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태권도 개척자 이관영 대사범 별세… 반평생 헌신 끝에 고국서 영면!

  

'프랑스 태권도의 대부' 18일 향년 80세 / 청도관 출신 / 1969년 파리 정착해 제자 2만 5천여 명 양성

 

故 이관영 사범

'프랑스 태권도의 대부(代父)' 이관영 사범이 지난 18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18일 오전 5시 30분(서울 시간) 가족이 곁을 지키는 가운데 2년여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부고는 아들 프랑수아 리(François Lee)가 페이스북에 알렸다. 아들은 그동안 아버지의 투병 과정을 SNS에 꾸준히 전해 왔고, '아버지의 소식 – 끝'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글로 별세 소식을 전했다.

 

고인은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청도관 소속 도장에서 태권도를 본격적으로 수련했고, 보성고를 졸업할 즈음인 1966년에는 베트남 주월 백마부대 태권도 교관단으로 활동했다.

 

이후 청도관 중앙본관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며 발기술을 갈고닦았다. 대한태권도협회가 발간하는 태권도 잡지 2020년 12월호(서성원)는 청도관 3대 故 엄운규 관장이 그를 '수제자'처럼 여겼다고 전했다.

 

엄운규 관장은 2015년 서성원 기자와 회고록 인터뷰에서 "뒤돌아 옆차기와 뛰어 이단옆차기는 내가 개발해 잘했던 발차기였는데, 그 제자 중 한 명이 이관영이다. 발기술을 연마하다가 모르면 나를 다시 찾아오곤 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와의 인연은 1969년에 시작됐다. 같은 잡지는 고인이 그해 중앙정보부 모집 공작원으로 선발돼 훈련을 받은 뒤 '태권도 사범'이라는 신분으로 프랑스에 파견됐다고 소개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계획이 폐기되면서 지원이 끊겼지만, 그는 귀국하지 않고 프랑스에 남았다. 허름한 다락방에서 지내며 중식당 접시닦이와 정원 관리로 생계를 이었고, 현지 가라테 사범들에게 도전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공식으로 프랑스 해외 파견사범을 나서던 해 故 이관영 사범이 당시 김운용 대한태권도협회장과 엄운규 전무이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971년에는 대한태권도협회 해외파견 사범 시험에 지원해 국어·국사·영어와 태권도 실기시험에서 1등으로 선발돼 다시 프랑스로 건너갔다. 1973년 5월 국기원에서 열린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는 프랑스 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다.

 

프랑스에 태권도를 보급하며 국위를 선양한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태권투데이미디어>가 공개한 사진 설명에는 1972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석류장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1975년에는 홍콩 영화 감독들의 제안으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이듬해 한국 무술영화 '파라문'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배우 생활을 접은 뒤 프랑스로 돌아가 파리 중심가에 식당을 열었다.

 

전환점은 1981년이었다. 협회 잡지에 따르면 파리 뒷골목에서 칼을 든 10여 명을 제압하는 모습을 본 프랑스 내무부 경찰청이 그를 경호교관으로 특채했다.

 

그는 경찰에게 사격과 경호, 체포술을 가르치며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세네갈 등 아프리카에서도 태권도를 지도하며 대통령 경호원을 교육했다. 1991년에는 프랑스 경찰청 형사국 수사관으로 정식 임명됐다. 재불한인회장도 지냈다.

 

고인은 도장을 열어 운영하다 제자들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프랑스에 태권도를 퍼뜨렸다. 2004년 '프랑스 태권도 보급 35주년' 기념식에는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3천여 명이 모였고, 파리시장의 감사패가 전달됐다.

 

그는 당시 "35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 정말 기쁜 날"이라고 말했다. 협회 잡지는 1969년 이후 그가 길러낸 제자가 2만 5천여 명이라고 전했다.

 

2019년에는 프랑스 우정공사(La Poste)가 프랑스 태권도 보급 50주년을 맞아 '이관영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우표에는 고인의 옆모습과 '1969~2019', 한글 이름, 프랑스어 문구 '프랑스에서 50년'이 담겼다. 협회 잡지는 해외에서 현지 국가가 발행한 우표에 한국인 태권도 사범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고인은 당시 "내 얼굴이 새겨진 우표를 보고 눈물이 흘렀다. 그동안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말했다.

고인은 별세 직전 아들 프랑수아와 함께 자신의 무술 인생을 돌아보는 말을 남겼다.

 

아들이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에서 받아 적은 이 글에서 그는 "무술의 네 기둥인 수련과 지도, 조직을 이끄는 일(정치라고도 부르는 전략),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서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하려 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나이가 들어 보니 실패한 일도 많았다. 줄 필요가 없는 단을 주기도 했고,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제자들을 주저앉히기도 했다. 어떤 싸움은 외면했고, 내 결정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술이 원래 그렇다. 한쪽에서 이기면 다른 쪽에서 지기도 한다. 늘 이기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련의 목적을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정리했다. "무술의 끝은 싸움이다. 상대와의 싸움이면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진실은 늘 도장 매트 위에서 나온다. 땀방울로, 땀으로, 눈물로, 피로 나온다. 이제 나에게는 곧 그 모든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는 "굳이 말하자면 나는 평생을 무술에 바쳤다"고 했다.

 

<태권투데이미디어>에 따르면 고인은 2024년 서울 대방동에 무술도장을 열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운영하지 못하고 투병했다. 고인은 2025년 SNS에 "치유될 수 있다. 나는 이길 거야"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아들은 부고 글에서 "아버지는 태권도를 함께한 분들에게 평생을 바쳤다. 여러분은 그의 삶의 일부였다"며 "가족 모두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중해 주신 데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장례는 한국의 전통 장례 절차에 따라 서울에서 치러지며 22일 발인힌다. 파리에서도 별도의 장례식이 열린다. 아들은 "파리에서 나중에 또 다른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라며 "고인을 알고 사랑했던 모든 분이 경례를 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관영 사범의 아들이 자신의 SNS에 아버지가 마지막 길을 떠나셨다며 이 이미지를 게재했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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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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