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사랑방] 까똑~ 카톡… 말이 주는 기운

  

이정규 사범의 무예 사랑방


이정규 사범

“까똑! 까똑!”

요즘은 미국에 앉아 한국과 카톡(Kakao talk)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몇 년 전만 해도 국제전화로 할 말만 하고 바로 끊던 시절이었건만, 이런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이렇게 여기저기 카톡 방에 연결되다 보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까똑! 까똑! 스마트폰이 비명을 지른다. 오가는 대화들을 들여다보면 ‘지겹다. 힘들다. 밥은 먹었냐? 왜 사냐? 첫 사랑은 잘 살고 있으려나? 걸 그룹 동영상 떴다 같이 보자, 오늘은 뭘 가르치냐?’ 등등 중년 남성들의 수다도 어느 여성그룹 못지않을 것 같다.

그런데 다 알다시피 인터넷을 통해 주고 받는 말들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인터넷에 한 번 올라간 말들은 누구나 볼 수 있고 어딘가에 남아 아주 오랜 시간 숨어 있다가 결정적일 때 튀어나와 인생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한 부장판사가 뉴스기사에 익명으로 달았던 댓글들이 불거져 나와 큰 망신을 사지 않았던가. 몇 년 전, 새벽에, 혼자서, 집에서, 그것도 몰래 익명으로 쓴 글이 어떻게 전 국민에게 공개될 수 있는 것일까?

미국 CIA 정보당국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일반인들의 통화내역부터 인터넷 사용정보며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를 무차별로 수집, 도청, 사찰한 사실을 세상에 폭로했던 스노우든(Edward Joseph Snowden)사건도 있지 않았던가? 친구와의 사소한 대화부터, 숨기고픈 옛 연인에 대한 추억까지 인터넷을 거쳐 간 모든 정보를 누군가 저장하고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기만 할 뿐이다.

허공에 새겨지는 말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들은 비단 인터넷을 거쳐야만 세상에 남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말이란 내 몸과 생각 그리고 마음의 기운이 하나로 뭉쳐 입으로 나오는 강력하고 실질적인 에너지다. 그래서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은 하나도 허공에 사라지지 않고 대자연에 그대로 감응돼 새겨져 있다가 그 파장이 부메랑처럼 다시 내게 돌아온다고.

그래서 “난 못해, 난 절대 안 돼!”라고 계속 말을 하면 될 일도 되지 않고 반대로 “그래, 난 할 수 있어!”라고 긍정적인 말을 되 뇌이면 안 될 일도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은 평소 내가 한 말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평소 어떤 말을 했느냐가 바로 오늘의 나를 만드는 것이니 말이란 항상 조심해서 가려해야 할 일이다.

말이 갖는 기운

사람이 가진 기운 중 가장 큰 기운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말의 기운이다. 말이란 자연의 다른 소리들처럼 단순히 공기가 진동되어 전달되는 음파 에너지가 아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가 살아오며 닦은 사고의 결정체라 그 자체로 엄청난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치인, 기업인, 지식인, 연예인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들을 보라. 이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의 흐름이 바뀐다. 태산을 움직인다는 장군의 명령도 말로 떨어질 때 비로소 그 힘이 나온다. 역사를 바꾼 위대한 사상가들도 말로 세상을 바꾸어 냈다. 이처럼 사람의 말은 세상에 영향을 주는 실질적인 에너지였던 것이다.

말이 갖는 힘의 증거

대한민국이 2002년 월드컵축구 4강 진출의 신화를 어떻게 이루었는지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전 국민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치는 장면은 전 세계인들을 경악케 했고 나처럼 외국에 살며 조국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이들조차 경의에 차게 만들었다.

어느 나라 국민들이 이처럼 한 날 한 시에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 한마디 말을 동시에 외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이 말에 담긴 온 국민의 염원이 뭉쳐 한 골 한 골 기적의 신화를 만들어 냈던 것이 아닐까?

말이 갖는 물리적인 힘을 확인해 보는 TV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잘 지은 밥에 미운 말, 독기서린 말을 잔뜩 하고 뚜껑을 덮어놓고 일주일 후에 보니 새까맣게 곰팡이가 피었고 반대로 사랑스런 말을 많이 해주고 뚜껑을 덮어 놓은 밥은 일주일 후에도 뽀얗고 보기 좋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외국 어느 공원에 예수의 12제자 이름을 단 나무들을 심어 놓았는데 그 중 유독 한 나무만 매번 말라 죽었다고 한다. 그 나무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쉽게 짐작이 가듯 스승인 예수를 은전 30냥에 팔았다는 가롯 유다였다. 행인들이 지나가며 뱉은 독한 말의 기운에 견디지 못하고 말라죽은 것이다.

이처럼 말의 에너지는 매우 크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 남의 인생을 망칠수도 있고 심하면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인터넷에 달리는 악성 댓글들은 이런 말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정인에게 지독한 모멸감을 안겨주어 사회적으로 소외시키고 궁지로 몰아넣어 마침내 자살로까지 몰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던가?

사실 나도 이런 댓글이 무서워 칼럼 쓰기를 무척 망설이는 사람이다. 나름 좋은 취지로 한 말에 얼굴도 모르는 이가 앞 뒤 다 잘라먹고 엉뚱한 댓글을 달아버리고 도주(?)했을 때의 참담함이란. 누군가 몰래 다가와 뒤통수를 후려치고는 머리에 씹던 껌까지 붙여 놓고 도망갔을 때의 심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니 나같이 심약한 사람은 아예 인터넷에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 될 것 같다.

이처럼 육체의 상처 보다 마음을 할퀴고 간 말의 상처가 더 아픈 법이다. 오래남아 치유하기도 어렵고 잘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기억의 수면 위로 튀어 올라와 온통 가슴을 헤집어 놓기 때문이다.

나를 만드는 말

비록 나 같은 범인(凡人)의 말일지라도 말은 그 에너지가 높아 직접적으로 내 삶에 파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이가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최신 가요며 팝송까지 젊은이들의 취향에나 맞을 법한 노래를 시원시원하게 잘 부르시는 분들이 계신다. 말씀도 고리타분하지 않고 듣느니 도움이 되는 덕담이라 말씀만 같이 나누어도 기운이 솟기에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분들은 맑은 기운이 돌아선지 얼굴도 밝고 외모도 나이보다 훨씬 젊어 뵈신다.

반면에 입만 열면 불평불만에 맨날 힘겹고 어렵던 시절 얘기며 푹 퍼질러 앉아 양푼에 밥 비벼 먹던 얘기만 하시는 분도 계신다. 그래선지 사고도 케케묵고 고집스러운 바가 있어 말이 잘 통하질 않고 푹 퍼진 기운에 외모도 나이에 비해 늙어 뵈신다.

또래들이 모이는 모임에 나가봐도 마찬가지다. 자리에 없는 친구를 헐뜯고 입만 열면 남 탓을 하는 친구가 있다. 불평은 혼자 다 쏟아내면서도 속이 시원하긴 커녕 도리어 기가 막히는지 오만인상 다 쓰고 앉아있다. 그런 친구에게선 탁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왠지 모르게 꺼려지니 점점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불평불만은 나와 남과의 관계를 멀게 만들 뿐 아니라 스스로의 기운도 막아버려 마음의 병을 넘어 몸에까지 병이 치고 들게 만든다. 그러니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할 수 있는 대로 감사와 희망에 찬 좋은 말로 풀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기운이 상승해 자신에게도 득이 되고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사람을 이끄는 말

흔히 태권도를 수련하고, 무예수련을 하고나면 인격이 완성되어 사람이 나아진다고 하는데 정말 태권도 수련으로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열심히 주먹 지르고 발차기만 잘 한다고 인간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태권도를 잘해 세계 챔피언이 된 선수들은 인간완성에 더 가까워져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권수련으로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을 바꾸는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사범이고 지도자라면 절도 있는 육체의 단련에 더불어 ‘말’로서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기에 부족함 없는 인성을 심어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을 돌아봐도 수업과는 관계없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훈들을 틈틈이 구성지고 재미나게 얘기 해 주셨던 선생님들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은퇴한 백발의 노인이 되셨을 그 분들의 훈훈한 가르침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오늘을 사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채 여물지 않았던 시절,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는 가르침을 주셨던 이런 고마우신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을까?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줄 가르침은 고사한 채 교과서 진도만을 따라가는 지식의 전수에만 급급했다면 지금의 나는 그리고 우리 세대는 아마도 메마른 가슴으로, 메마른 세상을 헤쳐가야 하는 고된 수고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무예지도자들도 기술 전수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없는 틈도 내고, 없는 짬도 만들어서 수련생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등불이 될 만한 ‘말’들을 그 귀에 많이많이 담아 주어야 할지 않을까.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우리 사범님의 가르침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평을 듣게 된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할까?

가슴이 따듯해지는 말

기분 좋은 말을 많이 듣고 산다면 그 만큼 삶은 풍요로워 질 것이고, 가슴 따듯한 말을 많이 내고 산다면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져 행복해 질 것이다. 내 귀에 들리는 말이야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바이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 만큼은 맑게, 귀하게 골라 쓰려는 노력을 해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지난 칼럼 <달인의 경지>가 연재되고 나서 카톡으로 메시지 하나가 왔다. 우리가 주고받는 카톡 메시지가 뜻 없는 신세타령이기보다 누군가의 마음을 채워주는 이런 말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개해 본다. “뛰어난 재주는 사람의 눈을 잡을 수 있고, 뛰어난 인품은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 있지요. 눈보다는 마음속에 오래 남는 스승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00 사범)”

나를 비롯해 무카스에는 여러 분들의 글이 실린다. 이 공간을 드나드는 이들은 독자나 필자나 할 것 없이 무예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살아가는 특별한 이들이다. 필자들이 무예라는 세상을 헤쳐 가며 배운 바를 나름의 관점으로 정리해 의견을 피력해 보지만 해박한 지식과 높은 안목을 가진 무카스 독자들의 눈높이를 다 충족시키는 글을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우린 무예를 닦는 무인들이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무조건적인 채찍보다는 건강한 비평이 담긴 따뜻한 격려가 무카스 기사마다 더 많이 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의 무예세상은 각박한 오늘보다는 따듯하고 푸근한 그리고 좀 더 여유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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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ank you sir

    2015-05-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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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k

    처음부터 여기까지 드디어 다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말씀들 너무나도 감사드리고 지금 당장부터라도 마음가짐과 할 일들이 태산같이 느껴지지만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단계별로 올라가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

    2015-05-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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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한

    사람의 마음을 잡는 사범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근데 어떤 사람의 마음을 잡죠? 학생들,직원들,선후배 사범님들?
    모두 다 잡을수 있는 사범..욕심이나요.?

    2015-05-1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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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사범

    좋은 말씀입니다.
    전 지식이 풍부하지 못해서 고전문학책을 사서 한구절씩 일주일에 한번씩 수련생에게 읽혀줄려고 노력중입니다.^^

    2015-05-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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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범

    이사범님, 이번에도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저도 마음에 남는 스승이 되도록 노력하렵니다.

    2015-05-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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