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사랑방] 혼이 깃든 명검(名劍)

  

이정규 사범의 무예 사랑방


이정규 사범

어깨너머 곁눈질

가까운 친구 하나가 산중에서 무예를 닦는 한 암자를 방문했을 때였다. 때마침 우리나라 전통 검(劍)을 보러 오신 일본인 교수 한 분도 동석 중이었다고 했다. 방문객 앞에 두 개의 검이 나란히 놓였는데 첫 번째 검을 뽑자 잘 빠진 검신(劍身)에서 흰 빛이 쏟아져 나왔다. 척 봐도 명검이구나 싶어 감탄을 하려는데 별안간, “이건 시중에서 백 여 만원에 판매되는 것인데 이런 건 칼도 아냐!” 하면서 던져 버리더라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진짜 칼을 보여주겠다며 뱀가죽으로 싸인 낡은 검집에서 검을 쑥 뽑아 드는데 아무런 광채도 없고 그저 까만 쇠막대기처럼 보였다고 한다. 친구는 저게 뭔가 싶어 실망이 드는데 일본인 교수는 조심스레 검을 받아들고는 진정한 검, 혼이 담긴 검을 보았노라고 연신 감탄을 하더란다.

그 검은 고려시대 어느 왕이 무공을 세운 장수에게 상으로 내린 검인데 검을 만든 장인(匠人)이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 용광로에 녹여 부어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넣을 정도라니 생애에 다시없을 검이라는 뜻일 것이다. 반짝인다고 다 금이 아니듯 광채만 풍긴다고 명검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 역시 검을 좋아해 도검(刀劍) 장인을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들은 얘기로는 칼의 색깔은 철의 성분에 따라 다를 뿐이니 날카롭기 위해서 꼭 번뜩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칼의 무게만으로 물체가 잘려나가야지 힘을 주어 베어야 한다면 이미 좋은 칼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칼날과 칼날이 부딪혀 싸울 때 칼날의 이가 깨끗하게 깨져 나가는 쪽이 좋은 칼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날이 깨진 부분에도 예리함이 남아 계속 물체를 베어나갈 수 있지만 싸구려 검은 날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움푹 찌그러져 들어가 물체를 벨 때마다 날이 걸려 베기가 힘들어 진다고 했다.

명검의 특징

오래 전 존재했다던 동서양의 명검들은 그 이름과 더불어 기묘한 탄생신화 그리고 엄청난 공력을 발휘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전설들을 추슬러 보면 명검들의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옥석(玉石)을 진흙처럼 자르고 철판을 종잇장처럼 뚫는다. 고온의 가마에서 최고 순도 의 철을 벼리어 내고 그것을 다시 불에 달구어 접고 내려치고 또 접고 내려치는 극한의 연단을 통해 수 천 겹의 결을 지닌 하나의 날로 완성될 때 비로소 절삭력이 극에 이르러 이런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둘째, 휘어지되 꺾이지는 않는다. 강(强)하기만 하면 부러지고, 유연하기만 하면 휘어지고 만다. 그래서 명검을 만들 때는 강한 쇠와 유연한 쇠 그리고 중간 강도의 쇠들을 감싸고 겹치고 두드려 하나로 만드는 합금방식이 적용되곤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도 역시 명검은 단순히 한 가지 철을 두드려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체를 끊고 베는 중심부의 칼날은 극강의 쇠로 만들고 그 칼날을 감싸는 부분은 부드러운 쇠로 대고 칼등은 다시 중간 강도의 쇠로 덧대는 등 서로 다른 강도를 가진 쇠들을 조합해 겹쳐 만드는 방식을 쓰곤 한다. 중국 역시 오합금(五合金)이라 하여 강도가 서로 다른 다섯 가지 쇠들을 겹치고 접어 때려 검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오합금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검날의 옆면을 빛에 비춰보면 저마다 빛을 반사하는 각도와 정도가 틀린 금속들로 인해 빛이 사방으로 부서지듯 반사돼 마치 스스로 광채가 나는 것처럼 보여 속칭 광검(光劍)이라고도 불렀다.

이렇게 휘어져야 할 땐 휘어지고 버텨야 할 땐 버텨내는 강(剛)과 유(柔)를 동시에 지닌 검, 강유(剛柔)를 한 몸에 겸비하여 도저히 꺾을 수 없는 검이 바로 명검인 것이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금강(金剛)이란 단어가 있는데 흔히 몹시 단단해 결코 깨어지지 않는 물건을 일컫는데 사실은 강과 유를 동시에 지녀 부서지지도 않고 꺾이지도 않는 물건을 일러 금강(金剛)이라 하는 것이다.

셋째,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둘로 가른다. 머리카락의 작은 무게만으로도 잘린다는 것은 예리함의 극치를 말한다. 이런 칼날이 긋고 지나가는 길을 막아선 물체라면 소리도 없이 단박에 두 동강이 나고 말 것이다.

날이 무딘 도끼로 대나무를 쳐보면 소음도 크게 날뿐더러 대나무가 부서져 나갈 뿐 베기가 힘들다. 도끼날의 단면적이 넓어 부딪히며 생기는 저항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도로 예리한 칼날은 물체와 닿는 표면적이 극히 미소해 저항도 소음도 거의 없이 물체를 가르고 지나간다. 이런 검을 가지면 대나무 숲처럼 빽빽이 막아선 적군 속을 풀잎 자르듯 헤쳐 나갈 수 있고 수백의 적을 베어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으니 전장에 선 장수(將帥)라면 누구나 애타게 찾던 최강의 무기였던 것이다.

넷째, 사람을 베어도 피가 묻지 않는다. 검의 표면이 극도로 정밀하게 다듬어져 있어 핏방울이 묻어도 걸림 없어 그냥 흘러내리고 마는 것이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나노기술(Nano Technology: 원자나 분자 단위에서 물질을 합성하고, 제어하는 기술)을 적용해 아주 매끈하게 표면처리가 된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제품에는 진흙이나 페인트를 부어도 전혀 묻지 않고 그대로 씻겨나가 버린다. 그런데 그 옛날 오직 수공(手工)만으로 21세기에서나 실현된 초정밀 기술을 만들어 냈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

정교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극강(極强)한 검, 오랜 세월을 넘어서도 범상치 않는 기운이 서려있는 검, 식지 않는 장인의 뜨거운 혼이 담겨있는 검! 무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가치 있는 명검 하나 갖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물건은 쓰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물건의 진가가 나타나는 것이지, 만드는 사람이 물건의 진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의사가 칼을 들면 사람을 살리고 강도가 칼을 들면 사람을 잡는다. 어머니가 칼을 들면 사랑이 담긴 음식을 만들고 불량식품을 제조하는 사람이 칼을 들면 독이 든 음식을 만든다. 무인이 칼을 들면 나라를 지키는 무기가 되겠지만 테러리스트가 칼을 들면 인명을 살상하는 흉기가 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물건도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 고려청자에 이조백자라 해도 쓰는 이가 술이나 담아먹고 국이나 말아먹고 만다면 이는 천한 그릇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 모든 물건은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고 쓰는 사람이 따로 있기 마련이다. 이는 검도 마찬가지다. 검을 만드는 장인은 평생 검만 만들다가 죽을 뿐 정작 그 검을 쓰는 이들은 무사들이다. 뛰어난 장인이 혼신을 다해 만든 천하제일 명검일지라도 정작 쓰일 때는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 사용 되니 이걸 쓰는 사람이 잘 써주어야 장인의 공덕이 빛나게 된다.그러니 검을 널리 세상을 위해 유익되게 써 줄 때 비로소 만든 이 역시 보람과 행복 그리고 감사를 느끼지 않겠는가.

무예를 쓰는 사람

비록 천하의 명검일지라도 쓰는 사람의 생각과 사고의 갖춤 정도에 따라 세상을 구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한낱 사람을 베는 흉기가 된다. 우리가 닦는 무예가 바로 그렇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지키는 무(武)가 되기도 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폭(暴)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 뉴스시간에 보도 된 기사들을 보고 정신이 아득했던 적이 있다. 한 할리우드 액션배우는 비록 단역 위주였지만 007시리즈나 기타 유명 영화마다 악역으로 얼굴을 비쳐 꽤 알려진 사람이었다. 태권도, 유도, 가라데, 권투 등 모든 무술을 총 망라해 자신만의 유파를 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사람을 죽여 체포되었다는 보도였다. 또 한편에선 유도 유단자인 건장한 백인 사내가 부부싸움 끝에 아내를 조르기 기술로 황천길로 보내버렸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국에선 길가다 부부싸움에 휘말려 홧김에 진검으로 남편을 베고 달아난 사람의 기사도 있었고 태권도를 한 사람이 사적인 감정으로 사람을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도 있었다. 아마 각 무술 문파마다 이런 향기롭지 못한 기사 한 두 가지씩은 숨기고픈 상처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런 대형 사고를 친 사람들이 초보 수련생이 아니라 각 문파에서 상당한 수련을 쌓았던 사람들이고 남을 가르치고 이끄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태권도를 비롯한 무술단체마다 무를 연마하면 심신이 건강해지고 인성이 밝아진다는 광고들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검을 잘 쓰고 발차기를 잘하고 겨루기를 잘한다고 인성이 좋아질 수 있는 것인가? 윗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그저 말 잘 듣고 고개 숙여 인사 잘한다고 인격이 완성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무예(武藝)수련을 방편으로 그 안에서 나를 낮추는 겸손함을 배우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우며, 이웃을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며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이가 혼(魂)을 심어야 비로소 사람도 바뀌고 고고한 인성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새 시대의 명검

오늘날은 칼을 차고 다니다가 거리에서 적을 만나 막 휘둘러 베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무예란 생존이나 전투수단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자신을 닦는 도구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선 악을 쓰는 기합보다 편안한 대화를 나눌 줄 아는 기술이 더욱 긴요하고 칼을 잘 다루기보단 커피 한 잔을 잘 다루는 실력이 중요한 시대이다. 좋은 벗을 만나 커피 한 잔을 나누면 좋은 기운이 돌아 지쳤던 몸도 풀리고 정신도 맑아져 삶이 충만해진다. 이렇게 사람을 잘 사귀는 것이 무엇보다 큰 힘을 얻는 방법이고 진정한 호신이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 무예를 자신의 육체적 강함을 증명하고 저보다 약한 이를 억압하는 방편으로만 취하려는 편협한 생각을 내어선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겐 무예라는 숫돌이 주어져 있다. 하늘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 빛내라고 우리에게 주신 수련의 방편이다. 이 숫돌에 무딘 쇠막대기 같은 나를 갈아 광채를 내고 날을 잡아 세워야 한다. 이로서 우리 무인(武人)들 하나하나가 사(邪)를 베고 정(正)을 세워 세상을 바로 잡는 천하의 명검들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그런 날이 어서 오길 오늘도 꿈꿔본다.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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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사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주어진 도구를 잘 쓰는 사범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다음에도 좋은 글 부탁합니다

    2015-08-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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