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욱의 무인이야기] '장사(壯士)' 이병식

  


이 이야기는 1873년인 고종 10년에 서유영(徐有英:1801~?)이 쓴 문헌설화집인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스스로 힘에 자부심을 갖고 살던 이병식(李秉軾)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스스로의 힘을 드러내지 않고 살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조심하며 살았다는 내용이다. 이병식은 영조(英祖) 때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존재를 다른 기록에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나게 힘이 센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판서 구윤명(具允明,1711~1797)의 집에서 말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성질이 몹시 사나와 길들이기가 힘들었다. 그 말은 마부도 짓밟고 물어 죽이자, 후환을 없애기 위해 구윤명이 이병식을 불러 죽이게 하였다. 말이 그를 보고 빨리 뛰어 올라 밟고 물려고 하였다. 이병식이 그 앞 다리를 끼고 앞에 다가서서 말을 꼬리를 잡고 뜰 가운데로 끌어내려 두 서너 번 빙빙 돌리고 들어서 땅에 내팽개치자, 드디어 죽어버렸다.

구윤명은 그 용맹스러움을 장하게 여겨 그를 조정에 천거했다. 이후 무과에 급제하여 금군(禁軍) 벼슬을 제수 받았다. 그가 대궐의 후원인 북원(北苑)에서 번을 서고 있을 때 심한 추위를 만났는데, 해묵은 회나무가 큰바람에 뽑혀 길을 가로질러 막고 얼어 붙어버렸다. 이 때 금군의 군사 수백 명이 큰 밧줄로 힘을 합해서 잡아끌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이병식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도 하지 못한다고 사양하였다. 이에 술을 사서 먹을 것을 권하니 취하기에 이르렀다. 이병식이 술기운에 몸을 내던지고 나서서 누운 회나무 아랫부분을 잡았으나 얼음이 쌓이고 얽혀서 땅에 붙어서 일으켜지지가 않았다. 그러자, 그가 윗부분을 손으로 들어올렸더니 나무가 찢어지면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그의 신력에 감탄했다.

이병식의 집은 인천에 있었다. 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의 서울 마포 서남쪽 잠두봉 아래에 있는 양화진(楊花津)에 이르렀다. 양화진은 양천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나루터로 조선시대 한강을 건너는 3진 중의 하나이다. 그가 진에 도착했을 때는 뱃사공이 배를 저어 언덕으로부터 멀어져서 이미 수 십 보나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한 중이 배에 타고 있었는데 한 부인의 가마 옆에 앉아서 가늘고 긴 대를 줄로 엮어 만든 발을 걷어올리며 부인을 희롱하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연약한 탓인지 보고도 어찌할 형편이 못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몹시 분개한 이병식이 단 번에 뱃머리에 뛰어 오르더니 주먹을 휘둘러 그 중을 때리고 차서 물밑으로 던져버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 중에 통쾌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형록 나룻배


그런데 그가 집으로 돌아 온 지 한 달 여쯤 지나서 마침 밭을 갈고 있는데, 한 중이 손에 쇠지팡이를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 중의 얼굴이 몹시 흉악했다. 그 중이 밭 두렁 위에 서서 묻기를, “이병식이가 이 마을에 산다고 하는데, 그 집이 어디요?”라고 하자, 그는 두려운 생각이 나서 쟁기를 놓고 대답하기를, “이병식이는 며칠 전에 나들이를 떠났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이다. 그런데 스님은 왜 그 집을 알고자 하십니까”라고 하자 중이 말하기를, “이병식이가 내 문하에 있는 중을 죽였다고 하여, 장차 그 놈과 힘을 겨루어 보고 또 원수를 갚으려 하오”라고 했다.

이에 그가 손을 들어 먼 곳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 서쪽 편에 절벽이 우뚝 솟아 있고 밑에는 큰 바다가 있는데 이병식이는 늘 그 위에 올라앉아서 양다리를 밖으로 뻗고서 건장한 남자들로 하여금 뒤에서 차도록 했으나 꼼짝도 않았습니다. 스님도 과연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중이 말하기를, “나도 한 번 해보고자 하니, 그대는 나를 위해 그 곳을 가르쳐주오”라고 했다.

그는 몰래 기뻐하며 중과 함께 그 절벽에 이르렀는데, 중은 지시하는 바위 꼭대기에 앉아서 양다리를 밖으로 뻗고 그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걷어 차보오”라고 했다. 이때 이병식은 젖 먹던 힘을 다하여 계속 서너 번 찼으나 잠자리가 기둥을 흔드는 것과 같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중은 갑자기 돌아보며 말하기를, “지금 그대가 차는 것이 조금은 아픈 듯 하니, 힘은 좀 있는 것 같구만”하고는 드디어 옷을 걷어 떨치고 일어나며 말하기를, “이제 이병식이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 꼭 다시 오리라”라고 하며 곧 쇠지팡이를 잡고 천천히 걸어 가 버렸다. 이병식이 두려워서 간담이 서늘하여 그 뒤를 밟아 따라가 보았더니, 잘 생긴 젊은 서생 하나가 몹시 파리한 모습으로 조그만 당나귀를 타고 오는데 그 중과 밭 사이의 좁은 길에서 마주 치자, 중은 쇠지팡이로 당나귀를 후려쳐서 도랑으로 떨어뜨리고는 쇠지팡이를 메고 가버렸다. 이를 본 이병식은 매우 분개하였으나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도랑을 굽어보다가 서생을 구출하려 하니 그는 기어서 뚝 위로 올라왔으나 당나귀는 이미 죽어 있었다. 서생은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갑자기 혼자 말하기를, “내 평생에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았으나, 만약 이 중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을 상하는 일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하고는 중을 보니 이미 멀리 가고 있었다.

그는 급히 의관을 바로잡고 분연히 일어나 그를 빨리 따라 가는데, 그 빠르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순식간에 중을 따라가서 등 뒤에서 한 길 쯤 뛰어 올라 두 손으로 중의 양쪽 어깨를 누르고 다시 오던 길을 따라 가버리니, 중은 똑바로 서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마치 나무 인형 같았다.

이병식은 처음엔 서생이 필시 중에게 죽으리라 생각하고 한탄하여 마지않다가 그 광경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중을 피하여 길을 돌아가다가 이병식에게 묻기를, “갑자기 천벌이 내렸습니까? 저 중이 글쎄, 길 가운데 서있는데 허리 아래는 땅에 박히고 두 눈은 튀어나오고 입을 쩍 벌린 채 혀를 빼물고 죽어서, 그 모양이 이상하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소이까”라고 하는 것이다.

이병식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마음을 풀고 급히 가서 보니 중은 이미 죽어 있었다. 이어 한숨을 쉬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망령되게 한낱 깊은 생각 없이 혈기만 믿고 함부로 부리는 소인의 용기를 믿었다. 스스로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에는 신통한 힘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을 몰랐는데, 이것은 진실로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이구나!”라면서 탄식하였다. 후에 그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이 일을 말하고, 감히 스스로 용력(勇力)이 많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밖에 하늘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에도 유용한 이야기가 아닐까.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허인욱 #무인이야기 #이순신 #칼럼 #정대길 #태권도 #무예 #무술

댓글 작성하기

자동글 방지를 위해 체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