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희 칼럼] 우리는 교육자인가 경영자인가?


  

[유승희가 전하는 ITF 이야기] 2편 - 무도인(武道人)과 무도인(無道人), 비즈니스맨과 교육자 사이에서

2003년, 필자가 스물 다섯 살 때 였다. 이때부터 ITF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6년 동안 한 길을 걸어왔다.

 

그렇다면, 지금껏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무엇이었을까?

 

물론 격려와 도움도 적지 않았으나  "그만해", "그 정도면 됐어", "할 만큼 했어" 등 포기를 종용하는 말들이 더 많았다.

 

충분히 고민하고 각오한 길이었음에도 고난과 역경은 늘 이자 붙듯이 따라다녔다. 그때마다 나를 다잡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부족한 나와 함께 해준 수련자들 덕분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ITF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많은 분이 당연히 태권도를 전공 했겠거니 생각하시기 쉬운데, 사실 나는 태권도 전공자가 아니다.

 

대학에서는 환경공학을 공부했으며, 태권도 또한 그저 남들처럼 단지 오래 수련한 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전문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다만, 당시 사범님의 권유로 ‘입대 전에 좋은 경험이겠다’ 싶어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했을 뿐이다.

 

한 주, 한 주, 변해가는 어린 수련생 모습에 참 뿌듯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물론 다 좋을 수는 없다.

 

어느 날인가, 사범님을 대신하여 승단심사 서류를 접수하러 가다가, 아주 무례하고 저급한 태권도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차피 지도자가 될 마음이 없었으므로 그를 계기로 사범 아르바이트를 마무리하고자 하던 중에, 사람 팔자는 모르는 법. ITF를 만나버리고 말았다.

 

당시의 충격은 아무리 말로 옮겨도 다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껏 알고 있던 내용과는 몹시 다른 역사와 기술 체계가 젊은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20대 초반, 어른들 말씀으로 돌도 씹어 삼킬 나이가 아닌가. 처음 접한  ITF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퇴근하고 돌아와 밤 10시부터 새벽 2시가 넘도록 함께 하는 사범님들과 수련에 흠뻑 빠져 있곤 했다.

 

아버지께서는 그때 "저 놈이 북에서 하는 거 몰래 숨어서 운동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온다"며 농담조로 걱정하시곤 했다. 지금도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종종 회자하는 에피소드이다.

 

진로를 고민하던 나의 젊은 날, 그 새벽 수련이 쌓이고 쌓여 새로운 고민을 더했음은 분명하다. 누가 봐도 험난한 길이기에 3개월 가량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처럼 전공 살려 평범하게 살아갈 것인가, 험난하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결론은 지금 보시는 바와 같다. 나의 발자취가 후배들에게 좋은 밑거름으로 남는다면 태권도 선배이자 한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삶이 되겠다 싶었다.

 

필자는 성격상 한번 결정까지 신중하되, 결정하고 나면 뒤돌아보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늘 수련자들에게도 실패를 통해 무언가 배우고 얻었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말한다. 그러므로 스물 다섯 살이 되던 해인 2003년의 결심을 지닌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지만 깨달음이 많은 길이었다.

 

초기의 결심을 무뎌지지 않고 유지하고 나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자 노력하다 보니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예의, 염치, 인내, 극기, 백절불굴. 수련할 때는  태권도 5대 정신 안에서 수련을 하고, 힘들더라도 수련 환경을 통해 정신을 함양해야 하며, 도장 내 수련자들에게 도복을 입은 이로서 일반인과는 다른 면모를 지녀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지도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늘 노력하고 다잡아왔다.

 

나 또한 지도자인 동시에 끊임없는 태권도의 수련자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로서 자질과 능력은 타고나는 것 이상으로 항상 갈고 닦여져야 하는 것이기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를 다잡아주고 깨우쳐주는 스승들 또한 수련자들이었다.

 

지도자는 결코 신이 아니다. 지도자 역시 노력 중인 한 명의 수련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수련자들에게 더욱 진심을 담아 기술과 정신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정하자. 모르는 것이 있다면 알아봐주면 된다.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일인데도, 자존심 때문인지 굳이 아는 척 하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사례를 주변에서 종종 접할 때마다 아쉽다.

 

무도 영역에서 종사하다 보니 주변에서 무도인(武道人)이라고 자칭하는 분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부하는 것에 비해 공감이나 소통하기는 어려운 분들이 많았다. 이런 분들을 보고 온 날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은 무식하다는 인식 또한 우리 지도자들 스스로가 만들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도장 간판에 석사 박사 태권도가 즐비하지만 옆 도장 비방과 민원 제기로 하루를 보내는 사범들도 많으니,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무도인(武道人)이 아니라 무도인(無道人)이라고 ‘웃프게’ 표현하기까지 할까. 이내 웃어넘기다 나 역시도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한 지덕체를 지닌 무도인을 찾기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무도 또한 문화이므로 시대에 발맞춰 변화해야겠지만, 타협하지 말고 지켜야 될 부분도 있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영역에서 존경받아야 한다. 탈무드에도 나라를 지키는 사람을 불러오라고 하니, 군인도 정치가도 아닌 교사를 불러왔다는 말이 있다.

 

학교에 교사가 있고, 군대에 교관이 있듯이, 도장에는 사범이 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존경받아야 마땅하지만, 동시에 늘 존경받도록 스스로를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전제를 올바로 지키는 지도자만이 비로소 존경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태권도 사범들은 언제부터인지 그러한 존경을 잃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범(관장)들은 지도자보다는 도장 경영인에 가까워졌고, 교육자보다 비즈니스맨에 더 익숙해지고 말았다. 도장을 체육관이라 부르고, 도장 내에서 어린이들에게 줄넘기와 영어를 가르치는 일 또한 좋은 일이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태권도의 정수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교육자인가 경영자인가, 쉽지 않은 주제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태권!

 


[글 = 유승희 사무총장 ㅣ pride65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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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희
현) 사단법인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사무총장
현)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중앙도장 지도사범

2017 ITF코리아오픈국제페스티벌&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2017 ITF일본 도쿄 챔피언쉽 대한민국 선수단 단장
2018 ITF아르헨티나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대한민국 대표단장 및 수석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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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을 무 무도인

    각종 경영 컨설팅으로 돈이 우선 되는 태권도장이 된지 오래입니다
    심지어 태권도장 돈이 안되니 줄넘기체육관으료 업종 변경하는 관장도 있고 돈 따라 더욱 늘어나는 것이 명약관화 입니다
    관장들이 무도인(武道人)이 아니라 무도인(無道人)이라는 것은 협회나 관장들이 알고 있고 부크러워 묵인 하는 것입니다
    따끔한 칼럼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따끔한 글 부탁합니다

    2019-04-19 19:44:09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ITF지도사범 유승희

      격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격려와 아낌없는 조언 부탁드립니다. 태권.

      2019-04-22 15:54:27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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