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왕 팬’… 세계태권도선수권을 기다리는 이유는?

  

태권도 전문기자 보다 더 국제 선수를 분석하는 왕팬! 그에게 묻다!


세계선수권을 한 달 앞두고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자신을 태권도 팬이라고 소개했다. 궁금한 게 많았다. 모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이벤트를 관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태권도 전문지에서 보기 드믄 일반일 태권도 광팬임이 틀림없었다. 회사원인 그는 이번 세계대회에 휴가를 내고 관전할 계획을 전했다. 유명 선수들에게 줄 선물도 준비 했다고 했다. 질문이 쏟아졌다. 전문가 수준이었다. 놀라웠다. 본지 기자는 그에게 답을 주기 위해 취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인연으로 그 태권도 팬에게 이번 세계선수권을 기다리는 이유를 기고 해달라고 했다. 그 이유를 그대로 싣는다. [편집자 주]

<글. 주성용>

흔히, 비인기 종목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스포츠가 있다. 다수 스포츠팬에겐 ‘태권도’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곧 개최될 ‘2017 WTF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또한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스포츠 팬에게는 2년을 절치부심 기다리게 한 꿈의 대회가 바로 이 대회이다. 어느 비인기 종목이라도 팬은 있는 법이고,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어느 날 <무카스> 기자께서 나보고 할 말 있으면 해보라신다.

사람이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일단 보고 판단해 주길 하는 바람으로 “태권도가 재미없다, 재미없다” 하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기고>하게 해주신 기자님께 먼저 감사드린다.

내가 태권도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지인들은 언제부터 태권도도장 다니게 됐냐는 질문을 일관되게 물어 온다.

도복은 한 번도 입어 본적이 없고 그냥 경기 관람이 취미라고 대답하면 몇 초간 침묵이 또 다시 일관되게 이어진다. 마치 미리 약속이나 한 듯한 태도로 말이다.

그럴 때면, 언제나 마음속에서는 되래 묻고 싶어진다.

유럽 축구리그 관람이 취미라고해서 무조건 아침 조기축구팀에 가입해야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나 또한 처음부터 태권도에 흥미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리즈가 리즈시절 이전부터 리즈 유나이티드를 알고 있던 정통파 축구팬이었다 자신한다. 하지만 축구는 보통 90분을 소모해야 되니, 바쁜 직장인에겐 한 경기, 한 경기가 은근히 부담이 되고 있을 즈음 우연히 한 시합을 보게 되었다.

2012 런던올림픽 경기장면


내가 처음 태권도경기에 관심을 갖게 된 그 사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2012 런던 올림픽 태권도 데이. 한국선수 출전 직전 채널대기 차원에서 방송 중이었던 여자부 준결승전. 새로운 룰 개정으로 대회 첫 4점 발차기 경기가 화려하게 데뷔 했던, 태국의 차나팁 손캄 선수의 8점차 스코어가 한순간에 뒤집히며 스페인의 브리지트 야게 엔리케 선수에게 은메달을 확보하게 해주었던 그 각본 없는 드라마를.

이기고 나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포효가 절로 나를 미소 짓게 하고, 통한의 패배를 당했음에도 비통한 표정을 숨기지 않음에도, 상대선수와의 하이파이브를 잊지 않던, 승리자 보다 더 멋진 패배자의 모습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에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울컥 치밀게 한다.

나에게 있어서 그 시합은 재미있는 경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고, 내 올림픽 스케줄은 어느 덧 태권도시합 인터넷시청으로 정해지게 되었으며,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가 보여 줄 수 있는 극적인 드라마가 결코 한 두 편이 아니었음을 알려준 정말 고마운 사건이었다.

매 시합 극적인 벼랑 끝 승부를 펼치며 체중에 맞지 않은 체급에서도 분투한 이대훈과 쇼맨십이 뭔지를 아는 스페인의 호남 호엘 곤잘레스 보니야. 금메달을 결정짓는 실전에서, 최고의 라이벌을 상대로 한 결승에서, 게임에서나 가능한 2단 돌려차기의 퍼포먼스를 펼쳐 대던 터키의 서베트 타제굴과 그의 영원한 라이벌 이란의 모하메드 바게리.

반군의 총알세례를 받으면서 훈련에 매진하던 선수답게 홈팀의 일방적인 응원을 깔끔히 무시하며 믿기 힘든 순간적인 90도 허리 꺾기로 패배를 회피한 뒤 기어이 조국 아프가니스탄에 역대 두 번째 메달을 안겨준 라훌라 닉파이.

그리고 꿈에도 잊지 못할 헤비급 결승전은 나를 완전히 축구에서 태권도로 고무신 거꾸로 신게 만든 역대급 시합으로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경기장의 아나운서가 흥미를 돋우게 할 목적인지 매번 미국대통령 이름인 오바마로 칭하던 가봉의 안소니 오바메.

경기마다 깍듯한 90도 인사로 스승의 국적을 짐작케 하던 이탈리아의 카를로 몰페타. 대회기간 가끔 보이던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각 시합마다 서로 사이좋게 약속이라도 한 듯 거짓말같이 일궈내며 결승전의 벼랑 끝 승부에서 상봉한 두 사람은 한 술 더 떠 지금까지는 예고편이었다고 시위 하듯 아침드라마 PD도 울고 갈 말도 안 되는 역전스토리를 자꾸 연출해대니 승패는 더 이상 관중들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경기장의 독자를 달굴 줄 아는 진정한 소설가들을 향해 우리는 그저 보고, 듣고, 즐기고, 경탄하면 됐을 뿐이다.

런던올림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6 리우 올림픽 경기장면


리오 때는 대회자체가 그다지 매끄럽진 않았는 데다 메달후보들을 줄줄이 사탕 뽑듯 탈락시킨 룰 개정으로 인한 이변의 대회였긴 하지만, 수많은 명승부의 향연으로 새로운 스타들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었던, 재미에 있어서는 결코 런던 못지않았던 대회로 기억한다.

이번에도 멋지게 졌지만, 자꾸 멋지게 지니, 이제는 아예 지는 모습이 더 멋지게 보이게 만드는 이대훈.

시합 중 볼썽사납게 경기장 밖으로 나동그라졌음에도 절치부심 박빙의 승부를 연출하며 기어이 조국 도미니카 공화국에 올림픽 노메달의 수모를 벗어나게 해준 루이시토 피에.

첫 경기부터 역전승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듯이 브라질응원단에게 지옥과 천국을 매 경기 선사하며 기어이 동메달의 영광으로 개최국의 체면을 세워준 마이콩 시케이라.

무엇보다 시합종료 1초를 남기고 버져비터 역전 금메달을 거머쥔 코트디부아르의 쉐이크 살라 시세와 눈앞에서 금메달이 날라가 버려 심장이 터질 듯한 원통함을 얼굴가득 뿜어내면서도 오히려 먼저 다가가 축하악수를 건네고 인터뷰에 울먹이면서도 상대선수를 칭찬하던 너무나 멋졌던 상남자 영국의 루탈로 무함마드의 시합은 런던의 그 마지막 결승전에 기꺼이 비견되던 역대급 결승전으로 기억한다.

철저히 태권도 팬의 시선과 입장이 아니냐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태권도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유사 종목중 재미있는 종목은 대체 무엇인지 오히려 묻고 싶어진다.

펜싱, 복싱, 유도, 레슬링, 카라테, 우슈 등의 종목 중에서 추천해달라면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이름을 거론 할 것이다. 나 또한 다를 게 없을 뿐이다.게다가 내 지인들 기준이긴 하지만 정작 태권도시합은 단 한 명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그저 올림픽 초반에 시작되는 타격감이 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선수들 위주의 경량급시합만 몇 번 보고 재미를 논한다는 건 태권도팬으로서, 아니 태권도자체로서 굉장히 억울할 뿐이다.


2015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 경기장면


그런 사람들에게 2013 멕시코 푸에블라 세계선수권 영상을 보여 주고 싶다.

2008 베이징 올림픽때 태권도에서만 금메달 2개를 달성 후 태권도 붐이 일어 세계최초 태권도 프로 리그를 창설한 멕시코에서 개최된 대회이다.

어마무시한 수의 관중들에다 자국선수들이 많이 출전한 날은 아예 암표까지 나왔던 그 열기, 그리고 그 수많은 명승부들을 보여주고 싶다.

또한 그런 사람들에게 2015 러시아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 영상을 보여 주고 싶다.

러시아에 떨어진 운석 어쩌고 한 이슈가 됐던 바로 그 지역, 각종 국제대회 단골 개최도시 답게 단일대회 행사규모를 볼테면 입만 떡 벌어지게 만들던, 무슨 올림픽 개최하냐는 경악성을 절로 터지게 만들던 그 스케일을 보여 주고 싶다.

그리고 이제 2017 한국 무주 세계선수권을 보여주고 싶다.

한국에서나 그냥 외국인이지 자국에선 스타를 넘어선 영웅들도 수두룩하게 포진한 1천여 명의 선수들이 말이다.

그들은 몸 값비싼 타 스포츠스타들보다도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한없이 가까운 스타들이다.일례로 SNS를 탐색하다 우연히 도복 입은 모습이 멋있어서 친구신청을 했더니 바로 승낙해준 친구들이 내게 몇 명 있다.

허나 알고 봤더니 국가대표에다 이번 세계선수권 금메달 후보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에 살다보니 유명인사와 친구도 맺는구나 하고 한동안 얼굴에 충격이 맺히기도 하였다.

게다가 아는 사람만 아는, 하지만 아는 사람에겐 최고의 우상인 수많은 별들이 한국을 방문을 준비 중이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세계선수권 5연패가 부족하다고 6번째 금메달을 노리는, 전설을 넘어 레전드, 아니 레전드를 넘어 전설이 된 그 스티븐 로페즈(미국)가 온다.

터키의 간판 타제굴과 함께 게임에서나 가능할 법한 콤보형 무한 공중부양 10단 발차기를 추구하는 진정한 화랑, 독일의 레벤 튠찻이 온다.

무관의 제왕, BBC생중계의 단골스타인 몰도바의 로미오 아론 쿡이 그의 연인 영국의 줄리엣 비앙카 윜던과 함께 손을 잡고 온다.

유럽의 파워와 아시아의 기술로 만들어진 완성체, 우즈베키스탄의 터미네이터 드미트리 쇼킨이 대회 2연패를 목표로 한국에 온다.

그 미모에 그냥 메달도 아닌 금메달 강력 후보 중 한 명이자 카라테 텃밭인 스웨덴에 테권도 인지도를 확 끌어 올려준 여신급 미모의, 아니 실력의 선수, 그 이름 엘린 요한슨이 곧 방문한다.

조국 최초의 금메달을 태권도로 장식하며 세르비아 내 축구 다음가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발칸의 여제 밀리차 만디치가 이제 곧 무주에 입성한다.

이들이 어떤 드라마를 써왔는지를 아는 태권도팬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밤잠을 설치게 하는 이유들이다.

게다가 아직 전설은 아닐지라도 언제 이렇게 컸는지, 어느 덧 세계랭킹에 까지 올라 삼촌팬의 인생무상을 느끼게 해주시는 옛 난징 유스 올림픽 시절의 꼬꼬마 기대주들의 얼굴을 빨리 보고 싶다.

리우 은메달 태국의 타윈 한프랍, 리우 동메달 태국의 페니팍 옹팡타나키트, 리우 동메달이자 이란 최초의 여성메달리스트 키미야 알리자데 제누린, 어느 덧 세계랭킹 3위까지 오른 러시아의 타티아나 쿠다쇼바, 그리고 반전을 준비 중인 이름모들 심연의 다크호스들을 하루빨리 보고싶다.

무엇보다도 2017년 기준, 또 다시 룰이 공격적으로 바뀌어 시합점수가 금방 벌어지고, 금방 역전하니 적어도 점수가 적어서 지루하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태권도원 T1경기장


그 외, 무주에 가야할 이유를 물어 본다면 아직도 많다.

TV 스피커에 들리는 파팡거리는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중량급 기준으로 순간시속 120km의 콰쾅 소리를 바로 옆에서 느끼기 위해서 라고 말하고 싶다.

올림픽을 제외한 최고 권위의 태권도 대회인데다 전북에서 작정하고 추진하는 거다 보니 행사스케일이 엄청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아마도?)

올림픽에 버금가는 180여개국 출전이니 국기 보는 재미, 이런 나라도 있었구나 하는 재미, 혹은 여러 인종 보는 재미도 은근히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에 알았는데 무주가 세계 최초 태권도 전용 경기장이리고 한다.

확실히 건물은 멋진데 왜 인지는 몰라도 왜 관람석을 그렇게 멀리 떨어 뜨려놔서 왜 망원경까지 준비하게 만든건지, 담당자에게 그 이유를 듣고 싶어서 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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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술낭자

    참 전문가 못지않은 대단한 식견의 팬이십니다... 이러한 감사한팬들을 늘려가서 좀더 재미있고 깨끗한 태권도를 만들어가는것이 태권도인으로서 해야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2017-06-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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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찬우

    사실 국민의 무술인 태권도 올림픽에서 비인기 종목과 관심이 살짝 없는것은
    사실입니다. 올림픽 공식 스퍼츠임에도 어렷을적 필수로 배우고 군대에서는 무조건 1단까지 따는 대한민국 무술임에
    조금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태권도에 룰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2017-06-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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