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UC버클리와 교류전… 태권도 더 정진하게 된 동기 얻어

  

서울대 태권도동아리-UC버클리 태권도부 친선 교류전 수기


김홍균 학생

2014년 12월 9일. 서울대학교 태권도부(지도교수 김정한)는 미국 U.C버클리 태권도부(지도교수 안창섭)와 MOU를 체결했다. 나는 그날 운이 좋게도 아침 수업이 없어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U.C버클리가 아이비리그이고 좋은 대학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MOU가 과연 실효적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매년 하던 동경대 교류전처럼 서로 번갈아 왔다갔다하는 식의 교류는 냉정하게 생각해서 무리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종종 서로간의 연락이나 안부나 꾸준히 이어지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이날 체결식은 금방 끝이났고, 나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태권도와 학업을 병행하는 일상을 지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변함없이 태권도에 정진하고 있던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부장이 버클리 교류전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버클리라니. 버클리라면 미국일 테고, 그러면 미국에 진짜로 간다는 건가? 작년에 했던 MOU가 이런 뜻이었나?”

순간 내 머릿속은 놀라움에 잠깐 멈칫. 잠시 후 곧바로 부장에게 “가겠다”고 대답했다. 벅차올랐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세계에 통하는 사람일까 시험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여섯 명의 버클리 교류전의 멤버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동안 방학 동안에는 학기 때보다 더 태권도에 시간을 쏟았던 것 같다. 방학 중에 여러 일로 동아리 운동시간을 맞출 수 없었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유연성’ 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것이었다.

아침-점심-저녁, 틈만 나면 기숙사에 있는 헬스장 매트에서 다리를 찢고 또 찢었다. 기숙사 강당이 빈 날이면 발차기 연습을 했다. 또한 태권도부 지도교수님인 김정한 교수님의 품새 연습도 병행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출국날짜가 다가왔다. 9월 8일 아침, 우리는 태극마크가 달린 단체복을 입고 체육관 앞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서울대 태권도동아리가 미국에 떠나기 전 학교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1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그곳에서 나는 U.C 버클리 태권도 교수님 안창섭 교수님을 처음 보았다. 첫인상을 보고 너무 인자하게 생기셔서 좀 놀랐다.

안 교수님을 포함하여 몇몇 분들이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침대에 눕자마자 ‘결국 도착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오래가지 않았다. 한 낮이었지만 시차적응과 비행기에서 쌓였던 피로가 겹쳐서 저녁운동 전까지 모두 숙소에서 잤다.

이내 곧 교수님께서 깨우셨고 우리들은 저녁운동을 하기 전에 U.C 버클리 캠퍼스를 한번 둘러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캠퍼스였다. 우리 학교처럼 산 언덕에다 지은 것일 텐데 우리와는 달리 푸른빛의 자연경관과 고풍스러운 느낌의 건물들이 잘 어울렸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이런 곳이라면 절로 학교 안에서 어디든지 책을 펴놓고 읽을 것 같았다.

시간에 맞추어 우리는 RSF(Recreational Sports Facility)안에 있는 버클리 태권도장으로 들어갔다. RSF는 버클리 대학교 자체 체육시설인데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갖추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태권도장의 크기였다. 넓게 펼쳐진 푸른색 매트위에 체육 보조도구들이 가지런히 갖추어져 있었고, 천장아래 단상에는 그동안 버클리가 얻었던 우승컵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저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좋은 곳에서 매일 태권도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도라는 것은 그런 환경적인 것보다 마음자세가 중요 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안창섭 교수로부터 태권도 지도를 받고 있다.


첫 버클리와의 교류운동은 매우 힘들었다. 우리들이 방문했었기 때문일까?

안창섭 사범님의 쉬지 않고 이어지는 체력운동, 스트레칭, 발차기 연습에 우리는 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녹초가 되었다. 인자한 모습을 가진 안 교수님의 근엄한 목소리와 힘든 연습에 뭔가 아이러니를 조금 느꼈다.

쉬지 않고 타들어가는 목에 입에서는 항상 짠 소금맛을 느껴야 했고,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발차기에 내 다리는 헛발질이 점점 늘어났다. 가볍게 운동하고 버클리 태권도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안일한 생각은 운동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일 단 버티자’ 는 생각에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합소리에 맞추어 악악 질러대며 간신히 운동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 후 부원들과 숙소에 와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안창섭 사범님의 태권도부 운동이 아닌 태권도 수업을 같이 들었다. 어제와 같은 힘든 운동이 계속될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수업은 수업에 맞게 진행되었다. (근엄한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수업 시간에 팀을 나누고 띠에 패들을 넣은 후 그것을 뺏는 연습이었는데, 태권도만이 할 수 있는 굉장히 참신한 아이스브레이킹이었다.

그 후에 우리들은 U.C 버클리에서 기반을 다잡으시고 미국에 태권도를 전파하시는데 굉장히 기여하신 버클리 명예교수 민경호 교수님과 같이 식사를 하였다. 자리가 떨어져서 많은 얘기를 못했지만, 민 교수님이 우리들을 보시며 굉장히 뿌듯해하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은 게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이 바로 그 분의 인생에서 얻은 또 하나의 결실이실 테니까. 태권도를 위해 몸 바치신 민경호 교수님을 보고, 비록 많이 늙으시고 힘 찬 발차기도 못하시지만 내가 그분의 발차기를 이어나간다고 생각하자 뭔가 가슴이 먹먹하고 발이 무거워진 것 같았다.

저녁식사 후 우리는 안창섭 교수님의 소개로 ‘수지’라는 누나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구경하게 되었다. 역시 미국인만큼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지 스케일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컸다. 또한 거리가 굉장히 잘 정돈되어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미국은 간판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모두다 그냥 일반 주거용 집인 것 같다. 서로 자신 의 위치를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우리나라 간판들과 겹치면서, 우리나라들은 언제나 왜 그렇게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는걸까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민경호 명예교수님과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 다음날에도 우리는 민경호 교수님을 만나서 밥을 같이 먹었다. (사실 그동안 먹었다고 표현했지만 교수님을 만나는 자리면 교수님들은 항상 밥을 사주셨다. 정말 모든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밥을 다 먹자 민 교수님이 우리 테이블에 가까이 오셔서는 물어보셨다.

“왜 태권도를 시작했어?”

사실 이 질문은 어제도 우리한테 물어보시려고 하신 질문이었으나, 밥을 먹고 곧 헤어지려고 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타이밍이 엇갈려 대답을 못 해드린 질문 이었다. 그러나 그때 당시에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었고 민 교수님은 우리들의 눈을 쳐다보시면서 질문하셨다.

우리들의 대답은 다 비슷했다. “어렸을 때 해보고, 대학교 와서 다시 하고 싶어졌다”고.

민 교수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해보고”는 빼고 말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하고 싶어서”였다고, “무도의 길을 걷고 싶어서”였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미소를 지으시지 않았을까?

점심을 먹고 저녁운동까지의 시간은 관광으로 보냈다. 우리들 중 버클리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던 부원이 있어서 그 친구와 차를 빌려서 돌아다녔다. 금문교와 피어39가 생각나는데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스테이크는 ‘그저 그랬다’

이번 저녁운동은 품새 위주의 연습이었다. 태극 1장부터 십진까지 꾸준히 이어나가는 걸 보는데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왜 꼭 우리는 단에 맞추어 품새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품새를 좋아하면 자신이 단이 안 되더라도 연습은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발차기만 멋있게 차면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태권도안에 담겨있던 정신은 어느새 밀려있었다. 나또한 보여주는데 급급했었구나. 발차기만 잘 차면 태권도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중요한 것이지만 태권도라는 것의 전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동이 끝난 후 우리는 드디어 부원사람들과 오랫동안 얘기해볼 기회가 생겼다. 짧은 만남이었기에 그리 긴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참으로 유익했었다.그동안 외국인과 많이 접할 길이 없었던 나로서는 무의식적으로 외국인에게

다가가는 게 꺼려졌었는데, 내가 그들에게서 외국인이 되어보니까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다 같이 태권도를 하는 태권도인이라는 거. 그게 중요한 거였다.

다음날은 스케줄이 없었기에 관광하고 먹으러만 다녔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많이 걸어 다녔다. 내리막길을 걷고 오르막길 언덕을 올라가고, 전차들과 자동차들과, 건물과 풍경들을 보며 최대한 눈에 많이 담아두려고 애썼다.


서울대와 UC버클리 태권도 동아리 교류전을 마친 후 기념촬영

마지막 날, 우리는 안창섭 교수님의 배웅을 받고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고 나면 항상 ‘어느새 지나가버렸다’ 다만, 내가 그곳에서 얻었던 경험들과 느낀바들은 이후에도 나의 마음에 남아서는 나를 이끌 것이다. 태권도를 더욱더 정진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서 앞으로도 꾸준히 나아가야겠다.p.s) 다시 한번 버클리 안창섭 교수님, 민경환 명예교수님, 서울대학교 학생처장이자 태권도부 지도교수님 김정한 교수님, 서울대학교 동창회 박희례 대표님 등 그 외 저희들을 도와주신 많은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글. 김홍균 학생 | 서울대 태권도동아리 / 자유전공학부 1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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