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턴사범 3년 만에 영주권 취득 과정, 결국은 '사람'이다!


  

[박호진 변호사의 미국 진출 바로알기 4] 반신반의로 시작한 인턴사범, 3년 만에 도장 2개 확대까지

국내 태권도 전공생과 지도자들이 큰 관심을 갖는 미국 태권도 진출에 도움을 주고자 미국 내에서 여러 태권도 사범들의 취업비자와 영주권 업무를 담당해온 박호진 변호사를 통해 현실감 있는 ‘미국 태권도 사범 바로알기’를 연재 합니다. 미국 내에 다양한 사례의 태권도 사범의 정착기와 실패담 그리고 미국 진출에 반드시 알아야할 이슈를 앞으로 매주 목요일 소개 합니다. [편집자 주]

 

박호진 변호사

네 번째 칼럼 주인공은 미국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비교적 짧은 시간에 영주권 취득과 도장사업까지 잘 해결된 태권도 사범의 이야기입니다.[필자 주]

 

M 사범은 태권도 명문 대학교에서 태권도를 전공했다.

 

졸업 몇 개월 전, 학교 홈페이지 게시된 인턴 사범모집 광고를 보고 미국 뉴저지에 있는 K도장에 지원해 인턴 사범생활을 하게 됐다.

 

인턴이기 때문에 별도로 월급이 지급되진 않았지만, 도장 측에서 왕복 항공권과 숙식을 제공해주고 귀국 일주일 전에는 관광 여비를 마련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2개월 반 정도 인턴생활 동안 M 사범은 자신이 미국에서 도장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자, 영주권 등 여러 문제도 있었지만, 자신이 지켜 본K 도장의 각 지역 관장들 여유 있고 당당하게 살면서 미국 땅에서 태권도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백인, 흑인, 유대인, 남미사람들로부터 ‘마스터’ 칭호를 들으면서 그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좋아 보였다.

 

K 도장의 관장님도 M 사범을 좋게 여겨 졸업 후에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

 

시작은 한국 돈으로 200만 원 남짓의 월급이었지만, 관장님은 취업비자를 받아서 들어오면 바로 영주권 절차를 시작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영주권을 받고 나면 K도장의 새로운 지역을 맡아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만일 목돈이 없다면 우선 관장님이 도장설립에 드는 비용을 내주고 무이자로 나눠서 갚도록 해주겠다고도 했다.

 

듣기 좋은 제안이었지만, 내심 반신반의했다. 주변 소문에 의하면 미국도장 오너들의이 제안은 '공수표'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미 한 지점의 도장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던 선배 사범에게 슬쩍 물어보니 자기는 도장 세울 때 드는 비용을 자기가 직접 냈지만, 다른 지점을 맡은 사범 중에는 관장님이 설립자금을 융통해준 경우가 있다고 했다.

 

관장님의 제안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에서 도장에 취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자립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K 도장은 관원을 늘리거나 이미 등록하고 있는 관원들을 유지하는데 상당히 효과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 점 또한 매우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M사범은 그다음 해 2월에 대학교 졸업 후 K도장 관장님과 연락하여 4월에  H-1B 취업비자 신청 준비를 시작했다. 비자 신청에 대해서 부담이 있었지만, 실제로 자신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많지 않았다.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영문으로 제출하고, 단증과 상장들을 변호사에게 보냈다. 나머지는 K 도장의 관장님과 본관 매니저 사범이 준비해 준다고 했다. 비자 신청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비자신청을 이민국으로 제출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승인 소식이 들려온 것은 7월 초였다. ‘이제 미국에 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실감나기 시작했다. 미국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곧바로 비자 인터뷰 준비를 진행해주었다.

 

양이 꽤 많은 서류를 이메일로 받았고, 전화 통화로 인터뷰 예상 질문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들었다. 비자 인터뷰는 무더웠던 8월 초 경복궁 앞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에서 진행됐다. 관공서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불편한 곳이었다. 하지만 미리 변호사와 연습했던 질문이 대부분이어서 인터뷰 중 고민하거나 망설이는 순간은 많지 않았다.

 

인터뷰를 받고 4일 후, M 사범의 집으로 H-1B 비자가 붙어있는 여권이 배달됐다.

 

미국 공항에 다시 내린 것은 사방이 가을로 채워지기 시작하는 9월 말이었다. 이번엔 무비자로 온 것이 아니라 정식 취업비자를 받고 들어오니 기분이 남달랐다. 그리고 마음속에 품은 뜻도 지난번과 달랐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K 도장 관장님으로부터 들었던 미래계획을 꼭 이뤄서 미국에서 자신의 도장을 하는 날을 그리면서 다시 미국 땅을 밟았다.

 

영주권 절차를 시작한 것은 겨울이 느껴지기 시작하던 11월 말이었다.  M 사범이 도장에 도착한 이후로 도장에는 여러 행사가 겹쳐 있었다. 뉴저지주에서 열리는 태권도 대회에 참가하는 관원이 많아서 그들의 마무리 훈련도 도와주고 대회가 열리던 날 시합장에 가서 세컨을 봐주기도 했고, 도장이 위치한 타운십에서 열리는 가을 축제에서 시범을 겸하여 프로모션 행사를 하기도 했다. 바쁜 일들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관장님에게 영주권 절차에 대해 물으니, 바로 변호사와 약속을 잡아주었다. 변호사를 만나러 갈 때도 관장님이 동행해주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영주권 절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다음해 1월 말이었다. 영주권 절차는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었다. 신문에 구인광고도 냈고, 도장으로 이력서가 오면 바로 변호사 사무실로 보내줘야 한다고 해서 한동안 도장으로 오는 우편물을 M사범이 직접 일일이 살펴 보기도 했다.

 

약 9개월 동안 긴 과정을 거치고난 어느 날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LC가 승인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LC가 정확히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첫 번째 힘든 과정을 잘 통과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한 단계를 넘어선 것뿐이고, 그 후로 두 단계가 더 남아 있다고 했다.

 

영주권 절차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M사범보다 5년 정도 먼저 미국에 온 다른 사범은M 사범에게 “영주권 들어갔으면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기다리자면 진이 빠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나마 영주권 수속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나머지 두 단계도 차례로 승인이 났고, 영주권 절차를 시작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영주권이 최종적으로 승인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주권 승인 축하파티로 한인타운에 가서 함께 돼지갈비를 먹던 날, 관장님은 “이제M 사범도 자기 도장해야지. 마침 내가 요즘 보고 있는 자리가 하나 있으니까 일이 잘되면 그 도장을 M 사범이 하는 게 어때?” 라고 사업제안을 했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민법적인 의무 때문에 M 사범은 영주권 스폰서였던 도장에서 그 후로도 7개월 동안 일을 해야 했지만, 앞으로 자신의 도장이 될 새 지점을 준비하는 일도 병행했다.

 

도장을 오픈하기 전부터 관장님은 매우 분주하셨다. 전체 지점에서 능력이 좋은 유단자를 모아서 구성한 시범단이 M사범의 도장이 열리는 쇼핑몰에서 멋진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고, M사범이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줄 때 관장님이 함께 도와주기도 했다.

 

무척 고마웠다. 일일이 도와주는 것도 고마웠지만, 더욱 고마운 것은 관장님 본인이 했던 약속을 지켜준다는 점이었다. 주변에서 자주 들어온 좋지 않은 이야기 때문에, ‘정말 계획대로 될까?’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시간들이 길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랜드 오프닝 행사를 치르고 난 후에는 관장님이 직접 오시거나 또는 본관의 매니저 사범이 자주 와서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영어로 수업을 하는 것은 별문제가 없었지만, 아이 손을 잡고 들어서는 백인 학부모를 유창하게 상대할 수 있는 영어실력은 안되었기 때문에 불안해하던 M 사범에게는 그렇게 도와주는 분들이 감사했다..

 

도장의 관원수는 빠른 속도로 늘었다. 오픈한지 6개월이 되었을 때 이미 70명을 넘어 있었다. 물론 M 사범 자신도 난생 처음 해보는 본인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휴일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지만, K 도장의 관장님과 선배 사범들이 보내주는 유/무형의 도움 덕도 상당했다. 그럴수록 M 사범은 관원 한 명 한 명에게 더욱 정성을 쏟았고, 수업에서 간단한 시범을 보일 때도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 후에, M 사범은 다른 선배 사범과 파트너쉽으로 두 번째 도장을 오픈 했고, 현재는 두 도장 모두 성업 중에 있다.

 

태권도 사범들의 비자와 영주권 케이스를 오랫동안 다루어오면서 수많은 사범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본 필자로서, K 도장 관장님 같은 분을 만나면 참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 잘 풀려나가고 자기에게 기회가 왔을 때 거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욱 분발해 좋은 결과를 이뤄낼 줄 아는 M사범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호진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과대학과 비즐리 로스쿨 출신의 뉴욕주 변호사로 현재 뉴저지 포트리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뉴저지로 옮기기 전에는 맨하탄 소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위치한 로펌에서 이민법 변호사로 활동했다. 미주 최대 웹커뮤니티 헤이코리안 닷컴을 통해 10년 가까이 무료 법률상담을 제공해 오고 있다. 현재는 태권도 사범의 미국 진출을 위한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콘 컨설팅의 고문변호사로도 활동 중이다.

 

[글 = 박호진 변호사ㅣ lawyer@beaconi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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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조지아주 yjae10002@hanmail.net

    2019-02-09 07:12:30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사범

    뉴져지 chatham에 있는 태권도장 조심하세요. 많은 사범들이 영주권 문제 있다고 합니다.

    2019-02-02 04:06:10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미국사범

    진짜 좋은 관장님이시네요 ! 저런 관장님들만 미국에 계신다면 태권도장이 올바르게 서지 않을까 싶네요. 왜냐하면 그 인성과 인품을 사범들도 배우기 때문입니다. 사범들 비서인양 괴롭히고 모질게 하고 학생들을 상품으로 보고 돈만 밝히고 어쨌든 해서 나중에 독립한 사범들 보면 그 전 관장님의 모습이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국은 닮아 가더라고요.

    물론 변호사님께서 거짓없이 작성한 글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의심쩍은 부분도 있네요.
    H-1b 비자가 과연 태권도를 전문직 카더고리로 해서 취업을 시킬 수 있을지... 물론 하신분들이 있으니깐 올리셨겠지만 지금 2019년에는 엄청 힘든 관문이며 아마 취업영주권 보다 힘들 듯 하네요.(부정적인 내용을 쓴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하니깐 쓴 내용입니다.)

    아마 P-1 이든 H-1b 이든 워낙 한국에서 받기 어렵기에 다들 학생비자나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바꾸는데 제 생각에도 한국에서 확실히 받고 가는게 좋을 듯 합니다. 꼭 그것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가지 3년 정도만 자신의 도장에서 일을 시키려고 부르는 관장님들이 과연 있을까요? 약 1년은 영어 및 가르치는데 시간이 다 들어가며 겨우 2년만 자신의 도장에서 일을 시킬 수 있는 건데 .. 세금 및 교육 까지 시켜가면서 ?? 나중에 차린 것 모든 것들이 관장님께 예속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의 이윤의 몇프로를 드리든지 아니면 어떤 부탁이 있을때 만사 제처두고 도와줘야 한다든가 같은 상호이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같은 느낌이 듭니다. but 그런게 아니라 정말 사범들을 사랑하고 그곳에 정착하는 사범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인품과 인성이 훌륭하신 관장님 이시라면 성함이라고 좀 알고 싶네요...^^

    2019-02-01 16:16:06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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