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김동현, “생선 나르기보다 격투기가 더 쉬웠다”
발행일자 : 2008-10-02 11:48:42
<무카스미디어 = 정대길 기자>
알고보면 친한 형동생 못때리는 순진파
한국인 최초의 UFC파이터. 그리고 2연승. 한국 격투기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스턴 건’ 김동현(27, 부산 팀 M.A.D)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동현은 지난 시절의 추억들을 되집던 중에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놓았다.
때는 스피릿 MC무대에서 2연승을 거두며 미들급 타이틀 ‘도전자 깜’이라며 그의 이름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던 2005년 9월이었다. 이때 김동현은 돌연 뉴질랜드 행을 결심하게 된다. “돈을 벌어 보고 싶었어요. 어학 공부도 해보고 싶었구요. 다른 이유도 많았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김동현이 격투 글러브를 벗어 던지고 사실상 은퇴를 결심한 것이다.
“아는 형, 동생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요. 경기가 끝나고 또 얼굴을 보며 같이 호흡하게 되는 선수들이잖아요. 세상은 넓고 싸울 사람은 많은데, 고민이었죠”. 김동현이 격투계를 떠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정(情)’이었다. 유약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김동현은 ‘내 사람과 싸우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당시 스피릿 MC 선수시절 동 체급에는 임재석, 이치성 선수가 함께 있었다. 친분이 두텁기로 소문난 두 선수와의 피할 수 없는 대전은 김동현에 큰 근심거리였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탑 클래스 선수의 반열에 오른 만큼 예전 신인 때와는 마인드가 틀리다. “최대한 서브미션으로 끝내야죠. 서로 기분 안 나쁠 정도로 만요. 그래도 먼저 때리기 전까지는 공격하지 않을 것 같애요(웃음)”
하지만 그렇게 떠난 김동현의 유학생활이 그리 순탄치 많은 않았다. “하루 10시간씩 고등어 등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생선을 나르며 일했죠. 하지만 막상 월급날에 정말 적은 액수의 돈이 쥐어지는 거예요. 막노동도 하고 다른 잡일도 해보며 살아보려 노력했지만 이래서 저축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순간 이럴 바에야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고 내가 잘 만하면 돈도 벌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은 힘들어서 못하는 데 나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한번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6년 1월 1일, 김동현은 3개월간의 짧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또 다시 글러브를 집어들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일본 격투기 대회인 딥(DEEP)에서 출전제의가 들어왔다. 김동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해 5월 일본무대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데 이어 두 달마다 딥 대회에 출전할 수있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김동현은 복귀 이후 격투기 선수로 살아남아야겠다는 일념하에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결과는 8월, 10월, 12월 대회 연이은 KO승이었다.
'격투기가 아니면 안 되는 남자' 김동현을 눈여겨 본 UFC의 제의도 이때 들어왔다. 계약기간 1년 6개월, 4경기 출전. 김동현은 UFC최초의 한국인 파이터가 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뉴질랜드에서 생선을 나르던 김동현이 세계 톱파이터로 옷을 갈아입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젊어 고생을 제대로 한' 김동현이 생선을 나르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편 김동현은 지난달 30일 무카스 파워인터뷰에 출연해 UFC파이터로 자리잡기까지 전 과정을 공개했다. 김동현이 꼭꼭 숨겨놓았던 비하인드스토리를 무카스는 오는 16일과 23일, 2회에 걸쳐 방송한다.
(사진출처=김동현 선수의 미니홈피)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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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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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겼당 오빠 어디학교예여,, 팬미팅 같은거 무카스에서 안하나..
2008-10-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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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동현오빠
2008-10-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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