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의 태권도 다시 묻다⑤] 품새에는 표준이 있다… 발차기·겨루기는?

  

세계 공통의 품·단별 기술 기준 필요… ‘공통·선택·대체기술’부터 교육·심사까지 연결하는 통합모형 제안

 

세계 어느 태권도장에서나 ‘태극 1장’을 말하면 대체로 같은 품새를 떠올린다. 동작의 순서와 방향이 정해져 있고, 지도자는 무엇을 가르칠지, 수련자는 무엇을 익힐지 알고 있다. 심사에서도 무엇을 확인할지 공유한다. 서로 다른 나라의 태권도인이 하나의 기술을 배우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품새 표준화가 이룬 성과다.

 

그렇다면, 태권도의 또 다른 자산인 '발차기'와 '겨루기'에는 어떤 공통 기준이 있는가.

 

태권도에는 돌려차기, 내려차기, 옆차기, 뒤차기, 뒤후려차기, 빠른발차기, 나래차기, 돌개차기가 있다. 여기에 제자리딛기·내딛기·물러딛기, 거리 조절, 속임 동작, 연결 공격과 받아차기가 더해진다.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품·단에서 무엇을 먼저 배우고, 어떻게 발전시키며, 어느 수준까지 수행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일은 별개의 과제다.

 

도장에서 단계적으로 가르친 발차기와 겨루기 능력을 심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품·단별 교육 목표와 평가 기준을 연결해야 한다.

 

표준화가 모든 도장의 수업을 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지도자는 미트를 활용하고 다른 지도자는 놀이와 과제를 활용할 수 있다.

 

기술을 설명하고 반복시키는 방법에도 각자의 전문성이 담긴다. 그러나 지도 방법이 다르더라도 해당 품·단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함께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2단의 목표가 ‘움직여 거리를 만들고 기본 발차기를 연결한다’라면 한국과 미국의 지도 방법은 달라도 수련자가 보여야 할 능력은 공유할 수 있다.

 

먼저 이번 칼럼에서 말하는 <겨루기 표준>의 전체 모습을 그려 보자.

 

첫째는 품·단별로 어떤 기술과 원리를 익힐지 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 기술을 혼자 수행하는 단계에서 움직임과 상대에 대한 적용으로 어떻게 발전시킬지 설계하는 것이다. 셋째는 각 단계의 성장을 지도자가 가르치고 관찰하며, 심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서로 이어져야 기술 이름의 목록이 교육과 평가의 기준이 된다. ‘1단은 돌려차기, 2단은 뒤차기, 3단은 뒤후려차기’처럼 기술만 나열하면 이미 배운 기술을 어느 수준까지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돌려차기 하나만 보아도 차이가 분명하다. 처음에는 제자리에서 타격면과 궤적을 익히고 균형을 유지한다. 그다음에는 딛기와 이동으로 거리를 만든 뒤 차고, 이어 다른 기술과 연결한다. 더 나아가 상대가 들어오거나 물러나는 순간을 보고 적절하게 사용한다. 기술 이름은 그대로지만 ‘정확하게 찰 수 있는가’에서 ‘움직이며 연결할 수 있는가’, ‘상대에게 맞게 사용할 수 있는가’로 요구되는 능력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같은 목표를 모든 사람에게 같은 동작으로만 확인할 수는 없다. 세계의 수련자는 연령과 신체 조건, 수련 환경이 다르다. 이에 따라 기술 기준은 공통기술, 선택기술, 기능적으로 동등한 대체기술로 구성할 수 있다.

 

공통기술은 해당 품·단의 기초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익히는 기술이다. 초기 단계의 돌려차기라면 자세와 중심, 타격면과 궤적을 정확하게 보여야 한다.

 

선택기술은 같은 목표 안에서 수련자가 기술을 고를 수 있게 한다. 목표가 ‘첫 공격 뒤 다음 기술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라면 돌려차기에서 뒤차기로 이어도, 돌려차기에서 내려차기로 이어도 된다.

 

평가할 것은 선택한 발차기의 이름보다 연결 과정의 균형, 거리와 시점이다. 지도자의 창의성과 수련자의 선택을 인정하면서도 공통 목표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대체기술은 특히 성인·고령·장애인 수련자와 고단자의 신체 조건을 고려할 때 필요하다. 목표가 화려한 회전 자체가 아니라 상대의 거리와 타이밍을 판단해 정확하고 안전하게 대응하는 능력이라면, 도약·회전 동작이 적절하지 않은 수련자도 다른 기술로 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쉬운 동작이라면 무엇이든 허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체 기술이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지, 정확성과 통제 수준을 어떻게 확인할지 미리 정해야 한다. 품 수련자와 성인 단 수련자의 안전 조건도 구별해야 한다.

 

이제 두 번째 부분인 성장 경로를 살펴보자. 앞선 글에서 제안한 ‘개별 차기 → 연결 차기 → 맞춰 겨루기 → 실제 겨루기’는 발차기를 혼자 익힌 다음 움직임과 상대를 단계적으로 더해 가는 교육의 틀이다.

 

각 단계마다 배울 내용과 연습 방법이 있으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는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모든 수련자가 같은 날 네 단계를 이수하거나 실제 겨루기를 동일한 방식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개별 차기에서는 혼자 차면서 자세·궤적·타격면·회전축·착지와 복귀를 익힌다. 지도자는 “이 기술을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수행하는가”를 묻는다. 연결 차기에서는 내딛기·물러딛기·옆딛기 등으로 거리를 만들고 두 개 이상의 기술을 잇는다. 여기서는 “움직인 뒤에도 균형과 거리, 기술의 연결을 유지하는가”를 확인한다.

 

맞춰 겨루기에서는 두 사람이 공격자와 대응자의 역할을 정한다. 한 사람이 움직여 공격하면 상대는 물러나거나 피하고, 약속한 범위에서 받아차거나 다시 공격한다.

 

역할을 바꿔 양쪽을 모두 익히면서 “상대와의 거리·타이밍을 읽고 힘을 통제하는가”를 본다. 이후 실제 겨루기에서는 미리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련자가 기술을 스스로 선택한다. 이 단계에서는 상대의 반응에 맞춰 판단하는 능력을 확인하되 접촉 강도와 안전 규칙을 지켜야 한다.

 

이 네 단계가 왜 표준이어야 하는지 한 수련자의 돌려차기를 따라가 보자. 처음에는 혼자 자세와 타격면을 익히고, 다음에는 한 발 움직여 거리를 맞춘다. 이어 약속한 상대가 들어오는 순간에 받아차기를 시도하고, 충분히 준비되면 예고하지 않은 움직임 속에서 찰지 피할지 판단한다.

 

지도자는 각 단계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과제를 제시할지 알 수 있으며, 수련자는 같은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체감한다. 이때 심사는 수업과 별개로 갑자기 등장하는 절차가 아니다. 도장에서 익힌 능력이 해당 품·단의 목표에 도달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개별 차기에서는 궤적과 균형을, 연결 차기에서는 이동 후의 거리와 기술 연결을, 맞춰 겨루기에서는 상대와의 간격·타이밍·힘의 통제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 겨루기를 평가에 포함할지는 연령, 품·단, 준비도와 안전 조건에 따라 별도로 정해야 한다.

 

정확성·균형·거리·타이밍·연결·통제·안전은 단계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일곱 가지 공통 평가 축이다. 그러나 모든 품·단에 똑같은 비중을 줄 필요는 없다.

 

초보 단계에서는 정확성과 균형을, 중간 단계에서는 거리·연결·타이밍을 더 살필 수 있다. 고단에서는 동작의 높이나 난도보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는 판단과 안전한 통제를 중시할 수 있다. 어느 기술로 평가하든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심사위원도 수련자의 발전을 비슷하게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제안하는 통합모형은 겨루기 기술을 표준화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술과 품·단별 수행 목표를 정하는 일은 시작일 뿐이다. 그 목표를 도장 수업으로 옮길 교육 과정과 지도자 교육이 있어야 하고, 교본과 영상은 자세뿐 아니라 딛기·거리 변화·속임 동작·공격과 대응의 시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도자는 왜 이 기술을 이 단계에서 가르치는지, 어떤 연습을 통해 성장시키고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수련자는 배운 내용을 심사에서 보여주고, 현장은 그 과정에서 효과와 어려움, 안전 문제를 다시 기록한다. 기술 기준 → 교육 과정 → 지도자 교육과 교본·영상 → 도장 수업 → 심사 → 현장 자료 → 기준 개정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표준은 지속되는 교육 체계가 된다.

 

이 통합모형은 서류상으로만 완성할 수 없다. 여러 도장에서 어린이·성인·고단자에게 시범 적용해 실제 수행이 가능한지, 난도와 접촉 강도가 안전한지, 지도자와 수련자가 이해하기 쉬운지 살펴야 한다.

 

심사위원들이 같은 수행을 보고 비슷한 평가를 내리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바탕으로 기술과 용어, 교육 자료, 평가 기준을 함께 고쳐 다시 시험하는 것이다. 표준을 만드는 연구는 이 검증을 뒷받침하고, 검증 결과는 다시 교육의 내용과 방식에 반영된다.

 

품새는 세계 태권도인이 공유하는 기술적 언어를 만들어 왔다. 발차기와 겨루기에서도 지도 방법과 문화의 다양성을 살리되 ‘이 품·단에서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연습하며, 어느 수준까지 상대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에 함께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심사 문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가르치고 수련자가 성장하며 심사가 이를 확인하고 현장이 다시 기준을 발전시키는 교육의 순환이어야 한다. 그럴 때 뛰어난 지도자의 기술과 경험은 한 도장을 넘어 다음 세대가 배우고 발전시킬 수 있는 태권도의 자산이 된다.

 

 

임태희 | 국기원 태권도연구소장 · 용인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스포츠심리학 전공으로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세계태권도연맹(WT)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권도 수련의 심리적·교육적 효과, 인성교육, 라이프스킬의 발달과 일상생활로의 전이를 연구하며, 연구 성과를 지도자 교육과 수련 현장에 접목해 왔다. 2012 런던올림픽 태권도 국가대표팀 심리트레이너와 2013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멘탈트레이너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KTA 태권도 인성교육』, 『태권도로 배우는 실천인성』, 『Developing Life Skills through Taekwondo』, 『응용스포츠심리학』 등이 있다. 태권도의 교육적 가치를 바탕으로 수련 문화의 발전과 지도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있다.

 

[무카스미디어 = 임태희 국기원연구소장 ㅣtaeheej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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