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이민국 심사관이 인정하는 자격은 따로 있다?


  

[박호진 변호사의 미국 진출 바로알기 8] 태권도 경력을 모두 인정받을 수는 없다.

국내 태권도 전공생과 지도자들이 큰 관심을 갖는 미국 태권도 진출에 도움을 주고자 미국 내에서 여러 태권도 사범들의 취업비자와 영주권 업무를 담당해온 박호진 변호사를 통해 현실감 있는 ‘미국 태권도 사범 바로알기’를 연재 합니다. 미국 내에 다양한 사례의 태권도 사범의 정착기와 실패담 그리고 미국 진출에 반드시 알아야할 이슈를 앞으로 매주 목요일 소개 합니다. [편집자 주]

 

박호진 변호사

미국 이민법은 태권도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민법은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이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이민법을 적용하는 이민국 심사관이나 대사관의 영사들 또한 태권도 전문가가 아니다. 설령, 태권도를 조금 알더라도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철저히 배제한 상태에서 심사에 임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태권도인들 사이에서 대단한 경력으로 인정 받는 것들이 미국 영주권이나 비자를 신청할 때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오늘은 그런 경우에 해당된 두 태권도 사범의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유 사범은 태권도 겨루기 선수 출신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두각이 나타났고, 대학 졸업 후 실업팀에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또한, 아시아선수권대회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예선 탈락하기 일쑤였고, 준결승 이상 올라가 보질 못했다. 그래도 그의 선수 입상경력은 충분히 훌륭했다. 그 많은 태권도 겨루기 선수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유 사범 수준의 성취를 이룰 수 있겠는가?

 

실업팀 4년 차, 유 사범은 필자에게 연락을 걸었다. 주변에서 유 사범에게 ‘선수경력이 좋으면 미국 영주권을 받아서 미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선배 중에 1순위를 통해 영주권을 받고 미국에 간 사람도 있다고 했다. 

 

유 사범의 이력서를 검토해 본 결과, 유 사범의 경력은 1순위 영주권 승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됐다. 단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국제대회 입상 경력은 두 차례(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 은메달)가 전부여서, 국제대회 경력이 약하다고 간주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필자는 유 사범의 영주권 신청서류를 준비하면서, 아시아선수권대회가 태권도 겨루기 선수들에게 어떤 정도의 대회인지, 이란, 중국 등을 포함하여 세계 최강자들 다수가 출전하는 대회라는 사실을 보여 줄 자료를 최대한 준비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경력이 분명히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경력임을 설명하고 입증하려고 한 것이었다. 

 

약 두 달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신청서류를 이민국에 제출했다. 급행서비스를 신청했기 때문에 15일 이내에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11일 째가 되는 날, 필자의 사무실에 있는 팩스기계를 통해 유 사범 영주권 케이스에 대해 보충자료를 추가로 제출하라는 팩스가 들어왔다. 

 

이민국 편지를 보니, 이민국 측에서는 아시아선수권대회 메달 획득을 ‘지역적인 (regional)’ 성취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볼 경우에 대비해 이미 제출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한 후였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향을 찾기 쉽지 않았다. 세계태권도연맹, 아시아태권도연맹, 태권도 국가대표팀 코치,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딴 전직 태권도 겨루기 선수 등으로부터 추천서를 다시 받았다. 모든 추천서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가 태권도계에서 어느 정도로 인정되는 대회인지, 그리고 그 대회의 메달리스트는 국제적인 수준의 성취를 이룬 것인지에 대한 전문가 진술을 담도록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거절 통지서에 여전히 미국 이민당국은 아시아선수권대회 메달은 ‘지역적인 (regional)’ 수준의 성과이지, 미국 이민법이 정하는 ‘국제적인 (international)’ 수준의 성과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행정소송이라도 내서 이민국의 비합리적인 관점을 바로잡아 주고 싶었으나, 소송까지 하자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상당히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권하기 어려웠다. 결국 유 사범은 미국행의 꿈을 뒤로 미루게 되고 말았다.


다음은 태권도 시범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태권도인인 이 사범의 이야기이다. 그는 가장 큰 각도의 회전을 하면서 발차기로 격파를 할 수 있어 늘 최고의 시범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의 능력을 탐내던 태권도 명문대학교의 시범단 감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교 시범단에서도 늘 메인 단원으로 활동하며 팀 주장을 맡기도 하였다. 

 

국가대표 시범단에도 선발되어 유럽 등 20여 개국에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 사범이 미국 취업비자를 받으려고 필자에게 연락을 해왔을 때, 필자는 그가 특기자비자 (O-1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국가대표 시범단은 시범 쪽에서 보면 겨루기 국가대표 선수나 품새 국가대표 선수에 비견되는 경력이기 때문에 이 사범이 특기자 비자 승인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필자는 이 사범이 국가대표 시범단 선발과정에서 심사위원이었던 두 분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았다. 추천서에는 국가대표 시범단으로 선발되는 과정이 얼마나 치열한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되었고, 이 사범이 국가대표 시범단 선발과정에서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국가대표 시범단이 된 후 해외 시범공연에서 이 사범의 놀라운 발차기 능력 덕분에 그 공연들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 사실과 얼마나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는지 등을 소개했다. 관련된 사진들도 충분히 제출되었고, 시범공연이 있었던 나라의 언론들이 보도한 기사들 중 이 사범의 환상적인 발차기에 관한 내용을 부각시켜 제출했다.

 

 그러나…

 

특기자비자 신청서류를 이민국에 제출한 후 이민국으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은 필자의 무릎에 힘이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2019년도 국가대표 시범단 선발 공고에도 여전히 그렇게 되어 있듯이, 그 당시에도 국가대표 시범단의 응시 자격은 ‘국기원 3단증 이상 소지자’로 되어 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최소한의 응시자격일 뿐이다. 그런데 미국 이민국에서 이 부분에 매달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국기원 3단을 가지고 있으면 국가대표 시범단에 응시할 수 있고 국기원 3단은 그리 높은 단이 아니므로 국가대표 시범단 단원 경력이 그다지 높은 수준의 성취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판단이었다. 

 

답답했다. 물론 국기원 3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국가대표 시범단에 응시할 수 없지만, 국기원 3단이면 모두 국가대표 시범단에 뽑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범단 단원으로 선발되려면 높은 수준의 태권도 능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입증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낮은 수준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시 전문가들의 편지를 준비했다. 국가대표 시범단 운영주체인 대한태권도협회 관계자의 편지, 국가대표 시범단 감독의 편지, 이 사범이 졸업한 대학교 시범단 감독님의 편지, 국가대표 시범단 단원을 역임한 선배 단원들의 편지 등을 준비했다. 물론 그 내용은 이민국 심사관의 무지를 깨우쳐 주기 위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국가대표 시범단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각광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시범단이 세계 3대 태권도 시범단 중의 하나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태권도 시범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단원으로 선발될 수 있다는 점도 다시 한번 더 보강했다. 

 

또한, 이 사범은 이 시범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도 추가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는 거절이었다. 거절 통지서에 미국 이민국 심사관은 여전히 ‘국가대표 시범단 단원 자격은 국기원 3단을 가지고 있으면 되므로…’를 반복하고 있었다. 벽창호 같았다. 

 

결국 이 사범은 미국행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필자도 속이 많이 상했다. 


비단 태권도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실로 다양한 분야 전문가를 심사하는 미국 이민국 입장에서는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것을 피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전문성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추천서다. 그래서 필자는 처음에 제출했던 서류와 보충자료를 제출할 때 태권도 시범 분야 전문가들의 진술을 편지에 담아 제출했고, 그 분들의 진술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제출했으며, 필자가 직접 사용하는 담당변호사의 statement에서도 태권도 비전문가인 이민국 심사관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 

 

1순위 영주권이나 특기자비자는 그 심사기준이 매우 높다. 그래서 승인 받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승인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승인을 받은 사람에 비해 태권도 분야에서 능력이 덜하다고 결론지을 수 없다. 

 

미국 이민당국은 태권도를 잘 모른다. 그들이 태권도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런 상태에서 그들이 적용하는 심사기준에 대해 실무적으로 폭넓게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실패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시아선수권대회와 국가대표 시범단 단원 경력에 대한 미국 이민당국의 실질적인 심사기준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유 사범과 이 사범의 실패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저 그 두 분보다 늦게 1순위 영주권이나 특기자비자를 신청하는 분들이 그 분들의 경험을 거울삼아 실패를 반복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호진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과대학과 비즐리 로스쿨 출신의 뉴욕주 변호사로 현재 뉴저지 포트리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뉴저지로 옮기기 전에는 맨하탄 소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위치한 로펌에서 이민법 변호사로 활동했다. 미주 최대 웹커뮤니티 헤이코리안 닷컴을 통해 10년 가까이 무료 법률상담을 제공해 오고 있다. 현재는 태권도 사범의 미국 진출을 위한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콘 컨설팅의 고문변호사로도 활동 중이다.

 

[글 = 박호진 변호사ㅣ lawyer@beaconi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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