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류무형유산 택견 일본문화가 이식 된것 밝혀져!

2016-05-09 / 조회수 : 1,161 신고


▲ 택견 문화재보유단체에서 공개한 본때에 관한 설명이다.

기자는 모름지기 전통이란 전해주는게지, 창작을 하는것은 아니라 본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인연되는 이에게 전해 후대에 남기는 것이 전통을 이어 가는 이들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택견이 지금처럼 성장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83년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중요문화재로 지정을 받고 국가지원과 대한민국의 국민정서에 힘 입어 된 것이지

비단, 몇몇 택견을 하는 이들만의 공은 아닌 것이고 또, 문화재란 선조들이 남겨주신 것을 외곡되지 않게 전해야 함에도 역사와 계보 및 동작, 기술체계 등을 타 무술 특히, 일본의 가라데나 유도 등과 비교하여 현대적인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면 위험한 생각으로써 바람직하지 못 한 시도인게다.

그건 현대적인 스포츠 또는 창시무술이지 결코 전통이라 할 수 없으며 더욱, 일 국가의 문화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택견이 문화재로 지정되게 한 공로는 고, 신한승(택견초대예능보유자)에게 있음은 알려진 바이나 없으면 없는데로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남기는것이 더 좋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현재의 택견은 역사가 조선후기에 그치는데 고려에서 무인들이 하던 수박에 빗대어 택견이 수박이라고 호도를 하고 있으며 고구려무용총의 웃통을 벗고 맨손겨루기를 하는 장사그림을 막연히 택견그림이라 하질 않나, 신라화랑들이 1천년 이전에 하던 무술이라느니 근거 없는 주장이 여과 없이 학계와 일반인에 전파가 되고 있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일화가 있다. 80년초 부산에서 열린 제1회 태껸대회가 끝 나고 송덕기(신한승의 스승)옹이 "태껸은 품만 잘 밟으면 돼! 외, 없는 동작을 자꾸 만들려고 해!"라고 꾸짓었다 하며 신한승의 택견을 보고 그건 택견이 아냐! 라고 전래되는 택견의 기술이나 체계가 변형되는것을 못 하게 하였으나 아직까지도 일본가라데의 품세,형식(가타) 등 일본문화를 도입한 수련체계가 수련생들을 포함한 전국민들에 마치 우리것인양 알려지고 있다는게다.

현재 택견의 수련체계는 조선후기 송덕기란 사람이 배워 전해준 그것이 아니고 일본가라데를 모방한 것으로 이제는 사실을 얘기하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택견이 재조사, 검증된 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된다고 본다.

문화재로 지정되게 공이 큰 것과 일본 가라데 수련체계를 가져다 우리전통문화를 외곡되게 전달하는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본다.

더군다나 택견은 명색이 대한민국의 국가지정무형문화재고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에 등제 된 것으로 막대한 국가적 지원을 받는 특해를 누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택견문화재보유단체에서 제공한 자료(사진설명)에 본때는 우리말이라 하나 그것과 그 내용들을 포섭하는 실체적인것은 구별되어 마땅한게다.

비록 용어가 토속적이라 해도 그것을 담는 그릇이 일본가라데의 품세(가타)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일컫는 용어가 아무리 우리말 이라해도 그건 일본문화지 우리것이 될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국권을 잃고 신음하던 조선사람들이 부르던 애국가는 서양민요의 곡에 가사를 얹은 것으로 제데로 된 우리 애국가가 아니었던것과 마찬가지이다.

설명을 보면 태권도의 품세(일본 가라데의 가타와 같은 개념, 체계임)와 같다고 인증을 하고 있으며 품세(가타)와 다른점은 공방에 치우치지 않고 동작의 자유로움과 멋에 중점을 두어 다르다 하나 이건 자가당착에 다름 아니다.

기본이 몸에 배어 있어야 멋을 낼 수 있고 또 실전에 강한거라 하는데 그게 그거 아닌가 말이다. 택견에 입문한 수련생들은 본때 8마당(인위적으로 나눈 8가지 품세,가타(정형화 된 것이고 수련에 있어 고정되고 강제적인 것이다))을 배우게 된다.

설명에서 본때가 품세(가타)와 다르점이 공방에 치중하지 않고 멋을 내기위한 목적이 다르다하는데 처음부터 멋을 낼 수 있는가하면 그렇지가 않다.

1년이고 2년 이고 가타를 모방한 본때라는것을 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 일본의 문화, 정신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게다.

씨름이 얼마전에 유네스코 대표목록으로 신청이 되었는데 씨름에서 일본 가라데 유사의 품세를 만들어 마치 그것이 우리것인양 호도한다면 과연 씨름은 우리것인가? 아니면 일본것인가?,,

눈 가리고 아웅을 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바른 소리는 듣기가 싫은 게다.

그러나 전통을 지키고 아끼는 마음으로 문화재 76호 택견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재현했다고 하는데 문화재보호법상 지정 될 수 없는것이 지정 되었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또, 설명에서는 상기한 멋 외에도 같은 동작의 지도방법에 따른 단순한 기간차이 정도로 가타를 모방한 본때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일본가라데의 가타에서 얘기하는것과 동일하다는게다.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지만 체계,틀 속에 구성요소로써의 동작들은 외형은 달라 보여도 그 체계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고 벗어날 수 가 없다.

즉, 성질이 달라지고 외곡이 된다는게다. 명백히 그 동작들은 작의로 창작한 것이고 일본가라데 가타, 일본문화가 이식 된 것임에 분명하다.

한가지 덧 붙여, 학습체계나 지도법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설명을 하고 있으나 그 말이 곧, 택견이 원래의 학습체계,지도법과 다른 일본 가라데 수련체계를 모방한, 일탈하고 변질되었다는것을 말해주고 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것과 일본 가라데 품세를 익히는것은 같지가 않다. 아침에 산을 오르는것과 일본의 무도정신이 배인 가타를 우리것인양 수련하는것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논증으로 현재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택견은 조선 전래의 것이 아니고 일본문화가 이식 된 현대에서 재현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가 않다. 기회가 있을 때 바꿀 수 있는것은 바꿔야 한다.

그것만이 택견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일본가라데 모방의 것으로는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되고 이 문제가 밖으로 알려지게되면 국치가 아닌가 말이다.

대한민국정부수립사상 최초로 국가지정 문화재가 역사를 외곡하여 지정 되었고 계보 날조 의혹을 받고 있으며 그 수련체계 마저 일본 가라데 흉내에 다름 아니라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라는 무게가 결코, 가벼운것만은 아닌게다.


(내일 오전 다음뉴스에 뜨고 네이버 보도리포터를 비롯 한 SNS에 올려진다.

기사송고는 되었으니 확인하고픈 이는 아래 주소로 가시면 된다)


http://www.bodonews.com/sub_read.html?u:id=14398&mode=user 주소


비공감 0
이전글   /   다음글
목록

의견쓰기 (익명보장)

자동글 방지를 위해 체크해주세요.
  • 123asdewq

    어떻게 자국민들을 상대로
    그것도 새빨간 거짓으로 그러는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택견의 역사외곡은 곧, 중국으로부터 심각한 문제제기를 받게 될게다.

    말로야 거짓을 얘기해도 문헌을 조작하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법원으로 넘어가면 들통이 난다.

    30년을 거짓말 한게,,,

    사료가 없는 이상 무엇으로 증명을 할 수 있겠는가?

    ,,,

    진행하며 문제 삼겠다.

    택견은 조선후기 서울지역에서 행해지던 풍속이엇음이 사실이다.

    재물보에는 나오지도 않고,,,

    수박은 고구려의 옛 터인 길림성에서

    전수지도, 제 5차 지령때 신청예정이다.

    작년부터 전수가 되고 있고 금년에 조금 고생하면,,
    내년 하반기 5차 신청공문이 내려 올듯한데

    중국 동북쪽으로 4개지역에 전수를 하고 조선족학교와 연변대학교 학과 그리고

    한국과 연계되는 수박을 중국문화국이 그냥 내 버려 둘일 만무한게다.

    그만큼 수박의 국제적 가치가 높아진다 본다.

    고구려 무용총의 유형문화도 중국의 세계유산 등재가 되 있고

    그와 연관된 무형의 무예,, 소수민족의 무예만이 아닌

    후한서의 수박 기록 등 중국 무술과 역사적 접근성도 무시할 수 없는게다.

    필자가 무예사를 다시 쓸 생각이다.

    다분히 똘끼가 있어야 이런 일을 할 수 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짊어진 짐이 적지 않은게지,,,

    누군가는 공감을 할 이 잇다 본다.

    2016-05-15 신고

    의견 0
  • 123asdewq

    ///6월 단동을 거쳐 집안과 연길 방문하여

    단동,양구시 및 집안조선족 학교와 연변대학교, 연변지부 등을 연계하게 된다.

    단동과 양구는 본회와 협력관계에 있는 곳에서 전시관을 짓고 있는데 오늘 낮에 협의가 되어

    서울에서 5월 27일 세부사항 논의,

    6월 방문을 기회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횡으로 연결하는 벨트를 치고 오게된다.

    중국은 한국과 다르다.

    한류영향도 있으나 조선족들이 아무리 중국에 동화 되 있다해도 민족문화에 대한 가치성은 한국보다 못 하지가 않다.

    시인 윤동주,, 등 조선족 문학가가 적지 않고
    문화예술,, 전승인(한국식 표현은 보유자)에 대한 대우도 그렇다.

    중국은 국가급일 때
    한국돈으로 (그 쪽 표현이다) 년 1억씩 나온다.

    그 외 활동시 별도다

    크기가 이미 다르다.

    큰 물에서 큰 고기가 될 듯 하다.

    집안의 고구려무용총벽화에 지금하는 각희가 그려져 잇나 없나
    필자가 눈으로 확인을 해 볼 생각이다.

    2016-05-15 신고

    의견 0
  • 123asdewq

    중국 해외판 온라인신문과
    중국 길림성 오프라인 종이신문은 다음주 기사송고 예정임.

    ///일본 및 중국 그리고 영어권, 독일 등 무술 관련 사이트에
    기사를 번역하여 업댓 됩니다.

    진행사안 임.

    2016-05-11 신고

    의견 0
  • 123asdewq


    그걸 알고도 묵인 내지 동조한 이가 있다면 또한, 책임이 있다.

    이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예법을 가르쳐야 할 이 사회에서

    문화재택견에서 수련시 내 세우는 참/이라는 구호처럼,,, 말이다.

    그런데 참이 아니고 알고보니 새빨간 거짓 투성이이니,,,

    옹을 젊은 사람 보다 낮게 위치 시키고

    머리 쓴다고 말뚝이나 박아 놓는게

    어디 할 짓인가?

    책임 있는 이는 공개적인 사과를 해야 할 것이며

    여하한의 책임소재를 따져야 한다.

    필자가 국가관으로 일본애들이 낙서를 하는

    디시인사이드라는 게시판에는 차마 글을 올려두게 못 했지만

    언제까지 그럴지는 필자도 모른다.

    ----------------

    현재 문화재로 지정 된 택견은 명백히 역사외곡으로 지정 되엇고

    계보가 날조 되엇으며 기술체계가 가라데 가타를 모방한 일본문화가 이식 된

    현대 재현 종목임을 일반에 알리고 계몽을 하겟다.

    필자가 문화재청에 얘기햇듯

    어디, 사이비 종교도 아니고

    근거도 없이

    수천년을 소급해 역사를 외곡하고 날조하는게 문제삼는 이가 없어 그런것이고

    국민감정에 기대 국고지원, 혈세를 받아 먹고 사는 이들이

    할 일인가?

    묻고 싶다.

    2016-05-10 신고

    의견 0
  • 123asdewq

    디시인사이드라는 게시판이 있다.

    역사갤러리에 기자가 올려논거 삭제 시켰다.

    그곳이 일본애들이 한국을 비하하는 글이 많은 곳이라,,,

    이 사안은 택견문화재측의 역사외곡과 본 회에 대한 지속적인 침해
    그리고 택견 그자체의 공론화를 목적함이지

    전체로써의 택견, 한국인, 한국문화를 욕 보일 생각이 없다.

    아직까지는 필자에게 국가관이 잇기 때문이다.

    그러나

    택견문화재측은 필자가 무카스에 올린 것처럼

    충주(문화재택견이 소재하는 곳이며 충주무술박물관 기타 거기서 거기 아닌가?)

    무술박물관에 필자의 부친이자 국가유공자로써 팔순고령의 노인,

    수박의 계승자이신 송창렬옹의 사진을 신한승이라는 이

    한참 아래에다 두고 한국무술종류? 그러며

    많은 패널 중 하단부에 위치 시켜 놨다.

    아직도 그게 그 자리에 잇다.

    신한승은 59세 사망한 이로써 송창렬옹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연하인 이이다.

    나기는 1928년이라 하니 송창렬옹보다 4년 먼저이나

    사망한것이 삽십년 전인게다.

    한살에 죽으면 그 사람 나이가 오십년이 지나 오십한살이 되는가?

    아니다.

    백년, 천년이 지나도 그 사람 나이는 한살밖에 안되는거다.

    즉, 신한승이라는 사람은 노인이 아니었으며
    옹이 아니다.

    옹은 노인을 높여 부르는 것으로

    팔순이 지나도 한참이나 지난 송창렬옹의 사진을 일본넘들이 말뚝 박듯 해 놓은게
    패악한 몇몇의 짓인게다.

    2016-05-10 신고

    의견 0
  • 123asdewq

    국내 언론사,편집국장들 카페
    200여명회원

    기자회원 기사로 공유 했음.

    2016-05-09 신고

    의견 0
  • 123asdewq

    위키트리 기사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58986

    보도뉴스 기사

    한국문화저널

    네이버 보도리포터, 다음 카페,,

    250명 메일발송

    페이스북 공유

    무술신문 기사 올림,,

    기타

    다음 아고라에 올림,,

    ///학술회 진행되는데로 결과물을 정치하게 하여
    문제 제기합니다.

    아무리 우리것이라해도 역사를 외곡하고 아닌것을 강요하는것은 지양되어 마땅 합니다.

    아닌것을 아니라 얘기하지 못 한다면

    ,,,


    2016-05-09 신고

    의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