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사랑방] 달인(達人)의 경지

  


이정규 사범

애틀랜타 신발수선공

모처럼 아내와 함께 인근 대도시인 애틀랜타에 일을 보러 나갔는데 갑자기 아내의 구두 뒷굽이 떨어져 나갔다. 마침 가까운 곳에 구두수선점이 있다기에 찾아갔다. 작은 간판하나 달랑 달려있는 가게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빼곡히 쌓인 신발들이 장사가 잘 되는 집임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니 바로 고쳐주겠다고 했다. 그냥 접착제만 발라주겠거니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발 바닥을 갈고 떨어진 부분을 재서 오려 붙이고 다시 재료를 덧대고 다시 갈고 접착제로 붙이고 못을 박고 다시 좌우 높이를 재고 반짝반짝 광까지 나게 닦아주는데 그 능숙하고 꼼꼼한 손놀림이며 진지한 눈빛이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알고 보니 실력 있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단골이 많은데다가 한번 왔던 사람이 다른 사람까지 몰고 와 아무 광고 없이도 일이 밀려 놀 틈이 없다고 했다.

요즘에도 떨어진 신발을 고쳐 신는 사람들이 있나 싶었는데 싸구려 신발부터 한 켤레에 1000불($)이 넘는 명품까지 다양하게 들어온다고 했다. 수리를 기다리는 한 명품신발 바닥이 너덜너덜했다. 비싼 신발이 이렇게 약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사실은 명품회사들이 일부러 신발바닥을 오일이나 휘발유에 닿으면 빠르게 삭아버리는 재질로 만든다고 했다. 명품이라고 아껴 오래 신으면 회사에 손해라 그런다는 것이다. 빨리 떨어져야 다음 신발을 구매할 것이 아닌가? 흠집난 명품은 신고 싶어 하지 않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었다.

이런 상술에 부흥해 신발을 맡기면 값싼 재료를 덧대 쉽게 떨어지도록 고쳐주는 수선점도 많다고 했다. 재료비도 아끼고 손님 회전률도 높일 수 있어 일석이조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분은 믿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어찌 그럴 수 있냐며 남이야 그러든 말든 최고의 재료들로 최선을 다해 수리하고 있었다. 병신(?)이 되어 들어온 신발이 새신(!)이 되어 나가는 것도 재미있고 손님들이 고친 신발을 받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보람도 있다고 했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만족도가 대단했다. 게다가 앞으로 5년 내로 이 일을 하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대거 은퇴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려 하질 않아 이 쪽 시장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란다. 그러니 지금도 넉넉하지만 앞으로는 더 큰돈 벌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성실히 일한 덕에 복 받은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마치 관상가처럼 신발만 딱 봐도 신발 뒤에 감추어진 주인의 삶까지 읽어내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신발이라면 달인(達人)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그의 안목을 빌려 빼곡히 쌓인 선반위의 신발들을 보니 구두약 손에 묻히기 싫어하는 명품귀족들로부터 신발에 고단함과 안쓰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일반 서민들의 삶까지 조금은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생활 속의 달인

인터넷으로 본 한국방송에서 생활 속의 달인들을 소개하는 TV쇼를 본 기억이 난다. 봉투 붙이기 달인, 김치 담그기 달인, 라면 끓이기 달인, 새총 쏘기 달인 등등, 참 사람이 어쩌면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뛰어난 재주들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걸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과 달리 달인들 스스로는 이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랜 시간 반복되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힌 재주일 뿐 본인들에겐 그리 신기할 일이 아니라 그렇다.

그런 점은 우리 사범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범을 나가 몸을 날려 차는 공중 격파나 벽돌, 블록, 각목 등 건축자재로나 쓰일 물건들을 격파하는 위력격파를 선보이곤 한다. 우리야 맨날 하는 일이니 별 것 아닌데도 관객들은 환호를 한다. 시범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서진 격파물 한 조각이라도 집어가려고 달려드는 관객도 있고 “How can you do that?(어떻게 그런 게 가능해요?)”라며 경외에 찬 눈으로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많다. 이렇게 보면 우리도 알든 모르든 보통 사람들의 눈엔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칭찬과 존경의 차이

달인(達人)이란 어떤 기예에 통달한 사람을 말한다. 한 가지 기예를 오랜 시간 반복하다 보니 숙달이 되어 보통사람 눈엔 가히 신기할 지경에 이른 사람이다. 하지만 그 재주가 탄복할 정도라고 해도 쇼가 끝나면 우린 바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신기한 재주로 눈요기를 할 뿐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그 뛰어난 재주에 ‘칭찬’은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존경’하기 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칭찬’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기운이고 ‘존경’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올리는 기운을 말한다. 아랫사람이 잘한 일이 있다면 칭찬을 하지 존경을 하진 않는다. 반대로 윗사람이 잘한 일이 있다면 당연 존경을 하지 칭찬을 하진 않는다. 그러니 주위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아직은 아랫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로도 칭찬을 받을 수 있을 뿐 존경은 받을 수 없는 법이다. 재주로만 치자면 서커스에서 선보이는 기예들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안전장치도 없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곡예사들은 가슴 철렁한 묘기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쇼가 진행되는 동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희색이 만발하지만 쇼가 끝나는 순간 이들은 미련 없이 자리를 뜨고 관객 떠난 텅 빈 자린엔 쓰레기만 가득하다.

관객의 입장에선 돈을 내고 재주를 보고 즐기며 박수를 쳐주고 칭찬을 해주었으니 그것으로 끝이다. 쇼가 끝났는데도 남아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커스에서 돈을 낸 관객은 갑(甲)이고 왕이고 윗사람이다. 반면에 곡예사들은 을(乙)이고 신하고 아랫사람이다. 그래서 칭찬은 받지만 존경을 얻진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그들의 따라 곡예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쇼가 끝난 무대는 쓸쓸하고 어둡다.

칭찬받는 사범, 존경받는 사범

우리에게는 무예에 대한 뛰어난 재주와 전문지식이 있기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명품 구두보다 더 귀한 자녀들을 맡기기도 하고 혹은 자신 스스로를 맡기기도 한다. 몸도 마음도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수련생부터 인생을 반쯤 살고 나서 고장 난 몸을 수리하기 위해 도장을 찾는 중년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똑똑하고 뛰어나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수련생부터 지적장애를 가져 특별한 지도를 요하는 수련생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온다. 이들과의 관계는 서커스나 TV 쇼처럼 한 두 시간 보고 끝나는 관계도 아니다. 짧게는 수 개 월부터 길게는 수 년 씩을 함께 한다.

그런 우리가 수련생들이나 그 가족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존경’을 받고 있는가? 재주가 뛰어나다고 듣는 칭찬을 존경으로 헷갈려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가 뛰어난 기술을 선보이면 그것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 땐 당연 내가 갑이고 그들이 을이다. 이렇게 처음엔 ‘칭찬’으로 시작한 관계라도 나중엔 ‘존경’으로 발전시켜야 성공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모으고 가르치는 일이 반복되다보면 어느 순간 슬럼프가 찾아온다. 수련생들을 열심히 모아놓으면 떨어지고, 모아 놓으면 또 떨어진다. 성장에 한계가 생기고 나면 지도하는 것이 즐겁지 않고 힘이 들기 시작한다.

매일매일 수련생들의 머릿수를 세고 한 달 수입을 따져보고 도장 렌트비며 이런 저런 지출을 계산하고 나면 한 숨이 나온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이 되면 도장은 접고 다른 일로 전향하고 싶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이렇게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하는 일이 되기 시작하면 수련생들과 그 좋던 관계도 조금씩 깨져나가기 시작한다. 수련비를 낸 이들은 나를 고용한 고용주가 되고 갑이 되고, 나는 돈 받은 대로 일을 해주는 고용인이 되고 을이 된다. 수련생들이 더 이상 도장에 다닐 재미가 없어 이 핑계, 저 핑계로 떠나지만 아쉽게도 잡을 수도 없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우리 사범들이 뛰어난 기술을 닦아 칭찬만 받을 줄 알았지 이들에게 스승이 되어 존경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사범들이 “나는 수련생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존경이란 사랑을 기반으로 목숨까지도 받칠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스승은 제자를 사랑하고 제자는 스승을 존경한다. 스승은 제자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제자는 스승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이럴 때 존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존경을 받고 있는가?

이런 존경을 받게 되면 더 이상 아무도 나를 떠나지 않게 된다. 존경하는 사람과는 평생을 함께 가고 싶고 그 분을 위해서는 목숨마저 초개와 같이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자기들이 존경하는 성자(聖子)를 위해 순교까지 마다않는 종교인들이 있고 섬기던 군주나 스승을 따라 사지로 뛰어든 수많은 지사(志士)들이 있어왔다. 이때 이들이 맺은 관계는 단순한 주종(主從)관계가 아닌 사랑과 존경으로 맺어진 사제관계였다.

우리가 뵈었던 어릴 적 사범님은 그 권위와 품위가 대단했다. 당연히 사범님의 말이 법이고 진리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요즘 직업이 사범이라면 누가 얼마나 존경을 하는가?

하늘이 내는 시험

대자연에는 보이지 않는 운행법칙이 있다. 인생을 살다가 승진의 때가 되면 하늘이 누군가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묻곤 한다. “힘들다면서 왜 태권도를 계속 하는가?” 그러면 별 생각 없이 답을 해버린다. “먹고는 살아야죠.” 생각 없이 뱉은 그 말이 정답이다. 이런 대답이 나온다는 것은 평소에도 그 이상의 생각이 있질 않았다는 뜻이다. 특별히 수련생들을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먹고만 살려 하니 하늘이 말 그대로 해준다. 아무리 뛰어도 딱 먹고 살 만큼 밖에 돈도 안 들어오고 행여 돈 좀 벌어 살만하다 싶으면 웬 사고가 나서 걷어간다.
그러니 우리는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먹고 살기 위해’, 또는 ‘할 수 없이’, ‘다른 선택이 없어서.’ 이 길을 간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내면 안 된다. 내가 하는 말은 하늘이 듣고 땅이 듣는다. 평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다.

빛나는 사범 되기

모름지기 사범이란 수련생을 위해 살 때 비로소 빛이 나는 법이다. 수련생을 위해 살라는 말이 돈을 벌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수련생들을 위해 살며 존경 받는 사범이 되면 자연히 따르는 무리가 많아질 테고 필요한 돈은 저절로 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수련생들을 위해 살지는 않고 나를 위해서만 사니 하늘이 제동을 거는 것이다.

사범이란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다. 수련생들의 성품과 인성을 다듬어 질량을 높여주는 교육자다. 그들의 삶을 읽고 세상을 읽는 안목을 키워야 하는 지도자다. 숱한 노력의 반복 속에서 사람을 이끄는 기술이 달인의 경지에 올라야 하는 사람들이다.

최고의 가르침을 펼쳐야할 사범들이 스스로는 갖추지 않은 채 남을 이끌려 한다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나로부터 풍부한 지식 갖춰 속을 채워나가야 한다. 겉으로만 아무리 꾸민들 소용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속은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천명(天命)

난 무예 지도자들을 하늘과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늘 생각 해왔다. 아주 먼 옛날에는 힘을 가진 부족장이 곧 하늘에 제를 올리던 제사장이었고 백성을 이끌던 군주였지 않던가. 그 전통이 싫든 좋든 무(武)를 숭상하며 살아온 우리들의 핏속에 면면이 이어져 남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를 숭상하고 힘을 갖춘 이라면 보통 사람일 수가 없으며 항상 남을 의식하고 본이 되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 믿는다.

사범, 그것은 어쩌면 하늘이 특별한 이들을 골라 세상을 이끌라고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심어 놓은 천군(天軍)들이 아닐까? 어떤 탁한 세파 속에서도 자존심을 꺾지 않고 맑음을 지키며 바른 기상을 세워나가는 사람들. 그럴 각오와 뚝심을 가진 하늘의 군사들. 그런 우리가 깨어 날 때 비로소 더 나은 세상도 열리지 않을까?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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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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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사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5-04-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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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9771

    지금 사범님의 책을 읽고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4-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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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범

    이번에도 유익하고 귀한 글 참 감사합니다.
    사범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방향을 제시해 주셔서요.
    제 자리에서 수련생을 위한 지도자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5-04-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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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

    thank you again for other edu. for me

    2015-04-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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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인

    이정규사범님 오늘도 깊이 있는 글 감사합니다.
    제가 유투브에서 가끔씩 배우는 정법강의와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이 있네요.
    사범님도 혹시 아실런지 모르겠습니다.
    무도 지도자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글 항상 감사합니다.

    2015-04-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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