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소리] 바보같은 무술사범이 겪은 교훈

  

공권유술 강준 사범의 허튼소리 49


무술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무도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무도인으로써 지켜야할 예의와 도리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사범은 항상 수련생의 부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하며, 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오로지 사범이 져야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무도 사범들이 지켜야할 사항일 것입니다.

처음 공권유술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30대 초반의 젊고 패기 있는 공권유술 사범이 있었습니다. 신체적으로도 기술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열정도 남달랐습니다.

당시 이 청년은 “강한 것이 곧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어느새 진리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테크닉을 익히는데 열중하고 있었고 자신의 신념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 사범은 많은 수련생들 앞에서 암바(가로누워십자꺾기)를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중관절이 어떻게 지렛대의 원리로 꺾이는지 원리를 설명하고, 어째서 상대가 항복을 할 수 밖에 없는지 시범을 보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련생 한명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범님! 나는 남들보다 힘도 세고 암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기술이 나한테는 통하지 않을 텐데요!”

당황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도 사람들은 “무례한 녀석이군.” 이라는 표정이 아니라 이제 공권유술에 입문한지 일주일도 안 된 신참 수련생의 말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이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면 내가 팔에 힘을 줄테니까 한번 꺾어보세요!”

바닥에 누우며 팔을 내놓습니다. 참으로 맹랑한 녀석입니다.

암바라는 기술은 일단 기술이 걸리면 힘이 강하던, 몸무게가 많음에 상관없이 완벽하게 제압이 되는 기술 중 하나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젊은 사범의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상황이라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범이 어쩔 수 없이 수련생과 이상한 게임을 하게 됩니다.

팔을 감싸 안고 다리로 단단히 고정한 후, 힘을 주고 있는 상대의 팔에 몸무게를 실어서 팔을 강제로 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하면 팔이 다칠 수가 있는 상황까지 왔는데도 상대가 텝을 치지 않습니다. 부상이 염려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을 조금 느슨하게 만듭니다. 그러자 그 틈을 타 수련생이 상체를 세워 일어나려는 시도를 합니다.

수련생이 조금 전 말했던 “자신은 어떠한 사람이 기술을 걸어도 암바라는 기술에 결코 걸리지 않는다.”라는 확신을 보여주려는 듯 보입니다. 그 녀석의 입장에 볼 때 항복을 선언하면 그 역시 많은 수련생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습니다. 완전히 펴진 팔에 아랫배를 들어 올려 각도를 주면 분명 크게 팔을 다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수련생이 몸을 일으켜 상체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그만 수련생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잘 못 넘어지면 바로 탈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상대의 손을 놓아 암바를 풀어줍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치 자신이 암바를 풀었다는 듯이 받아들입니다. 주변의 수련생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사범이 생각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사범은 수련생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곤 뭔가를 깨달은 듯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다음부터는 이러한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되었든 탭을 받아 내야하는 것이 정석이겠군.”이라고 말입니다.

그로부터 딱 두 달 뒤입니다.

도장근처에 있는 ㅇㅇ공업고등학교의 럭비부였다는 20대중반의 청년한명이 입관을 합니다.

8월 달의 한 여름이었는데 구리 빛 피부에 빡빡으로 밀은 머리가 강인한 인상을 더합니다. 힘줄이 툭툭 튀어나온 팔뚝하나가 웬만한 아가씨의 허리통 만합니다. 그의 허벅지는 말 근육처럼 가늘고 기다란 줄무늬가 걸을 때마다 선명하게 움직입니다.

당일 도복을 지급하고 함께 수련을 하는데, 암락(팔얽어 비틀기)를 지도합니다. 팔짱을 끼고 짝 다리를 짚고 있던 럭비부의 거인 같은 청년이 기분 나쁜 목소리로 웃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 안 물을 수가 없습니다.

“사범님! 내가 몸무게가 120kg이고, 힘이라면 남에게 져본 적이 없는데 그게 나 같은 사람한테도 통합니까? 그냥 상대가 적당히 받아주니까 되는 거지요.”

어떻게 그 젊은 사범에게 자꾸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는 없지만 “그렇지 자네 말이 맞아 힘센 사람한테는 기술이 통하지 않지!” 라고 말할 수 없어서 “두 손으로 한 손을 비틀어 꺾기 때문에 팔의 구조상 그리고 각도 상 팔이 제압을 당하는 것이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럼 자기 팔을 한번 꺾어 증명을 해보라며 팔을 내밉니다.

마치 두 달 전의 상황을 그대로 판박이 해놓은 듯합니다.

“다칠 수가 있어요.”

“다쳐도 내가 다치니까 한번 해보세요! 빠져나와 볼테니깐!”

많은 수련생들이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지켜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술을 걸자니 청년이 다칠 것 같고, 안 걸자니 많은 학생들에 앞에서 망신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

결국 사범은 이 청년을 제압하여 항복을 받아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가로누르기를 하고 ‘팔 얽어 비틀기’를 시도합니다. 엄청난 팔 두께도 그렇지만 힘이 정말 장사입니다.

청년이 빠져나가려고 팔에 힘을 주고 몸을 비틀기 시작합니다.

얼 마 전 수련생에게 망신당했다고 생각했던 그때 일이 떠오릅니다. 항복을 받기 위해 힘을 가하지만 청년이 항복하지 않습니다.

순간! “빠악~!”하는 소리가 도장전체에 울려 퍼집니다. 마치 타이어 터지는 소리 같습니다. 사범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팔이 탈골되고 말았구나.”라는 말이 흘러나옵니다. 청년은 금새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고통에 몸부림치며 팔을 잡고 뒹굴기 시작합니다. 곰 같은 덩치를 가진 청년이 신음소리를 내고 괴로워합니다.

도장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탈골이 아니라 골절이었습니다. 골절도 그냥 골절이 아니라 상박골의 뼈가 마치 송곳처럼 뾰족한 4개의 조각으로 부서져서 수술이 불가피 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대수술이 있었습니다.

힘과 힘이 부딪치고 그걸 강제로 제압하려다 보니 어깨가 아닌 엉뚱한 상박골에 충격이 가해진 것입니다.

청년의 어머니가 병원으로 달려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묻습니다. 달리 할 말이 없어 자신을 꺾어보라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을 하니까, 청년이 옆에 있다가 “팔을 꺾으라고 했지 내가 언제 병신을 만들라고 했습니까?”라고 사범을 나무랍니다.

그 말을 들으니 너무나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칭 진취적이고 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젊은 사범은 청년의 수술비도 지불해야 했고 그것으로 인하여 도장운영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고 살았던 사범이 알고 보니 참으로 바보였습니다.

팔이 부러졌던 청년은 수술이후에도 보철구[補綴具]를 한참동안이나 착용해야했습니다. 어쩌면 비가 올 때마다 팔이 쑤시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팔을 부러뜨린 사범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졌을까요?

여기에는 상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겸손한 마음도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없이 오로지 기술만을 지도하는데 열중했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잘못보다는 전적으로 사범의 잘못인 것입니다.

사고가 있기 전 까지 그 사범은 학생들에게 기술을 지도하는데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무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예절이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면 똑같은 사건은 계속해서 반복되어졌을 것입니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은 무술을 수련함에 있어서 "기술이 사람보다 결코 우위에 설 수 없다."는 진리였습니다. 이후부터 공권유술의 시스템은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처음 수련생이 입문을 하면 도장의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안내가 우선이고 사범이나 수련생을 대하는 태도나 배우는 사람의 태도가 서로 공손해야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합니다.

특히 수련생은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고 사범은 수련생에게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것이 우선되지 않으면 격투종목의 무도는 무도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격투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편적으로 도장의 수련생이 늘어나면 우리는 초심의 마음을 잃기도 하고 어쩌면 수련생을 소흘히 대하기도 합니다.

사범은 도장에서 수련하는 수련생들을 직업이나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평등하게 대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서 수련생을 대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기술 한 가지를 지도하기 위해서 욕심을 내는 것보다 지도사범이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상대가 누구건 그 본질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마음에 손을 얹고 옛날을 생각해 보십시요. 도장에 단 한명의 수련생을 지도하며 좀 더 많은 수련생들이 가입했으면 했던 당시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고마울 따름일 것입니다.

이제, 과거 그 바보 같은 무도사범은 나 하나면 충분합니다.




<글 = 강준 회장 ㅣ 사단법인 대한공권유술협회 ㅣ master@gongk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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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도관장

    아마 그 관장님이 스파링 파트너에게 상대편에 대한 예의를 주의 시켰으면 이런일이 없었겠지요. 그리고 최근 지금 그도장 수련생 중 한명은 무릎인대가 찢어졌네요. 오래된 에이스이고 20대 아이인데... 한달 입원하고 퇴원했다는 소릴 듣고.. 이제 제대로 운동이나 하겠습니까? 비슷한 연골파열경험을 한 저로는,,,,또 평생 몸으로 먹고 살아야하는 입장으로 이걸 계속해야하나 하는 회의감만 드네요

    2014-06-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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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도관장

    가드자세에서 초보지만 80키로 이상의 상대가 체중을 압박해 눌러서 목을 다쳤는데,,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주짓수 관장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네요.. 분명, 저또한 상대편을 충분히 다치게 할수 있음에도 충분히 상대편의 예의로 절대 부상없게 수련중인데..

    2014-06-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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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도관장

    검도관장입니다. 칼럼 잘보고 있습니다.
    위와같은 상황이 너무 제상황이라,, 최근 몇년간 주짓수를 배우고 있는데, 기술중심주의의 도장에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무릎인대 파열 전치 6개월 휴식 10개월, 갈비뼈 실금 3주 최근 목을 심하게 다쳐 한달째 운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2014-06-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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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규태

    문제점이 생겼을때 반응하는 감정의 골을 잘 짚어주셨네요.
    참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아주 고약한 상황에 난처함을 글로 잘 나타내주신점 감사드립니다. 무도(무예)에 예의(예절)가 빠졌기 때문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2014-05-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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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관장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관장님의 생각이 잘 지켜지시길 바랍니다.

    2014-05-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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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도관

    강준관장님의 소중한 경험 잘 새겨 듣겠습니다.

    2014-05-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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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민중

    기술을 열심히 가르쳐줬는데 몇개월하고는 그만둔다. 엄마가 이젠 그만다니라고 하고 애들도 배울거 다배웠다고 말한다.
    차라리 정신교육을 제대로 시키면 더 좋을것 같다.

    2014-05-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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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편소설

    문방구에서 장난감나눠주는 소설

    2014-05-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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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꺠달음이 느껴지네요. 좋은글입니다.

    2014-05-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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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ㅇ

    오랜만에 좋은 글 올라왔습니다.

    2014-04-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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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4-04-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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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범

    이건 허튼소리라 할 수 없습니다. 무술을 지도하는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생수와 같은 말씀입니다.

    2014-04-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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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좋은 얘기입니다.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고 했습니다.

    관원들의 수를 떠나서,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이고, 어떤 태도가 우선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핑곗거리를 만들어내기 딱 좋으나, 훗날에 가서는 정도는 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2014-04-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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