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송칼럼]바위 같은 국기원을 기대하며

  

당당한 국기원의 모습이 절실하다


햄릿은 사색가였다. 그는 삶과 삶이 아닌 것 사이에서 방황하며 고뇌할 줄 알았고(to be or not to be) 눈앞에 주어진 현실의 부조리 앞에서도 눈 감을 수 없는 사색가였다. 밀려오는 세파에 온 몸을 던져서 대항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참는 것이 미덕인지에 대한 인류 공통의 고민거리를 붙들고 가슴을 쥐어뜯은 경험의 인간이었다. (Whether it 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 and by opposing end them.)

이는 그러나 진득하게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자세에서만 가능하다. 한 시스템이 5년을 못 가는, 그래서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모든 것이 바뀌는 이러한 시대에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류에 편승하기도 하고,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서 양지 바른 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역시 이 시대의 ‘삶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다 먼지다. 티끌이다. 먼지나 티끌은 바람이 한 번 불면 날아간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모두 먼지다. 최근 국기원 문제를 언급한 나의 글에 관한 논의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모두가 먼지다. 선가(禪家)의 지적처럼 달을 가리키니 달은 보지 않고 손끝만 본다는 지적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때, 이번 문제제기에 대한 국기원의 반응은 바로 이 ‘손끝’이었다. 그래서 먼지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바위요 산(山)이다. 나는 국기원이 바로 이 바위나 산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 오히려 세계태권도연맹보다 더 굳건한 자세로 모든 태권도인을 끌어당길 수 있는 ‘산’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의 국기원은 바로 이 먼지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국기원 문제는 인사문제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총체적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갈아야 한다. 위상을 둘러싼 제도의 문제는 하드웨어이며, 인사의 문제는 소프트웨어이다. 지난번에 문제가 된 나의 글은 바로 하드웨어를 바꾸는, 즉 태권도 시스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제안이었다. 국기원 인사(人事)가 가지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사항들에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하드웨어를 없앨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노무현이나 이명박이 밉다고 대한민국을 없앨 수 없듯이, 국기원의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국기원 자체를 무시하거나 없애서는 안 된다는 것이 태권도진흥재단에 던지는 메시지였다면, 인사뿐만 아니라 제도적 개혁을 통해서 국기원 원래의 설립 취지를 살려보자는 것이 국기원에 던진 화두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당사자인 국기원은 여기에 대한 인식 부족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나 칼자루는 나에게 있지 않다. 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측은 뭐니 뭐니 해도 아직은 국기원 자체이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전적으로 국기원의 몫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의 역할은 제도권 안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밖에서 던져주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에 관한 논의가 나오면 이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제도권의 모습이 아쉽다. 재빨리 방어벽을 치고 그 뒤에 숨는 연약한 모습이 아닌, 보다 당당한 국기원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러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지난 3월 17일자 칼럼<태권도계의 미친 짓>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현재 세계연맹과 국기원이 이 총체적 난국을 타개할 근본적인 자세를 갖추지 않는 한 당당한 국기원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추세가 지속되는 한 나의 희망도 결국 ‘먼지’ 같을 뿐이다.

최근 나는 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기막힌 처지에 놓여 있다. 무엇이 내게 더 본질적인가? 태권도 문제인가 아니면 내 가족의 죽음인가? 죽음은 햄릿의 말대로 잠자는 것일 뿐인가? (To die - to sleep, no more) 이 물음도 결국은 먼지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이제 쉴 새 없이 달려온 지난 50년을 되돌아보고 한 단락을 정리할 때가 된 듯하다. 내 삶이 먼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담당자 = 정대길 기자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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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택견이 난리야

    아래 대택인 택견이잖아

    2008-12-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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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택인

    지난번 구교수의 주장은 아이디어 차원이었지만 큰 반박을 당한 것은 국기원을 WTF에 예속시키려고 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 발상은 태권도인, 또는 대한국인의 자존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변명같은 모호한 글이 있었고, 또 이 글도 모호하기는 2차 때와 동일하다. 처음 주장이 너무 단견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철회 부터 당당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계속 이상하게 말을 비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의 의사가 진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뭘 말하려는 것인가? 바람에 휘돌리는 먼지 처럼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무게 있게 해 주면 좋겠다.

    2008-11-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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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예길

    국기원이나 태권도 리드 단체의 문제점을 방관하고 키워온것은 우리 모든 태권도인들의 방관입니다. 민주주의가 참여에 바탕을 두듯 그들 단체에 애정이 있다면 애초에 부정과 비리와 잘못된 권위의식이 지배하도록 놔두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행동하는것이 바른 행동인지도 모르게 되어버렸죠. 도를 가르치되 도로 먹고 살수 없다라는 옹색한 변명에 대해 이렇게 반론하고 싶습니다. 천하의 흥망성쇠는 한낱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옛말을 잘 새기면 그른 말이 별로 없습디다.

    2008-11-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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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강습회

    흔들어도 도대체 움직이지 않는 곳이 국내 태권도 계의 사람들 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른척 하는 것 밖에 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구박사님의 고견을 깨우칠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태권도인으로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렇더래도 구박사님의 태권도에대한 애정 많은 도움이 되고 있을 것입니다
    건강이 않좋으신가 보군요. 물이 흐려서 그 속에서 더욱 건강도 흐려졌나 봅니다.
    늘 건승 하시길 기원합니다.

    2008-11-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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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사범

    요즘은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오직 한 길 태권도 길을 위해 살아왔는데...
    이 한 목숨 죽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아니 죽음으로 통해 국기원이 해결이 된다면
    ... 해외에 있는 사범들이 살 길이 열린다면....

    2008-11-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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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내세요~

    가정에 힘든 일이 있지만 그래도 태권도를 위해 구교수님은 정말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미친듯이 날뛰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충고를 주고 있습니다.

    2008-11-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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