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충주시, 28년 쌓은 '세계무예 중심도시' 스스로 지웠나?
발행일자 : 2026-10-21 11:38:36
[한혜진 / press@mookas.com]

세계무술축제·공원·박물관에 세계무술연맹까지… 이제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만 남아

충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충주호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국내외 무술인에게 충주는 오랫동안 '무예의 도시'였다. 그 이름은 하루아침에 얻은 것이 아니다.
‘충주세계무술축제’는 1998년 시작됐다. 민선 1기 지자체 시대가 열리면서 각 도시마다 도시특성에 맞는 축제개발이 시작되던 때다. 당시 충주시장이던 이시종 전 충북지사가 택견전수관에서 착안해 ‘무술’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이다.
국내 무술 단체들이 모인 소박한 ‘전통무술축제’가 2002년 ‘한국 방문의 해’를 기념해 국제축제공모에서 당선되어 2000년부터 세계축제로 서게 되었고, 2002년에는 세계무술연맹이 충주에서 창립 총회를 열었다.
이후 탄금대 인근에 ‘세계무술공원’이 들어섰고, 2012년에는 ‘세계무술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2013년에는 유네스코가 국제무예센터(ICM) 설립을 승인했다. 명실공히 ‘무예의 중심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전 세계 무예인이 충주를 찾았다. 서로 다른 무예를 수련하고 국적도 다른 이들이 이곳에서 우정을 쌓고 교류했다. 무예에 문외한이던 일반 시민과 관광객에게도 세계 각국의 무예를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충북이 이끈 ‘세계무예마스터십’까지 더해 충주는 '무예 도시'로 세계에 알려졌다. 규모의 크고 작음이나 대회의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과 사람들의 노력이 쌓인 결과였다.
그런데 그것을 충북도와 충주시는 몇 년 만에 걷어찼다. 2022년 7월 25일 김영환 신임 충북지사가 세계무예마스터십에 대한 예산과 인력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그동안 두 차례 대회에 투입된 예산은 226억 원. 이틀 뒤 조길형 충주시장은 충주세계무술축제 폐지 방침을 밝혔다. 2019년 제19회가 마지막 대회가 됐다.

340억 원 규모로 추진하던 ‘전통무예진흥원’ 건립도 중단됐다. 설계 용역에만 약 18억 원을 쓰고 접었다. 국비까지 지원된 사업이고 기본계획에 예비타당성 검증까지 마친 상태였다.
2027 유니버시아드 태권도와 유도 등 무도스포츠종목의 경기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민선8기에 접어들자 조길형 충주시장은 앞장서서 이 시설을 중단했다. 이미 투입된 예산과 그동안의 행정적 노력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뿐만 아니다. 세계무술공원은 '탄금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조 시장은 이를 두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지난 수십 년간 충주가 세계무예의 중심 도시를 자처했던 시간은 본래 모습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세계무술박물관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12년 개관한 박물관은 지난 9월 말 운영을 종료하고 폐관 절차를 밟고 있다. 그 건물은 중부권 광역발명센터 시설로 전환될 예정이다.
발명교육센터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것과 14년간 세계 각국에서 모은 무예 유산을 지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박물관에 남겨진 무기와 복식, 기념품들은 충주가 세계무예계와 맺어 온 교류의 기록이다.
오랫동안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수집하고 축적한 귀한 자료와 기록을 앞으로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폐관 이후 소장품을 어디로 옮기고, 누가 관리하며, 시민들에게 어떻게 공개할 것인지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축제는 없애고, 공원 이름은 바꾸고,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이제 세계무술연맹까지 떠난다. 충주는 대체 무엇을 남기려는 것인가.
충주시가 내세운 명분은 효율과 택견 집중이었다. 참여 국가와 관람객 감소, 시민들의 낮은 호응, 중복 예산 등의 문제도 제기됐다. 분명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을 높인다는 이유로 수십 년간 쌓은 국제교류 기반까지 없애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는가.
택견을 키우겠다는 도시가 왜 택견이 세계 각국의 무예인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기반부터 걷어내는가. 택견의 세계화와 세계무예 네트워크는 서로 경쟁하는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자산이었다.
<무카스>는 2023년 5월에도 충주의 무예 정책 폐지를 우려하고 비판했다. 전임 단체장이 추진한 사업을 후임 단체장이 하나씩 없애는 모습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전임자가 시작한 사업이라고 무조건 유지할 필요는 없다. 성과가 부족하면 고쳐야 하고, 예산이 낭비됐다면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개선과 폐지는 다르다.
정책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의 역사는 단체장의 임기와 함께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충주에 남아 있던 국제무예 네트워크의 한 축인 세계무술연맹도 충주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충주시는 지난해 9월 세계무술연맹에 대한 올해 예산 지원 중단을 공식화했다. 기존 지원 규모는 연맹 운영비 2억 9천만 원과 총회 지원비 8천만 원 등 연간 3억 7천만 원이다.
시는 중복 투자를 줄이고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중심으로 무예 정책을 일원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세계무술연맹에 대한 재정 지원과 행정적 역할을 종료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충주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에서 열린 세계무술연맹 제25차 연차총회와 국제연무대회(IMAC 2026)는 충주와 연맹의 24년 인연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였다.
특히 15일 연차총회 후 열린 환영만찬에서는 세계무술연맹이 2002년 창립 이후 함께해 온 충주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역대 사무총장들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사무총장을 지낸 우건도 전 충주시장이 대표로 감사패를 받았다.
오랫동안 충주를 국제무예 교류의 중심으로 만들어 온 이들이 사실상 작별 인사를 나눈 것이다.

충주시는 지원을 끊었는데, 떠나는 국제기구는 충주시민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다. 참으로 씁쓸한 장면이다.
최근 취임한 허권 세계무술연맹 총재는 <무카스>와 전화 통화에서 오랫동안 충주에 쌓아 온 세계무술의 중심 기반이 사라지는 데 깊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제는 세계무예 교류를 원하는 다른 도시들과 협력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도 전했다.
국제연무대회 역시 이번 대회를 끝으로 충주 개최를 마무리하고 다른 지역에서 이어갈 예정이다. 2022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해 온 국제무예 교류의 무대가 이제 충주를 떠나는 것이다.
충주가 수십 년간 공들여 만들어 놓은 국제적 자산을 다른 도시가 가져가게 생겼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데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세계무술연맹마저 떠나면 충주가 어렵게 유치한 무예 분야 국제기구 가운데 사실상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ICM)만 남는다.
ICM은 단순한 지역 무예단체가 아니다. 유네스코의 후원을 받는 '카테고리 2센터'다. 청소년의 발달과 참여를 위한 무예 연구, 교육, 국제교류를 수행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와 유네스코의 협정으로 설립된 국제협력기관이다.
그 유치 과정도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충북도와 충주시는 세계무술축제와 세계무술연맹을 비롯해 오랫동안 축적한 국제무예 교류 실적을 내세워 유치에 나섰다. 중앙정부와 협력하며 유네스코의 심사와 승인 절차를 거쳤다.
2013년 11월 제37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설립이 승인됐고, 2015년 12월 대한민국 정부와 유네스코가 설립 협정을 체결했다. 2016년 12월 정식 출범한 뒤 2017년 국내 법적 근거까지 마련했다.
2020년 11월에는 국비 42억 6천만 원, 도비 52억 7천만 원, 시비 84억 7천만 원 등 총 180억 원을 들여 충주 세계무술공원에 독립 청사를 개관했다.
당시 충북도와 충주시는 이를 세계무예 중심 도시로 도약하는 상징적인 성과로 내세웠다. 조길형 충주시장 역시 개관 당시 충주의 세계무예 분야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심지어 민선 8기 들어 조길형 충주시장은 이른바 ‘무예 지우기’라는 비판을 받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ICM)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 국제기구를 유치할 때 자랑했던 기반을 충북도와 충주시가 스스로 없애고 있다.
세계무술축제는 사라졌다. 세계무술공원은 이름을 바꿨다. 세계무술박물관도 문을 닫는다. 세계무술연맹마저 충주를 떠난다. 이 모든 것이 조길형 시장이 12년간 서서히 만들어 간 일이다.
ICM 유치의 명분이었던 세계무예 교류의 기반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2020년 ICM 청사 개관 당시만 해도 세계무술연맹을 비롯한 여러 무예단체가 한 건물에 모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센터는 세계무예인들의 교류 공간이자 국제무예 협력의 거점으로 소개됐다.
그렇게 모아 놓은 국제무예 기반을 불과 몇 년 만에 해체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ICM의 존폐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202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와 유네스코 간 협정도 갱신됐다. 현재도 국제 무예교육과 연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기구가 법적으로 존속하는 것과 설립 취지에 맞게 제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충주가 세계무예의 중심이라는 명분으로 어렵게 유치한 ICM이지만, 정작 그 국제적 교류 기반은 약화되고 있다.
충북도와 충주시가 ICM 중심의 무예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면 분명한 답이 필요하다. 사라진 세계무예 네트워크를 어떻게 보완하고, 국제교류 기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세계무예의 중심 도시라는 간판은 떼어내면서, 그 간판 덕분에 유치한 국제기구만 남겨 놓겠다는 것인가.
지금 당장 ICM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유치의 명분과 기반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그 미래까지 마냥 낙관할 수는 없다. 충북도와 충주시가 어렵게 유치한 국제기구의 '존립 기반'을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야 한다.
같은 기간 탄금공원에서는 세계택견대회가 열렸다. 18개국 300여 명이 참가했다. 택견의 세계화를 위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택견만 남기고 세계무예의 교류 기반을 걷어내는 방식이 과연 택견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전 세계 수많은 도시가 저마다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쓴다. 국제기구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서도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그런데 충주는 이미 갖고 있던 국제기구와 네트워크를 스스로 정리하고 있다.
행정은 예산을 아끼는 일만이 아니다. 시민의 자산을 지키고, 선대가 쌓은 성과를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일도 행정의 책임이다. 전임자가 추진했다는 이유로 지울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고치고 가치 있는 것은 더 키웠어야 했다. 그러나 충주는 무예를 정쟁으로 끌어들여 무예지우기를 해 온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언젠가 또 다른 시장과 지사가 등장해 '무예 도시 충주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세계무예인들이 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고 있을 것이다.
28년간 쌓은 도시의 브랜드를 지우는 데는 몇 년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다시 쌓으려면 또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
충주가 버린 것은 무술축제 하나가 아니다. 28년 동안 쌓은 도시의 ‘유산’이고, 다시 만들기 어려운 국제적 자산이다.
이제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만 남았다. 그마저 이름뿐인 국제기구로 남게 해서는 안 된다. 국제기구마저도 이런 환경 속에 두는 처사라면 국내외 다른 도시로 반납해야 한다.
세계무예의 중심 도시를 스스로 지워 놓고, 마지막 남은 국제기구에는 무슨 미래를 약속할 것인가.
충북도와 충주시가 답해야 할 차례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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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
|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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