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사랑방] 단(段)과 무예의 경지

  


이정규 사범

지난 몇 주 미국 태권도계는 국기원에서 발표한 미주 권역별 심사와 파격적인 월단 허용 특별 심사 때문에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특히, 1단이 6단이 되고 5단이 9단으로 단박에 승단할 수 있다는 말에 미국에 계신 사범님들의 반응은 뜨거운 감자를 입에 문 것처럼 난리다.

이런 소식이 행여 수련생들에게 알려질까 봐 답답하고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분도 계신다. 오랜 시간 피와 땀으로 쌓아온 상아탑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예의 경지를 구분하는 단(段)

무예를 익힌 사람의 경지를 말할 때 우리는 그 기술의 숙달 정도와 응용력 그리고 파괴력의 정도에 따라서 크게 하수(下手), 중수(中手), 그리고 상수(上手)로 나누어 부른다.

물론 하수, 중수, 상수의 단계 안에서도 사람에 따라 그 수준이 다를 터이니 각 단계를 다시 상, 중, 하로 3등분해 본다면 총 아홉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승단체계를 가진 문파마다 보통 유단자를 1단부터 9단까지 아홉 단계로 나누고 있다.

일반적으로 단(段)이란 우리가 수련하는 무예에서 그 수련의 정도 즉, 무예의 경지를 가늠하여 부르는 체계이다.

그렇다면 단을 기준으로 하수와 중수 그리고 상수를 나누어 생각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문파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태권도를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1단에서 3단 정도는 하수의 단계로 보고 4, 5, 6단 정도라면 중수(中手)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한 생을 다 받쳐야 이를 수 있는 7단 이상 8, 9단이라면 상수로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수의 경지란 무예의 기본을 갖추고 초보적인 기술을 다지는 과정을 말하고 중수는 오랜 기간 그 무예를 수련해 숙달의 정도가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경우이고 상수라면 무예의 진수를 파악하여 몸과 정신에 익혀 무예와 삶이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 경지를 이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특별 심사를 통해 하루아침에 하수가 중수의 자리로 뛰어오르고 중수가 단박에 상수의 자리를 점할 수도 있다는 논리는 실천으로 무예를 닦아온 이들에겐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임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천수련

가라테의 최영의 선생은 “실전이 아닌 것은 인정받을 수 없고 인정받지 못하면 신용을 얻을 수 없고 신용을 얻지 못하면 존경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무예의 경지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부단히 노력해서 얻어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도복을 입고 살아온 세월이 길다고, 단수가 높다고 해서 실력도 마냥 높아만 지는 것은 아니다. 연륜이 깊어지는 만큼 몸도 따라서 노쇠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흘러가는 강물에 역류하여 헤엄치듯 세월에 떠밀려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자신을 닦아가는 이들이라면 굳이 그 단수의 고하를 따질 필요도 없이 이미 진정한 ‘무도인’으로 존경받지 않겠는가?

내 주위엔 여든을 바라보시는 연세에도 매일 도복을 입고 도장마루에 서시는 관장님이 계신다. 반면에 나이 40도 되기 전에 도복과 띠를 벗어 던지고 도장은 일찌감치 아랫사람들에게 물려준 채 수 십 년 세월을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살아오신 분들도 안다.

도장보다는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내길 더 원하시고 태권도에 대한 열정보다는 골프사랑에 더욱 열을 올리시는 분들이 속된 말로 짬밥과 단수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태권도계의 어른 대접을 받으려 든다면 오늘과 같은 승단에 대한 논쟁과 시비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 같다.

목계지덕(木鷄之德)

목계란 나무로 만든 닭이란 뜻이다. 흔히 상대에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고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는 사람을 일컬어 목계지덕을 가졌다고 한다. 이는 장자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투계(鬪鷄)를 좋아하는 어느 왕이 조련사에게 좋은 닭 한 마리를 내주며 최고의 싸움닭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닭이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를 묻자 조련사가 대답했다. “상대를 보기만 하면 무작정 죽이자고 달려듭니다. 용맹하긴 하나 상대를 모른 채 달려들고 제가 최고인 줄 아니 교만할 뿐 아직 멀었습니다.”라고 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묻자 “상대를 보고 무작정 달려들지 않으니 상대를 얕잡아 보는 교만은 버렸으나 아직도 조급하여 소리와 그림자에 쉽게 반응하고 쉽게 싸움에 걸려듭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묻자 조련사가 대답을 했다. “교만함도, 조급함도 버려 차분하고 기회를 노려 공격할 줄은 알지만 아직도 상대를 질시하는 공격적인 태도는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만하면 된 것 같은데 자꾸 아니라고 하는 말에 지친 왕이 열흘이 지나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제는 어떤가?” 그제야 조련사는 기쁘게 대답했다. “상대가 아무리 소리치고 달려들어도 조는 듯 꾸뻑거릴 뿐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뭐라? 병든 닭 같이 졸기만 한다고?”

조련사의 대답은 의외였다. “마음의 평정을 찾아 상대를 보아도 대들지 않고 그림자와 소리에 놀라 날뛰지도 않습니다. 아무 감정도 없는 나무토막처럼 보이지만 눈을 떠 상대를 쳐다보기만 해도 그 형형(熒熒)한 안광에 어떤 닭이라도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안으로 갖춘 내공이 대단해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해 버릴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도 이긴다는 것은 병법에서도 최고로 치는 경지가 아니던가?

무예의 경지를 구분하는 데는 저마다 다른 기준이 있을 수 있겠으나 목계지덕의 고사에서 보듯 ‘하수는 강해야 하며, 중수는 부드러워야 하고 상수는 표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전제만큼은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하수, 중수, 상수의 경지를 가늠해 보자.

하수(下手) - 강함, 몸의 단계

우선 하수란 수가 낮고 기술이 잘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기만 한 사람을 이른다. 기법으로 보자면 직선으로 지르고 차고 막는 단순하지만 빠르고 강맹한 기술에 능하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실력을 갖추진 못했지만 칼이 부러져 나가고 창이 꺾여 나가는 전장(戰場)에선 바로 이 하수들의 몫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대규모의 인원들이 부딪혀 싸우는 난장판에선 떨어지는 낙엽을 가르는 명검의 예리함보다 장작을 패는 도끼의 터프함이 더 요긴하기 때문이다.

군대를 통솔하는 장수에도 상장군(上將軍)이 있고 중장군(中將軍)이 있고 하장군(下將軍)이 있다. 이 때 하장은 용장(勇將)이어야 한다. 필드에서 직접 전투를 지휘하고 적군과 충돌해 진격해야 하니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굳건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우되 물러섬이 없어야 한다.

이처럼 하수의 단계에서는 육체적 강인함에 기인하여 싸울 수밖에 없는 단계이므로 몸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수(中手) - 부드러움, 정신의 단계

초보적인 수련과정을 지나 오랜 기간의 수련을 거쳐 상당한 숙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우린 중수(中手)라 한다. 기법에서도 상대의 공격을 힘으로 막아내기보단 비껴 내거나 밀어내어 공격의 예봉(銳鋒)을 틀어낼 줄 안다. 따라서 그 기법에서도 직선보다 곡선이 많이 쓰이게 마련이다.

타격의 강도를 조절할 줄 알아 살(殺)이 될 만한 중(重)한 타격과 상대를 쓰러뜨리되 치명상은 피하는 중(中)이나 경(輕)으로 필요에 따라 힘을 나누어 쓸 줄도 안다. 지략을 운용해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 할 줄 아는 단계이다. 많은 지식을 갖추어 정신이 깨어 있고 감정의 기복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몸의 단계를 지나 정신의 운용단계에 이른 경우다.

장수로 치자면 중장(中將)에 해당하니 적절히 병법을 운용하여 내 힘은 아껴가며 상대의 허점을 기다려 찌르며 병력의 손실은 최소화하면서도 최대의 전과(戰果)를 올릴 줄 아는 지장(智將)이다.

현장에서 직접 수련생들을 이끌고 지도하는 지도자라면 적어도 이 중수의 경지에 들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드럽되 꺾이지 않는 강인한 기법을 갖출 뿐 아니라 많은 지식을 갖추어 수련생들의 삶까지 지략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지장(智將)의 덕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상수(上手) - 포근함, 마음의 단계

은사님께 여쭈었던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힘세서 이기면 상수(上手) 아닙니까?”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힘이야 소가 세지......” 동물처럼 몸만 쓰는 경지론 상수의 경지를 논할 것이 못 된다는 가르침이셨다.

상수란 무예에서 최고로 치는 경지를 말한다. 몸과 정신의 단계를 지나 비로소 마음에 이른 경지이다. 그러니 직접 수련생들을 가르치기보다 지도자급 인사들을 모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장수로 치자면 대장군(大將軍)에 해당한다. 앞서 하장은 용장이어야 하고 중장은 지장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장(大將)이 갖추어야할 덕목은 무엇일까? 대장은 덕장(德將)이어야 한다.

따라서 상수는 힘으로서 무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서 이끄는 이다. 목계지덕의 마지막 단계와 같이 무인으로서의 거친 형상을 품지 않으면서도 안으로는 깊은 내공을 갖추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이다. 말과 행동이 태산과 같이 굳건하고 마음이 늘 평온하여 어떤 일에도 요동치 않는다. 상대를 대하되 위협하거나 질시하지 않고 존중을 하니 상대를 노엽게 만들지 않고 덕으로서 품어 안을 줄 안다. 성품이 물같이 부드럽고 바람같이 유연하니 싸움을 걸려 한들 걸 수조차 없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겨내는 ‘유약승강강(柔弱勝强剛)’의 덕을 지닌 이다.

삶을 다 받친 수련이 익고 익어 심신이 합일되고 삶과 무예가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 경지를 개척한 이다. 이런 신선의 풍모를 가진 이가 바로 오늘 우리 후학들이 따르고 배우길 원하는 상수일 것이다.

태권도계의 어른

그렇다면 과연 우리 태권도계엔 이런 상수들이 얼마나 존재하는가? 개인적으로 단수가 높으신 분들은 많이 만나보았지만 진정 존경하여 따를 만한 덕을 닦아 지니신 분은 몇 분 만나보질 못했다. 도의(道義)에 뿌리박고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를 지닌 이런 상수들이 몇 분만이라도 태권도계에 큰 어른으로 앉아계신다면 지금 같은 월단시비나 우리 눈앞에 보이는 여러 모순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그 분들의 가르침대로 따를 뿐 분란이 일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태권도계에 이런 큰 어른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몸의 단계를 지나고 정신을 거쳐 궁극의 목적지인 마음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명예 단, 월단 그리고 실천 단

요즘은 태권도계에 후광을 비쳐주길 바라여 외부 인사들에게 평생을 수련하고도 얻기 힘든 최고 단수의 명예단증을 수여하였다는 기사들을 자주 본다. 물론 명예단증이란 실천으로 얻은 단증은 아니란 의미가 명확하지만 그래도 태권도의 최고 단을 너무 함부로 남발하는 것은 아닌지 의아할 때가 많다.

우리가 가진 단은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두가 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단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예 단 문제도 해결해야 되고 월단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단순히 단증에 표기되는 숫자의 높고 낮음에만 매달려 다투느라 우리가 당연히 갖추었어야 할 지(智)와 덕(德)은 갖추어 가고 있는지도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파격적인 월단허용이 여러 가지 이유로 심사의 기회를 놓친 분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이라고는 하지만 단수와 관계없이 그 품행에서 상수의 기품을 느낄 수 있다면 누가 감히 단증에 새겨진 단수를 문제 삼아 그런 분을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그런 상수의 기품을 닦아 지닌 분들에게 늦게나마 월단을 허용한다면 그것은 또한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실천적인 수련도 없이 마냥 높은 단을 가지려고 달려드는 소인배들이 꼬일 수 있다는 것이 이 문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 요지이다.

그러니 이번 일을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린 과연 실천으로 닦아 갖춘 단수가 인정받기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마냥 높기만 한 단수가 새겨진 종잇조각을 벽에 높이 걸어 모시길 원하는 것인가?

실천, 실천을 통한 수련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시린 바람에 씻긴 나무들이 나뭇잎을 벗어가는 계절, 실천으로 무예세상을 지켜가는 이들을 만나고 싶다. 그들과 어울려 비록 수(手)는 낮지만 이상(理想)만은 높은 무인으로 오늘을 살고 싶다.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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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이사범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선배 태권도인이 계신다는 것 하나로 아직은 희망이있습니다. 귀한 글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2016-06-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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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범

    정말 감동이 밀려오는 글입니다.
    국기원, 태권도원, 세계 태권도 연맹, 전국의 태권도 학과,
    태권도의 모든 지도자들이 반드시!!! 필독하셔야 할 글로
    추천하고 추천하고 또 추천합니다.

    이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이사범님이 계시니
    이 모든 모순 속에서도 아직 태권도 계에 희망이 있습니다.

    2015-11-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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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기원

    태권도판은 전쟁터 입니다.
    힘쎈 칼을 휘드르는 사람이 이기는 난장판 입니다.
    인격이고 품격이고 찾아볼 수 없는 곳입니다.
    특심의 결론으로 태권도판의 전부를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11-1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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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성인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넘치는 말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실천, 실천을 통한 수련만이 우리가의 살길이다"라는 말씀 가슴에 새겨봅니다^^

    2015-11-1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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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11-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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