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명문 태권도장 간판이 49년째 '한국(HANKUK)'이 걸린 사연?
발행일자 : 2026-10-12 01:34:01
[한혜진 / press@mookas.com]

KOREA 아닌 'HANKUK'… 77년 한국인 사범이 창립, 현지 제자들 만장일치로 이름 계승
올림픽 챔피언 키운 스페인 태권도 명문… KTA 양진방 회장, 파리서 특별 인증패 전달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인근의 도시에 49년 전 한국인이 세운 작은 태권도장이 있다. 그 도장은 일찍이 현지인 제자에 제자로 이어졌으나 여전히 ‘한국’의 전통 태권도를 고수하고 있다.
반세기 가까이 그 이름을 지키며, 현재 세계적인 올림픽 챔피언을 키워낸 명문 도장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에 태권도 종주국 한국이 이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대한태권도협회(KTA) 양진방 회장은 프랑스 파리 인근 르발루아페레에서 열린 '2026 파리 월드태권도 그랑프리' 현장에서 스페인의 세계적인 태권도 명문 클럽 '한쿡 인터내셔널 스쿨(Hankuk International School)'의 헤수스 라말(Jesús Ramal) 총괄 지도자와 수비 미코넨(Suvi Mikkonen) 지도자에게 감사패와 'KTA 특별 인증 도장패'를 전달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키고, 태권도 종주국의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육성해 온 공로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양 회장은 ‘한쿡 클럽’이 도복은 물론 운동복을 비롯한 곳곳에 '한국 태권도'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오랫동안 주목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지금 브랜드"라며 처음에는 이들이 그 이름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지 궁금했지만,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한국 태권도의 전통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클럽의 이름이다. 영어로 한국을 뜻하는 'KOREA'가 아니다. 우리말 '한국'의 발음을 로마자로 옮긴 'HANKUK'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단순히 한국이라는 국가의 이름을 빌린 것이 아니라, 한국어 고유의 이름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계승해 온 것이다.
한쿡 인터내셔널의 역사는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인 태권도 대사범 한선문(Han Seon Moom)이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인근에 설립한 작은 태권도장이 출발점이다. 현재는 마드리드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위성도시 산세바스티안데로스레예스(San Sebastián de los Reyes)를 거점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현재 클럽을 이끄는 라말 코치는 1981년 이곳에 입문했다. 당시 창립자인 한선문 사범은 이미 다른 도시로 떠난 뒤였다. 라말은 앙헬 무뇨스(Ángel Muñoz)를 비롯한 스페인 지도자들에게 태권도를 배웠다.
1991년 보조 지도자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6년 수석 지도자를 맡으며 클럽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한국인이 창립한 도장의 이름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라말은 당시 오랜 수련생과 선수들을 한자리에 모아 의견을 물었다.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모두가 '한국(HANKUK)'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를 원했다.
라말 코치는 무카스와의 현지 인터뷰에서 "한쿡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이자 뿌리"라며 "1996년 기술지도 책임자가 됐을 때 오랜 수련생들과 선수들을 모아 이름을 유지할지 논의했다.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모두가 우리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존중의 의미로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키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창립자가 떠난 뒤에도 현지 지도자와 제자들은 그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역사이자 자부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켜온 작은 도장은 이제 세계적인 올림픽 챔피언을 배출하는 명문으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스페인의 아드리아나 세레소(Adriana Cerezo)다. 세레소는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49kg급에서 당시 17세의 나이로 은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태권도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당시 국내 팬들에게는 경기 결과 못지않게 화제가 된 장면이 있었다. 세레소의 검은띠에 새겨진 엉뚱한 한글 문구였다.

'기차 하드, 꿈 큰.'
자신의 좌우명인 'Train Hard, Dream Big(열심히 훈련하고 큰 꿈을 꾸라)'을 태권도 종주국의 언어로 새기려다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영어 'Train'을 '훈련하다'가 아닌 '기차'로 잘못 번역한 것이다.
한국어는 서툴렀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태권도의 종주국 언어로 좌우명을 새기고 싶었던 마음은 진심이었다.
국내에서는 어색한 번역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한글을 향한 애정에 따뜻한 응원을 보냈다. 이후 주스페인 대한민국대사관이 올바른 한글 문구를 새긴 검은띠를 선물하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한쿡의 세계적인 성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헝가리의 쌍둥이 자매 루아나 마르톤(Luana Márton)과 비비아나 마르톤(Viviana Márton) 역시 한쿡이 배출한 세계적인 스타다.

루아나는 2023 바쿠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여자 -57kg급에서 우승하며 헝가리 여자 태권도 사상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획득했다. 동생 비비아나는 이듬해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67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헝가리 국적의 두 자매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핀란드 출신 올림피언 수비 미코넨 지도자의 지도를 받으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번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두 자매는 비비아나는 -67kg급 우승을 루아나는 +67kg급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인이 설립한 스페인 태권도장에서 핀란드 지도자가 헝가리 선수들을 세계 정상으로 키워낸 것이다. 태권도 세계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라말 코치는 이러한 성공의 비결로 화려한 훈련 기술보다 태권도의 교육적 가치를 먼저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철학은 태권도를 통해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것"이라며 "노력과 존중, 규율을 강조하고 매일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가면서도 선수들의 신체적·정서적 건강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말 코치 "한국은 우리의 정체성이자 뿌리… 태권도는 한국이 세계에 준 선물"
한쿡이 지켜온 것은 단순히 '한국'이라는 이름만이 아니다.
라말은 "한국의 전통은 지금도 우리 정체성의 핵심"이라며 "도장에 들어설 때부터 훈련을 시작하고 마칠 때까지 전통적인 인사 예절을 지키고, 기술 명칭도 한국어를 그대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의와 어른에 대한 존경, 인내, 자제력, 불굴의 정신 등 태권도의 전통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가르친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과의 교류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매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개최하는 '윈터 트레이닝 캠프(Winter Training Camp)'에는 30개국 이상의 젊은 태권도 선수들이 참가한다. 단순한 합동훈련을 넘어 스포츠와 문화를 교류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주스페인 대한민국대사관 관계자들도 이 행사를 방문하며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58kg급 금메달리스트 박태준도 캠프에 참가했다.
한국인이 세운 작은 태권도장은 이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모여 훈련하고 교류하는 국제적인 무대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한국'이라는 이름과 태권도의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반세기 가까이 한국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지켜온 라말과 한쿡 클럽에 종주국이 직접 감사의 뜻을 전했다.
라말은 이번 KTA의 감사패와 인증패를 받은 것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매우 감격스럽고 특별했다"며 "지난 50년 동안 한국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지켜온 우리에게 태권도 종주국으로부터 이러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에게 따뜻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주시고 공개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해주신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 회장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과 새로운 협력의 기회가 열리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라말은 인터뷰 마지막에 "태권도는 한국에서 탄생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국제적인 가족이 됐다. 태권도는 한국이 전 세계에 나눠준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이다. 그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이라며 한국 태권도계에 각별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태권도를 통해 계속 만나고 경험을 나누며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해나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무카스미디어 = 프랑스 파리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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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
|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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