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 종료 1초의 역전극의 교훈… 한국 태권도는 끝까지 싸우고 있는가

  

파리GP 두 역전극이 교훈...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싸우는 자세

 

세계적인 태권도 선수들이 출전하는 ‘2026 파리 그랑프리’서 헝가리 오마르 살림과 코트디부아르 루스 그바그비의 극적인 ‘버저비터’ 역전승은 포기와 방심, 무의미한 공격까지 침체한 한국 선수들에게 교훈을 던지고 있다.  

 

승부를 뒤집는 데 필요한 시간은 마지막 1초 였다. 파리에서 두 선수가 보여준 극적인 역전극은 한국 태권도에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이기기 위해 싸우고 있는가”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지난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6 세계태권도 그랑프리 시리즈2. 남자 -68kg급과 여자 -67kg급에서 경기 종료 직전 승부가 뒤집히는 장면이 잇따라 나왔다. 이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뿐만 아니라 이후 여러 경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역전극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남자 -68kg급 16강전. 2022 과달라하라 세계선수권 챔피언 출신인 헝가리의 오마르 살림(Omar SALIM)이 개최국 프랑스의 수레이만 알라필리프(Souleyman ALAPHILIPPE)를 상대로 믿기 어려운 역전승을 거뒀다.

 

2회전 종료 9초 전. 오마르는 8-11로 뒤지고 있었다. 역전을 위해 공세를 높였지만, 종료 6초를 남기고 오히려 넘어지면서 감점 2점을 허용했다. 8-13. 순식간에 5점 차로 벌어졌다.

 

남은 시간은 불과 6초. 프랑스 선수는 거리를 벌리며 승리를 지키려 했다. 오마르의 공격을 피하면서 남은 시간만 보내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마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상대를 압박했고, 종료 1초 전 거리를 벌리던 상대를 향해 한 걸음 파고들며 회심의 '뒤후려차기'를 날렸다.

 

발끝이 상대 머리에 정확히 적중했다. 회전 머리 공격 6점. 8-13에서 14-13. 단 한 번의 발차기로 5점 차 열세를 뒤집었다.

 

여자 -67kg급 8강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코트디부아르의 간판스타 루스 그바그비(Ruth GBAGBI)는 튀니지의 마스구니 와파(Masghouni WAFA)를 상대로 2회전 막판 3-9로 뒤지고 있었다.

그바그비의 회심의 뒤후려차기

와파는 6점 차 리드를 지키기 위해 한계선 부근에서 앞발로 그바그비의 접근을 차단했다. 무리하게 공격하기보다 남은 시간을 버티려는 경기 운영이었다. 하지만 그바그비는 물러서지 않았다. 좌우로 상대를 흔들며 공격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오른발 뒤후려차기를 상대 머리에 적중 시켰다.

 

3-9에서 9-9. 순식간에 동점. 동점으로 끝나면 그바그비가 기술 우위로 승리하는 상황. 조금 전까지 승리를 지키려던 와파가 이제는 공격해야 하는 처지로 바뀌었다. 마음이 급해진 와파는 연속 공격에 나섰다. 그바그비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종료 0.9초 전, 상대의 공격을 몸통 돌려차기 받아차기로 되받아쳤다. 11-9. 극적인 역전승으로 4강에 진출한 짜릿한 상황이다.

 

두 경기 모두 마지막 순간에 승부가 뒤집혔다. 그러나 기자가 주목한 것은 화려한 뒤후려차기나 극적인 점수 변화만이 아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기회를 찾는 선수와 유리한 상황에서 마지막 집중력을 놓치는 선수의 차이였다.

 

현장에서 이 장면들을 지켜보며 지난 9월 중국 타이위안에서 썼던 칼럼이 떠올랐다. 당시 기자는 <한국 태권도, 마지막 1초까지 싸우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한국 겨루기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패배 자체를 탓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지는 과정', 더 정확히는 승부에 임하는 자세였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한국 겨루기가 좀처럼 과거의 위용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을 기술력이나 국제 경쟁력에서만 찾을 일은 아니다. 기자가 현장에서 더 심각하게 보는 것은 마지막 순간의 집중력과 승부욕이다.

 

물론 경기를 이기고 싶은 마음은 선수와 지도자가 누구보다 간절할 것이다.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도 잘 안다. 그 마음까지 의심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기를 객관적으로 지켜보면 다른 문제가 보인다. 불리한 상황에서 끝까지 승부를 걸지 못하고, 유리한 상황에서는 마지막 집중력을 놓치는 모습이다.

 

점수 차가 벌어지면 공격의 강도가 떨어진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도 스스로 승부를 포기하는 듯한 장면이 적지 않다. 심지어 종료 3초 이상을 남기고 상대에게 주먹을 내밀며 사실상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스포츠맨십이다. 그러나 그것은 경기가 끝난 다음의 일이다.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스포츠맨십이 아니다. 그야말로 ‘포기’다.

 

물론 패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부상도 있고, 그날의 컨디션도 다르다. 혹독한 체중 감량으로 몸이 무거울 수도 있고, 체력이 바닥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상대 선수라고 늘 최상의 몸 상태로 경기에 나서겠는가. 상대 역시 부상과 체중 감량, 체력 저하를 견디며 같은 경기장에 선다.

 

모든 패배를 정신력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지막 순간에 집중력을 잃고 승부를 포기하는 모습까지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특히 현행 세계태권도연맹(WT) 경기규칙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올해부터 몸통 회전 공격은 4점, 머리 회전 공격은 6점이다. 경기 종료 10초 이내 한계선 이탈이나 넘어지는 행위 등에 적용되는 감점은 2점이다.

 

머리 회전 공격에 상대의 감점까지 더해지면 한 번의 공격 상황에서 최대 8점까지 점수 차를 벌릴 수 있다. 마지막 몇 초에도 얼마든지 승부가 뒤집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왜 마지막 몇 초를 남기고 포기하는가라는 질문인 것이다.

 

반대로 이기고 있는 선수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점수 차가 여유롭다고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위험해진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려고 한계선 밖으로 물러나거나, 무리하게 시간을 보내다 불필요한 감점을 허용할 수 있다.

 

그랑프리 시리즈 같은 세계 정상급 대회에 출전한 선수라면 누구나 승부를 뒤집을 '한 방'을 갖고 있다. 5점, 6점 앞서 있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그바그비와 와파의 경기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동점 이후다. 6점 차로 앞서던 와파는 수비에 집중하다 회전 공격 한 방을 허용했다. 이후 승부가 뒤집히자 공격을 서둘렀고, 종료 0.9초 전 몸통 받아차기까지 내줬다.

 

단 한 번의 실점이 점수만 바꾼 것이 아니다. 두 선수의 경기 운영과 심리적 상황까지 뒤집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싶다. 경기 막판, 의미 없이 몸을 돌리고 발차기만 반복하는 것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뒤지고 있으니 일단 회전 공격을 시도하고, 앞서고 있으니 무조건 피하고 보는 식의 경기 운영은 곤란하다. 무작정 발을 휘두른다고 승부욕이 강한 것도 아니고, 끝까지 움직였다고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다.

 

마지막 몇 초에는 오히려 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기고 있다면 어떻게 실점과 감점을 막고 승리를 지킬 것인가. 지고 있다면 남은 시간에 어떤 공격으로 몇 점을 만회할 것인가. 상대가 물러설 때 어떤 기술을 연결하고, 어느 순간 승부수를 던질 것인가.

 

마지막 10초는 정신없이 발을 차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치밀하게 승부를 계산해야 할 시간이다.

 

이때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은 시간과 점수 차를 정확히 읽고, 선수에게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빠르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저 "끝까지 해!", "돌아!", "차!"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수 역시 지시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승부를 뒤집을 지략이 없는 무의미한 공격은 오히려 상대에게 역습의 기회만 준다. 경기 종료 직전 의미 없이 몸을 돌리고 발을 휘두른 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위안해서는 곤란하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많이 움직였다는 뜻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길 방법을 찾고 실행했다는 뜻이어야 한다.

 

겨루기 종목에서 한국이 우위에 있던 시절은 옛말이다. ‘노골드’도 더 이상 놀라운 상황도 아니다. 상대는 강해졌다. 질 수 있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질 수도 있다. 세계 태권도의 경쟁력이 높아진 지금, 한국 선수가 모든 경기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마지막까지 이기려는 시도는 해야 한다. 앞서고 있다면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는 상황에 맞는 전술을 제시하고, 선수는 이를 실행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포기도 습관이고, 방심도 습관이다. 불리할 때마다 체념하는 선수는 다음 경기에서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반대로 유리할 때마다 긴장을 놓는 선수는 다 이긴 경기를 놓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공격만 반복하는 습관 역시 경기력을 떨어뜨린다.

 

기자는 최근 국제무대에서 고전하는 한국 태권도의 문제를 단순히 실력 부족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기본적인 승부 자세가 흐트러진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다. 훈련량도 결코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 기술과 훈련의 성과를 마지막 순간까지 경기장에서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가.

 

지난 9월 타이위안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던졌던 질문을 파리에서 다시 꺼내고 싶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 경기 종료 마지막 0.01초까지 이기기 위해 싸우고 있는가. 잘 싸우고 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포기하는 모습, 승리를 확신하고 집중력을 놓치는 모습, 무의미한 공격을 반복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위안하는 모습에는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파리에서 오마르와 그바그비가 보여준 역전극은 화려한 뒤후려차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패배가 눈앞에 다가온 순간에도 기회를 찾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끝까지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리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방심하지 않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집중하는 것.

 

거창한 비법이 아니다. 선수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한국 태권도가 다시 강해지려면, 그 기본부터 돌아봐야 한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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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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