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 국기 '태권도'의 굴욕… 유네스코는 왜 북한이 먼저인가?

  

북한, 인류무형유산 단독 등재 권고… 70년 세계화 이끈 대한민국은 2년 늦게 신청

 

세계 215개 국가·지역에 태극기를 알린 '최초의 한류'

여야 의원 225명이 법률로 지정한 '국기'… 정부 늑장 대응에 남북 공동등재마저 무산 위기

지난 2019년 스위스 로잔 올림픽박물관에서 WT와 ITF 시범단이 태권도 올림픽 채택 25주년을 기념한 특별 합동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이 만들고 세계에 전파했다. 그런데 정작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는 북한이 먼저 이름을 올리게 생겼다. 참으로 기막히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북한이 신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예-태권도'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권고를 받았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실제로 유네스코 공식 홈페이지에도 북한의 전통무예 태권도의 영상과 관련자료를 올릴 사이트 페이지가 만들어져 있으며, 북한에서의 태권도를 소개하는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사실상 최종 등재를 예고한 유네스코 무형유산 홈페이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Evaluation Body)는 프랑스 시각 오는 4일 심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무형유산 전문가와 비정부기구(NGO) 등으로 구성된 평가기구는 각국의 등재 신청서를 평가해 ‘등재’와 ‘정보 보완’ ‘등재 불가’ 등의 판단을 내려 무형유산위원회에 권고한다. 

 

위원회에서 '등재' 권고를 결정하면, 최종 결정은 오는 11월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중국 샤먼에서 열리는 '제21차 유네스코 무형유산 정부간위원회'에서 내려진다. 역대 심사 관행상 평가기구의 등재 권고가 최종 심의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북한의 단독 등재가 유력한 상황이다. 

 

북한은 2024년 3월 단독으로 신청했다. 대한민국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3월 31일에야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라는 이름으로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2018년 씨름처럼 남북 공동등재를 기대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협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북한의 단독 등재가 먼저 가시화됐다.

유네스코 공식 홈페이지에 북한의 전통 무예로 태권도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유감스럽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세계에 태권도를 전파한 나라가 정작 그 문화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에서는 왜 이렇게 뒤처졌는가.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태권도' 하면 '코리아'를 떠올린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도 태권도는 안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도복을 입고 '차렷', '경례', '준비', '시작'을 외친다.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서도, 태평양의 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와 종교가 달라도 태권도장에서는 한국어가 통한다. 태권도장 한쪽에 걸린 태극기를 향해 예를 표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이제 낯설지도 않다.

 

그들에게 태권도는 단순한 무예가 아니다. 한국을 처음 알게 된 계기이자, 한국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는 통로다. 태권도를 수련하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과 문화를 접한다. 한국의 대학에 진학하거나 태권도 사범이 되기 위해 한국을 찾기도 한다.

 

태권도 종주국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는 외국인 사범들도 적지 않다. 국기원과 태권도원을 찾는 해외 태권도인들에게 한국 방문은 일종의 '성지순례'다.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세계적인 경제·문화 강국이 아니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자. 1950년대 후반부터 태권도는 해외로 뻗어 나갔다. 1960~70년대 대한민국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경제개발에 매달리던 가난한 나라였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존재감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다.

 

그 시절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을 알린 사람들이 있었다. 태권도 사범들이다.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태권도를 가르쳤고, 해외로 이주한 사범들은 낯선 땅에 도장을 열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진출한 한인들과 태권도 지도자들은 한국 문화의 전도사가 됐다.

 

이후 정부 파견 사범과 국제협력요원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개발도상국에서 태권도를 보급했다. 외교관도 많지 않고 한국 기업의 진출도 드물었던 나라에 태권도 사범이 먼저 도착했다. 심지어 대한민국 대사관조차 없는 나라에서도 태권도는 있었다. 우리와 정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국가에서도 태권도 사범들은 현지인들과 땀을 흘리며 한국을 알렸다.

 

공식 외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에서 태권도가 먼저 사람과 사람을 연결했다. 외교관이 없던 곳에서 태권도 사범이 민간외교관 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들은 태권도만 가르친 것이 아니다. 한국어와 한국의 예절을 전했고, 때로는 학교를 세우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갔다.

 

한국의 자동차도, 반도체도, K팝도 세계를 누비기 전이었다. 그때 이미 태권도는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었다. 태권도가 '최초의 한류'로 불리는 이유다.

 

그렇게 70년 가까이 세계로 뻗어 나간 태권도는 오늘날 세계태권도연맹(WT) 기준 215개 국가·지역 회원협회를 갖춘 세계적인 스포츠이자 무예가 됐다. 바티칸까지 회원으로 두고 있다.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자리 잡았고, 수많은 국가에서 태권도는 생활체육이자 엘리트 스포츠로 성장했다.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캠프에서는 아동 청소년이 매일같이 우렁찬 태권도 기합 소리를 내며 꿈과 희망을 키우고 있다. 

태권도의 역할은 경기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쟁과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캠프에서도 태권도를 수련한다. 요르단과 아프리카의 난민촌에서 어린이들은 도복을 입고 발차기를 배우며 꿈과 희망을 키운다. 국적도, 언어도, 종교도 다른 아이들이 태권도라는 공통의 언어로 만난다. 태권도는 스포츠를 넘어 교육이 되고, 위로가 되고, 평화의 도구가 됐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세계에 전파한 태권도의 힘이다. 그런데 이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북한이 먼저 추진했고, 이제 단독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태권도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현대 태권도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 형성되고 발전했다. 해방 이후 여러 무도관이 생겨났고, 각기 다른 명칭과 수련체계를 사용하던 무도인들이 통합과 표준화를 추진했다.

 

1950년대 '태권도'라는 명칭이 등장했고, 이후 대한태권도협회와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이 출범하면서 세계적인 무예이자 스포츠로 성장했다. 물론 태권도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는 여러 인물과 단체의 역할이 얽혀 있다. 그 역사적 공과를 단순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현대 태권도는 대한민국에서 태동하고 체계화돼 세계로 전파됐다. 북한에서 시작된 무예가 아니다.

 

북한에 태권도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80년대다. 그 중심에는 고(故)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ITF) 창설자가 있었다. 최홍희는 1966년 서울에서 ITF를 창설했고, 1972년 국내 정치적 갈등 속에 캐나다로 떠났다.

 

이후 1980년 ITF 시범단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 내 태권도 보급이 본격화됐다. 북한은 ITF 체계를 받아들여 태권도를 자국의 대표적인 무예로 육성했고, 해외 보급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북한이 태권도를 발전시키고 전승해 온 노력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북한의 태권도인들 역시 한반도에서 탄생한 무예를 계승해 온 구성원이다.

 

그러나 북한의 태권도 보급 역사가 대한민국보다 뒤늦게 시작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태권도를 먼저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인데, 문화유산으로 먼저 기록될 준비를 한 것은 북한이었다.

 

더 답답한 것은 이번이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7년 북한은 조선시대 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단독 등재했다. 우리나라에도 같은 무예서가 보존돼 있었지만, 북한이 먼저 국제무대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당시에도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9년이 지난 지금, 태권도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대한민국도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16년 태권도진흥재단을 중심으로 등재를 추진했고, 전북 겨루기 태권도 보존회가 설립됐다. 같은 해 '전북 겨루기 태권도'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등재 추진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태권도의 근현대적 형성과 역사성, 문화유산으로서의 지정과 전승체계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지만 결국 국제 등재 신청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당시 판단의 구체적인 사유와 타당성은 별도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만 그 결과, 세계적인 무예 태권도의 국제문화유산 등재 추진이 오랫동안 지체됐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 사이 민간에서는 노력이 계속됐다. 오노균 사범을 비롯한 태권도계 인사들이 등재 필요성을 제기했고, 2020년부터 최재춘 코리아태권도유네스코추진단 위원장을 중심으로 등재 운동이 다시 시작됐다. 국기원도 2021년 관련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켜 지원에 나섰다. 태권도진흥재단과 대한태권도협회, 전북특별자치도 등도 참여하면서 민간의 노력이 점차 정부 차원의 사업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대응은 여전히 아쉬움이 컸다. 태권도 진흥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유네스코 관련 외교적 협력을 맡아야 할 외교부와 남북 공동등재의 가교 역할을 할 통일부까지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정치권에서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서야 등재 추진이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해 말 관련 단체들이 국가유산청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올해 3월 유네스코 본부에 공식 신청서를 냈다.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수년간 현장에서 묵묵히 준비해 온 민간 관계자들의 노력도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늦었다.

 

북한은 이미 2024년 3월 신청을 마쳤다. 대한민국이 국가 차원의 등재를 본격화하는 사이 북한의 신청서는 유네스코 평가 절차를 밟고 있었다. 북한은 먼저 신청했고, 우리는 뒤늦게 공동등재를 기대했다. 준비보다 기대가 앞선 것은 아닌가.

 

물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은 어느 국가가 먼저 시작했는지, 누가 원조인지 가리는 제도가 아니다. 해당 문화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지,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등을 평가한다. 북한이 단독 등재되더라도 태권도의 독점적 소유권을 인정받거나 대한민국의 역사적 기원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문화유산 등재가 갖는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다. 유네스코 공식 기록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예-태권도'가 먼저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 북한은 이를 자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국제사회에 홍보할 수 있다. 태권도의 역사와 정통성을 둘러싼 해석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 과정에서 태권도의 형성과 세계화에 대한민국이 기여한 역사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태권도를 아는 사람들은 그 뿌리가 어디인지 안다. 그러나 앞으로 태권도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유네스코의 공식 기록부터 찾아볼 수도 있다. 문화유산의 기록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세대가 역사를 이해하는 자료가 된다.

 

태권도의 뿌리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뿌리를 설명하는 국제적 기록에서 뒤처지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북한의 단독 등재를 막는 것만이 해법일 수는 없다. 2018년 남북이 씨름을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했던 경험이 있다. 분단된 한반도가 같은 문화유산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태권도 역시 남북이 함께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WT와 ITF는 경기규칙과 수련체계가 다르지만, 같은 태권도라는 이름 아래 세계 각지에서 전승되고 있다. 그 다양성 자체도 문화유산으로서 설명할 가치가 있다.

 

문제는 지금의 남북관계다. 공동등재를 위한 협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다른 전략도 준비했어야 한다. 북한의 등재가 확정될 경우 대한민국의 전승문화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독자적인 등재 추진과 향후 확장등재 가능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국가유산청과 문화체육관광부, 외교부, 통일부가 각각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기원과 대한태권도협회, 태권도진흥재단, WT와 국내외 태권도 공동체도 힘을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태권도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세계 각국의 도장에서 실제로 이어지는 한국어와 예절, 사제관계, 공동체 수련문화를 국제사회에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이번에 대한민국이 신청한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태권도는 경기장 안에서 메달을 다투는 스포츠인 동시에, 도장에서 사범과 제자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생활문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청서 한 장 제출했다고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심사와 국제협력, 전승 공동체의 참여까지 정부가 일관되게 책임져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이 법률로 지정한 '국기(國技)'다. 2018년 3월, 당시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을 대표로 여야 국회의원 225명이 뜻을 모아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다. 정당과 정파를 초월한 압도적인 동의였다.

 

그해 3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태권도는 마침내 법률에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권도로 한다'는 지위를 명시하게 됐다. 단순히 태권도계가 주장하는 '국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가 국가를 대표하는 무예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그만큼 국가가 지키고 계승해야 할 역사적·문화적 자산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국회의원 225명이 여야를 떠나 국기로 인정한 태권도를, 정작 정부는 왜 세계가 인정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만드는 데 이토록 소극적이었는가. 법률로는 국기라면서 국제문화유산 등재에서는 북한보다 2년이나 늦었다. 국가의 자부심을 법으로 선언하는 것과 그 가치를 국제사회에서 지켜내는 것은 별개의 일인가.

 

태권도가 너무 익숙해서였을까. 이미 올림픽 종목이고 세계적인 무예이니 굳이 유네스코 등재까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랬다면 큰 오산이다.

 

세계화에 성공한 것과 그 문화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기록하고 보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우리는 태권도의 세계화를 자랑해 왔다. 215개 국가와 지역, 수많은 해외 도장, 올림픽 정식종목이라는 성과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그 세계화를 가능하게 했던 대한민국의 역사와 수많은 사범의 헌신을 국제문화유산으로 남기는 일에는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태권도를 통해 대한민국을 알린 이름 없는 사범들이 있다. 낯선 나라에서 도복 한 벌로 시작해 평생을 태권도 보급에 바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세운 도장에서 지금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차렷', '경례'를 외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70년 가까이 세계에 남긴 문화적 흔적이다.

 

북한의 유네스코 단독 등재가 최종 확정된다면, 이를 단순히 남북 간 문화유산 경쟁에서 졌다는 식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정작 우리 스스로 태권도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얼마나 진지하게 지키고 기록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태권도의 세계화는 수많은 사범과 태권도인들이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지키고 국제사회에 제대로 기록하는 일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북한은 먼저 움직였다. 대한민국은 뒤늦게 움직였다. 태권도 종주국이라는 자부심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에 걸맞은 준비와 책임이 있어야 한다.

 

태권도는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렸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태권도의 가치를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남기는 데 너무 늦었다.

 

참으로 '유감'이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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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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