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기 위대한수업] 세대교체로 진화하는 미국 태권도


  

<4강>사범으로 산다는 것

 

캐나다와 미국을 가로지르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곳, 미국의 땅 끝, 버팔로 시티. 그곳엔 태권도장 성공신화의 주역, 세계적인 명문 태권도장 '월드클래스'가 있다. 맨 손으로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태권도장 성공 신화를 이룩한 정순기 관장은 <위대한 수업>을 통해 그가 그동안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공개한다. [편집자 주]

 

 

요즘은 한국에서 건너온 젊은 사범이 많다. 미국은 전 세계 무술의 각축장이다. 미국에는 아직도 더 많은 태권도장과 의욕적인 종주국 사범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건너오는 사범들의 자질에 부족한 면도 있다. 미국은 단순히 태권도 기술만 뛰어난 사범을 원하지 않는다. 

 

“태권도 수련을 통해 어떻게 올바른 인성을 꺼낼 것인가?”
“어떻게 성인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끌어낼 것인가?”
“태권도장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진취적인 사범을 원한다.

 

한국의 도장이나 태권도학과에서 미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르쳐 보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다행히 미국 태권도장에는 이들을 재교육할 시스템과 콘텐츠가 있다.

 

이러한 것을 배우려는 자세로 오는 사범이 필요하다. 지금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종주국 출신 사범이고 최신 기술로 무장했다고 자부심만 내세우는 자세로는 넘어야 할 언어·문화·사회적 인식의 벽이 너무 높다.

 

한국 사범들이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는 데까지는 어려움이 많다.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소통이다. 언어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 살면서 지속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처음 온 사범들이 겪는 언어소통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인내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간단한 단어와 태권도 동작 시범으로 태권도 기능을 가르치는 일에 빠르게 적응한다. 


더 큰 문제는 문화적 차이에서 생기는 괴리와 오해다. 사회, 학교, 가정에서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며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한국에서와 사뭇 다르다. 이해하고 배려하는 존중과 소통의 방식은 한국 사범들이 배우고 겪은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그런 문화적 차이를 몰라 실수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어떤 사범에겐 이런 얘기도 들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잘못한 수련생을 야단쳤는데 고개를 숙이기는 커녕 눈을 반짝 뜨고 빤히 쳐다보더군요. ‘이 녀석이 반항을 하나?’ 싶어 황당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선 야단칠 때 눈을 맞추는 것이 ‘제가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는 뜻이더군요.” 이렇게 한국과 다른 문화 차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 많다. 


나는 사범들과 함께 책도 나누어 읽고 토론도 하고 현장에서 부딪히는 경험을 나누며 배우고 발전하도록 노력한다.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 같은 책은 교육철학과 교직 경험이 조화를 이뤄 태권도 사범도 크게 공감할 좋은 책이다.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도 미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읽게 한다.

 

우리 세대의 태권도와 요즘 세대의 태권도에는 차이가 있다. 태권도 수련의 방식이나 테크닉 활용이 시대를 따라 발전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태권도의 본질은 세대를 초월한다. 젊은 세대가 가져오는 변화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우리 선배세대가 가진 뿌리의 깊이를 함께 나누면서 극복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사범이 오면 한국에서 습득한 수련방식과 논리는 일단 접어두고 이곳에서 내가 가르치고 시행하는 월드클래스방식을 적극적으로 따르게 한다. 자신이 배우고 습득한 방식과 다소 다를 지라도 나는 나대로 논리가 있으니 이것을 배워 자신의 지식 창고에 더해 충분히 소화시켜 본 후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나중에 독립해 원하는 대로 가르치면 된다. 때로는 젊은 사범들의 의견을 반영해 우리 시스템에 적용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범들이 내 스타일과 방식을 존중하고 따라와 준다.


한국에서 건너온 사범 중에는 오자마자 수련생들이 깊은 존경을 표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을 보고 이런 대접이 당연히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라고 착각하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도 있다.

 

겸손해야 한다. 미국 태권도 사범들은 수련이 주는 긍정 요소를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데 성공했다. 호신의 차원을 넘어 겸손한 마음, 공동 수련으로 익히는 조화와 질서, 깊어지는 가족관계 등 눈에 띄는 유익을 이끌어내 수련 인구의 저변 확대를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존중과 협동, 용기와 절제 같은 인격의 덕을 쌓아 선배 사범들이 실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수련을 먼저 본을 보였기에 오늘의 미국태권도가 있는 것이다. 그런 바탕 위에 세워진 도장으로 건너오는 후배 사범들은 선배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전통을 계승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의 사회적 지위는 한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도장에는 각계각층의 전문직 성인 수련생도 많고 그들 역시 사범을 한 분야에서 높은 경륜을 쌓은 전문가로 존중한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특권으로 받아들이는 사범도 있다. 작고하신 나의 아버지는 평안도 분이다. 옛날 분이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맺고 끊음이 확실하셨다. 일흔쯤 되셨을 때 미국에 모셨는데 선배 사범이 아버님께 넙죽 절을 하더니 내 자랑을 대신해 주었다.


“미국에서는 태권도 사범이 의사보다 낫고 변호사보다 대접받습니다. 최고입니다!” 선배가 간 후 아버지께서 언짢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너도 그리 생각하느냐? 태권도 사범이 의사보다 낫고 변호사보다 더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다.” 내가 쭈뼛쭈뼛 대답을 못하자 말씀을 이으셨다.


“그러지 마라. 남이 나를 알아주고 칭찬하면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치 않습니다’ 하고 겸손히 넘어가야지, 태권도 사범이 대단하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런 자세가 맞겠느냐?” 그 말씀이 지금도 가슴에 새겨져 있다. 수련생이 우리에게 존경을 표한다고 우쭐대선 안 된다. 조심하고 경계할 일이다. 우리는 그저 더 좋은 사범이 되고자 노력할 뿐이다.

 

한때 도장을 떠났던 한인 2세 사범들이 빠르게 돌아오고 있다. 이들이 미국의 태권도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세월 한인 2세들은 주먹구구식으로 도장을 운영하며 고생만 했던 부모세대를 볼 때 노력과 희생에 비해 보상이 부족해 보였기에 도장을 미래가 있는 비즈니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미국 태권도장 사업이 사회와 가정, 그리고 개인이 원하는 교육의 결과를 이끌어내고, 수련의 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도장의 대형화와 운영시스템의 체계화로 여러 지관 운영이 효율적으로 가능해져 예전에 비해 성공의 규모도 놀랍도록 커졌다.


게다가 도장 운영에 비즈니스적인 전문경영 마인드의 필요를 인식한 2세들이 생각을 바꾸었다.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만큼 부모세대의 언어, 문화에 대한 핸디캡이 전혀 없다. 더불어 한국적 사고와 행동양식에 대한 이해까지 있어 미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태권도 교육의 방향을 쉽게 도출해낼 잠재력이 있다.

 

이렇게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가 그들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강력한 시너지를 발산하는 고급인력들이 도장 산업으로 속속 유입되고 있어 무술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태권도를 전공하고 미국에 진출한 젊은 한인 사범들과 미국에서 자란 2세 한인 사범들이 좋은 유대관계를 갖기를 바란다. 

 

태권도와 종주국의 적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자긍심으로 의기투합할 때 다양한 사고를 가진 두 그룹의 젊은이들이 해낼 일은 대단할 것이며 태권도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월드클래스 따라잡기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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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스미디어는 '정순기 관장'의 도서 [위대한 클래스]를 공유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도서의 목차 순서대로 연재합니다. 무카스는 태권도, 무예인의 열린 사랑방 입니다. 무카스를 통해 일선 태권도장 지도자 및 수련생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주


[글. 정순기 사범 | 미국 월드클래스 press@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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