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세계화의 큰 별 '김운용' 타계… 그는 누구?


  

향년 86세. 노환으로 3일 새벽 운명

故 김운용 전 총재가 전성기 시절 집무실에서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

태권도 세계화와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에 성공시킨 태권도 세계화의 주역 김운용(金雲龍) 세계태권도연맹 창설총재 겸 국기원 창설 원장이 타계했다. 향년 86세.

 

김 전 총재는 2일 평소와 달리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호전되지 않고 더욱 악화돼 3일 오전 2시 21분경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지하2층 특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7일장으로 거행된다. 발인은 9일 오전이다.   

 

오래 동안 김운용 총재를 보좌해온 서현석 비서관은 <무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너무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셔 황망하다”면서 “어제(2일) 오전에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하셔 세브란스에 내원했다. 명절 기간이고 해서 입원치료를 하는게 좋다하여 입원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주무시다 세상을 떠나셨다”고 말했다.

 

이어 “연세가 있으셔 활동이 예전 같지는 않으시지만 건강상 크게 나쁘지 않았다. 지난주 진천 선수촌 개촌식 행사도 다녀오셨고, 매주 해외 스포츠 관계자와 태권도 사범들과 식사도 하고 행사에도 가시고 건강에 큰 이상이 없으셨다”고 최근 근황을 전했다.

 

장례절차에 대해서는 “평생을 태권도 세계화와 한국 체육 발전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해 오신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국내외 태권도인과 체육인들과 정성스럽게 배웅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권도 세계화의 거목 김운용

 

1931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 김운용 총재. 호는 윤곡(允谷)이다. 경동중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정치외교과 재학 시절 외무고시 준비 중 6.25 전쟁이 발발해 북한군의 서울 점령을 겪었다.

 

서울 수복 직후 군에 입대하여 미국 육군보병학교로 세 차례 군사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각종 외국어에 능통해 제11대 육군참모총장 송요찬 중장의 전속부관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서는 외교관이 되었다.

 

이후 국내 태권도를 이끌었던 최홍희(ITF 창설자) 전 대한태권도협회장이 박정희 정권과 갈등을 겪으면서 캐나다로 망명하자, 당시 정부에서 김운용 전 총재를 대안으로 태권도협회 회장으로 추천해 태권도와 깊은 인연이 시작됐다.

 

故 김운용 총재는 평생을 태권도 세계화와 대한민국 체육외교를 위해 힘써왔다. 눈을 감기 전까지 태권도인과 체육인과 교류가 이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태권도계와 체육계에서 역할을 맡아달라고 할 때 큰 어른으로 자문역할만 하겠다고 고사했다.

 

태권도 인연은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그는 태권도를 우리나라 전통적인 대중 무술로 발돋움하기 위해 취임 후 곧바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찾아가 ‘국기태권도’ 휘호를 받아내 보급을 활성화 시켰다. 현재까지 태권도는 ‘국기(國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어느 곳에도 명문화 되어 있지 않다.

 

이듬해 태권도 중앙도장 겸 경기장으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국기원을 설립했다. 돈이 없던 협회 사정상 그의 인맥을 총동원해 부지와 건립비용을 모두 후원받아 건립했다. 이를 계기로 태권도 위상은 큰 변화를 맞았다.

 

이어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세계태권도연맹(WT)을 창설해 창설총재에 취임했다. 창설과 함께 국기원에서 1973년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매년 2년마다 전 세계를 돌며 세계선수권이 개최되고, 이제는 품새와 장애인 등 분야로 확대됐다.

 

태권도 경기 세계화는 곧 짧은 역사임에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라는 큰 업적을 일궜다. 1980년 7월 17일 제38차 IOC총회에서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승인한 이후 1988년 9월 제24회 서울올림픽경기대회와 1992년 8월 바르셀로나올림픽경기대회의 시범종목을 거쳐 1994년 파리 IOC총회에서 2000년 시드니올림픽경기대회에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2024 파리 올림픽까지 7회 연속 정식종목으로 이어갔다.

 

또 하나 오늘날 태권도가 세계화 될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은 김운용 리더쉽을 통한 ‘태권도 대통합’을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1971년 태권도협회장이 된 그는 빠르게 태권도계를 장악해 강력한 리더쉽으로 태권도 세계화를 진두지휘 했다.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 창설 총재에 이어 1974년 재단법인 국기원을 설립해 창설 원장에 취임했다. KTA-WT-국기원을 모두 통솔하게 된 고인은 각 관별로 파벌이 형성된 태권도를 통합작업에 나섰다.

 

1977년 8월 1일 태권도 총본관을 설립해 기존 개관을 계열화 했다. 이어 1978년 10월 5일 각 중앙본관을 폐쇄하고, 청도관, 무덕관, 지도관, 송무관, 창무관, 강덕원, 정도관, 오도관, 한무관, 관리관(무순) 등 10대관을 통합해 단증발급 및 심사업무를 ‘단일지도체재’를 확립했다. 이 통합이 없었다면, 지금의 태권도는 존재할 수 없었다.

 

고인의 광폭 활동은 세계 스포츠 외교계에서도 인정받았다. 1986년 개인자격으로 IOC위원에 선출된 뒤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IOC 집행위원과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했다. 또 2000 시드니올림픽에 남북공동입장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고인은 평생에 가장 크게 기억 남는 일은 ‘국기원 건립’과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꼽았다.

 

그는 무카스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초창기 외국에서 태권도 보급을 위해 외국인이 찾아와도 마땅히 데리고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국기원을 건립했다. 보다 큰 세계화를 위해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해 국기원 중앙도장에서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또 하나는 1994년 파리 IOC총회에서 태권도가 시드니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일이다. 이를 통해 그 그늘로 태권도가 오늘날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와 태권도계가 한국 스포츠 발전과 태권도 세계화에 크게 기여한 고 김운용 전 총재의 공적을 기리는 의미로 오는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제1회 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가 창설된다. 안타깝게도 이 대회의 주인공이 참석할 수 없게됐다. 

 

    **2015 대한체육회 구술채록 김운용편 - 완전판

 

일평생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헌신한

故 김운용 전 총재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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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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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S

    그동안 많은 고생을 하신 총재님
    부디 편한 곳으로 가셔서 행복한 순간들만 기억하시며 쉬시길~바랍니다.
    태권도와 한국 스포츠를 위해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무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의 업적에 대해 고개숙여 깊은 감사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2017-10-04 06:57:12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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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인

    열악한 대한민국의 체육계를 세계급으로 끌어 올리신 체육계의 영웅이 끝내 운명을 다 하셨다니 가슴이 아픕니다.특히 태권도를 올림픽종목으로 만드신 영웅. 본이 아니게 저질 정치꾼들에게 이용만 당하시고 끝내 평생 몸 담아 바치신 체육인 인생을 비참하게 마감 하셔야 했던분. 속세에 남아 있는 미천한 저희들을 용서 해주시고 저승에서나마 편히 쉬소서.

    2017-10-03 17:10:19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마군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7-10-03 15:11:28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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