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 천으로 지은 도복… 여성 태권도 1세대 美 <김영숙 사범의 삶> 논문으로 재조명

  

​​​​​​​국기원 태권도연구 최신호에 생애사 연구 게재… 국내 최초 여성 사범부터 국제 여자 오픈 태권도대회 창설까지 / "힘이 아니라 자신감이 부족한 것"… 79세 현역 지도자로 여전히 도복 입어

‘세계 최초의 여성 태권도장 개관’, ‘여성 최초의 국제심판’, ‘이화여대 최초의 태권도부 창설’. 태권도계 ‘여성 최초’라는 수많은 수식어를 만들어 낸 김영숙 사범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선구자(先驅者)’라는 단어가 꼭 필요하다. 여성 태권도 발전을 위해 맨 앞에 섰고, 다른 여성 태권도인들보다 앞서 나갔던 이가 바로 김영숙이다. 1960년대, 바지 입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로만 여겨졌던 태권도에 치마 입은 여성의 등장 자체가 도전이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개척의 역사였다.
- <무카스미디어, 2010년 10월 1일자 | 무카스 美 대륙 개척자를 만나다 - 로스앤젤레스 김영숙 편> 

 

전쟁이 벌어진 1950년대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금기시됐던 무술의 세계에 뛰어든 한 여성의 삶이 학술 연구로 정리됐다.

 

김영숙 사범

국기원이 발간하는 '국기원 태권도연구'(2026년 제17권 제3호)에 가천대학교 곽정현 교수와 전주대학교 이숙경 교수가 공동 집필한 논문 이 게재됐다.

 

이 연구는 한국 여성 태권도 1세대를 대표하는 김영숙(1947년생) 사범의 생애를 생애사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초기 여성 태권도의 형성과 발전 과정, 여성 지도자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태권도 국제화 과정에서 여성의 기여를 규명했다.

 

연구진은 태권도진흥재단이 2024년 수행한 여성태권도인 구술채록 자료와 언론 보도, 당시 시각자료 등을 종합해 삼각검증 방식으로 분석했다.

 

김영숙 사범은 1957년 열 살 나이에 오빠를 찾으러 태권도장에 갔다가 태권도에 매료돼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격투성과 경쟁성이 강조되는 무술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고, 여성의 수련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도복을 구할 수 없어 어머니의 상복 천을 잘라 직접 수련복을 만들어 입고 도장을 찾았을 정도였다. 김영숙 사범은 당시를 "하얀 천을 구해 옷처럼 만들어 입었다. 남들처럼 멋진 도복은 아니었지만, 그걸 입으니 나도 태권도인이 된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주변의 반대와 의심도 컸다. 김영숙 사범은 "조금만 못해도 역시 여자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남보다 몇 배 더 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지르기, 차기, 품새 등의 반복 연습을 밤늦게까지 수련했다. 손이 붓고 피가 나도록 격파 훈련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김영숙 사범은 "여자는 힘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교육철학을 정립해갔다.

1970년대 초 무덕관 사범으로 여성 수련생을 지도 중인 김영숙 사범

1950년대 말부터 태권도를 수련한 김영숙 사범은 여성 최초의 당시 무덕관 4단으로 승단했고, 1967년부터 교사(보조지도자)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70년에는 여성 전문 태권도장인 '선미도장'을 개관하며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운영하던 한영관 관장이 도장을 확장하던 상황에서 여성 전용 수련 공간을 마련해 "여자 인구를 늘리기 위해 여자 지도자인 네가 가야 한다"고 권한 것이 계기였다. 김영숙 사범은 "일주일 내내 주말만 빠지면 안 된다. 일주일 내내 다녀야 한다"는 각오로 도장을 지켰다고 구술했다.

 

김영숙 사범의 활동은 대학과 제도권으로도 확장됐다. 1975년 이화여자대학교 태권도부 창설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후 성신여대와 연세대학교 간호학과 등에서도 지도 활동을 이어갔다. 1972년에는 여군훈련소에서 교관으로 활동하며 여자 장병들을 지도했고, 경찰과 미8군, 외교관 자녀 지도 등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한국여성태권도연맹 창립총회(좌 이학선 회장, 우 김영숙 전무이사)

김영숙 사범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79년 한국여성태권도연맹 창립이다. 당시 대한태권도협회 등 공식 조직은 남성 중심으로 운영됐고, 여성 지도자와 수련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구조가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숙 사범은 여성 태권도인의 독립적 조직 필요성을 느끼고 연맹 창립을 주도했다. 그는 "여성들이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1979년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이주한 김영숙 사범은 국내 활동가에서 국제 리더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았다.

 

그는 "내가 최초의 여자 사범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작 하나하나를 자세히 알아듣게끔 해주니 그게 소문이 났다. 나는 도장하는 데 하나도 어려움이 없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미국에서는 1982년 미국 여자 태권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됐고, 국제심판 자격도 취득해 여성 최초의 국제심판 1단 취득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어 세계태권도연맹 여성분과위원(1984년), 여성분과위원장(2002년), 미국태권도연맹 여성분과위원장(1980~1984년), 팬아메리칸연맹 여성분과위원장(1997년) 등을 역임하며 국제무대에서도 활약했다.

 

김영숙 사범의 국제 활동 중 가장 중요한 업적은 200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국제 여자 오픈 태권도대회를 창설한 것이다. 여성 태권도인이 중심이 되는 독립적 국제무대를 만든 최초의 시도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도와주는 분들도 많았으나, 아직 여자 국제 대회는 무리라며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래도 결국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대회 운영이 금전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 대회는 이후 2005년 LA시장배 국제대회 및 코리안 페스티벌로 이어졌고, 2002년 제1회 코리아경주 국제여자태권도오픈대회로도 교두보 역할을 했다.

202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여성태권도인 대상 세미나 후 기념사진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던 김영숙 사범은 2018년 암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의 간호와 본인의 의지로 항암치료를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한 그는 올해 79세의 나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도장에서 여전히 도복을 입고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다.

 

그동안의 공로는 미국에서도 인정받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체육진흥발전 공로상과 체육공로상을 각각 수상했다.

 

연구진은 "김영숙 사범의 생애는 개인적 성취를 넘어 여성 태권도인의 사회적 위치 변화와 태권도의 의미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며 "여성 태권도사의 공백을 보완하고, 향후 여성 태권도인의 생애사 연구 및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고 밝혔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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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김영숙 #여성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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