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성인 태권도 세계화 선구자 김재훈 총관장 별세… 마지막까지 도복 입은 ‘참스승’

  

MIT·하버드 출신 GE 부사장, 연봉 40만 달러 포기하고 태권도 지도자의 길 선택
1974년 보스턴 첫 도장 개관… 2004년 한국에 성인 전문도장 개관, 세계 50개 도장

 

세계 태권도장 운영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김재훈 총관장이 별세했다. 향년 74세.

 

세계적인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글로벌 기업의 고위 임원까지 올랐지만, 평생의 업으로 선택한 것은 ‘태권도 사범’이었다. 마지막까지 도복을 입고 제자를 가르쳤던 참 태권도 지도자가 세상을 떠났다.

 

미국 보스턴을 거점으로 세계 각국에 지관을 운영해 온 김재훈태권도장(Jae Hun Kim Taekwon-do Institute) 설립자 김재훈 총관장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별세했다.

 

고 김재훈 총관장

1952년 4월 23일 한국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4년 미국 보스턴에 첫 태권도장을 개관한 이후 52년간 태권도 교육과 지도자 양성에 헌신했다.

 

미국과 한국, 싱가포르, 중국, 인도네시아, 아일랜드를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으로 도장 운영망을 확장하며 태권도 세계화에 기여했다.

 

고인이 걸어온 길은 여느 태권도 지도자와 달랐다.

 

고교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캐나다 유학길에 오른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 진학했다. 이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하며 엘리트 경영인의 길을 걸었다.

 

세계적인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에 입사한 뒤에는 북태평양 지역 사업을 담당하는 부사장까지 올랐다. 당시 한국에 판매된 항공기 엔진과 무궁화위성 1·2호 관련 사업에도 관여했다. 36년 전인 1990년대 초 그의 연봉은 무려 40만 달러(한화 약 5억4천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1992년, 그는 돌연 GE를 떠났다. 이유는 단 하나. 태권도를 직접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당시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농담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사회적으로 태권도 사범의 위상이 높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흔들리지 않았다. 기업 임원으로 누릴 수 있는 안정된 삶보다 도장에서 수련생을 직접 가르치는 일이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태권도와의 인연은 대학 시절부터 남달랐다.

 

MIT 재학 시절 교내 최초로 태권도 클럽을 만들었다. 학생들의 호응이 커 수련 공간을 두 곳으로 나눠야 할 정도였다. 당시 그에게 태권도는 심신단련과 호신을 위한 운동이었지만, 고(故)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와의 만남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최홍희 총재는 세계적인 인재들이 모이는 보스턴에 태권도를 보급할 것을 권유했다. 김재훈은 이를 받아들여 1974년 보스턴에 첫 도장을 열었다.

 

이후 대학 생활과 한국 공군장교 복무, GE 재직 중에도 도장 운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1992년부터 태권도 지도에 전념하며 본격적인 도장 확장에 나섰다.

 

김재훈 총관장의 가장 큰 업적은 ‘성인 태권도’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실천하고 입증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태권도 수련층이 어린이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그는 대학생과 직장인 등 성인들이 평생 수련할 수 있는 태권도 교육을 꾸준히 발전시켰다.

 

도장 시설과 교육 프로그램도 철저하게 성인 수련생에 맞췄다. 태권도를 어린 시절 잠시 배우는 운동이 아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할 수 있는 무예이자 생활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힘썼다.

 

그의 도전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국내 태권도장이 어린이 수련생 중심으로 운영되던 2004년 10월, 경기 고양시 일산에 성인 전문 태권도장을 개관했다. 당시 국내 성인 태권도 시장은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그는 새로운 가능성을 믿었다.

 

‘못하는 것인가, 안 하는 것인가. 하면 된다’는 철학으로 시작한 도전은 22년간 이어졌다.

고국이자 태권도의 종주국에 성인 태권도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며 2014년 10월 경기도 고양시에 성인 태권도 전문 도장을 개관해 22년째 운영 중이다. 

바쁜 해외 일정에도 매년 한 두 차례 이상 한국을 찾아 직접 수련생들을 지도했다. 그 결과 일산 도장은 100명이 넘는 성인 수련생이 꾸준히 찾는 대표적인 도장으로 성장했다.

 

그의 도전은 국내 태권도 지도자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성인 태권도의 성공 사례를 직접 확인한 지도자들이 하나둘 도전에 나섰고, 여전히 쉽지 않은 시장이지만 성인 전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도장들이 점차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김재훈 태권도장의 김재훈 총관장이 2012년  국기원이 주최한 ‘2012 국기원 도장활성화 희망지식 세미나’에 특별 강연자로 초청돼 ‘태권도, 패러다임 변화!’라는 대주제로 600여 명의 일선 태권도장 사범과 예비 태권도장 사범 등을 대상으로 성인 태권도 활성화의 중요성을 전파했다. 이때 많은 지도자가 영감을 받고 국내에 성인 태권도 도장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  국기원이 주최한 ‘2012 국기원 도장활성화 희망지식 세미나’에 특별 강연자로 초청돼 ‘태권도, 패러다임 변화!’라는 대주제로 600여 명의 일선 태권도장 사범과 예비 태권도장 사범 등을 대상으로 성인 태권도 활성화의 중요성을 전파하기도 했다.

 

단순히 해외에서 성공한 태권도장이 아니었다. 국내 태권도장 운영에도 ‘어린이만이 아닌 성인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선구자였다.

 

그가 1974년 보스턴에 개관한 첫 도장은 이후 미국과 한국,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으로 확장됐다. 유족이 공개한 부고에 따르면 김재훈태권도장은 세계 50개 도장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도장의 숫자가 아니었다. 수련생을 직접 가르치는 사범으로서의 정체성이었다.

 

고인은 태권도 단체의 정치적인 활동보다 도장에서 제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 세계 각국에 지관을 운영하는 총관장이 된 이후에도 직접 도복을 입고 수련생을 지도하는 일상을 이어갔다.

 

<무카스>와의 인연도 깊다. 김재훈태권도장은 2009년 무카스가 선정한 ‘올해의 도장상(World School of the Year)’을 수상했다. 당시 도장 운영과 지도자 역량, 사회공헌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당시 수상 소감에서 “저는 태권도가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MIT와 하버드에서의 학업, GE에서의 직장생활보다 자신을 더욱 설레게 한 것은 태권도였다는 이야기였다.

 

‘최고의 도장을 만들겠다’는 신념 역시 평생 그를 움직인 원동력이었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보다 태권도 지도자로서의 삶에 더 큰 가치를 뒀다.

 

2012년에는 미국 태권도 전문매체 태권도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그랜드마스터’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9년에는 태권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살아있는 문화유산(Living Cultural Treasure)’ 상을 받았다.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와 꾸준한 수련으로 건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왔던 만큼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은 국내외 제자들과 태권도계에 큰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한국 김재훈태권도장의 정원제 지관장은 무카스와의 연락에서 “저도 부고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심경을 전했다. 정원제 지관장은 “작년 이맘때쯤 다리에 종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시애틀에서 열린 한마당 대회에 직접 오셔서 지도해 주셨는데,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별세하셨다”고 말했다.

 

고인의 마지막까지 이어진 현장 지도는 그가 어떤 태권도인으로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세계 각국에 수많은 도장을 세우고 지도자를 배출했지만, 정작 자신은 수련생을 가르치는 사범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2012년 <무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고 김재훈 총관장 영상뉴스 캡처

유족으로는 45년 넘게 함께한 부인 신디(Cyndi)와 세 자녀, 다섯 손주 등이 있다.

 

장례 조문은 현지시간 5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미국 매사추세츠주 뉴턴의 이튼 앤 맥케이 장례식장(Eaton & Mackay Funeral Home)에서 진행된다. 영결식은 6일 오전 10시 뉴턴 공동묘지 예배당(Newton Cemetery Chapel)에서 열린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가 세계 각국에 남긴 태권도장과 제자들은 여전히 그의 교육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태권도 지도자가 평생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태권도장이 어린이를 넘어 모든 세대의 삶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김재훈 총관장이 남긴 발자취는 오늘날 태권도계에 적지 않은 질문과 교훈을 남긴다.

 

세계적인 학력과 경력을 가졌지만 태권도 사범이기를 선택했던 사람. 그리고 마지막까지 도복을 입고 제자를 가르쳤던 지도자. 김재훈 총관장의 52년 도장 인생이 막을 내렸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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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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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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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원장

    갑자기 들려온 비보에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국기원 지도자 연수 교육 때마다 김재훈 태권도장의 철학과 방향을 소개해 왔었는데... 2012 국기원 도장활성화 희망지식 세미나에 특별 강연자로 기꺼이 수락해주셨고, 태권도 종주국에 성인태권도 활성화의 씨앗을 뿌리고 전 세계에 무도 태권도를 통한 태권도장 바로서기의 기준이 되어 주셨던 당신의 열정을 추앙하고 기억하겠습니다. 총관장님과의 오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평안히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이 명복을 빕니다.

    2026-11-04 22:10:16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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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세준

    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제 태권도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어주셨던 분인데...
    살아생전 정말 좋은 가르침을 받았고 그 가르침을 토대로 열심히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6-11-04 17:22:23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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