search.daum.net/search?w=tot&DA=YZR&t__nil_searchbox=btn&sug=&sugo=&q=%EA%B5%AD%ED%92%8D81


국풍81은 명칭처럼 그렇게 고상한것이 아니라 80년 광주 일을 덮기 위한 관제행사라는것이 세간의 평임!


국풍81> 82년 조사자 겁박> 문화재 택견 지정일은?지정일: 1983.06.01 


쓰레기 문화재 택견이 지정될때 정부고위관계자??????????????????????????


수벽치기도 한 동작만 보여주면 문화재로 지정을 시켜주겠다??????????????????????


광주항쟁의 염원을 관제행사로 틀어 막고,, 87년 민주화운동이 전국을 들끓게 하던 그 때!!!


5공의 힘 있는 자,, 누군가가 이 문화재 택견을 고구려와 태권도에 연계하는 작업을 지시했다 보여진다!(5공의 실세였던 모씨가 o와대 및 지금의 oooooo부에 재직하던 시기와 일치하고 있으나 실명을 생략함)


e영상역사관

국풍 ‘81

제작연도 1981

상영시간 13분 24초

출처 국풍 ‘81



http://www.ehistory.kr/page/view/movie.jsp?srcgbn=KV&media:id=1895&mediadtl=8719&gbn=MH


9분 8,9초> 국기 태권도의 원형인! 택견이 소개됐다! 


택견,은 1973년 예용혜에 의한 보고서 이후 작의적인 왜곡과 군사정권의 정책에 의한 날조가 시작되는것이 사실관계다.


이는 택견관련 공식적 기록인 1973년 보고서와 1982년 군사정권 하, 조사자를 겁박해 보고서를 쓰게했다는 두번째 보고서를 상호 비교하면 얼마나 그 왜곡이 심했는지, 또, 무엇을 위한 목적적 행위가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수 있다는게다.


첫번째 보고서는 한자용어가 대다수라 읽기에 쉽지 않을게다.


두번째와 같이 올리니 비교,분석을 해 보시기 바란다.


두번째? 군사정권의 필요에 의한 보고서는 그 보고서를 쓴 이의 학자적 위치나 기타와 무관하게 쓰레기 수준 밖에 안된다.


사실관계를 판단하기 위해 두번째 보고서(보고서를 쓴 당사자가 "위에서 시킨 일이어서 어쩔수 없이 하라는데로 했다!" 고 증언을 남긴)부터 게제함


현재 문화재청 등록번호76호 택견은 지정당시 조사자가 겁박된체 검증과정이 부정하게 된 종목이다.

여기에 대한 사실관계는 택견을 처음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조사를 맡은 심모 민속학자(모민속극박물관 관장)가 택견은 지정가치가 없다고 보고서를 올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재차 조사자가 바뀌어 다시 조사가 되었고 일사천리로 당시 중요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

택견이란 무엇인가?
택견,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문제없는가?

한국무예신문. 
예(藝)와 희(戱)를 구분 못한 학자들의 실수 혹은 고의적 조작?부분 증언내용확인

http://www.mooyenews.kr/sub_read.html?u:id=705§ion=sc2§ion2=%B9%AB%BF%B9%C0%CC%BE%DF%B1%E2

그러나, 두번째 조사를 맡은 문화재전문위원이 처음조사를 맡았던 이에게 "위에서 시켜서 어쩔수 없이 보고서를 썼다!"고 고백을 했고 전,중앙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낸 문화재위원의 증언도 남아 있다.

각설하고, 택견 조사보고서를 보면 고구려무용총의 장사그림을 택견이 틀림없다???고 해 뒀는데

지정 이후 1983년 11월 28일 문예진흥원에서 제작한 택견 영상자료를 보면 고구려벽화가 떡? 하니 등장하고 뒤 이어 택견을 연결 시키고 있다.

또한, 문화재관리국에서 제작한 영상을 찾아보니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니? 삼국시대부터 했니? 이런 허위사실이 마치 진실한양 불특정 다수에 배포되고 있어 큰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984택견 문화재관리국 국립영화제작소


31분 9초부터~ 택견은 고구려 무용총등 여러 고분벽화에도 보이고 있어,, 삼국시대에도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고,, 고려시대,, 무사들의 무예로 행해졌을 뿐만 아니라,,


라고 했으나  


main/news_view.php?:id=317337 위키트리 국제무예연합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낸 민원 (택견)조사자겁박부정지정,역사왜곡은 서비스인가?2017.10.15 수고하십니다. 귀 국립문화재연구소...



두번째 쓰레기 보고서이다!(위에서도 얘기했듯 조사자의 사회적 위치와는 무관하다)


실명은 생략했다!


無形文化財 調査報告書 弟146號 『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 第17輯(144號 ~ 161號)』, 文化財管理局

1982년 월 일 調査者 ooo(文化財委員)

택견

【75】 【】표시는 보고서 원문에 해당하는 쪽을 의미한다. 

目次
1. 指定申請事由 -【77】
2. 택견의 歷史 -【78】
3. 택견의 名稱 -【85】
4. 택견의 實際 -【87】
1) 혼자익히기 -【87】
2) 마주메기기 -【93】
3) 견주기 -【95】
5. 技藝能者 -【98】
6. 參考寫眞 -【100】
○ 三室塚壯士圖 -【100】
○ 舞踊塚 跆拳圖 -【101】

【76】
- 백 지 - 

【77】
1. 指定申請事由
택견을 다음과 같은 事由로 重要無形文化財로 指定할 것을 提議합니다.
① 택견은 手足과 몸 動作이 筋肉의 움직임과 一致하고 柔軟하며 自然스럽게 攻防할 수 있는 傳統있는 武術의 하나이며 
② 몸 動作이 舞踊的이며 音樂的이어서 리듬을 지니고 있어 藝術性을 지닌 遊戱일 수도 있고
③ 相對方의 缺點을 힘 안들이고 勝負를 내는데 攻擊보다는 守備를 위주로한 護身術이다.
④ 二千年의 傳統을 지니고 있으나(금년 국립무형유산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충주시 문화예술과에서 모두 근거자료가 부존재하다 정보공개 답변이 법적으로 되었다)技能保有者들이 古老들이고 繼承하려는 사람이 적어 거의 湮滅상태에 있으므로
⑤ 택견을 無形文化財로 指定하여 斷絶을 未然에 막고 保存 傳承시켜 民族傳來의 武藝로 育成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78】
2. 택견의 歷史> 짜집기가 시작된다!
韓民族이 언제부터 택견을 하였는지 문헌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라고 했다, 그런데??? 아래를 보면 아무런 근거제시도 없이 고구려벽화에 그려져 있는게 택견이 틀림없다???라고 했다! 무엇이 목적인지 알수가 있다高句麗의 古墳인 三室塚의 벽화(後面 寫眞(1)參照)에 한 사나이가 왼팔을 앞으로 머리 높이로 쳐들고 오른팔은 수평에서 약간 처지게 뒤로 돌리고 있으며 두 다리는 왼발을 앞으로 하고 오른발을 뒤로 벌리고 있어 춤추는 동작이라기 보다는 택견에 있어 서서익히기 때의「품내밟기」의 동작과 흡사해서 택견의 동작이라고 추측이 된다.(여기서는 추측? 이 된다라고 했으며 이 또한 개인적 생각일 뿐이다. 그 어디에도 근거자체가 없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도 택견이 고구려벽화에 그려져 있고??? 라 되어 있는데 민원에 대한 답변으로 근거제시를 못 하고 "모태"라고 하다가 그 뒤에는 "고구려때 무예가 성했다?"는것이 택견이 = 고구려벽화에 그려져 있다!!!~는 근거라 한다 ㅜㅜ역시 (또? 고구려벽화 타령이다??? 추측이라다가 갑자기!!!!!!!!!!!!!!!!!!!!! 틀림없다!!!라고 목적을 드러내고 있다. 이거 읽으며 구역질이 났었다! 왜? 우리는 사실보다는 강제되는 정보를 마치 옳은양 기망 당해야하는가?)高句麗 고분인 舞踊塚(後面 寫眞(2)參照)벽화에는 두 사나이가 윗통을 벗고 마주서서 왼팔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팔은 수평으로 들어 꺾고 발을 짝 벌려 민첩하게 금방 다음 동작으로 옮기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이 맞서서 택견하는 모습이 틀림이 없다. (공정이 완성 되었다!필자가 공정이라함은 이 보고서를 쓴 이의 증언 외에도 "택견? 내가 문화재로 만들었어!" 라고 하시던 문화재위원의 증언이 존재하고 또, 보고서를 읽어보면 어렵지 않게 판단이 되는게다. 고구려> 택견> 태권도로 연계하고 작의적인 짜집기, 역사왜곡을 목적으로 한다는게다)安岳三號古墳에도 비슷한 벽화가 있다.
택견에 관한 고대의 기록이 없어서 장담할 수는 없으나 (장담할 수 없다면서 무슨? 고구려벽화에 그려져 있는게 택견이 틀림이 없다! 라고 한단말인가? 학자적 고뇌가 여기서 보인다벽화에 나타난 택견圖(택견 유사용어가 체집되는게 200여년 밖에 안된다. 그런데 고구려벽화를 굳이, 택견도라 함은? 한가지 의문을 가져보자! 조선시대 발생한 무용들이 있는데 그것을 고구려무용총(무용하는 그림들이 있다하여 이름이 붙여진것임)에 그려져 있다! 하면 맞는가 틀리는가,, 태평무도? 승무도? 죄~~~다 고구려무용총 벽화에 그려져 있다!!!가 되어야지 않겠는가? 문화재청에 질의하니 이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않고 있다)에 의하면(무엇에 의하면? 처음에는 추측된다라다가 아무런 근거제시도 없이 틀림없다 다가, 이번에는 대 놓고? 택견도(그림)라다가,, 그것을 근거로???????????????????? 이미 고구려때에 壯丁들 사이에서는 택견으로 勝負를 겨루었고 心身을 단련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된단다,, 생각 ㅜㅜㅜ 틀림없다던 그건 뭔가 그러면?)사람이 生存하기 위해서는 맹수와 싸워야 했고, 때로는 인간끼리의 싸움도 있었으므로 몸을 단련해서 내 몸을 내가 보존해야 했고, 더 적극적으로는 상대를 공격해야만 했으니 신체를 단련하고 힘으로 몸을 보호하는 武術이 필요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護身術이지만 위급할 때에는 攻擊하는 방법을 알고 그러한 能力이 있어야 했다. 여기에서 護身術, 攻擊을 위해서 택견과 같은 武術이요, 武藝요 놀이가 발생하고 傳承되었을 것으로 안다.

>마지막 문구들은 그냥, 일반적인것이지 명색이 국가지정문화재를 지정하며 공식적 보고서에 근거로 내 세울게 못되는거다! 전혀 허구이며 사실무근의 것이라는게다(필자가 허구니 사실무근이라함은 문화재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종목의 역사성부터 밝혀져야 한다! 삼국시대면 삼국시대! 고려때면 고려! 조선이면 조산시대,, 그것도 전기냐? 중기냐? 후기냐? 이런 객관적 사료에 의한 역사성이 정립되고 그 뒤에 전통성이니 지역적인 향토적 기타 등 이 논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 문화재청 등록76호 택견은 주지하다시피 80년대 군사정권하에서 조사자를 특정한 목적으로 겁박하던 것이었으니 역사성이야 짜집기하면 그만이고? 일반적인것으로 특정한것의 근거를 삼는 해괴한 일이 실제 벌어졌다는게다. 그리고 그 내막을 알만한 이들에 의해 우리 국민들이 수십년동안 기망을 당해왔다! 필자가 분개함은 여기에 연유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필자의 개인적인 위치를 들기도 하던데 그건, 사안을 호도하는것에 다름 아닌게다! 필자도 먹고 살기 바쁘다! 단지 개인적인,, 것으로 수년간 문제제기하고 구체화를 해 가지는 못한다는게다. 사명감이란게 없이 그게 될 일이런가?

군사정권 하 조사자를 겁박해 부정하게 지정된것도 모자라 수십년간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고구려를 넘나 들고 삼국시대 운운이니 고려때 무인들이 했다고 문헌을 부분발췌, 누락 인용 해 기망을 하고!!! 이게 과연, 대한민국의 수준이 되어야 겠는가?(문화재청 산하 국립무형유산원,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 충주시 문화예술과 모두 고구려니 삼국시대니 고려무인들이 택견을 했다는 근거제시 요구에 부존재 답변을 해 공식화 되었다!)

자!


이제


고구려>택견까지는 독자들이 어느정도 판단이 될 터이고


택견과 태권도를 짜집기 한것을 확인 해 보자!


【79】
高麗史에 의하면 手搏이라 해서 다음과 같은 記錄이 보인다.

忠惠王 壬午三年(1342) 癸巳 賞春亭 觀手搏戱
癸未4年(1342) 二月己酉 王放鷹于 東郊還幸 和妃宮 觀手搏戱
六月丙申 幸馬岩 觀手搏戱
鄭仲夫 顧左右曰 壯哉此地 可以肄兵 命武臣爲五兵 手搏戱盖 和
武臣望欲圖以厚賜慰之也
李義旼 義旼 善手搏 毅宗愛之
崔忠獻 嘗會容設晏 使重房有力者 手搏勝者卽 授校尉隊 正以賞之

이상의 기록으로 미루어 高麗에서는 手搏이 御前試合의 경기종목으로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忠惠王은 즐겨 手搏을 관란했음을 알 수 있다. 봄에 賞春을 하러 가서 手搏을 관람 했고 郊外에 나아가 매사냥 때에도 관람한 것으로 보아 手搏은 경기종목으로 관람할만한 구경거리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 된다.
武臣들로 하여금 手搏을 시키고 또 手搏에서 勝者를 施賞한 것은 手搏을 武術종목으로 권장한 것이며 그러기에 毅宗은 手搏을 잘하는 李義旼을 사랑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宴會席에서 力士의 勝負를 관람했던 例와 같다. 手搏이 武術이면 그 겨룸은 구경하기에 재미가 있고 관람할만한 가치가 있었고 勝者는 武術이 評價되며 受賞할 영예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쌩뚱맞게 고려때 수박기록을 택견의 근거로 들고 있다???

어차피 고구려벽화에 그려져 있는게


추측이라다가> 틀림없다! 다가> 생각된다?????????????????다가 왔다 갔다하는 판에 이정도야 뭐,,,


고려사니, 왕조실록이니 고구려벽화니 죄다 갖다놓고 짜집기하면 그만이지,,, 국민들이야 기망의 대상일 뿐이고


【80】
朝鮮時代에 들어와서는 택견에 관한 기록도 많다.>라고 하며 정작 그 택견에 대한 기록은 들지않고 있다ㅜㅜㅜ
王朝實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太宗 十年庚寅(1410)正月 兵曹義興府 以手拍戱 試人補防牌軍
用 勝三人者 
十一年辛卯 六月己亥 選甲士 自春徂夏 
義興府 兵曹聚于 三軍府令走手搏 勝
三人以上者 皆取之 其不能者 皆汰之 
○ 世祖 三年丁丑(1457)九月 義禁府皆 僧惠
明 告僧義田以宋経等 八十九人錄名書
來 示且言將復有 閔伸之亂 今旱甚欲
立上王者有之 又崔旱兩 義田等言 旱
暎太甚 上王立則 禾穀茂盛 又潭陽鄕吏官奴等 聞國家以手搏試
才 爭相聚集 爲手搏戱

朝鮮初期에 있어서는 手搏을 武術의 하나로 여기고 選拔하는데 있어 기준으로 삼았다. 즉 甲士를 뽑는데 있어 달음질하기와 手搏을 시켰는데 手搏에서 三人을 이긴 者를 뽑고 三人을 이기지 못하는 者는 버린 것으로 되어 있다. 鄕吏나 官奴들이 手搏을 잘하는 者를 뽑는다는 말을 듣고 모여 서로 다투어 手搏한 일은 手搏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手搏을 잘하면 兵曹에 登用되었음을 알 수 있다. 手搏을 잘하면 西歐에 있어 古代의 戰士처럼 重用되었으니 힘깨나 쓰고 투지가 강한 壯丁들이 手搏을 즐겨 배웠을 것으로 생각 된다.



>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택견이라하는 근거제시 요구에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충주시에서 부존재 답변을 했다!


【81】
東國與地勝覽 卷三十四 礪山條에 의하면

○ 鵲旨 在郡北十二里 忠淸道恩津縣界 每歲七月十五日 傍近兩道
居民 聚爲手搏戱 以事勝負

鵲山은 忠淸과 全羅의 境界에 위치하고 있는 바 七月百中에 手搏놀이가 있어 인근 사람들이 모여 승부내기를 하는 歲時風俗으로 定着하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五月端午, 七月百中, 八月秋夕때에 壯丁들이 모여 씨름을 하듯이 手搏도 하였으니 勝負를 내는 경기이면서 餘興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 택견이라하는 근거제시 요구에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충주시에서 부존재 답변을 했다!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고구려벽화에 택견이 그려져 있다는데 근거 좀 압시다! 하니 부존재! 였고 삼국시대, 고려무인들이 했다도 부존재 답변이 됐다!


海東韻記에 手癖打와 托肩戱의 詩가 傳한다.

○ 手癖打
劍術先從手術妙
戚將軍己敬『海東竹枝』에는 ‘敎’로 되어 있다.
兵才
三節胊如差一節
拳鋒一瞥落頭來

○ 托肩戱
百技神通飛脚術
輕輕掠過髻簪高
鬪花自是風流性
一奪貂蟬意氣豪

手術이 있고 여기에서 劍術의 묘함은 나왔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먹이 머리에 떨어진다고 하였으니 손재주의 묘함을 말 하였다.

【82】
그러나 이 手術은 托肩과는 따로 설명한 것으로 미루어 托肩은 지금의 택견이고 (고구려! 고구려! 고구려! 택견> 태권도가 돼야한대이! 안 그러면???)手術은 拳法의 일종일 것으로 생각된다. 手術은 지금 跆拳과 같은 것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托肩을 飛脚術이라 해서 百技에 神通해있고 가볍게 뛰어서 상투와 비녀를 스쳐간다고 하였으니 택견에 있어 발놀림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된다. 
택견은 발을 쓰는 기술이 있어야 하며 서로 상대해서 발로 차서 쓰러뜨리는데 세가지의 方法이 있다. 서투른 사람은 다리로 차고, 잘하는 사람은 어깨를 차고, 飛脚術이 있는 사람은 상투를 찰 수 있다고 하는 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舊俗有脚術 相對而立互相蹴倒有三法 最下者蹴其腿 善者托其肩
有飛脚術者 落其髻 以此或報仇 或賭奪愛姬『해동죽지』에는 嬉 ‘즐길희’ 자를 쓰고 있다.
自法官禁之 今無
是 戱名之曰托肩.

托肩이 武術로서 평가되었거니와 남에게 報復하거나 남의 愛姬를 빼앗는 수단으로 쓰는 일이 있어 法으로 官에서 금하였기 때문에 托肩이 不振하게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武術은 善하게 活用하면 活人이 되지만 惡하게 되면 暴力이 되기 때문에 그 폐도 있었던 것이다.
崔南善은「古代에 武藝의 하나로 手搏(手拍)이 있었는데 手指의 屈伸과 拳握의 進退로서 一定한 制約에 의하여 승부를 낸다고 하였으며 원래에는 武藝의 일종이었으나 차츰 酒席의 餘興이 되고 兒童들의 놀이로 化하였다」고 말한 바와 같이???????????????(도대체 뭔 얘길 하는건지 모르겠다!,, 최남선은 조선상식풍속편에서 수박은 =무예! 택견은 씨름과 함께 단오날 하던 민속이라 분명히 구분을 해 놨었다!  그런데????????>>>>>>>>>>>>>택견은 현재에 있어서는 거의 인멸상태에 있다.



ㅜㅜㅜ


【83】
그러나 서울 주변에서 택견을 하던 古老들이 몇분 生存해 있어서 다행한 일이다. 
서울 주변에는 택견을 하는 패들이 있었는데 윗대패 아랫대패가 있었다. 윗대는 城안에 사는 패이고 아랫대패는 城外에 사는 패들이다. 같은 城內패끼리에서는 大闕에 가까운 쪽이 윗대패가 되고 大闕에서 먼 곳에 사는 패가 아랫대패가 되니 官
을 中心으로 해서 기준으로 삼았다.
윗대패에 宋德基(1893年1月19日生)가 生存해 있다. 宋翁은 鐘路區 內需洞에서 태어나 13歲무렵부터 社稷洞 뒷산에서 택견을 배웠으며 18歲때에 林虎(당시29歲)에게서 배우고 20歲때에는 마을 택견꾼과 함께 三淸洞 玉洞 애오개등 마을과의 경기에 참가한 바 있다. 현재는 90歲의 高齡이라 동작을 할 수가 없다.
아랫대패에는 往十里에 辛在榮(1882年生 亡), 강태진(1884年生 亡)이 있었고 구리개패에 金弘植(1882年生 中風)이 있다. 이렇듯이 택견을 하던 古老들이 死亡했거나 病席에 있어 거의 활동을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辛漢承(舊名 辛 丞 1928年5月9日生)은 서울 下往十里에서 出生하여 13歲때부터 往十里 舞鶴山 까치山등에서 從祖父 辛在榮으로부터 택견을 배웠고 1961年頃부터는 택견의 原形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다가 1970年에는 宋德基翁에게 師事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그 동안 宋德基와 3回에 걸쳐 發表會를 가진 바 있으나 宋翁이 高齡이고 보니 택견으로 後進을 기르는 唯一한 존재가 되었다.

【84】
辛漢丞은 1973年부터 現在까지 忠州에서 道場을 가지고 後進양성에 노력하고 있으나 젊은이들이 跆拳과 唐手에 관심이 쏠리고 있어 매우 영세하여 傳來의 民族武藝가 인멸의 직전에 있다.

【85】
3. 택견의 名稱
택견의 名稱은 여러 가지 있다. 한글 큰사전에는 택견을「태껸」이라 해서「태껸- 한 발로 서로 맞은편 사람의 다리를 차서 넘어뜨리는 경기(競技), (각희=角戱)」라고 하였다.
택견이 다리를 많이 쓰는 경기임에는 틀림 없으나 실제는 다리를 쓸뿐 아니라 손도 쓰게 된다. 택견이란 말이 언제부터 쓰여져왔는지 확실치 않으나 지금에 와서는 일반화 되어 있다. 택견의 文獻記錄도 여러 가지이여서 다음과 같다.

手拍 高麗圖經, 王朝實錄,>고구려벽화도 끼워 놨다!
手搏 高麗史, 王朝實錄, 武藝考, 東國與地勝覽> 주지하다시피 국립무형유산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충주시 문화예술과에서 부존재 답변이 되었다!
托肩 海東韻記
脚術 海東韻記
脚戱
덕견 申采浩 朝鮮上古史> 부존재 답변이 법적으로 됐다,, 얘기하기 입이 아프다,,입이,,,
택견 한글학회 한글큰사전
朝鮮總督府 朝鮮語大辭典,
安自山著 朝鮮武士英雄傳

이상의 여러 名稱을 정리해보면>짜집기 해 보면??? 순수한 우리말로서 택견 때껸이 漢字로 托肩이라 表記하게 되고 다리를 많이 쓰는 데에서 脚術

【86】
脚戱란 말이 나왔고 다시 손을 휘두리고 움직이는 데에서 手拍 또는 手搏이란 말이 나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된다??????????????
택견의 실제 운용이 늘 몸이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두 팔을 무용을 하듯이 늘 左右 上下로 움직이고 있어서 언제라도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는 동작을 하고 있어서 손을 쓰는데에서 手拍 또는 手搏이라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믿는다???????????????
農村에서 소녀들이 모여 手拍치기놀이라는 것이 있으나 택견과는 전혀 다르며 安自山의 朝鮮武士英雄傳에 의하면 手搏은 택견이라고 하여 수박치기 놀이와 手拍 手搏은 전연 다르다.

>보통명사 고유명사 구분 좀 하세요!!!

手拍과 手搏은 同音으로 같은 것을 그 表現에 있어 拍 또는 搏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순수한 우리의 것을 有識한 漢學者들에 의해서 漢字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달라졌을 뿐이고 내용은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택견을 脚戱 脚術이라 부르는 데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다. 택견에 있어 다리를 위주로 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이게 실체임! 혹자는 그동안 기망을 당하다 보니 택견? 이 고대무술이라고 한다??????????? 제발 좀, 필자한테 근거 좀 가르쳐주라! 고대무술이라는 근거,,,. 늘 守備의 자세에서 다리를 움직인다. 상대방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발로 차거나 빙 돌아 발로 후려차는등 그 術이 다양해서 武術의 一種으로 여기기도 했고 東國與地勝覽에서 말 하듯이 名節때에 사람들이 모여 택견을 하고 즐겨 놀았다고 하니 이렇게 하면 術이 아니라 놀이가 되어「脚戱」란 말도 쓰게 되었을 것이다.
택견을 놀이로 경기해서 즐기면 遊戱가 되고 택견으로 護身하고 攻擊을 하게 되면 武術이 되었을 것이다.
택견이 文獻에 기록된 名稱이 여러 가지이나 ??????????? 이미 辭典에 택견으로 定着되어 있으므로 택견으로 統一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 옴, 빙~빙~ 돌다가ㅜㅜㅜ)

【87】
4. 택견의 實際> 일본가라데도를 베낀 수련체계, 수련과정, 가타,,본때뵈기(이건 문화재 보고서에 있지 않다하나 지정이후 지금까지도 주된 구성요소로 우리 전통문화에 일본것을 이식하고 있다!), 품계제도까지 그!~ 대로 베꼈다!

1. 혼자 익히기
가. 기본자세(품)
① 원품 : 차렷자세에서 오른쪽 옆으로 오른발을 어깨넓이로 벌려 선 몸가짐이다. 
② 좌품 : 원품에서 왼발을 앞으로 어깨넓이로 내디딘 몸가짐이다.
③ 우품 : 원품에서 오른발을 앞으로 어깨넓이로 내디딘 몸가짐이다.

나. 서서 익히기
① 품 밟기
㉮ 품 내밟기(앞으로) : 원품으로 서서 좌품 우품으로 왼발 오른발을 교대로 바꾸어가며 제자리에서 계속 이어서 밟는 동작이다. 
㉯ 품 길게 밟기 : 왼쪽으로 길게 밟기와 오른쪽으로 길게 밟기를 교대로 나누어서 밟는 동작이다(앞뒤로 길게).
○ 왼쪽으로 길게 밟기 : 원품에서 오른발은 움직이지 않고 왼발로만 앞으로 밟았다 뒤로 밟았다 하기를 계속 제자리에서 하는 동작이다.
○ 오른쪽을 길게 밟기 : 왼쪽으로 길게 밟기를 반대로 하는 동작이다. 
㉰ 품 째밟기(옆으로) : 원품에서 왼발을 앞으로 내밟았다

【88】
왼발을 옆으로 째듯이 밟았다 또 오른발을 오른쪽으로 바꾸어가며 째듯이 이어서 계속 밟는 동작이다.
※ 품을 밟을 때 몸짓을 굼실거리는 동작, 허리를 뒤로 빼며 재기 동작, 배를 앞으로 내며 뱃심내기 동작을 함께 한다.

② 활개짓
㉮ 활개짓 맞쳐들기 : 좌우품으로 서서 한손 한손 활개를 머리위로 맞쳐들며 굼실거리는 동작이다.
㉯ 활개짓 두 손 크게 긁기 : 좌우품으로 서서 좌우 두손 활개를 높게 교차로 긁으며 굼실거리는 동작이다. 
㉰ 활개짓 두 손 작게 긁기 : 좌우품으로 서서 좌우 두손 활개를 낮게 교차로 긁으며 굼실거리는 동작이다.
㉱ 활개짓 두손 크게 제치기 : 좌우품으로 서서 좌우 두손 활개를 높게 교차시켜 제치며 굼실거리는 동작이다.
㉲ 활개짓 두손 작게 제치기 : 좌우품으로 서서 좌우 두손 활개를 낮게 교차시켜 제치며 굼실거리는 동작이다.
㉳ 활개짓 맞돌리기 : 좌우품으로 서서 한손 한손 활개를 머리 위에서 맞돌리며 굼실거리는 동작이다.
※ 품 밟기 활개짓 같이 하기 : 품을 밟을 때 활개짓을 같이 하는 동작이다.
○ 활개짓 쳐들며 품 밟기
○ 활개짓 긁으며 품 밟기

【89】
○ 활개짓 돌리며 품 밟기
○ 활개짓 두손 흔들며 품 밟기
○ 활개짓 두손 앞뒤로 흔들며 품 밟기
○ 활개짓 멋대로 재게 흔들며 품 밟기 

③ 발질 및 손질
㉮ 저기치기(저기걸이)
㉯ 칼재기(내밀기) : 원품으로 서서 발을 들어 발등으로 턱높이를 걷어차는 동작이다. 
㉰ 걷어차기 : 원품으로 서서 발을 들어 발등으로 턱높이를 걷어차는 동작이다. 
㉱ 째 차기 : 발을 들어 발등으로 안에서 밖으로 째서 어깨높이를 차는 동작이다.
㉲ 후려차기 : 발을 들어 발등으로 밖에서 안으로 후려서 어깨높이를 차는 동작이다. 
㉳ 곧은 발길 : 발장심으로 명치높이를 곧게 찔러차는 동작이다(높게 차면 명치기, 낮게 차면 허벅치기) 
㉴ 내차기 : 발을 높이 들어 발장심으로 복장(가슴)높이를 내밟듯이 차는 동작이다.
㉵ 는질러차기 : 발을 들어 발바닥으로 복장높이를 는질러서 밀어 차는 동작이다.

【90】
㉶ 솟구치기 : 원품으로 서서 높이 뛰어 오르는 동작이다.
(뛰어오르기)
㉷ 돌개질 : 원품으로 서서 높이 뛰어 좌우로 도는 동작이다.
(뛰어돌기)
㉸ 비비기 : 원품으로 서서 발바닥으로 밀어 때리며 제자리에서 뛰는 동작이다. 
㉹ 깎음걸이 : 발을 들어서 발장심으로 무릎에서 발등까지 정강이를 깍아 훑듯이 차는 동작이다.
㉺ 낚시걸이 : 발을 들어 발뒤꿈치로 오금높이를 낚아채듯이 끌어 올리는 동작이다.
㉻ 안짱걸이 : 발등으로 발뒤꿈치를 안에서 걸어 끄는 동작이다.
(거 원문에는 ○표시가 되어야하나 표시를 찾을 수 없어 부득이 ( )로 표시를 한다.
)무릎올려재기 : 원품으로 서서 무릎을 높이 들어 가슴에 대는 동작이다.
(너) 책상걸이 : 무릎을 책상다리 모양으로 해서 발뒤꿈치로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리는 동작이다. 
(더) 가로밀기 : 원품으로 서서 손바닥을 가로 눕혀 두손을 번갈아 가며 가로미는 동작이다.
(러) 세워밀기 : 손바닥을 세워서 머리위에서 아래로 두손을 번갈아 가며 세워서 미는 동작이다.
(머) 잡아대기 : 원품으로 서서 손바닥으로 배꼽높이에서 상대의 발목을 잡는 동작이다.
(버) 옆발질 : 발을 옆으로 눕혀서 는질러 차는 동작이다.
(서) 낭상(두발낭상) : 제자리에서 깨끔질로 높이 뛰어서 얼굴 높이 이상을 걷어 차는 동작이다.

【91】
다. 나가며 익히기
① 활개짓
㉮ 활개짓 뱃심내고 허리재기 : 활개짓을 하며 배를 앞으로 내밀었다 허리를 뒤로 뺏다하며 굼실거리면서 앞으로 나가는 동작이다.
㉯ 활개짓 두손 크게 긁기 : 두손 활개를 높게 교차로 긁으며 앞으로 나가는 동작이다.
㉰ 활개짓 두손 크게 제치기 : 두손활개를 높게 교차시켰다 제치며 앞으로 나가는 동작이다.
② 손질
㉮ 칼잽이 : 손을 펴서 엄지와 검지를 벌려서 손아귀로 상대의 목높이를 밀며 앞으로 나가는 동작이다.
㉯ 덜미잽이 : 손을 펴서 손바닥으로 상대의 목덜미를 누르며 앞으로 나는 동작이다.
㉰ 덜미걸이 : 손을 펴서 손바닥으로 상대의 목덜미를 걸어 끌어당기며 앞으로 나가는 동작이다.

③ 발질(발길질 또는 발걸이)
㉮ 딴죽 : 발바닥으로 상대의 다리를 옆이나 앞으로 밀어 때리며 앞으로 나가는 동작이다.
㉯ 걷어차기 : 발을 들어서 발등으로 높이 걷어차며 나가는 동작이다.
㉰ 깎음다리 : 발장심으로 무릎에서 발등까지 훑어차며 나가는 동작이다.
㉱ 째차기 : 발을 들어서 발등으로 높이 째차며 나가는 동작이다. 

【92】
㉲ 낚시걸이 : 발뒤꿈치로 상대의 오금을 낚아 채듯이 끌며 나가는 동작이다.
㉳ 후려차기 : 발을 들어서 발등으로 높이 후려차며 나가는 동작이다.
㉴ 안짱걸이 : 발등으로 상대의 발뒤꿈치를 안에서 걸어 끌며 나가는 동작이다.
㉵ 곧은발질 : 발장심으로 상대의 명치 높이를 곧게 뻗어 차며 나가는 동작이다. 
㉶ 무릎치기 : 무릎으로 상대의 허벅지 뒷단 높이를 차며 나가는 동작이다.
㉷ 내차기 : 발장심으로 복장높이를 앞으로 내차며 나가는 동작이다. 
㉸ 덧걸이 : 발을 들어서 발뒤꿈치로 상대의 오금을 밖에서 걸어 끄는 동작이다.
㉹ 는질러차기 : 발을 들어서 발바닥으로 는질러서 높이 밀어차며 나가는 동작이다.

④ 걸음걸이
㉮ 걷기 : 보통걸음을 굼실대며 갈지자로 걸어나가는 동작이다.
㉯ 째서걷기 : 갈지자로 길게 째며 우쭐 우쭐 걸어 나가는 동작이다.

【93】
2. 마주 메기기(相對練習)
가. 막음질(둘이 서로 맞서서 기술을 메기고 받고 하는 동작)
① 상대가 발질하는 것을 활개로 팔내려 막는 동작이다.
② 상대의 차오는 발의 회목을 손으로 잡는 동작이다.
③ 상대의 차오는 발을 손바닥으로 때려 막는 동작이다.
④ 상대가 발질하는 것을 발바닥으로 발등이나 무릎을 차 막는 동작이다.
⑤ 상대가 발질하는 것을 무릎으로 막는 동작이다.
⑥ 칼잽이로 상대의 가슴이나 어깨를 떠미는 동작이다.

나. 얼러 메기기
둘이 맞서서 활갯짓을 같이 하면서 품을 밟고 움직이며 한사람이 수(技)를 걸거나 차오면 한사람은 받고 피하고 하는 동작이다.
① 무릎걸이
② 딴죽
③ 안짱걸이
④ 막음다리
⑤ 오금차기
⑥ 낚시걸이
⑦ 발회목잡기

【94】
⑧ 밭장다리치며 오금 밟기
⑨ 안장걸며 덧걸이
⑩ 무릎걸고 좌우발따귀
⑪ 좌우딴죽치고 는질러차기
⑫ 두루치기(내차기)
⑬ 곧은 발질하며 두발낭상
⑭ 곁치고 돌개치기
⑮ 물구나무 상발치기
※ 될 수 있는 한 혼자 익히기에 있는 여러 가지 수(技)를 번갈아 가며 숙달될때까지 반복한다.

다. 마주 차기 
둘이 마주서서 거리를 재고(맞추고) 제자리에서 한사람이 차면 한사람은 막고 차기를 번갈아 가며 빨리 정확하게 차고 막고 하는 동작이다.

라. 마주 걸이
둘이 마주 무릎을 맞대고 제자리에서 무릎을 밀다 한사람이 수를 걸면 한사람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하는 동작을 번갈아가며 한다. 

【95】
3. 견주기(相對)
가. 대걸이
맞서서 활개짓을 자유로이 하며 품을 마음대로 밟으면서 아랫수(발걸이)만 가지고 걸어 넘기기만 하는 견주기 동작이다.

나. 맞서기(겨루기), 서기 택견
맞서서 활개짓을 자유로이하며 품을 마음대로 밟으면서 위 아랫수(발길질, 발걸이)의 모든수를 다 써서 차서 넘기든지 걸어서 넘기든가 하면 이기는 것이다.

다. 겨눔수
모든 겨눔수가 발따귀, 물구나무 쌍발차기, 무릎대치기(대뒤집기), 어깨치기, 뱅뱅이질, 두발 쌍걸이등 몇가지 특수한 기술을 빼고는 혼자익히기의 기본기가 변화 응용된 것이 대부분이다.
① 오금차기 : 걷어차기로 낮게 오금을 차는 동작이다.
② 안우걸이 : 덧걸이로 안에서 뒤로 오금을 거는 동작이다.
③ 발장다리 : 째차기를 아주낮게 상대 바깥 복사뼈 위를 차는 동작이다.
④ 곁차기 : 째차기를 조금낮게 발장심으로 상대의 옆구리를 차는 동작이다.
⑤ 옆발질 : 는질러차기의 발을 조금 눕혀 차는 동작이다.
⑥ 발등걸이, 무릎걸이 : 는질러차기를 낮게 해서 무릎이나 발등을 차는 동작이다.

【96】
⑦ 두발낭상 : 걷어차기를 뛰며 높이 차는 동작이다. 
⑧ 돌개치기(돌아치기) : 째차기를 돌며 빨리 차는 동작이다.
⑨ 얼렁발질 : 째차기를 낮게 높게 두 번 연거푸 차는 동작이다.
⑩ 두루치기 : 내차기를 좌우양발로 두 번 이상을 연거푸 차는 동작이다.
⑪ 오금걸이(오금밟기) : 깎음다리로 오금을 밟는 동작이다.
⑫ 어깨잽이, 이마재기, 턱걸이 : 이 세가지는 칼잽이 동작이 응용된 동작이다.
⑬ 발따귀 : 발바닥으로 상대의 따귀를 갈겨 때리는 동작이다.
⑭ 물구나무상발치기 : 땅재주를 넘으며 돌아서 상대의 얼굴을 때리는 동작이다. 
⑮ 무릎대치기(대뒤집기) : 한손으로 덜미를 잡고 한손을 무릎이나 발목에 대고 발은 상대 하복부에 대고 누우면서 넘기는 동작이다. 
(16 원문에는 ○표시가 되어야하나 표시를 찾을 수 없어 부득이 ( )로 표시를 한다.
) 어깨치기 : 어깨로 상대의 몸에 부딪히며 밀어 치는 동작이다.
(17) 뱅뱅이질 : 손을 땅에 짚고 몸을 돌리며 차 거는 동작이다.
(18) 두발쌍걸이 : 상대의 어깨를 밟고 차는 동작이다.
※ 쌈수

【97】
○ 낙 합
○ 턱빼기
○ 면치기(오광잽이)
○ 멱치기
○ 항정치기
○ 손따귀
○ 주먹질
○ 휘뚜루치기(마구치기) 등 결연 택견의 쌈수가 있음.

【98】
五. 技藝能者

○ 姓 名 : 辛 漢 承 (男)
○ 出 生 地 :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동 575
○ 本 籍 : 忠北 忠州市 城饍 59番地
○ 現 住 所 : 충북 충주시 용산동 426-7
○ 生年月日 : 1928年5月9日
○ 住民登錄 : 280509 - *******

○ 택견略曆
1940年 13歲에 從祖父 辛在榮에게서 택견을 배움.
1961年 택견을 整理하는 작업을 시작.
1970年 宋德基翁에게 師事
1973年 忠州에 택견道場을 세움
1977年 4月 1日 제 1 회 傳統택견발표(YMCA강당) 
1977年 9月 29日 제 2 회 〃 (고려대학교강당)
1977年10月 29日 제 3 회 〃 (忠州 野外音樂場)
1981年 5月 31日 택견발표회 國風 81 廣場
1981年10月 18日 傳統武道藝術祭참가(세종문화회관)

【99】

계보부분> 지정 이후 지속적인 날조가 됐다가 문화재청에서 권고 해 충주쪽 단체 홈페이지 계보메뉴 삭제조치됨! 충주시 운영의 택견원 계보메뉴는 문제소지가 있다 자체 삭제했음!


林虎(1881年生 亡) 

金弘植 宋德基 辛在榮
(1982年 生) (1893年 生) (1882年生 亡)

辛漢承 (1928年生)
【100】
六 參考文獻
① 三室塚壁畵「壯士圖」

- 그림 생략 -

〈三室塚>
○ 高句麗時代의 古墳
○ 所在地 : 滿洲 輯安縣 通溝
註 : 金元龍著「韓國의 壁畵古墳」

【101】
② 舞踊塚壁畵「跆拳圖」 이게 압권인게다! 


최홍희와 태권도 명칭제정의 날 1955. 4.11

http://egloos.zum.com/tkdphil/v/986411


타임머신 타고??? 고구려로 날아가야 할 판이지 않은가?

- 그림 생략 -


○ 高句麗時代의 壁畵
○ 所在地 : 滿洲 輯安縣 通溝
註 : 金元龍著「韓國의 壁畵古墳」


- 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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