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명칼럼]품새는 '사람됨의 길'

  

품새 수련은 나를 찾아 나서는 고행의 길


태권도 수련과정의 으뜸의 위치에 있는 품새는 사람됨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됨을 추구한다는 것은 모순적일 듯하지만, 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태권도 수련과정에서 특히 품새 수련이 중요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품새는 단지 심사를 보기위한 수련 그 이상의 범위를 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품새 수련의 과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품새는 준비서기로부터 시작한다. 준비서기는 기본 준비서기를 비롯해 통밀기 준비서기, 겹손 준비서기, 보주먹 준비서기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예시예종(禮始禮終)의 미덕이 태권도의 중요한 덕목이듯 품새의 준비서기는 그것의 구체적 표상일 듯하다.

준비서기란 무엇인가. 준비서기의 상위 개념은 ‘특수품서기’이다. 특수품서기란 함은 팔, 다리, 몸 움직임이 조화된 서기의 전체 모양을 말한다(태권도교본, 국기원 2006). 기본 준비서기와 겹손 준비서기의 공통점은 하단전에 내기(內氣)의 집중을 중시하고 다른 점은 두 발의 상태가 나란히 또는 모아서기의 차이와 주먹 또는 겹손-공손(恭遜 공경하고 겸손함) 등의 의미가 다름이다.

하지만, 통밀기와 보주먹 준비서기는 인중 높이에서 내기와 외기(外氣)의 집합을 중시한다. 둘의 다른 점은 통밀기는 두 손바닥을 마주보는 형태이고 보주먹은 오른손 주먹에 왼손바닥으로 감싸듯 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준비서기는 호흡과 의식이 준비를 위한 한 곳에 모아져야 한다.

여기서 보주먹 준비서기의 상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주먹이란 보(褓) 즉 가위바위보에서 하나로서 보 즉 땅을 상징하고 주먹은 둥근 원으로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기운의 조화를 통해 내 몸의 내기와 외기의 조화로운 호흡과 의식을 하나로 조화됨이 보주먹 준비서기의 의미이다. 보주먹 준비서기는 품새의 마지막 단원인 일여(一如)의 그것이다. 일여는 곧 여일(如一)로서 하늘 땅 사람의 조화로운 하나로서 한결같음을 지향한다.

17개 품새 중 품새명(名 이름)에서 우리는 지태(地跆)와 천권(天拳)을 만날 수 있는데, 지(땅)와 태, 천(하늘)과 권은 음양으로 집약되는 데 양을 중심하여 천지(天地) 즉 하늘과 땅을, 음을 중심하여 태권(跆拳)이라는 우주적 태권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품새] 일여는 그것의 총합으로 ‘도’라고 보는 관점에서 ‘태권도’라는 정체성을 드러낸다.

품새 지태와 천권의 품새선은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하는 工 (지을 공)자에서 파생된 ㅗ 자와 ㅜ 자를 품새선으로 표상되고 있음이 예사롭지 않다. ㅗ 즉 땅위에 직립한 사람의 상징성과 ㅜ 즉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상징성인데 품새선의 표기를 편의상 한글의 오, 우 모음이라 부른다.

모든 품새 중 지태, 천권 그리고 일여 품새는 예외적인 특징이 보인다. 품새의 첫 동작은 방어 즉 막기에서 시작하여 주로 끝동작은 지르기, 치기 등 공격으로 마치게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세 품새는 막기 동작에서 막기 동작으로 시작과 끝이 여일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개의 경우 유단자들조차도 이에 관심을 갖지 않는 듯싶다.


지난해 11월 열린 제2회 WTF세계품새선수권대회 모습


품새 속의 품새 이름에서 또 다시 ‘태권도’라는 상위 개념 즉 ID(Identity)가 발견되고 그것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늘과 땅, 사람의 조화로운 하나를 지향하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품새의 시종(始終)은 막기에서 막기라는 것에 우리는 우주적 철학 원리를 터득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함직하다. 하나는 태권도는 어느 일정 기간의 수련으로 끝낼 수 있는 무도가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격이 아닌 방어 위주의 무술이라는 것일 듯하다.

유급자 품새인 태극이 자연 사상을 품고 있다면 유단자 품새 태극인( 필자 주)은 하늘 땅 사람의 셋이 하나로서 인간의 상생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즉 태극 품새는 생명관의 닦음이요 태극인 품새는 인간관의 닦음과 그 실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품새 수련은 내가 다시 진짜 나를 찾아 나서는 고행의 길로써 과정이요 도(道)이다. 하나의 품새를 두고 수백 수천 번의 닦음을 요구하는 것은 단지 기능적 숙달을 뛰어 넘어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확립을 터득하고자 하는 형이상의 의미가 소중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일 듯하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없고, 해서도 아니 되듯이 자연의 흐름대로 자연을 살리고, 그 안에서 더불어 공생해야 하는 근본적 상황을 성찰하는 지혜를 모아 나가는 게 필요하다. 품새의 특성은 실제 상대를 대하지 않고 관념적 상, 즉 ‘나’를 전제로 하는 기술운동이며 그 운동 원리를 따르고 깨우치는 데 수련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인간은 우주의 존재와 의미,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것이다. 인간이야말로 우주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이 우주의 중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자신이 하늘과 땅 사이에 올바로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삶의 주인공이다. 내가 이렇게 깨어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을 인식하고 그 가치와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감사하는 것이 인격형성의 요인이 될 것이다. ‘나’란 삶의 과정에 있는 주체로서의 자아이기위해 부단한 성찰과 수련이 요구되는 것이다.

품새 동작을 통해 몸의 단련 즉 기능적 숙련과 함께 거듭 반복하여 수련하는 동작 속의 원리에 의한 철학적 사상, 정신을 스스로 깨우침을 얻고자 하는 품새 수련은 우리를 인간됨의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품새는 형이상의 철학적 사상과 원리를 깨치고자 하는 수련 과정에서 기술과 정신을 동시에 갈고 닦아야 하는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태권도는 심신(心身)을 연마하는 무(武)의 술이며 무도의 본질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담당자 = 정대길 기자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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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의 문제점은

    일기일사 하나의 기술에 하나의 사유를 통해 완성된 인품으로 자신의 단과 위치만큼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쉽지 않아서 타협하고 산다는 걸 몸소 보여주시는 분들이 만다는게 문제죠. 먹고 사는 문제로 합리화해버리니까....

    2009-02-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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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

    태권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무술에 관심이 없다는 거죠. 다른 무술들의 완비된 이론서를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이런 끼워맞추는 이론은 낯뜨거워서라도 전개할 수 없죠. 지금이라도 품새에대해서 실질적인(이런 맨날 하는 소리 말고) 연구 좀 하시죠. 다른 무술가들의 도움과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2009-01-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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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몽보다는 실제가 중요

    품새가 자연의 이치에 맞는가. 원리를 중심으로 만든 품새라야 하는데 품새를 만들어놓고 여기에 원리를 짜맞추고 있지는 않은가ㅣ. 이제는 과학적 검증도 필요한때.

    2009-01-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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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석상의 차이

    천권의 날개펴기와 태산밀기가 막기동작이란 근거가 있는지요? 태산밀기는 공수도에서 상대의 팔을 잡아 꺽거나 장저로 밀어치는 동작에서 유래되었고, 날개펴기는 일종의 겨누기자세입니다. 태권도가 방어적인 무술이란 것은 가라테의 공수무선수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좀더 독창적인 이론을 전개해보시는 것이 바람직할듯, 보주먹 준비서기 역시 중국명청시대의 비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우습지도 않은 소리 아 짜직기 하지 않은 순수 태권도의 이론은 없는 것인가?

    2009-01-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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