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태권도 개척자 서명수 원로 별세… 반세기 태권도 보급 헌신

  

1969년 네덜란드 진출, 벨기에 등 유럽 태권도 보급과 품새 발전에 큰 족적… WT 집행위원 역임

고 서명수 사범

유럽에 태권도의 뿌리를 내리고 반세기 넘게 그 성장을 이끌어 온 태권도 개척 1세대 서명수 대사범이 최근 별세했다. 향년 87세.

 

태권도가 낯설었던 1960년대 말 유럽에 진출해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태권도 보급에 헌신했던 고인의 별세 소식에 유럽을 비롯한 세계 태권도계가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1939년 대구에서 태어난 서명수 원로는 어린 시절 태권도에 입문했다. 1962년 4단을 취득한 뒤 한국에서 도장을 운영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이 크게 바뀐 것은 1969년이다. 30세의 나이에 네덜란드로 건너가 태권도 지도에 나섰다. 한국 태권도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던 시기, 유럽 현지에서 태권도를 직접 가르치며 보급 기반을 다진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도장 수련생들과 함께 하고 있는 고 서명수 사범의 모습

당시 유럽에서는 태권도 자체가 생소했다. 제대로 된 교본이나 교육자료도 부족했고, 한국을 방문해 태권도를 배울 수 있는 지도자도 많지 않았다.

 

서명수 사범은 직접 도복을 입고 현지인들을 지도했다. 단순히 발차기와 겨루기 기술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태권도에 담긴 정신과 예절, 무예적 가치를 함께 가르쳤다.

 

특히 네덜란드뿐 아니라 벨기에 태권도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지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기술을 전수하면서 유럽 태권도 보급의 기초를 닦았다. 뿐만 아니라 부인은 물론 두 딸도 모두 태권도 고단자로 온 가족이 태권도를 수련해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의 공로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품새’다. 초기 유럽 태권도가 겨루기 중심으로 성장하던 시절, 서명수 사범은 품새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했다. 태권도를 단순한 경기 스포츠가 아닌 종합적인 무예로 이해해야 한다는 신념에서였다.

 

벨기에 태권도계에 따르면, 그는 현지 지도자들에게 품새를 직접 전수했으며, 유럽의 품새 경기체계를 정착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3년 처음 열린 유럽 품새선수권대회 역시 그의 노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태권도 경기와 심판 제도 발전에도 기여했다. 1973년부터 세계선수권대회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국제심판으로 활동했다. 1984년 유럽태권도연맹 기술위원회에 참여했고, 1988년에는 기술이사로 선임돼 유럽 태권도의 기술체계와 심판 교육 발전에 힘썼다.

 

1990년에는 네덜란드태권도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1997년 유럽태권도연맹 집행부에도 참여하며 현장 지도자를 넘어 국제 태권도 행정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세계태권도연맹(WT)에서도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WT 집행위원을 역임하며 세계 태권도의 주요 정책과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데 참여했다.

 

1993년에는 태권도 공인 9단에 올랐다. 유럽에서 태권도 보급과 후학 양성에 헌신해 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평생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놓지 않았다. 1987년 네덜란드 헤를렌에 설립한 ‘태권도 아카데미 서(Taekwondo Academy Seo)’를 통해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의 도장에서는 겨루기뿐 아니라 품새에서도 국내외 대회 입상자가 배출됐다. 1990년대에는 유럽 품새선수권에서 우승자를 배출하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서명수 원로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메달이나 직책보다 그에게 태권도를 배운 현지 지도자들이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다시 유럽 각지에서 도장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이는 유럽 태권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벨기에 태권도계는 고인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벨기에 태권도 원로 루이 미셰즈(Louis Michez)는 현지 태권도협회의 추모글을 통해 “그는 개척자 중 한 명이 아니라 바로 그 개척자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자신을 비롯한 초기 현지 지도자들이 서명수로부터 태권도 기술과 지식을 직접 배웠다고 전했다.

 

그는 서명수 사범이 벨기에 태권도 지도자들에게 품새를 전수했을 뿐 아니라 유럽 품새대회와 심판제도 발전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WT는 집행위원을 역임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본부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조정원 총재가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WT)도 고인의 별세를 애도했다. WT는 28일 서울 본부에 서명수 원로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를 마련했다. 조정원 WT 총재는 직접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리고 평생 태권도 발전에 헌신한 업적을 추모했다.

 

WT는 공식 추모 메시지에서 고인을 유럽과 세계 태권도 발전을 이끈 선구자로 평가했다. 여러 세대에 걸쳐 태권도의 가치와 철학, 규율을 전파한 그의 헌신이 국제 태권도 공동체를 성장시키고 후대에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유가족과 제자들, 전 세계 태권도인들에게도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서명수 원로는 태권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성장하기 이전부터 유럽 현장을 지켰다. 태권도를 가르칠 지도자도, 배울 교재도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에 직접 길을 개척했다.

 

그렇게 뿌린 씨앗은 수많은 현지 지도자와 도장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유럽 태권도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토대가 됐다. 태권도가 세계로 뻗어나간 역사에는 이름 없이 헌신한 수많은 해외 개척 사범들이 있다. 서명수는 그 가운데 유럽 태권도의 기술과 교육, 조직 발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반세기 넘게 태권도를 통해 한국과 유럽을 이어온 서명수 원로. 그가 남긴 가르침과 헌신은 유럽 태권도의 역사 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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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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