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

  

男兒는 感意氣요, 功名을 誰復論하랴!


권율 장군 동상


남자는 오직 의(意)와 기(氣)만을 생각할 뿐
어찌 부귀와 명예를 따지겠는가!-권율-

추석 연휴의 끝무렵 더위가 살짝 식은 틈을 타 행주산성에 올랐다. 즐비한 토속 음식점들 사이로 길을 따라 10여분쯤 오르다 보면 산성 입구인 대첩문이 나온다. 연휴의 마지막이라 그런지 비가 내릴 듯 말듯한 날씨에도 제법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대첩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것이 우뚝 선 권율 장군의 동상. 격전지(激戰地)의 승전보를 알리는 듯 도도하게 서 있는 동상의 모습에 공연한 우쭐함이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권율 장군(1537년생, 자: 언신, 호: 만취당)은 안동이 본관이며 영의정 권철의 아들로 4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로 부임하여 호남으로 쳐들어오는 왜병을 이치에서 꺾어 전라도를 임란 회복의 근거로 확보하는 데 크게 공헌하여 전라도 순찰사로 승진하였다.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 북상하다가 수원 독산성에서 적을 교란시키고 다음해 2월에는 행주산성에 진주하여 쳐들어오는 왜적을 대파함으로써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행주대첩의 승전으로 도원수로 승임되어 전군을 지휘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일등 선무공신에 책봉되었고, 64세를 일기로 별세하니 조정에서는 영의정의 관직과 충장공의 시호를 내렸다.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지인 행주산성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에 위치하고 있다. ‘행주치마’의 유례가 트레이드마크처럼 돼버린 행주산성, 그 격전의 현장으로 향해본다.

행주산성과 행주대첩 그리고 행주치마


행주산성은 토축산성으로 둘레는 약 1,000m이며 1593년 권율이 이끄는 부대가 왜군을 크게 물리친 행주대첩 전적지로 유명하다. 충장공 권율 도원수는 1592년 7월8일 이치싸움에서 적을 크게 격멸하여 대첩을 이루고 12월에 수원 독왕산성에서 또 왜적을 무찌른 후 한성을 수복하고자 작전을 개시하였다. 전라병사 선거이는 수원 광교산에, 전라 초모사 변이중은 양천에, 창의사 김천일은 통진에, 충청감사 허욱은 파주와 양주를 연결하는 전선을 펴고 명나라 군사와 협공하고자 하였다.
1593년 1월 8일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한성으로 내려오다가 1월 28일 벽제관 부근 숫돌고개에서 왜장 소조 천융경의 복병에게 패하여 북으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은 단독으로 한성에 집결한 왜군을 공격할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충장공 권율 도원수가 조방장 조경과 승장 처영등 정병 2천 3백여명을 거느리고 한강을 건너 행주 덕양산에 진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권율 도원수는 아현고개로 정하려 하다가 조경이 행주 덕양산을 물색하여 권율 도원수에게 아뢰어 성지로 결정하니 이곳이 바로 행주산성이다.

행주대첩도

충장공 권율 도원수는 해발 124m의 덕양산 중턱에 이중의 튼튼한 목책성을 쌓았다. 전투 준비가 끝난 1593년 2월 12일 새벽 6시경 우끼다히데이에가 이끄는 3만 왜군은 행주산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3진으로 나누어서 9차례에 걸친 맹공을 가해왔다. 권율 도원수와 승장 처영은 필사항전의 돌격명령을 내려 베고 찌르는처참한 접근전을 벌였다. 치열한 공방전이 있은 후 총지휘관 우끼다와 부장 이시다 미쓰나라, 요시까와 히로이에가 부상을 입는 등 적은 1만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진하였으며, 아군은 창검 727점을 노획하였다. 이때가 어둠이 드는 저녁 6시경이었다. 이 대첩이 충무공의 한산대첩과 아울러 길이 빛나는 행주대첩이다.
이 싸움에서 우리나라 전쟁 역사에 처음으로 ‘재주머니 던지기’라는 전법이 쓰였는데, 재주머니 던지기란 재를 담은 주머니를 던져 적의 시계(視界)를 방해하는 전법으로 현대전투의 연막탄과 유사한 기능을 발한다고 볼 수 있다.아낙네들은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덧치마를 만들어 입고는 치마폭에 돌을 주워 담아 싸움을 거들었는데 행주치마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재주머니 던지기란 재를 담은 주머니를 던져 적의 시계(視界)를 방해하는 전법으로 현대전투의 염막탄과 유사한 기능을 발한다고 볼 수 있다.
행주산성에서는 매년 3월 14일 임진왜란 때 왜군을 격파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운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행주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제례행사와 그 밖의 여러 가지 문화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관광지안내 참고>

행주산성의 이모저모


토성 길

행주산성은 우리 나라의 다른 성곽에 비하여 규모면에서 크다고는 할 수 없으나 승전지답게 승전비와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권율 장군 동상을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토성길이 나온다. 이 행주산성의 토성(테뫼식)은 총길이가 약 1km에 달하며, 1992년 415m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 토성에서 삼국시대의 와당 및 토기 파편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통일신라)때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새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토성길에서 내려와 다시 포장로로 가다보면 권율 장군의 공덕과 얼을 되새기기 위한 충장사가 자리잡고 있다. 1970년 축조된 충장사에는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매년 3월 14일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대첩제전행사를 봉행한다.

충장사 전경



행주산성은 다른 성곽에 비하여 비교적 산세가 원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산의 정상부에는 커다란 행주대첩비가 있다.

행주대첩3호비


행주대첩 초건비

행주산성에는 총 3개의 대첩비가 있는데 커다란 대첩비는 3호비에 속한다. 3호비는 1963년 경기도 재건운동 본부에서 작게 세운 것을 1970년 문화재 정화사업시 15.2m의 높이로 세운 것이다. 3호비 아래 초건비가 있는데 1602년 장군의 휘하장수가 세웠다고 한다. 그 후 1845년(현종11년) 기공사에 세운 뒤에 충장사 앞으로 이전한 중건비가 있다.


정상에서 내려와 중턱 부분에는 행주산성 대첩기념관이 있다. 전시물은 장군과 나졸을 재현하였고 화차 및 총통류, 임란대첩도 3폭, 대첩비문 액자 및 병풍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그 일부만 소개하기로 한다.

행주치마

행주치마-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 전투에서 쉴새없이 공격해오는 왜군의 공격 앞에 모든 무기와 화약이 바닥나게 되자 부녀자들은 치마를 짧게 잘라 허리에 묶고 거기에 돌을 담아 날라 이를 이용해서 군사들이 다시 분전하여 결국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화차(총통기)- 화차는 문종1년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총통기에 관한 기록은 병기도설에 전하고 있다. 0도부터 45도까지 발사각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평시에는 수레로도 사용하였다. 총통기는 화차위에 설치하여 사용한 것으로 사전 총통 50개를 한 층에 10개씩 5줄로 설치하고 4전총통 한 개에 세전 4개씩 꽂으면 동시에 200발의 화살을 발사할 수 있으므로 위력이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각궁과 수노

각궁과 수노- 우리나라 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물소뿔, 뽕나무, 소힘줄, 실 등을 복합적으로 붙여 만든 활이며, 그 탄력성이 매우 강하다. 일반적 사정거리는 약 200보에 달하였다. 수노는 활을 발전시킨 것으로 수노틀의 앞 부분에는 활을 설치하고 뒷부분에는 방아쇠를 장치하여 틀 위에 화살을 올려 놓고 발사하는 무기이다.


충훈정 전경

행주대첩기념관에서 나와 다시 대첩문 쪽으로 내려오면 대첩문과 동상사이로 난 길에 충훈정이 있는데 이 충훈정은 1986년 옛날의 주무기인 각궁의 연습도장으로 건립하였다. 충훈정 앞에는 궁사들의 사로가 있으며 멀리 과녁이 보인다. 매년 3월 14일 행주대첩제에는 남녀 궁도 대회가 개최된다고 한다.

다시 하산 길


산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마지막 연휴도 저만치 굽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기울어가는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았던 한강과 행주대교가 문득 떠오른다. 대교위를 지나는 무수한 귀경차량들……. 그 분주한 모습이 이상하게도 당시의 승전보와 오버랩되버렸다. 그 경적소리가 닮아보였다.

“장군님! 왜적들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호국의 현장 #성곽탐방 #행주산성 #행주치마 #행주대첩 #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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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모노무사

    권 장군은 문인인대..어찌..무인으로 치부하시오..ㅡㅜ 적병을 검으로 배어보지 않았건만..어찌..ㅡㅜ

    2004-10-2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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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성

    이 글 참 좋네요.^^ 사회 숙제중에 있는데.. 여기에 그 자료가 다 나와 있어요...
    이 글 올려주신 박수용씨 감사 합니다. ^^ 참 좋은 기사예요..!

    2004-03-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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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용

    부족한 제 기사를 잘 읽고 계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기사가 님에게 미약하나마 정보가 되었다니 저 역시 기쁘답니다.

    행주산성 한번 가보세요. 참 좋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구요.

    2003-09-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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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돌이

    박기자님의 글을 잘 읽고 있는 독자 입니다... 좋은 기사 정말 감사 하구요.. 시간 내어
    서 행주 산성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2003-09-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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