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태권도계 큰 어른’ 이현곤 대사범 별세… 향년 79세

  

1976년 미국행 이후 반세기 가까이 태권도 보급·후학 양성 헌신
“태권도로 얻은 행복, 다시 베풀고 싶다”… 태권도원 기부·지역사회 봉사 앞장

 

故 이현곤 사범

태권도로 삶을 일구고, 태권도로 얻은 것을 다시 태권도와 사람들에게 돌려줬던 미국 태권도계의 큰 어른 이현곤 대사범이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국기원 공인 9단인 고인은 미국 워싱턴D.C. 일대를 중심으로 반세기 가까이 태권도 보급과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오랜 세월 미국 태권도계를 지켜온 원로로 국내외 태권도인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고인의 미국 태권도 인생은 1976년 시작됐다. 태권도 원로 박찬학 사범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주 헌던에 터를 잡고 ‘H.K. Lee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시작한 태권도는 그의 삶의 기반이 됐다. 이후 자리를 잡은 뒤에는 동생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였고, 여섯 형제가 미국 각 지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미국 태권도 보급에 힘을 보탰다. 이들은 미국 태권도계에서 ‘이 브라더스(Lee Brothers)’로 널리 알려졌다.

 

고인의 활동은 도장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세계태권도연맹 교육분과 부위원장과 미국태권도연맹 교육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지도자 교육과 태권도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지역사회에서는 더욱 특별했다. 오랜 기간 봉사활동과 재능기부,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며 ‘태권도 그랜드마스터’로 존경받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아온 헌던에는 지역사회 공헌을 기리는 의미를 담은 ‘이현곤 나무’까지 심어졌다.

 

한국의 후배들을 챙기는 일에도 각별했다. 재능 있는 태권도 전공생들의 미국 유학을 지원하고, 젊은 태권도인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인턴 경험을 제공하는 등 자신이 닦아놓은 길을 후배들과 나눴다.

 

태권도원 조성 과정에서도 고인의 이름은 남다르게 남았다. 태권도원 상징지구 건립을 위해 마련된 ‘기부의 나무’, ‘기부의 열매’, ‘기부의 씨앗’ 세 가지 기부에 모두 참여한 첫 번째 태권도인이었다.

 

당시 매년 한국을 찾을 때마다 기부금을 전달하며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켰다. 태권도원 기부의 숲과 경기장 좌석, 기부의 다리 등에 고인의 이름과 도장명이 남게 된 배경이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태권도에서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인은 생전 <무카스>와 인터뷰에서 “가진 것 없이 미국으로 갔다.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 특히 동생들도 모두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적으로 도장을 운영하고 있어 든든하다.”라며 미국 생활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행복은 모두 태권도를 통해 얻어진 것이니, 기회가 되면 베풀고 싶다.”

 

그 말처럼 살았다. 태권도를 가르쳐 얻은 것을 제자와 후배에게 돌려줬고, 미국 지역사회와 모국의 태권도를 위해 나눴다. 국제 태권도 행사에도 꾸준히 참여해 봉사하며 태권도인의 역할을 실천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태권도고단자회가 주최한 제8차 명예의 전당 시상식에서는 최고 영예인 ‘태권도 대사상’을 수상했다. 당시 시상위원회는 태권도 전 분야에서 모범을 보인 것은 물론 지역사회 발전과 청소년 선도, 국제 태권도 행사에서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가족과 함께 만들어온 태권도 인연도 깊었다. 여섯 형제가 함께 ‘Lee Brothers Cup(이 브라더스컵)’ 태권도대회를 개최하며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을 만들었다. 한 가족의 삶이 미국 태권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이어진 셈이다.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간 청년 태권도 사범은 제자를 길러내는 관장이 됐고,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는 선배가 됐으며,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그랜드마스터로 한평생을 살았다.

 

“태권도로 얻었으니 다시 베풀고 싶다.”

 

생전에 남긴 이 한마디가 이현곤 대사범의 태권도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한다. 반세기 가까이 미국 태권도 현장을 지켜온 고인은 이제 긴 여정을 마치고 영면에 들었다.

 

삼가 고 이현곤 대사범의 명복을 빕니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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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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