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다시… 꿈에 정상 오른 오혜리 ‘간절함’ 通했다!

  

4년 전 세계선수권 은메달 금으로… 준결승-결승 동점서 ‘결승포’는 간절함


생애 첫 세계 정상에 오른 오혜리가 장정은 코치와 기뻐하고 있다.


번번이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쳤다. 다지 재기해서 뭔가 해보려고 하면 부상이 겹쳤다. 그래서 그를 ‘만년 2인자’라고들 했다. 부상과 패배에 연속으로 ‘포기’를 했더라면 하마터면 그 수식어가 평생 뒤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각을 발차기 한 방으로 내쳤다.

2015 WTF 세계태권도선수권 여자 -73kg급 우승자 오혜리 선수(춘천시청, 27)의 이야기다. 4년 전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프랑스 글라디스 에팡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라 내심 우세승을 기대했으나 주심의 손은 에팡을 향했다. 동메달보다 성취감이 덜하다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때문에 ‘2인자’가 되었다.

이듬해 2012 런던 올림픽을 향해 담금질에 돌입했다. 그러나 부상. 그다음 해 2013 푸에블라 세계선수권에 도전했으나 또 역시 부상. 국내 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연말 2013 맨체스터 그랑프리에 출전해 재기를 바랐으나 예선 탈락. 패배가 자연스러워 졌다. 자신감도 떨어졌다.

포기와 재기 갈림길에서 ‘재기’를 선택했다. 팀도 춘천시청으로 옮겼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했다. 더 이상 잃을 자존심도 없었다. 몸이 달라졌다. 전과 느낌이 달랐다. 자신감도 살아났다. 마침 2014 멕시코 퀘레타로 월드컵단체대항전에 여자 대표팀으로 파견됐다. 김혜정과 김휘랑, 김미경, 서소영, 박혜미, 황경선과 한 팀을 이뤄 우승을 차지했다.


재기의 발판이 된 2014 월드컵 우승(오른쪽에서 두 번째)


월드컵 우승으로 값진 20점 랭킹 포인트를 확보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듬해 2월 제주도에서 열린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기대 이상 선전하면서 백전노장 이인종(서울시청)을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4년 만에 세계선수권 태극마크를 달았다. 4년 전 잃은 금메달을 다시 따올 천금 같은 기회를 얻었다.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대회를 치른 것도 아니었다. 대회 전 외조부가 세상을 떠났다. 대회 계체 전날 비보를 접했다. 가족들이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장례식장도 가지 못하고 대회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바라는 마음이 국가대표가 되길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 그 배려를 원동력으로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뛰었다.

‘만년 2인자’에 대한 오혜리의 생각은? 정작 본인은 그동안 자신이 2인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난 몰랐다. 나만 모르고 있었나”라면서도 “스포츠에서 1등이 아니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냉철한 세계다. 이게 부담도 크고 마음 한켠에 억울함에 대한 응어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동안 많이 져봐서 지는 것에 대한 ‘울분’이 있었다. 특히 부상으로 몇 차례 국가대표 선발을 놓친 적이 있어서 선발전 이후에는 부상만은 당하지 말자고 의지를 갖고 훈련했다”고 덧붙였다.


오혜리가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결전을 앞둔 앞 날 밤.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룸메이트 막내인 임금별은 이미 주위의 예상을 깨고 금메달을 딴 후였다. 8강에서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이 체급 세계랭킹 1위인 밀라차 만디치(세르비아)를 13대4로 제압해 금메달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 올렸다.

한편으로 이튿날 결선에서 만약 금메달을 따면 어떤 세리모니를 할까도 고민거리였다.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컸고, 스스로가 가능성이 높은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신을 뒤에서 지켜준 장정은 코치와 상의를 할까도 고민했으나 전략을 짜는 게 더 급선무였다. 혼자 다음날 상대를 분석하고 준비하는데 온 힘을 기우렸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금’메달이 확정됐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접전을 펼치다 1초를 앞두고 천금 같은 몸통 득점을 올리며 우승했다.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오른 손 검지를 치켜세워 ‘세계선수권 1승’을 알렸다. 이어 이번 대회에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장정은 코치를 번쩍 들어 올려 함께 자축했다.

세리모니가 인상적이었다. 앞날 고민한 그 세미모니였다. 보통에 국기를 들고 경기장을 한 두 바퀴 도는데, 오혜리는 경기 입장시 보조요원이 드는 'KOREA'라는 피켓을 들고 경기장을 돌았다. 관중들을 향해 인사를 하며 우승의 기쁨과 자신을 응원해준 선수단에게 고마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시상식에 오른 오혜리는 온몸으로 우승을 만끽했다. 기쁨보다 의지를 나타냈다. 태극기를 걸치고 시상대에 오른 오혜리는 전장에 나간 ‘전사’의 눈빛을 내뿜었다. 태극기가 여러 국기 중 가장 높이 올라가고, 애국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자 참았던 눈물이 샘솟듯 흘렀다. 지난 시련과 노력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럴만하다.


시상식 후에도 비장함이 계속 이어졌다.


이튿날 만난 오혜리는 차분하게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했다.

“간절함이었던 같다”라고 운을 뗀 오혜리는 “이번에 간절히 소망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국내대회에서도 매 경기 소중하게 생각하고, 간절하게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이번 세계대회도 그 간절함이 날 챔피언으로 만든 것 같다. 준결승과 결승 모두 종료 직전 득점을 뽑아 올라온 것도 그렇고 내 간절함이 없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무대에서 최근 한국 태권도가 옛 명성에 걸맞지 않아 ‘종주국 위기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오혜리의 값진 성과는 금메달보다는 2분 3회전 경기 종료 직전까지 집중해 경기를 뛰는 정신자세다.

[무카스미디어 = 러시아 첼랴빈스크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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