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로 다른 관장님과 사범님의 입장… '존중'이 필요하다!


  

[박호진 변호사의 미국 진출 바로알기 6]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내 태권도 전공생과 지도자들이 큰 관심을 갖는 미국 태권도 진출에 도움을 주고자 미국 내에서 여러 태권도 사범들의 취업비자와 영주권 업무를 담당해온 박호진 변호사를 통해 현실감 있는 ‘미국 태권도 사범 바로알기’를 연재 합니다. 미국 내에 다양한 사례의 태권도 사범의 정착기와 실패담 그리고 미국 진출에 반드시 알아야할 이슈를 앞으로 매주 목요일 소개 합니다. [편집자 주]

 

설명

다툼이 일어나면 양쪽 말을 모두 들어봐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은 살면서 거듭 확인하게 되는 진리이다.

 

미국에서 도장을 운영하는 관장과 그 도장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사범 사이의 관계도 결국 따지고 보면, 서로 입장이 달라서 생기게 되는 오해나 이해 부족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기 일쑤다.

 

이번 칼럼에서는 필자가 보기에 양쪽 모두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두 당사자는 서로 사이가 멀어지고 말았던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정 사범은 2010년에 P-1(기간 5년) 이라는 비자를 받아서 미국에 들어왔다. 지금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P-1 비자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지만, 그때만해도 전국 규모 시합에서 메달을 획득한 경력이 있으면 받을 수 있었다.

 

비자 스폰서를 해 준 곳은 텍사스 주에 있는 도장이었다. 웹사이트에 올라온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을 주고 받았고, 미국 도장에 취업이 결정되어 충남 천안에서 운영하던 도장을 접고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P-1 비자를 받고 미국에 들어와 2년 정도가 지났을 때, 정 사범은 스폰서 도장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됐다. 관장님과 지도 스타일이 잘 맞지도 않았고, 당초에 약속했던 월급 인상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미국에 들어오면 곧 시작하기로 했던 영주권 수속도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던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스폰서 도장을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정 사범의 P-1 비자를 담당했던 변호사는 관장님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비자 문제를 의논하기는 적절치 않았다. 그래서 다른 변호사를 알아 보고 상담을 받다가 E-2 라는 비자를 알게 되었다. 정 사범 자신이 직접 도장을 차리고 E-2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했고, 대도시 지역이 아니라면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도장을 차리더라도 E-2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비자 스폰서를 한번 받아보니, 스폰서를 받으면 도장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 불편했다. 이 참에 E-2 비자를 받으면 남의 도장에 매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 크게 매력적이었다.

 

한국에서 도장과 살던 아파트 전세를 뺀 자금 등을 이용해 총 8천만 원의 투자금으로 인디애나 주에 도장을 차리고 E-2 비자를 신청했다.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민국에서 무언가 서류를 더 내라고 하는 편지를 받고 그 요청받은 자료들을 제출한 후에 E-2 비자를 받게 되었다.

 

도장을 차린 지역이 중간 규모 정도의 도시 지역이고, 주민들의 소득 수준도 전형적인 중산층이었다. 미국에 와서 어깨 너머로 배운 방법들을 동원해 도장을 홍보했지만, 관원 수가 금방 늘지는 않았다. 그저 도장 월세 밀리지 않고 집에 생활비를 근근히 가져다 줄 정도였다.

 

하지만, E-2 비자를 받고 나니 정 사범의 부인이 소셜번호를 받을 수 있었고, 운전면허도 취득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노동카드도 받을 수 있었던 점이 큰 도움이 됐다. 부인은 한국에서 유치원 선생님 생활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부인의 수입이 큰 도움이 되었다.

 

E-2 도장을 개관한지 1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정 사범은 기존 도장 이외에 대형 휘트니스 센터에 태권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도장 사업을 확장하는 방안으로 알아보고 노력해서 얻은 기회였다.

 

E-2 비자는 2년마다 갱신을 해야 했는데, 마침 비자 갱신을 할 때가 되서 변호사와 의논하여 휘트니스 센터 프로그램도 포함시켜 비자 갱신을 받았다.

 

이제는 영주권 신청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스폰서가 필요했다.

 

지역에서 열리는 태권도 시합에서 자주 만나 알게 된 송 관장이 떠올랐다. 도장 2개를 운영하는 분이었는데, 성품이 세심해서 영주권 스폰서 부탁을 하기가 그리 편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근처에 한국 사범이 많지도 않았거니와 미국 다른 지역에 영주권 스폰서를 부탁할만한 지인이 없었던 터라 눈 딱 감고 부탁을 하게 되었다.

 

부탁한 다음 날 송 관장으로부터 도장으로 잠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대답은 예상 밖으로 호의적이었다. ‘나도 정 사범이 마음에 든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도 아닌데 우리끼리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주권 스폰서를 해 주는 대신 우리 도장에서 하는 행사가 있으면 도와 달라’, ‘그리고 영주권 스폰서를 하기 위해서 세금을 더 내야 하면 그 부분은 정 사범이 알아서 하라’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고, 정 사범이 동의한다면 영주권 스폰서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정 사범은 필자에게 자신의 영주권 케이스를 의뢰했다. 영주권 수속은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2-3년 정도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지만, 정 사범이 영주권 수속을 시작할 때만 해도 6-7년 정도 걸린다고 했었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영주권 수속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1단계 진행 중에 연방노동부로부터 신문광고 등을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류의 요청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간단히 극복할 수 있었다.

 

2단계 이민청원은 급행 케이스로 신청을 했다. 급행케이스로 신청하면 15일 내에 결과를 알 수 있어서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100만원 남짓 되는 급행비용을 쓸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정 사범의 2단계는 이민국에 제출한 지 11일 만에 승인이 났다.

 

이제 마지막 3단계였다. 이민국에 등록되어 있는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한국에서 이러저러한 증명서들도 준비했다. 약 한 달 만에 3단계 영주권 신청서를 이민국에 제출할 수 있었다.

 

영주권 신청서를 제출하고 약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어느 날 문들 정 사범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와서 “지금 영주권 스폰서를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영문을 들어 보니, 정 사범 말로는 송 관장이 영주권 스폰서를 해준답시고 너무 부당한 일들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송 관장네 도장이 시범을 보일 일이 있으면 정 사범 도장에서 가장 잘 하는 관원들을 보내서 시범을 도와야 했고, 송 관장이 자기 도장 이름으로 1년에 한번씩 여는 태권도 시합에는 정 사범의 관원들 중 스무 명 이상씩을 참가시켜야 했으며, 심지어 정 사범 부인이 쉬는 날 송 관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에 일손이 바쁘면 가서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듣자니 참 씁쓸했다. 평소에 전화기 넘어로 들리는 송 관장은 그렇게 부당한 요구를 할 것 같지 않았는데.. 정 사범 일을 어찌해야 하나 염려가 되었다. 영주권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서 180일이 지나면 영주권 스폰서를 바꿀 수가 있어서 그 방법을 알려 주면서 한 5개월만 잘 참고, 그 기간동안 새로운 스폰서를 찾아 보라고 이야기해 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 두 세 시간이 지났을 때 쯤 이번에는 송 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정 사범 영주권 문제때문이었다.

 

그런데 송 관장이 전하는 자초지종은 사뭇 달랐다. 정 사범의 도장 관원들이 송 관장네 행사에 도움을 주었던 것은 사실인데 그것은 일종의 품앗이였다는 것이었다. 정 사범 도장에서 프로모션을 하면 송 관장도 관원들을 보내서 지원을 했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영주권 스폰서를 해주느라고 송 관장이 1년에 세금을 약 7천불씩 더 내고 있는데, 정 사범이 그걸 갚는 것도 계속 체불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송 관장 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정 사범 부인이 가끔 와서 일손을 거들었는데, 적어도 초창기에는 정 사범 부인이 자발적으로 그리했던 것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약 석 달 전에 갑자기 정 사범 측에서 그 식당을 자기에게 팔라고 제안을 했다는 것이었다.

 

송 관장 입장에서도 식당이 잘 되는 것도 아니어서 가격만 맞으면 정 사범에게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가격 협상을 해 보니 서로가 생각하는 가격에 차이가 너무 커서 한식당 매매 협상은 결렬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후부터 정 사범이 송 관장에게 매우 무례하게 군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송 관장 행사에 정 사범이 기여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송 관장 설명으로는 그것도 정 사범이 먼저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를 꺼내서 '그렇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정도로 받은 것이었다고 했다.

 

또 정 사범도 그 시합에 참가하면서 송 관장과 가까운 다른 한국인이나 미국인 사범들을 소개받아서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송 관장은 정 사범이 ‘배은망덕하다’, ‘괘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송 관장은 ‘지금 스폰서를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가’가 궁금해서 필자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었다. 필자는 그렇게 되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강조하면서 어떻게든 송 관장을 만류하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 사이의 일은 결국 좋지 않게 끝이 나고 말았다.

 

정 사범은 180일 내에 새 영주권 스폰서를 찾지 못해서, 3단계가 심사되는 약 15개월 동안 꼬박 송 관장의 스폰서를 받았고, 다행히 송 관장도 억지로 스폰서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짧아진 수속기간 덕에 정 사범은 영주권 수속을 시작한 지 약 3년 만에 영주권을 받았다. 영주권을 승인받은 날, 필자에게 고맙다고 인사차 전화를 해서는 자기는 이제 인디애나를 떠날 것이라고 했다.

 

송 관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필자는 영주권 받고 나서 적어도 6개월은 송 관장 도장에서 일하고 월급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떠나더라도 6개월치 월급은 받고 나서 그렇게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정 사범은 못내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미국생활은 대부분 외롭다. 가까운 곳에 가족이나 친척, 또는 지인이 살고 있는 경우는 조금 형편이 낫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는 외롭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은 태권도인들끼리는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게 된다.

 

그런데 마음으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 긴밀하게 도장 사업을 하는 사이에는 교류가 잦은 만큼 오해할 부분도 많은 것 같다.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오래오래 지내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상대의 입장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호진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과대학과 비즐리 로스쿨 출신의 뉴욕주 변호사로 현재 뉴저지 포트리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뉴저지로 옮기기 전에는 맨하탄 소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위치한 로펌에서 이민법 변호사로 활동했다. 미주 최대 웹커뮤니티 헤이코리안 닷컴을 통해 10년 가까이 무료 법률상담을 제공해 오고 있다. 현재는 태권도 사범의 미국 진출을 위한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콘 컨설팅의 고문변호사로도 활동 중이다.

 

[글 = 박호진 변호사ㅣ lawyer@beaconi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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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사범

    물론 가끔 꼴통 사범들이 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관장님들도 있지만 그보다도 80-90% 위에 변호사님이 쓴 글에 있듯이 미국 관장님들이 '예전에 약속 했던 임금 인상이 되지 않은것 ' '영주권을 해준다는 이유로 부당한 요구를 한다는 것' 이 것에 많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범이야 그만두게 하면 되는 것이지만 그 곳에 비싼 돈 주고 온 사범들은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돈을 쓰고 온 것이며, 타지에 의지 할 것도 없기에 느끼는 막막함은 더 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2019-02-16 13:12:07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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