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우의 마음도장] 아시안게임이 증명한 품새의 힘... 이제는 ‘성장의 사다리’를 복원할 때!

  

아시안게임 품새 金 2개, 그 이면의 전국체전 '통합 운영'이라는 그늘

 

대학·일반부 통합 체제가 실업팀 창단 기피 → 대학 선수 진로 단절 → 인재 풀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 / "겨루기처럼 대학부·일반부 분리해야"

 

국제 메가 이벤트로서 아시안게임 무대 위에 펼쳐진 태권도 경기는 늘 한국 태권도의 저력과 현재를 냉정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번 2026 나고야아시안게임에서도 종주국 한국 태권도는 치열한 승부를 통해 값진 성과를 거두었고, 그 중심에는 2개의 금메달을 선사한 '품새' 종목이 있었다.

 

절도 있는 동작 끝에 실리는 기합, 미세한 흔들림도 통제해 내는 완벽한 신체 협응, 그리고 매트 위를 팽팽하게 감도는 고도의 정신적 집중력은 품새가 단순히 '정형화된 틀의 재현'이 아니라, 가장 정교하고 폭발적인 엘리트 스포츠임을 보여준다.

 

세계 각국의 기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이번 아시안게임의 결과는, 역설적으로 품새가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당당한 독립적 메달 종목이자 K-스포츠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음을 대변한다.

사진제공:윤규성

하지만 이 눈부신 국제무대의 결실을 바라보며 마냥 자축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 우리 발밑에 놓여 있다.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뿌리여야 할 국내 대회 시스템, 그중에서도 국내 엘리트 스포츠의 최고 권위를 지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현재 전국체전 품새 종목은 '대학·일반부'로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대학생과 실업팀 선수가 한데 어우러져 최고를 가리는 흥미로운 구도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스포츠 현장과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통합 운영이 한국 품새 생태계의 허리를 심각하게 갉아먹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기업 실업팀들이 품새 선수 영입과 팀 창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구조적 족쇄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실업팀 운영의 핵심 동력은 전국체전에서의 확실한 성적과 점수(메달) 획득에 있다. 그러나 대학부와 일반부가 하나로 묶여 있는 현 체제에서는 고도의 신체적 완숙미와 경험을 갖춘 실업팀 선수를 막대한 예산을 들여 영입·육성하더라도, 혈기왕성하고 기량이 급성장하는 대학 선수들과의 예측 불가능한 단판 승부에서 메달을 장담하기 어렵다.

 

투자 대비 성과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보니 실업팀 입장에서는 굳이 큰 리스크를 안고 품새 팀을 창단하거나 전문 선수를 육성할 유인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대학 선수들의 진로 단절과 심리적 좌절로 직결된다. 스포츠 심리학에서 선수의 동기부여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설명할 때 핵심적인 개념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과 '성취 목표(Achievement Goal)'다. 선수는 단계별 과업을 통과하며 유능감을 확인하고, 그 성공 경험을 자양분 삼아 다음 단계로 도약한다.

 

하지만 대학 선수들은 졸업 후 진출할 실업팀 무대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 눈앞의 전국체전 출전권마저 베테랑 실업팀 선수들과 단 하나의 자리를 두고 다투어야 한다.

 

대학부는 기량을 꽃피우기 위한 심리적 적응과 기술적 심화가 이루어지는 '발달의 과도기'다. 이 과도기의 선수들에게 완숙기의 벽을 무조건 뛰어넘으라고 강요하고, 졸업 후에는 갈 곳마저 없게 만드는 시스템은 건강한 도전이 아니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과 조기 은퇴를 부추길 뿐이다.

 

결국 대학·일반부 통합 운영은 "실업팀 창단 및 육성 기피 → 대학 선수의 진로 실종과 조기 은퇴 → 품새 인재 풀 축소"라는 파괴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사진제공:정하은

품새가 아시안게임을 넘어 올림픽 진입까지 바라보는 글로벌 종목으로 성장한 지금, 국내 시스템이 과거의 과도기적 행정 편의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겨루기 종목이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명확히 분리되어 각 연령과 경력 단계에 맞는 최적의 경쟁 환경과 독립적인 메달 구조를 보장하듯, 품새 역시 전국체전에서 대학부와 일반부를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

 

대학부와 일반부의 분리는 단순한 경기 수 확대를 넘어선다. 그것은 실업팀에게는 명확한 성과를 보장하여 '품새 팀 창단과 지속적인 선수 육성에 뛰어들 수 있는 제도적 명분'을 제공하고, 대학 선수들에게는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현실적 진로와 성장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일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만 번의 발차기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 낸 내면의 단련이 빚어낸 결정체다.

 

이제는 그들이 흘린 땀방울에 시스템이 화답해야 한다. 전국체전 품새 종목의 대학부·일반부 분리는 종주국 품새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미래의 국가대표들이 지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가게 만드는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과제다.

 

[무카스미디어 = 전민우 교수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ㅣ yesjmw@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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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우 교수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태권도학과 조교수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태권도학전공 조교수
KHU-SPLab 지도교수
세계태권도전문트레이너협회 대표
대한장애인펜싱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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