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욱의 무인이야기]악독한 승려를 베다-비장 이 아무개
발행일자 : 2010-02-17 14:38:43
<글 = 허인욱 무술전문위원>


김홍도 평양 감사의 격검 장면
앞서 이병식의 이야기와 관련해서 청구야담에 '검술 이 비장이 싸워 승려를 베다'라는 야담을 참고할 수 있다. 이 아무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주러 왔던 명 이여송의 동생이여매의 후손이다. 비장 이 아무개라는 사람의 이야기로 못된 중을 죽였다가 그의 스승과 대결하는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여매의 후손 중에 이 비장(裨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비장은 조선시대에 감사나 절도사 등의 지방장관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幕僚)․막비(幕裨)․막객(幕客)․막중(幕中)을 가리킨다. 조선 후기에는 의주․동래․강계․제주의 수령 및 방어사를 겸한 수령들이 비장을 거느리는 것을 관례화 하였는데, 감사나 수령이 부임할 때, 궐패(闕牌) 앞에서 임금의 명령을 알리는 의식이나 민정에 대한 염탐을 비장을 시켜서 하기도 하였다.
비장 이 아무개는 힘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검술에 능통했다. 일찍이 전라감사의 막중으로 갈 때 금강(錦江)에 다다라 우연히 한 부녀자의 행차와 함께 배에 들었다. 배가 중류에 갈 때쯤 크고 성질이 모지락스럽고 악독한 한 승려가 강변에 이르러 사공을 높이 불러 “배를 빨리 대라”고 하였다.
이에 사공이 배를 돌리려고 하자 이 비장이 사공을 꾸짖어 물리쳤다. 그러자 그 중이 공중에 몸을 솟구치며 배에 뛰어들어 와서는 부인의 가마인 교자를 보고 발을 들쳐 보고 말하기를, “모양과 태도가 극히 아름답다”하고 희롱의 말을 방자하게 하였다. 이 비장이 한 주먹으로 타살코자 하였으나, 그 중의 용력이 어떠함을 알지 못하여 참고 있기는 하였으나, 분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더니,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라 꾸짖어 말하기를, “네가 비록 아무리 모지락스럽고 악독한 놈이나 승려의 풍속이 판이하고 남녀가 유별하거늘 네가 어찌 감히 양반의 내행을 무수하게 희롱하고 방자하게 침욕하니 네 죄는 마땅히 죽으리라”하고 가졌던 쇠도리깨로 힘을 다하여 쳐죽여 주검을 강 중에 던지고 감영에 이르러 순찰사를 보고 금강에서 지낸 일을 자세히 고하고 절도사가 있는 막부에서 머물러 있었다.

김홍도 평양 감사의 격검 장면
머물러 있은 지 수개월이 지난 후에 관아의 대문인 포정문(布政門)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매우 요란하자 감사가 그 까닭을 물은 즉 문을 지키는 사령이 들어와 아뢰기를, “어디서부터 온 완고한 승려가 사또를 뵙겠다고 합니다만, 기색이 거칠고 퉁명하고 말이 온화하지 않고 거칠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시끄럽게 떠듭니다”며 말을 마치지 못하였는데, 그 중이 미쳐 깨닫기도 전에 들어와 바로 청 위에 올라 감사를 뵈었다. 감사가 묻기를 “네 어느 곳의 중이며 무슨 일로 왔느냐” 그 중이 거만스럽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소승은 강진(康津) 땅에 있습니다. 이 비장이 막중에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감사가 말하기를, “이 비장이 마침 서울로 올라갔느니라” 그 중이 말하기를, “언제 돌아옵니까” 감사가 말하기를, “한달 말미를 받고 올라갔으니 다음 달 10일 사이에 내려올 것이다.” 그 중이 말하기를, “그러하면 소승이 그 때 다시 올 것이니 이 비장 제가 비록 하늘로 오르고 땅으로 들어간다 해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삼가 피하지 말라 하십시오”하고 하직하고 갔다.
감사가 이 비장을 불러 중이 하던 말을 알리고 또 말하기를, “그대 능히 그 중을 대적할 수 있느냐” 이 비장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소인이 집이 가난하여 고기를 항상 먹지 못하여서 기력이 없습니다. 만일 날마다 큰 소 한 필씩 먹기를 한 달을 하면 어찌 저 중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감사가 말하기를, “이는 불과 천금을 허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무엇이 어렵겠느냐”하고 즉시 고기를 공급하는 사람에게 분부하여 “한 달을 한하여 매일 큰 소 하나씩 바치거라”하였다. 이 비장이 또 청하기를, “누른 비단 동달이와 붉은 비단 전복을 지어 주십시오”하니, 감사가 또 허락하였다.
이 비장이 장인으로 하여금 장검을 만들게 하되 일백 번 불에 달궈내니 그 칼날이 심히 날카로워 돌을 베이고 쇠를 끊었다. 열흘에 소 열 마리를 먹자 몸이 매우 살이 찌고 스무 날에 소 스물을 먹으니 도리어 몸이 수척해지고 그믐에 소 서른을 먹으니 몸이 살찌지도 않고 수척하지 않아 평상인과 같아졌다. 날램을 쌓고 길러 중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중이 과연 기약한 것과 같이 와서 감사를 보고 말하기를, “이 비장이 왔습니까” 감사가 말하기를 “어제 돌아왔느니라.” 이 비장이 마침 곁에 있다가 내달아서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내 이제 여기 있으니, 네 어찌 당돌함을 이렇듯이 할 수 있느냐”그 중이 말하기를, “길게 수작할 것이 아니라, 오늘 내 너와 더불어 생사를 결정하려 한다”하고 드디어 뜰에 내려 바랑 가운데에 둘둘 말아 둔 칼을 꺼내어 펴니 길이가 3척이고, 빛이 서릿발 같았다.
이 비장 또한 뜰에 내려 몸에 누른 동다리에 붉은 전복을 입고 손에 어른 크기의 백년검(百年劍)을 쥐고 발에 송곳을 박은 한 켤레의 장화를 신고 검술로 서로 대적하니 서로 나오락무르락하다가 검광이 번쩍번쩍하는 곳에 한 쌍의 은으로 만든 독처럼 두 사람이 공중에 올라 구름 속에 들어가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뜰에는 구경하는 자가 다 그 신묘함을 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날이 기운 후에 붉은 피가 방울방울 땅에 떨어지더니, 이윽고 그 중의 몸이 선화당(宣化堂) 아래 떨어지고 머리는 포정문 밖에 떨어졌다. 여러 사람이 이 비장의 무사함을 알았지만 날이 저물도록 기척이 없어 모두 괴이하게 여겼다. 황혼이 물들 때에 비로소 칼을 집고 공중에서 내려와 감사하게 여러 차례 사례하며 말하기를, “소인이 어르신의 은덕을 입어서 소 30필을 먹고 기운이 충실하고 누르고 붉은 복색으로 그 중의 눈을 현혹시켜서 그 놈을 베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던들 소인의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라며 감사가 말하기를, “중의 머리는 떨어진지가 오래인데 그대가 내려온 것은 어찌 그리 더뎠느냐” 이 비장이 말하기를, “이미 검기를 탔는지라, 고국 생각이 간절하여 그 사이 농서에 가서 선조의 분묘를 찾아 뵙고 한 차례 통곡하고 왔습니다”하였다. 이 비장의 신이하고 용맹한 검술은 예나 지금에 드물었다.
이 비장의 이야기는 신이해서 그대로 믿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이 비장이라는 인물이 어떤 중과 다투다가 그 중을 죽였고, 그 중의 스승되는 승려가 원한을 갚으려 했다고 하는 이야기 자체는 있을 법한 일이라는 점에서 전체가 만들어진 소설이라기보다는 이 비장과 승려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윤색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편집 = 정대길 기자 / p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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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거 영화화 해도 재미있겠는걸요.
2010-02-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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